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1 17:18:06

박상준(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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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섭 문명기 이승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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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직 중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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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중추원 칙임 참의
일본 제국 제국의회 귀족원 의원
박상준
朴相駿
파일:친일파 박상준.png
<colbgcolor=#292929><colcolor=#fff> 창씨명 <colbgcolor=#fff,#191919>호자와 소준
朴澤相駿
출생 1877년 (고종 14) 3월
평안도 성천
(現 평안남도 성천군)
사망 1945년 9월 2일 (향년 68세)[1]
직업 관료, 계몽운동가, 교육인
본관 밀양 박씨
종교 유교 (성리학)
약력 강원도지사, 함경북도지사
황해도지사,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일본 제국 제국의회 귀족원 의원
비고 친일파 708인 명단 등재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등재
친일인명사전 등재

1. 개요2. 생애
2.1. 조선/대한제국 시기2.2. 식민지기2.3. 미군정 시기
3. 출처

[clearfix]

1. 개요

조선대한제국, 일제강점기의 관료. 일본 제국 제국의회 귀족원 의원을 지냈다.

식민지기 당시 일제 식민지 체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해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8·9·11·13·17·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어 있으며, 각종 친일파 명단에 등재되었다.

2. 생애

2.1. 조선/대한제국 시기

평안도 성천에서 출생해 어릴 때 한학을 공부하다가 1898년 에안주전보사 견습생이 되었다. 구한말에는 한성전보학당에서 수학하고 금성전보사 주사, 은산전보사 가설위원 등 전보사업업무를 보았다.

1907년에 고향 성천군에 설립된 사립 동명학교의 교감 겸 교사가 되었다. 그는 교사로 있으면서 1908년 4월에 태극학회의 성천지회를 설치하고 회장이 되었다. 그는 대한제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교육과 식산흥업을 통한 실력양성을 추진해야 한다고 믿었으며, 태극학회를 '해외만리에서 독립의 정신으로 4000년 국혼(國魂)을 보지하고 문명한 학술의 연구를 주의로 한 단체'로 인정하고, 학회의 힘의 반사력이 국내에까지 미치어 '봄잠을 곤히 자고 있는 동포들을 깨우고 감동'시키고 있으므로 지회를 설치한다고 하였다. 그는 유교 개혁의 필요성과, 나라의 진보와 민력의 성장을 위한 선각자의 자존·자중을 강조하였다.

1908년 말에는 평남 강동군수을 거쳐 1910년에는 평남 순천군수가 되었다. 당시 많은 군수들이 대한제국의 근대화 사업에 앞장서서 교육을 장려하고 식산흥업을 발달시키고자 하였고 박상준도 그러한 역할을 하였다.

2.2. 식민지기

1910년 한일합방 이후로도 박상준은 평남 순천군수에 유임되었다. 그리고 1917년 11월 평원군수를 역임하였다. 1918년에 토지조사사업이 실시되자 평남지방 토지조사위원회 임시위원을 지냈고, 1919년 11월 다시 평남 순천군수를 역임하였다. 1921년 2월 평안남도 참여관이 되었고, 1926년 8월 강원도지사로 승진하였다. 1927년 5월 함경북도지사를 지냈고, 1928년 3월부터 1929년까지 황해도지사를 역임하였다. 일제측 자료는 박상준에 대해 ‘충실한 관리로 산업상태에 통달하고 또한 재정금융에 대해서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1939년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가 되었다.

한일합방 직후 그는 일본의 식민 통치에 적극 협력했다. 3.1 운동 당시 그는 '민심의 수무선도(綏撫善導)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조선 독립이 불가능함을 주장했는데, 그의 주장은 거칠게 말하자면 "조선은 오랫동안 사대주의에 물들어 자주의 소중함을 잘 모르고 나약하니 독립 못하고, 독립해봐야 스스로의 난맥상을 이겨나갈 수 없다. 차라리 일본 식민지로 있는 게 더 나을 것이다"였다. 또한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문화통치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보이며 "태산을 메워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더 어려운 용고기(龍肉)를 바라다가시간을 낭비하는 가공적 몽상보다는 몇십 전의 적은 돈으로 쉽게 돼지고기를구입하여 당장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실제의 이익을 취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는데, "헛된 꿈과도 같은 독립을 좇기보다 현 체제 안에서 조선인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며 각종 친일 단체에 가입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1937년 시국강연반에서 전국을 나누어 담당하여 관제 시국 강연을 하고 있을 때, 경상남도에서 친일 연설을 했고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임전대책협의회, 조선임전보국단 등에 차례로 참여했다. 또한 1939년 경학원 대제학에 임명되어 유교의 친일화에도 앞장섰다. 1941년에는 일본의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를 주관했고, 3년 후이는 친일 유림 단체인 조선유도인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45년 4월 3일 일본 제국 제국의회 귀족원 의원으로 선임되었다.

2.3. 미군정 시기

광복 후 1945년 9월 2일에 사망했다. 향년 68세.

3. 출처



[1] 박시백의 친일파 열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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