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7 21:13:03

브릿팝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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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배경 및 전개
2.1. 브릿팝 열풍2.2. 라이벌화2.3. 차트 전쟁2.4. 브릿팝의 몰락
3. 여담
3.1. 두 밴드의 설전3.2. 오해와 진실
4. 그 후5.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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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릿팝 전쟁(The Battle of Britpop), 남북 전쟁(The North vs The South) 등으로 불린다. 90년대 영국의 인기 밴드 블러오아시스간의 요란했던 대립을 말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 이 사건의 뒷면에는 국가적 차원의 문화산업 몸집키우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브리티쉬 인베이전의 좋았던 과거를 뒤로 하고 미국 빌보드 음악에게 점점 주도권이 밀리고 있는 상황[1]을 바꾸고 싶었던 영국 음악계가 새롭게 유행하는 브릿팝의 밴드라면서 오아시스와 블러의 두 밴드를 띄워줬고, 문화산업 부흥의 일환으로 그 중에서 가장 촉망받던 두 밴드의 경쟁을 부추긴 것이다.

결국, 영국 음악 산업의 예상대로 큰 반향을 일으켜서 브릿팝 장르와 두 밴드 모두 전세계를 대상으로 홍보 효과를 얻었고 두 밴드 모두 자신들을 띄워주는 언론플레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장단도 맞춰주었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대립을 위해서 서로 대립되는 고정된 캐릭터 이미지를 부여받는 바람에 좋지 않은 고정관념도 얻었으며, 끊임없이 오아시스와 블러는 서로를 비교를 당하게 된다. 즉, 두 밴드 모두 영국의 국수주의가 만든 꼭두각시이자 희생양이 된 것이다. 즉, 두 밴드 모두 이러한 작위적인 대립을 원하지 않았다.

다만, 두 밴드 모두 어마어마한 인기와 수입을 얻었으며 오히려 국가가 직접 나서서 문화를 알리기 위한 홍보활동을 적당히 해줬고 당사자인 이들 입장에선 나쁠게 없었다

2. 배경 및 전개

2.1. 브릿팝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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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씬에서 인기를 끌고 1집을 발매했지만 처참히 실패하고 설상가상으로 매니저에게 사기를 당한 블러. 그들은 구사일생으로 재정적 위험을 벗어났지만 절실하게 성공을 원했다. 밴드는 프론트맨 데이먼 알반의 아이디어로 앨범에 영국적 색채를 적극적으로 입히기로 했고 그 결과 2집 Modern Life Is Rubbish가 큰 주목을 받게 된다. 이 때부터 브릿팝이란 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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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오아시스는 데뷔 초부터 대중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1집 Definitely Maybe는 전설적인 데뷔앨범으로 남으며 그들은 일약 스타로 급부상했다. 오아시스는 자신들의 고향 맨체스터에 대한 애향심과 스스로가 노동계층 출신이라는 자부심, 국민적 자랑인 비틀즈에 대한 남다른 애정, 노동당을 지지하는 진보적 마인드를 거침없는 입담과 행동으로 드러내면서 당시 열악했던 헬영국의 젊은 세대를 대표하게 된다.

2.2. 라이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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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의 영국적 색채가 평단과 대중의 호응을 얻자 블러는 그 여세를 몰아 1994년 싱글 Parklife를 발매한다. 영국적인 삶을 그려냄과 동시에 중산층을 풍자한 이 엘범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블러는 1995년 브릿 어워즈에서 오아시스의 1집을 누르고 4관왕을 먹는다(...) 그리고 데이먼은 수상소감에서 "이 상을 오아시스와 함께 나누어야한다고 생각해요"라고 훈훈한 멘트를 날렸다. 그리고 데이먼은 평생 이 말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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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각종 미디어에서는 계속 블러와 오아시스를 엮기 시작한다. 사실 두 그룹은 결코 사이가 나쁘지 않았지만 브릿어워즈에서의 발언 이후 음악적 라이벌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 먼 훗날 블러의 다큐멘터리에서 알렉스가 말하길 "우리가 뭘하던 언제나 오아시스의 이름이 나왔다"라고 회상했다.

2.3. 차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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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의 싱글 'Country House'과 오아시스의 싱글 'Roll With It'이 같은 날 발매되며 시작된다. 블러가 이미 예정 됐던 자신들의 싱글 발매일을 오아시스와 싱글 발매일과 같은 날로 연기했던것. 오아시스는 이에 격분한다.

그러나 블러의 기타리스트 그레이엄 콕슨은 2009년 블러의 다큐멘터리 필름[2]에서 "아직도 누가 우리의 싱글 발매일을 다른 사람의 싱글 발매일과 겹치게 한 건지 몰라요." 라고 밝힌다. 블러 멤버들의 의사보다는 소속사와 NME[3]의 입김이 있었다고 하며 '장단맞춰주기' 정도로 생각했던 블러의 리더 데이먼 알반이 승인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두 싱글의 발매일, 차트 1위 싱글은 블러의 'Country House'가 차지했지만 이 날 블러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블러의 소속사에서 축하 파티를 열었는데 그들에게 환멸감을 느낀 그레이엄이 6층 창문에서 뛰어내리려고 시도한다. 데이먼도 후회했지만 이미 상황은 걷잡을 수 없었고 이 일로 그는 오랜 시간 비난을 받아야 했다.

또한 싱글 차트에서는 앞섰지만 블러 4집이 오아시스 2집에게 앨범 판매량에서는 크게 뒤떨어졌기 때문에 블러는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에서는 졌다" 는 말을 듣는다.

오아시스 또한 블러가 일부러 발매일을 바꾼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몹시 불쾌해했으며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는 이 일을 주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NME의 전 편집장을 비난했고, 블러와 데이먼 알반에 대해 험악한 말들을 하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것이 오아시스 입장에서 싱글 동시 발매란 자신들을 만만하게 보고 명백히 먼저 시비를 걸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을 리가.

2.4. 브릿팝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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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팝이라는 허울뿐인 장르에 지쳐버린 블러브릿팝은 죽었다며 장르의 종식을 선언한다. 멤버들 중 누구보다 지쳐있던 기타리스트 그레이엄 콕슨은 미국 락씬으로 시선을 돌려 개러지 록, 그런지, 로우파이 사운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정규 5집 blur. 셀프타이틀 앨범이다. 밴드는 기존의 사운드에서 완전히 벗어나 인디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었고 앨범이 흥행에 성공하며 자신들이 더이상 브릿팝 밴드가 아님을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말처럼 5개월 뒤 브릿팝의 몰락이 예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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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길이남을 전설적인 2집을 발매하고 판매량으로 블러를 이긴 오아시스는 승승장구한다. 그들은 언론에서 더욱더 과장되고 거만한 태도를 취했고 언론은 계속 오아시스를 띄워주었다. 그래서 3집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아시스 멤버들은 2집의 큰 성공 뒤 마약과 술에 쩔은 생활을 보내고 있었고 3집 역시 그런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다. 3집은 발매되자마자 영국에서 가장 빨리 팔린 앨범이란 기록[4]을 갖게 되지만 그 내용물은 매우 실망스러웠으며 평단과 대중 모두의 혹평 속에서 밴드의 흑역사로 남게 된다.[5] 그 뒤 오아시스는 멤버들의 탈퇴와 갤러거즈의 방황으로 긴 침체기를 맞이한다.

그 후 인디 락으로 돌아선 블러와 사이키델릭한 색채가 강해진 오아시스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면서 서로 오랫동안 엮이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기타리스트 그레이엄 콕슨이 밴드를 떠나고 데이먼 알반고릴라즈에 집중하면서 블러는 12년의 긴 공백을 갖게 된다. 또 7집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것 같았던 오아시스는 간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으면서 노엘 갤러거의 탈퇴로 공중분해되고 만다.[6]

3. 여담

3.1. 두 밴드의 설전

가장 유명한 것은 노엘 갤러거의 "기타랑 드럼은 괜찮아 하지만 데이먼 알반과 알렉스 제임스, 걔들은 에이즈 걸려서 뒈졌으면 좋겠어." 노엘은 이 발언 직후 아차하며 후회했지만 기사에 이 발언이 실리고 비난을 받았고, 후에 에이즈 환자들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알렉스 제임스는 "사실 걔넨 나를 좋아하고(fancy) 있어." 라고 비아냥거리며 또한 "그게 리암의 방식이지. '나는 시x 그 새끼 엉덩이를 걷어찼어. 넌 그걸 봤어야해 나는 시x 그 새끼를 눈썹으로 잡아채서 깔아뭉게 버렸다고' 그런거야. 걔낸 그러는걸 좋아해, 농담하는거, 그건 그냥 마치... 노가다 아저씨들의 애정표현 같은거지." 라고 발언한 바 있다.

그 외
노엘 갤러거
"데이먼은 대머리가 될 거야. 엿같은 만화 캐릭터니까 헤어스타일 좀 멋지게 새로 그려보시지?"
"(그레이엄을 칭찬하다가) 하지만 옷 입는건 좀 자제해줬으면 한다. 조만간에 부랑자로 체포될 것 같으니까."
"(데이먼 알반이 고릴라즈로 수상할 때) 내 참, 살다가 털없는 고릴라는 처음보는군."
근데 데이먼은 털보다#

그레이엄 콕슨
"내 옷장을 칭찬해 준 노엘... 고마워. Cheers, 그리고 나 가디건 없어, 개새끼야."

리암 갤러거
"데이먼은 잘 생기지 않았어, 내가 잘 생겼지."
"너네 앨범 쓰레기야."

데이먼 알반
"너네 앨범도 쓰레기야."
"(한 시상식장에서 노엘의 여자친구 사라가 고릴라즈를 좋아한다며 말하고 돌아가자) 아무래도 스파이같아."
참 유치하기 짝이 없다...

3.2. 오해와 진실

사실 에이즈 발언과 같은 막무가내의 비난보다 블러가 이 전쟁에서 상처를 받았던 것은, 오아시스의 라이벌로 엮이며 '미들 클래스'[7],'남부', '보수', '브릿팝' 등 자신들이 대표하고 싶지도 않고 대표하고 있지도 않은 것[8]을 대표하게 된 것, 또 그 때문에 Common People[9]을 동경하냐며 조롱 받았던 것,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떤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처럼 여기며 블러에 대해 나쁜 고정관념을 갖게 된 것이다.[10] 오아시스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거나 좋게 말해 준 적이 많다. 사실 알고 보면 오히려 블러의 곡들 중엔 미들 클래스의 허울을 조롱하는 곡이 상당히 많았다. 그들의 대표적인 성공작인 3집 parklife 는 앨범 전체가 그런 내용이다. 워킹 클래스 출신에 미들 클래스를 비꼬는 곡을 주로 썼지만, 미들 클래스를 대표하는 밴드처럼 여겨지는게 그들을 힘들게 했던 것이다.

반대로 오아시스는 '워킹 클래스', '북부', '진보', '브릿팝' 등 자신들이 대표하는것들을 좋아했고 사실이기도 했다. 이들도 블러처럼 캐릭터화 됐지만 90년대에 그들의 캐릭터는 쿨한 것으로 인식됐으므로 블러에 비해 좋은 점이 많았다. 애초에 다큐멘터리를 보면 이해가 가겠지만 원체 쌈닭같은 성격이라.. 블러 자체에 대한 험담도 많이 했는데, 그러나 위에 알렉스의 발언대로 그냥 그들의 스타일이기도 했거니와 2012년 데이먼과 화해한 노엘은 "원래 데이먼을 좋아했다. 90년대에 그랬던것은 (약에)취해서 제 정신이 아니었고 기자들이 계속 짜증나게 굴길래 말한것 뿐," 이라 말했었다.

이 밴드들이 대립하는 모습으론 거의 리암과 데이먼의 이미지가 나란히 쓰였었지만 두 사람이 프론트맨으로서 밴드의 얼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실제로 가장 사이가 안 좋았던건 노엘과 데이먼이다. 리암과 데이먼은 같이 술도 마시면서 지냈었다.[11]

언론에서 적으로 다뤄진것은 주로 데이먼과 갤러거즈 였기 때문에 다른 멤버들은 별로 꺼릴게 없는 사이. 알렉스는 데이먼과 노엘이 닮은 부분(ex독재성향) 때문에 절대로 잘 지낼 수 없을거라고 말했었다. 데이먼이 리암을 칭찬하는 이유는 노엘을 짜증나게 하려고... 라는 음모론도 제기했었다.

차트 전쟁의 결과로 데이먼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유명세에 시달리며 패닉어택을 일으켰고 수면장애와 약물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은 것.

4. 그 후

가장 대립하는것으로 비춰졌고 몇 년간 서로 대화도 안 했다던 두 사람 데이먼과 노엘. 둘은 2012년 펍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순간 둘 다 당황했던것 같지만 곧 데이먼이 와서 맥주 한 잔 하자고 권하고 노엘이 응하면서 둘은 이제 90년대의 정신나간 짓들을 추억거리로 삼으며 노는 사이가 됐다.

그 만남이 좋았던지 노엘은 데이먼이 자신의 사과를 받아줘서 좋았다고 하며, 사실은 고릴라즈 레코드도 다 가지고 있고, 고릴라즈의 팬이고, 데이먼은 나의 팬이 아니더라도 상관없고, 우리 애들도 고릴라즈를 사랑하고 나도 사랑한다는 등, 이례적으로 데이먼을 열심히 칭찬해주는 모습을 보여줬고, 데이먼 또한 노엘과의 다음 술 자리를 고대하고 있고 노엘은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며 우리가 같은 시기를 공유했기 때문에 그와 얘기하는건 즐거운 일이라며 노엘과 대화를 힘들어 했던 과거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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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두 사람이 2012년 브릿어워즈에서 냉전이 진작에 끝났음을 알렸고 두 밴드의 멤버들 모두 이제 서로 잘 지내고 있다.[12] 옹골찬 노엘의 손가락 포즈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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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TCT공연에서 노엘과 블러가 tender를 함께불러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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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클래시의 베이시스트 폴 시모논의 생일파티에서도 노엘과 데이먼이 고릴라즈의 Dare을 불러 팬들의 흐뭇함을 자아냈다. 참고로 폴은 고릴라즈의 베이스 세션으로 참가 중이다. 위 영상이 화제가 되자 '노엘이 다음 고릴라즈 앨범에 참가하는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고 실제로 노엘은 '결정된건 아니지만 나는 언제나 제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고 인터뷰에서 화답했다. 그리고 노엘은 진짜로 고릴라즈의 다음 앨범 Humanz의 마지막 트랙 We Got the Power의 피처링을 맡았다.[13] 그레이엄 노튼 쇼 라이브 무대에도 같이 올라 기타를 연주하면서 수십년 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을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데이먼 알반은 2014년 솔로활동 당시 레딧에서 진행한 AMA에서 "Roll With It과 Country House는 둘 다 쓰레기였다"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노엘 갤러거도 2019년에 비슷한 발언을 하였다.

5. 관련 항목


[1] 1990년대 미국에서는 너바나Nevermind를 발표하고 그린 데이 등의 팝 펑크 밴드들이 나오면서 록씬의 주류를 얼터너티브 록으로 바꿔버렸다. 록 음악뿐만 아니라 힙합씬에서도 닥터 드레스눕 독, 투팍 등을 필두로 한 서부 힙합 및 비기나스, 맙 딥 등을 필두로 한 동부 힙합도 전성기를 맞았다.[2] No distance left to run : 블러의 시작부터 해체 후 재결합까지의 역사를 다룬 필름[3] New Music Express : 영국의 유명 음악 잡지[4] 이후 아델에 의해 깨진다[5] 물론 앨범 판매량 부분에서는 크게 흥행했으며, Stand By Me같은 명곡도 수록되어있었다. 하지만 역대급이었던 1집과 2집에 비하면 힘이 많이 빠진 게 사실이다.[6] “이 때 나온 말이 그 유명한 ‘우린 존나 예전에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거지’ 였다.”라고 적혀 있었으나, 이 말은 이미 한참 전인 6집 당시 베스트 앨범 Stop the Clocks의 특전 영상에서 나온 말이었다. 이미 90년대 말부터 망한 후 공공연히 그들에게 박혀버린 이미지였으나, 리암이 인정하듯이 웃자고 던진 말. 형제관계야 뭐 데뷔 전부터도 이미 정상은 아니었고, 알려진 것만 해도 94년엔 미국투어중 노엘이 빡쳐서 밴드 돈 갖고 튄 적도 있고, 2000년엔 아예 리암이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노엘에게 니 딸은 부인이 바람펴서 낳은 거라고 술먹고 개소리하다가 노엘이 죽도록 쳐 패고 또 뛰쳐나가며 잠깐 탈퇴 후 영국 투어 때 다시 합류했으며, 그깟 해체 직전 상황쯤이야 밥먹듯이 있었으니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다.[7] 영국은 계층간의 갈등이 단순히 심한 국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철저하고 공고한 계급 사회이다. 각 계급들은 사는 곳도 다르고, 입는 옷도 다르고, 가족의 직업도 다르고, 결정적으로 쓰는 언어도 다르며, 심지어 이름까지 다르다. 따라서 영국의 '미들 클래스'라는 용어는 단순히 우리나라의 '중산층'과는 뉘앙스가 다르게 철저히 스테레오 타입화 되어있다. 이는 '워킹 클래스'라는 용어에서도 마찬가지이다.[8] 그레이엄은 워킹 클래스였고 중부에 살았다고 하며 데이먼의 가정은 히피 가정이였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블러의 멤버들은 오아시스와 마찬가지로 영국 노동당을 지지하며,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다. 브릿팝 시대 이후 대중의 평가로는 데이먼 알반이 노엘 갤러거보다 더욱 좌파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도 있는데, 강성좌파 계열의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을 이끌던 시기 데이먼 알반은 코빈 지지파, 노엘 갤러거는 코빈 반대파에 섰다. 블러의 드러머 데이브 로운트리는 노동당 소속으로 지방 의원을 지내거나 총선에 꾸준히 출마하는 등 사실상 직업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9] Pulp의 대표곡. 워킹 클래스를 동경하는 부잣집 여자에 관한 노래다.[10] 이 때문인지 NME 잡지를 원망하는 블러 팬이 꽤 있다.[11] 사실 차트전쟁 이전만 해도 같이 라디오 방송에도 나왔던만큼 그리 나쁜 사이는 아니었다. 언플 하나때문에 깊은 골이 파였던 것.[12] 하지만 둘 다 전성기의 입담은 어디 안갔는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원 디렉션을 욕했다고 한다.[13] 이 노래에는 장 미셸 자르도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