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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 시기 멕시코로 피난한 바스크인 난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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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스크계 멕시코인은 멕시코인 중에서도 바스크에 기원을 둔 멕시코인을 총칭한다.2. 이민사
자세한 내용은 스페인계 멕시코인 문서 참고하십시오.2.1. 멕시코 독립 이전
바스크 혈통을 물려받은 멕시코인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100페소의 인물로 들어간 후아나 데 아스바헤를 들 수 있다. |
16세기 초부터 19세기 초 멕시코는 스페인 제국의 식민 행정 구역 중 하나인 누에바에스파냐에 속해 있었다.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스페인 본토와 누에바에스파냐 식민지는 대서양을 마주보고 서로 거리를 두고 있었고, 이러한 연유에서 누에바에스파냐에 정착한 스페인인들은 군인이나 관료 이외에도 뱃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당시 바스크 지방은 스페인 제국에서 가장 숙련된 뱃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명망이 높았고, 바스크인 상당수가 누에바에스파냐를 오고가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누에바에스파냐의 고원 지대 혹은 열대우림 저지대는 바스크 선원들이 정착하기에 그렇게 매력적인 지역은 아니었다. 바스크인들이 식민지에서 자리잡기 선호한 지역은 아메리카 대륙의 남부 온대기후 지역 오늘날 아르헨티나나 우루과이, 칠레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스페인 본토에서 누에바에스파냐로 파견한 선원들은 대개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세비야의 고아원에서 자란 소년들이었는데, 이는 해당 지역 출신 주민들이 식민지의 열대 기후에 좀 더 잘 버텼기 때문이었다.[1] 누에바에스파냐의 필리핀 도독령에서 백인들을 일컫는 대명사가 카스티야[2]인이었다는 점에서 보듯 식민 시대 멕시코로 이주한 스페인인들은 대개 중부나 남부 지방 출신이었다. 그러나 바스크 출신 멕시코인들은 비교적 소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멕시코 역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남기게 되었는데, 후아나 데 아스바헤#나 멕시코 초대 황제 아구스틴 1세# 같은 인물들이 바스크인 아버지를 두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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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멕시코 독립 이후
스페인 내전 당시 멕시코로 유입된 스페인인 난민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멕시코 만평. 만평 내 묘사된 인물 상당수가 바스크인의 특징적인 복장인 베레모[3]를 쓴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
오늘날 멕시코 인구의 약 80~90%가 스페인계 혈통을 일부 이상 물려받았기는 했으나,[4] 이들의 조상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은 상술한 것처럼 카스티야, 엑스트레마두라, 안달루시아 같은 스페인 중부나 남부 출신이었고, 북부 출신 이주민들은 희소했던 편이었다.
멕시코 내에서 소수에 불과했던 바스크인 인구 비중이 증가한 계기는 스페인 내전이었다. 바스크 지방과 카탈루냐 지방이 중심이 된 공화파가 내전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왕당파에게 패배하면서 상당수의 바스크인들이 멕시코로 망명하였다. 이렇게 새로 멕시코에 발을 디딘 바스크인들의 문화와 생활, 외모는 당시 멕시코인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여겨졌는데 만평에서 묘사되는 이들의 베레모, 금발이나 적발 혹은 푸른 눈이 흔한 바스크인들의 외모, 식사에 반주로 포도주나 사과술을 곁들이는 식문화[5]가 무척 이질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스크인 이민자들의 멕시코 상류 사회 진입은 이런 문화적 이질감에도 불구하고 어렵지는 않았던 편이었다. 오늘날 멕시코의 국민 정체성은 메스티소를 기반으로 하되, 멕시코 사회에는 백인 우월주의 및 금발벽안에 대한 동경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6] 바스크인 망명자들 상당수가 지식인층 등 고학력자 혹은 고숙련 기술자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멕시코 최대의 맥주회사인 그루포 모델로(Grupo Modelo)는 19세기 말 바스크인 이민자가 차린 빵집에서 출발한 기업인데,# 바스크 지방(특히 프랑스와 접경한 도노스티아 일대)이 미식으로 유명한 지방이다보니 바스크 출신 요리사들은 멕시코에서도 성공하기 쉬웠다. 이 외에도 제 62대 멕시코 대통령인 비센테 폭스는 독일계 미국인 후손 아버지와 바스크계 멕시코인 출신 사이의 혼혈이라고 한다.#
3. 현황
멕시코의 배우나 모델, 소셜 샐럽 중에는 바스크계가 많은 편이다. 사진에 나온 인물은 멕시코의 틱톡커 베고냐 벨라스케스(Begoña Velazquez)# |
스페인과 멕시코 사이의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에는 바스크 지방 출신 기업들이 멕시코에 진출하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스페인어권 각지에 지점이 있는 BBVA(Banco Bilbao Vizcaya Argentaria) 및 스페인 팜플로나에 기반한 유명 호텔 체인인 NH Hoteles(Navarra Hoteles) 등이 그것이다.
상술한 이유로 멕시코인 중 오초아(바스크어 표기 Otxoa, 스페인어 표기 Ochoa) 같은 바스크계 성씨 사용자들은 외양도 비교적 백인에 더 가까운 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의 골키퍼 기예르모 오초아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비교적 키도 크고 피부도 하얘서 눈에 띄는 사례를 들 수 있다.
4. 관련 문서
[1] 이렇게 세비야에서 누에바에스파냐로 파견된 선원 소년들은 다시 육로를 거쳐 태평양 방면으로 이동되었다.[2] 마드리드가 위치한 스페인 중부 지방[3] 바스크에서는 차펠라(Txapela)라고 부른다.[4] 2008년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인 멕시코인의 유전자는 백인 29.6%, 원주민 60.1%, 흑인 10.1%로 이루어졌다.#[5] 멕시코에서는 누에바에스파냐 식민지 시절 식민 당국에서 와인 재배를 제한했던 영향으로, 와인은 미사 중에 어쩌다 마시는 음료라는 인식이 있었다.[6] 멕시코 사회 기득권층이 백인이기 때문에 백인 외모 스테레오타입과 가까울수록 사회 상류층으로의 진입이 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