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20:42:13

블러(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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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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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ig 4 of Britpop
파일:스웨이드 로고.png 파일:블러 로고.png 파일:오아시스(밴드) 로고.svg 파일:펄프로고.jpg
스웨이드 블러 오아시스 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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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닝 스탠더드 선정 20대 영국 록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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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fff> 2019년 영국의 일간지 이브닝 스탠더드The 20 greatest British rock bands of all time를 발표.
<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비틀즈 레드 제플린 라디오헤드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스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더 스미스 오아시스 더 큐어 더 클래시 스톤 로지스
<rowcolor=#fff>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킹크스 블러 블랙 사바스 더 후
<rowcolor=#fff>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록시 뮤직 티렉스 더 잼 슈퍼 퍼리 애니멀즈 조이 디비전
같이 보기: 영국 밴드, 미국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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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D35299F0-A94E-4256-858A-16C852ABB793.png파일:Acclaimed-Music-Logo-Dark.png
어클레임드 뮤직 선정 올타임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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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클레임드 뮤직의 올타임 아티스트 순위. 기본적으로 역사상의 앨범/노래의 순위를 매기는 형식의 사이트이지만, 개인의 취향을 모두 배제하고 음악 평론가들, 또는 잡지 등의 매체들이 매긴 순위를 종합해서 포인트를 줘서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다. 순위가 매겨진 앨범과 곡의 리스트를 공개된 공식을 바탕으로 합해 올타임 아티스트들의 순위도 매긴다.
<rowcolor=#fff>1위2위3위4위5위
비틀즈밥 딜런롤링 스톤스데이비드 보위브루스 스프링스틴
<rowcolor=#fff>6위7위8위9위10위
라디오헤드레드 제플린닐 영프린스비치 보이스
<rowcolor=#fff>11위12위13위14위15위
R.E.M.엘비스 프레슬리칸예 웨스트더 후U2
<rowcolor=#fff>16위17위18위19위20위
마일스 데이비스벨벳 언더그라운드너바나더 클래시지미 헨드릭스
<rowcolor=#fff>21위22위23위24위25위
마빈 게이핑크 플로이드엘비스 코스텔로스티비 원더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시즈
<rowcolor=#fff>26위27위28위29위30위
마돈나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더 스미스마이클 잭슨밴 모리슨
<rowcolor=#fff>31위32위33위34위35위
토킹 헤즈켄드릭 라마아케이드 파이어아레사 프랭클린비요크
<rowcolor=#fff>36위37위38위39위40위
JAY-Z제임스 브라운톰 웨이츠존 콜트레인PJ 하비
<rowcolor=#fff>41위42위43위44위45위
킹크스퍼블릭 에너미버즈비스티 보이즈조니 미첼
<rowcolor=#fff>46위47위48위49위50위
벡 한센더 큐어존 레논도어즈LCD 사운드시스템
<rowcolor=#fff>51위52위53위54위55위
블러크라프트베르크레너드 코헨픽시즈루 리드
<rowcolor=#fff>56위57위58위59위60위
조니 캐쉬소닉 유스록시 뮤직오아시스플리트우드 맥
<rowcolor=#fff>61위62위63위64위65위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듀크 엘링턴더 밴드아웃캐스트다프트 펑크
<rowcolor=#fff>66위67위68위69위70위
사이먼 앤 가펑클프랭크 시나트라척 베리프랭크 오션비욘세
<rowcolor=#fff>71위72위73위74위75위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조이 디비전AC/DC윌코오티스 레딩
<rowcolor=#fff>76위77위78위79위80위
뉴 오더메탈리카화이트 스트라입스라몬즈더 폴리스
<rowcolor=#fff>81위82위83위84위85위
스투지스브라이언 이노엘튼 존뱀파이어 위켄드
<rowcolor=#fff>86위87위88위89위90위
섹스 피스톨즈매시브 어택레이 찰스스틸리 댄블랙 사바스
<rowcolor=#fff>91위92위93위94위95위
케이트 부시악틱 몽키즈찰스 밍거스패티 스미스포티스헤드
<rowcolor=#fff>96위97위98위99위100위
건즈 앤 로지스페이브먼트수프얀 스티븐스알 그린펑카델릭
101위 ~ 4112위: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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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클레임드 뮤직 선정 90년대 최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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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위 2위 3위 4위 5위
너바나 라디오헤드 R.E.M. 오아시스 블러
<rowcolor=#fff> 6위 7위 8위 9위 10위
벡 한센 비요크 매시브 어택 페이브먼트 PJ 하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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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브릿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 수상작(1977년~1999년)|Brit Award for Album of the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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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77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파일:SgtPepper.jpg
파일:Kings-of-the-Wild-Frontier.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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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R-1548070-1420250039-3024.jpeg.jpg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Kings of the Wild FrontierMemoriesThrillerDiamond Life
비틀즈애덤 앤 디 앤츠바브라 스트라이샌드마이클 잭슨샤데이
<rowcolor=#fff>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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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Jacket RequiredBrothers in Arms...Nothing Like the SunThe First of a Million KissesThe Raw and the Cooked
필 콜린스다이어 스트레이츠스팅페어그라운드 어트랙션파인 영 카니발스
<rowcolor=#fff>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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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SealDivaConnectedParklife
조지 마이클애니 레녹스스테레오 엠씨스블러
<rowcolor=#fff>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파일:(What's The Story) Morning Glory?.we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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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The Story) Morning Glory?Everything Must GoUrban HymnsThis Is My Truth Tell Me Yours
오아시스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버브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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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브릿 어워드 올해의 노래상 수상작(1977년~1999년)|Brit Award for Song of the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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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77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파일:45100762_10156065908052362_6160018589014294528_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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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hemian RhapsodyTainted Love Come On EileenKarma ChameleonRelax
Soft CellDexys Midnight Runners컬처 클럽Frankie Goes to Hollywood
<rowcolor=#fff>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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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웨슽엔걸스1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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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West End GirlsNever Gonna Give You UpPerfectAnother Day in Paradise
티어스 포 피어스펫 샵 보이즈릭 애스틀리Fairground Attraction필 콜린스
<rowcolor=#fff>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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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 the Silence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Could It Be MagicPrayParklife
디페시 모드 테이크 댓 블러
<rowcolor=#fff>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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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for GoodWannabeNever EverAngels
테이크 댓스파이스 걸스All Saints로비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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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 Award for British Group (197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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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77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비틀즈 폴리스 다이어 스트레이츠 컬처 클럽 Wham!
<rowcolor=#fff>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다이어 스트레이츠 파이브 스타 펫 샵 보이즈 이레이저 파인 영 카니발스
<rowcolor=#fff>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더 큐어 The KLF & 심플리 레드 심플리 레드 스테레오 엠씨스 블러
<rowcolor=#fff>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오아시스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버브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트래비스
<rowcolor=#fff>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콜드플레이 트래비스 콜드플레이 더 다크네스 프란츠 퍼디난드
<rowcolor=#fff>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카이저 칩스 악틱 몽키즈 엘보우 카사비안
<rowcolor=#fff>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테이크 댓 콜드플레이 멈포드 앤 선즈 악틱 몽키즈 로열 블러드
<rowcolor=#fff>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콜드플레이 The 1975 고릴라즈 The 1975 포울스
<rowcolor=#fff>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리틀 믹스 울프 앨리스 웻 레그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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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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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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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데이브 로운트리, 데이먼 알반, 알렉스 제임스, 그레이엄 콕슨 }}}}}}}}}
<colbgcolor=#fff><colcolor=#000> 국적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결성 1988년 12월
영국 잉글랜드 런던
데뷔 1990년 10월 15일
(데뷔일로부터 [dday(1990-10-15)]일째)
데뷔 음반 싱글
멤버 데이먼 알반 (보컬)
그레이엄 콕슨 (기타)
알렉스 제임스 (베이스)
데이브 로운트리 (드럼)
장르 얼터너티브 록, 브릿팝, 인디 록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멤버3. 음반4. 역사
4.1. 밴드의 결성 (1988-1990)4.2. Leisure 시절(1990-1991)4.3. 미국 투어와 브릿팝 (1992-1995)
4.3.1. 브릿팝 전쟁
4.4. 브릿팝 이후(1996-2000)4.5. 베스트 앨범과 휴식기, Think Tank (2000-2003)4.6. 잠정 해체 시기 (2004-2007)4.7. 재결합 이후 (2008-2014)4.8. The Magic Whip (2015)4.9. The Ballad of Darren (2023)
5. 내한 공연
5.1. 이후
6. 그 외
6.1. 다른 밴드와의 관계6.2. 여담6.3. 국내의 팬덤 및 인식6.4. 어록
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파일:blur (2).jpg
영국의 록 밴드. 오아시스, 스웨이드, 펄프와 함께 90년대 브릿팝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자, 이후에도 과감한 음악적 시도로 세기말 카멜레온이라는 평가를 받는 밴드.

이것은 생각보다 대단한 것인데, 동시대의 밴드인 오아시스, 지금 세계에서 상업적으로 제일 잘나가는 밴드인 콜드플레이의 경우 각각의 전성기 이후에는 거의 대부분의 앨범에서 평가가 극심하게 안 좋아졌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블러의 경우 브릿팝 시절에도 성공을 거뒀을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계속 새로운 것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앨범에 대해 음악적인 성과를 인정받았다.

또한, 대중적인 인기도 전성기만은 못하지만 여전하여 이미 영국에서는 살아있는 전설로 대우받는다.

2. 멤버

파일:blur-announce-2023-london-reunion-show.jpg
<rowcolor=#000> 이름 생년월일 포지션
데이브 로운트리
(Dave Rowntree, David Alexander De Horne Rowntree)
1964년 5월 8일 드러머
데이먼 알반
(Damon Albarn)
1968년 3월 23일 메인 보컬리스트, 세컨드 기타리스트[1], 키보디스트
알렉스 제임스
(Alex James, Stephen Alexander James[2])
1968년 11월 21일 베이시스트
그레이엄 콕슨
(Graham Coxon, Graham Leslie Coxon)
1969년 3월 12일 퍼스트 기타리스트, 배킹 보컬리스트

3.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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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사

4.1. 밴드의 결성 (1988-1990)

파일:attachment/블러(밴드)/youngblur_aprilmono.jpg
블러 멤버들의 어린 시절.[3]
우선 데이먼과 그레이엄의 첫 만남은 각기 데이먼이 12살, 그레이엄이 11살때 콜체스터[4]에 위치한 Stanway Comprehensive School에서 데이먼이 그레이엄에게 "어이 친구, 네 브로그 신발은 완전 X인데. 봐, 내 껀 제대로 된 거잖아(Your brogues are crap, mate. Look, mine are the proper sort: 이 대사는 그레이엄이 재현할때마다 조금씩 다른데..하여간 '니껀 가짜고 내껀 진짜'라는 의미는 한결같다)." 라며 자기 신발 자랑을 하며 시작되었다.(데이먼은 블러 다큐멘터리에서 그레이엄이 아직도 이 일로 삐쳐 있다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레이엄에게 모욕감을 준 첫 만남이었지만 음악을 좋아했던 소년들은 곧 유년시절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먼저 졸업한 데이먼이 연기자가 되기 위해 런던에 가고, 데이먼과 함께 음악을 하고 싶었던 그레이엄이 데이먼이 있는 런던으로 가기 위해 골드스미스 미대에 지원한다.

무사히 대학에 합격하고 런던으로 온 그레이엄은 데이먼과 재회하고 이 곳에서 같은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기숙사 아래층에서 살던 알렉스와 친해진다.

한편, 먼저 런던에 와 있던 데이먼은 자신이 연기에 소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비정규 음악 수업을 듣던 중이었다. 또한, 당시 데이먼은 에디 디디건[5] 등과 서커스라는 밴드를 하고 있었다. 데이먼은 그레이엄이 일전에 소개해 준 데이브에게 서커스의 가입 의사를 타진했고, 데이브가 (블러 멤버 중에서) 2번째로 가입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BBC의 사운드 엔지니어였던 데이브는 주중엔 정규 학교에 다니고 주말에 음악 학교에 다니며 어렸을때부터 드럼을 배우고 있었는데, 이때 그레이엄의 아버지에게 토요일마다 재즈를 배웠다. 데이브는 학교 졸업 후 그리니치 대학교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컴퓨터 엔지니어로 콜체스터 의회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밴드에 가입한 후 직장을 그만뒀다.

런던으로 온 그레이엄도 서커스에 합류하고 친구인 알렉스에게 데이먼과 데이브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해주면서 알렉스는 서커스라는 밴드와 데이먼, 데이브에 대해 알게된다. 그리고 알렉스는 데이브가 서커스 기존 멤버 두명을 내보내면서 생긴 빈자리를 채우게 된다.

밴드의 매니저 일을 도맡아했던 데이브는 냉정하게 기존 멤버를 자르고 알렉스를 영입한 이유에 대해 비록 어렸을때부터 음악을 해 온 경험이 있는 나머지 멤버들에 비해 당시 알렉스는 연주 경험이 부족한 상태라 훌륭한 베이시스트는 아니었지만 사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얘가 너무 잘 생겨서 밴드 홍보에 도움이 될 거라 판단했다고 한다.

마침내 블러의 모든 멤버가 다 모이게 되고 이윽고 4명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샐린저가 쓴 책 제목에서 따온 시모어(Seymour)를 밴드 이름으로 정하고, 1988년 12월 18일 4인으로써 최초의 연습을 시작했다.

이들은 1989년 11월 푸드 레코즈와 가계약을 맺은 뒤 1990년 3월 정식 계약을 맺었다. 계약의 유일한 조건은 밴드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는데 이는 푸드 레코즈에서 시모어라는 이름이 너무 범생이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6] 피자를 무제한으로 사주겠다는 꼬임 등이 먹혀 멤버들은 밴드 이름 교체에 동의한다.

푸드 레코즈에서는 The Shining Path, The Government, Sensitize, Whirlpool 등의 대안을 제시했고 이 중 Blur가 밴드의 이름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4.2. Leisure 시절(1990-1991)

파일:blur_young.jpg
푸즈 레코드와 계약 한 뒤 블러는 펑크 밴드인 크램스의 투어에서 오프닝 밴드로 돌다가 첫 리허설때 만든 곡이었던 She's So High와 함께 I Know를 녹음해 싱글로 내놓았다. 이 싱글은 여성의 누드를 사용한 커버후방주의로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 48위에 들었다. 이후 다음 싱글을 내야하는 상황에서 밴드의 데뷔 곡을 들은 스미스의 프로듀서인 스티븐 스트릿이 블러에게 같이 작업을 하자고 연락해왔고 그 결과 스티븐 스트릿이 프로듀싱을 맡아 새 싱글의 녹음 작업을 시작했다.

1991년 두번째 싱글인 There's No Other Way가 발매되었다. 이 싱글은 8위까지 찍으며 꽤 인기를 끌었고 블러는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슬로우다이브 등의 슈게이징 뮤지션들과 함께 The Scene That Celebrates Itself 라고 불리며 인디 씬에서 주목받는 밴드로 불려지기 시작한다. 알렉스가 다큐에 나와서 말하길 천하의 개쌍놈 매니저가 지금 푹 자는게 좋을거라고 했다고.
파일:leisure.jpg
1집 커버

2번째 싱글이 성공한 직후 블러는 1집 Leisure를 발매하고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1집 앨범은 평단으로부터 엇갈린 평가를 받은데다가 상업적으로도 기대치보다 한창 밑도는 판매고를 보였다. 이 당시 블러는 멤버들의 얼굴이 잘생겨서 여성팬들은 많았지만 정작 중요한 밴드의 음악성은 별볼일 없는 밴드로 취급받았다. 1집의 사운드는 당시 영국 음악씬에서 유행하는 장르들[7]을 단순히 혼합시켰을 뿐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1집 발매 무렵 배기 씬이 무너져 내려버렸다.
톰 요크는 블러의 1집 앨범인 Leisure를 블러의 실수라고 평하기도 했다. 데이먼은 이 점을 인정한다는 듯이, "그렇다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이걸 수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라고 말했다. 그때는 후진 앨범을 내도 안 묻히던 시기라 좋았다는 깨알같은 자학드립까지!

그 뒤 밴드는 마이 블러디 밸런타인, 다이노소어 주니어, 지저스 앤 메리 체인과 공동 헤드라이너로 투어를 다니기 시작했다. 1992년 3월 30일 밴드는 배기를 버리고 펑크 스타일로 갈아탄 새 싱글인 Popscene을 내놓았으나 32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낸데다 설상가상으로 매니저가 돈을 먹튀해버리는 바람에 파산 위기까지 처하고 다음 앨범 계획까지 취소된다. 이후 밴드의 빚을 갚아 줄 테니 미국 투어를 하자는 티셔츠 회사[8]의 제안에 따라 미국 투어를 시작하였으나 오히려 매 순간마다 멤버들끼리 주먹다짐을 하는 등 멤버들의 불화만 심해진 채로 투어를 마무리한다.

4.3. 미국 투어와 브릿팝 (1992-1995)

파일:blur1.jpg
파일:블러 단체 1.jpg
파일:mlir.jpg
Modern Life Is Rubbish

이후 블러는 유행을 쫓았던 Leisure 앨범과는 정반대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낯선 미국땅에서 원치않던 투어가 두 달이나 지속되자, 향수병에 시달린 밴드 멤버들은 투어가 종료된 후 영국으로 돌아와서 영국적인 캐릭터와 풍경을 소재로 킹크스, XTC 등의 영향을 받아 Modern Life Is Rubbish 앨범을 제작한다. 레코드 회사에서는 레코딩을 하는 도중에도 이러한 블러의 시도에 대해 계속해서 반대의 입장을 표했지만, 블러는 자신들을 믿어달라며 꿋꿋이 밀고 나가며 레코딩을 지속했다. 그리고 영국적인 팝 멜로디를 정교하고 다채롭게 다듬어 낸 이 앨범은 평단으로부터 인정받게 된다.

2집 Modern Life Is Rubbish 부터 4집 The Great Escape 까지가 사람들이 '브릿팝'이라 여기는 성향을 보여주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블러의 앨범 중 비교적 가장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에 이 세 앨범을 묶어 블러의 'Life 3부작'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만 본인들이 3부작으로 계획한건 아니라고..
파일:Modern Life Is Rubbish.jpg 파일:Parklife.jpg 파일:external/1.bp.blogspot.com/The+Great+Escape.jpg
2집 커버 3집 커버 4집 커버
비록 Modern Life Is Rubbish는 대중적인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인디씬에서는 호응을 얻었고 블러는 때 마침 영국에 불어닥친 너바나를 위시한 미국의 그런지 열풍에 대항할 밴드를 찾던 영국 음악계의 분위기와 맞물려서 큰 주목을 받게 된다. 당시 영국의 언론들은 미국의 그런지 사운드와는 차별화 되는 이들 영국 밴드들의 음악을 브릿팝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띄어주었다.[9]

브릿팝은 새로운 유행이 됐고, 블러는 브릿팝 열풍에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특히, 1994년 발표한 3집 Parklife는 블러의 포텐이 본격적으로 터지면서 90년대를 대표하는 명반이라는 평이 대다수일 정도로 이러한 브릿팝 열풍을 제대로 담아냈다는 호평을 받는다. 평단으로부터 사랑 받았지만 대중적으로는 실패한 Modern Life Is Rubbish와 달리 Parklife 앨범은 평단의 호평은 물론 판매량 부분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덕분에 밴드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막대한 빚을 전부 갚을 수 있게 됐고, 1994년 브릿어워드에서 최우수 밴드, 최우수 비디오, 최우수 싱글, 올해의 앨범의 4관왕을 이루며 자신들의 해로 만든다.

4.3.1. 브릿팝 전쟁

하지만 브릿팝 열풍이 결국 영국 음악계의 마케팅을 위한 수작임을 깨닫고 있던 블러는 이 열풍을 달가워하지만은 않았고, 브릿팝이라는 단어와 자신들의 브릿어워드 4관왕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알렉스는" 우리가 브릿 아워드에서 상을 받은 것은 단지 영국 음악 마케팅을 위한 몰아주기식 수상이었을 뿐" 이라는 식으로 발언하기도. 이후 블러는 이에 대한 항의로 The Great Escape 앨범을 영국 사회의 계급과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태도가 두드러지는 내용으로 만들었다.

한편, 블러와 오아시스를 라이벌 구도로 만들어서 화제거리로 삼아 판매량을 올리고 싶었던 블러의 음반사 푸드 레코드는 오아시스의 리드 싱글 Roll With It 발매일보다 먼저 발표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블러 4집의 첫 싱글 Country House의 발매일을 동일한 날로 옮기기를 원했다. 그리고 데이먼 알반은 매스컴의 장단을 맞춰준다는 기분으로 이를 허락해버린다.

오아시스는 블러가 일부러 싱글의 발매일을 바꾼 사실을 알고는 몹시 불쾌해했으며 오아시스의 리더 노엘 갤러거는 이 일을 주도한 것으로 의심되는 NME의 전 편집장을 비난했고, 블러와 데이먼 알반에 대해 험악한 말들을 하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것이 오아시스 입장에서 싱글 동시 발매란 자신들을 만만하게 보고 명백히 먼저 시비를 걸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을 리가.

이렇게 시작된 두 밴드의 대립은 브릿팝 남북전쟁이라 불리며 BBC의 9시 뉴스에까지 나오는 등 격렬해진다.

블러는 싱글 판매량 대결에서는 승리해 Country House는 싱글차트 1위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블러와 대립중이던 오아시스가 새로운 노동계급의 영웅으로 여겨지면서 과거에는 모드족 노동계급 사람들의 영웅이었던 블러가 얼굴만 잘생긴 중산층 출신의 날라리 밴드라고 인식되어 안티들의 수가 급증하게 된다. 당시 블러는 최정상 밴드였고 오아시스는 떠오르는 밴드였으므로 사람들의 응원이 오아시스로 향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였고 게다가 오아시스의 서민적이고 거침없는 태도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여기에 오아시스는 당대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손꼽히는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까지 내놓으며 앨범 차트 대결에서 완승한다. 반면 블러의 새 앨범 The Great Escape는 영국 사회와 계급에 대한 신랄한 태도가 두드러졌던 앨범이었기에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들었다.

다만, 앨범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The Great Escape 앨범 발매 당시 가디언, Q매거진, 셀렉트, NME, LA타임즈 등은 앨범에 만점 혹은 그에 가까운 높은 점수를 주었으며 멜로디 메이커는 아예 10점 만점에 12점이라는 점수를 부여했다. 셀렉트의 데이비드 카바나(David Cavanagh)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이 들어있다(has everything you could want)이라며 극찬했고 NME의 조니 시가레츠(Johnny Cigarettes)는 아이디어, 감정, 곡들이 당대 밴드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utterly beyond contemporary compare)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멜로디 메이커, Raw, Q, NME, 셀렉트에선 앨범을 1995년 10대 명반 안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혹평도 생겼고 결국 앨범 판매량은 오아시스에 크게 뒤쳐졌다. 사실 판매량 면에서도 비교 대상이 됐던 Morning Glory가 엄청나게 팔렸을 뿐, 망한 것은 아니었다. 데이먼 알반 또한 자신이 만들었던 최악의 앨범으로 Leisure 와 함께 이 앨범을 꼽았었지만, 후에 이 앨범의 가치를 재발견했는지 2012년에는 "앨범의 곡들로 뮤지컬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4.4. 브릿팝 이후(199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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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집 커버[10]
결국, 영국 언론과 안티팬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한 블러는 The Great Escape 활동 도중이었던 1996년 상반기에 일시적으로 밴드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활동 중단시기, 데이먼 알반은 알코올 중독에 걸렸고 헤로인까지 손을 댔으며, 그레이엄 콕슨은 속해있던 밴드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업적인 의도가 짙은 퍼포먼스에 연루된 것에 대한 반발심에서 투신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했다. 알렉스는 친구 찰리 블로어[11], 듀란 듀란의 초기 멤버이자 Tin Tin, The Lilac Time으로 알려진 스티븐 더피, 엘라스티카의 청일점 드러머인 저스틴 웰치와 훈남 밴드 Me Me Me를 결성해 싱글 Hanging Around를 냈다.

한편, 블러의 멤버들은 각자 개인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여러 스튜디오를 전전하면서 새 앨범을 작업하였고 마침내 1997년 브릿팝은 죽었다라는 충격 발언을 터트리면서 5집 Blur를 발표한다. 활동 중단 기간동안 미국 인디록 사운드에 매료된 블러는 소닉 유스페이브먼트같은 미국 중심의 노이즈 기타 록을 대대로 받아들여 음악적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블러의 발랄함과 쾌활함을 좋아했던 기존의 10대 팬들을 충격에 빠트렸으나, 일반 대중과 평단으로부터는 앨범 내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노이지한 기타의 아름다운 연주와 로우 파이식 레코딩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러한 블러의 사운드적 변화에는 미국 인디씬으로 관심을 돌린 기타리스트 그레이엄 콕슨의 공이 컸다. 이 앨범에 실린 'You’re So Great’ 는 처음으로 블러 앨범에 실린 그레이엄 작사,작곡,보컬의 곡이다. 앨범 활동 중 블러는 리믹스/라이브 앨범인 Bustin'+Dronin'을 발매하기도 했다.
특히 게임 FIFA 98에 OST로 실려서 블러의 곡 중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Song 2역시 이 앨범의 2번 트랙 수록곡이다. 강렬한 질주감과 사운드, 짧고 간단하면서 머리속에 쉽게 기억되는 임팩트한 멜로디와 가사 덕분에 발매된 지 30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히트곡이다.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그 뭐냐 오프닝에 나오는 '우후~'하는 곡 이름 뭐냐?'라는 질문이 쇄도하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이 곡 이름이 'Woo Hoo Song'라는 괴 이름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FIFA 98 OST 외에도 한국에서는 이요원이 나온 염색약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도 메이저리그의 몇몇 선수들이 'Song 2'를 등장음악으로 써서 히트를 쳤다.

이후 데이먼 알반은 그의 개인 스튜디오인 Studio 13을 세웠으며[12] 범죄 영화인 Face에 출연해 꿈에 그리던 연기활동도 하였다. 그레이엄은 자신의 레이블인 Transcopic을 세워 솔로로 데뷔하였고 알렉스는 코미디언 키스 앨런, 예술가 데이미언 허스트[13]와 함께 프랑스 월드컵시즌에서 응원가 그룹인 Fat Les를 결성해 Vindaloo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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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집 커버
1999년 밴드는 이전까지 블러의 앨범을 프로듀싱한 스티븐 스트릿 대신 상술한 Bustin'+Dronin'에서 리믹스를 맡은 인연으로 마돈나의 프로듀서로도 잘 알려진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윌리암 오빗을 새 프로듀서로 기용해서 6집 13을 발표했다. 전자음을 도입해서 기존의 기타 중심의 구조를 깨버리고 음울한 성향으로 돌아선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그레이엄의 실험적인 기타 사운드가 도입되고 데이먼의 흑인음악에 대한 관심이 Tender에서 드러나는 등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가사 역시 개인적인 면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특히 사랑스러운 우유곽 밀키가 나오는 그레이엄 보컬의 Coffee & TV Cigarettes & Alcohol의 검열삭제 버전이다가 히트하기도 했다.

4.5. 베스트 앨범과 휴식기, Think Tank (2000-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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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발표 이후, 블러는 신곡 Music Is My Radar가 수록된 베스트 앨범을 발표하고 휴식기를 갖는다. 데이먼은 이웃집에 사는 만화가 제이미 휴렛과 고릴라즈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다른 멤버들도 각자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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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집 커버
그리고 2002년에 다시 모여 Music Is My Radar를 프로듀싱한 벤 힐러와 노먼 쿡 (a.k.a. 팻 보이 슬림), 전작의 윌리암 오빗과 7집 Think Tank를 작업하나 데이먼의 성향이 일렉트로니카로 변해버려 기타가 별로 필요 없어졌다는 등등 여러가지 이유로 데이먼과 그레이엄의 불화가 심해져 결국 그레이엄이 밴드를 떠났다. 당시에 타블로이드의 추측성 기사나 왜곡 기사가 많아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재결합 이후 블러 다큐에서 모든 멤버들이 직접 코멘트 한 당시 상황은 그레이엄의 알콜 중독이 심해져 재활원을 갔고, 멤버들은 이 상황을 모르거나 오해하면서 그레이엄이 스튜디오에 나오지 않았던것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레이엄은 그걸 밴드를 나가라고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것. 그래도 네 명이서 4곡[14]을 녹음했기 때문에 앨범에서 그레이엄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이 시기에 녹음되었던 Don't Bomb When You're The Bomb는 이라크 전쟁 참전 반대를 위해 한정반으로 발매 되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발매한 Think Tank 앨범[15]은 데이먼의 월드 뮤직에 대한 관심과 일렉트로니카나 힙합의 강한 영향을 보여주며 기존의 블러와는 크게 다른 사운드를 보여주었고 가사 또한 사랑과 정치적 문제들을 주제로 쓰여졌다. 이 앨범은 평단의 지지를 이끌어내긴 했지만 싱글 발매된 곡들을 제외하면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13에 비하면 팝적인 성향을 띄었는데도 대중적으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며 지금까지도 별 존재감이 없다(...). 심지어 그 다음 해 블러의 리즈시절 프로듀서이던 스티븐 스트릿과 제작하여 그레이엄의 솔로 커리어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과를 거둔 앨범 Happiness In Magazine과 비교당하기도 했다. 당시 투어에서는 그레이엄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기타세션에 버브의 Urban Hymns 활동 시절의 기타리스트인 사이먼 통이 참가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이 앨범에 수록된 Sweet Song이라는 노래는 그 당시 그레이엄의 사진을 보고 떠올라 쓴 곡이라고 한다. 정작 그레이엄은 2014년까지 이런 노래가 있는 줄도 몰랐다고...

4.6. 잠정 해체 시기 (2004-2007)

그 뒤 나머지 멤버들도 각자의 일을 하였으며 데이먼은 '그레이엄은 언젠간 올거임! 그러니 새 기타리스트 안받고 셋이서 쭉 할거임!선견지명' 이라고 했고 기타를 못쳐도 할 수 있는(...) 펑크 록 스타일의 앨범이 나올 것#이라는 뉘앙스의 말을 하거나 크리스마스 전까지 공격적인 성향의 EP를 내겠다#고 하기도 했으나, 결국은 잠정 해체 상태가 되고 말았다. 결국 팬클럽도 마지막 잡지와 싱글 Some Glad Morning을 마지막으로 리뉴얼 하겠다며 활동 중단. 재결합 하고 싱글도 두장이나 낸 현재까지 소식이 없다(...).이게 다 고릴라즈가 대박 쳤기 때문이다?

당시 인터뷰에서 데이먼은 '밴드의 나머지 멤버들이 날 증오하고 있어요'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레이엄과 화해했다는 기사와 멀쩡히 재결합한 걸 보면 그냥 개드립인듯. 원래 데이먼이 생각 없이 말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기질이 있다...[16]

그레이엄이 직접 데이먼의 아프리카 익스프레스 공연 리허설 현장에 찾아가고, 모르는 사람 집 앞에서 에클스 케익을 나눠먹으며(...) 화해를 한 뒤 멤버들이 재결합하고 2007년 8월에 녹음을 시작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10월로 미뤄지더니 10월에 멤버들이 모이는 모습이 보였을 때 공홈에서 그냥 점심 약속이고 블러 활동은 계획에 없다고 밝히며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그 뒤..

4.7. 재결합 이후 (2008-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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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하이드 파크(Hyde Park) 라이브 앨범
2008년 데이먼과 그레이엄이 화해를 하면서 2009년 7월에 재결합 공연이 있을 것이라 발표. 원 멤버로 재결합을 했고 투어를 돌았다. 다만 앨범 발표는 하지 않았고 2009년 여름 스코틀랜드 공연을 끝으로 다시 활동 중지 상태다. 그레이엄이 개인적으로도 2009년에 신보를 발표하고 투어를 돌고 있는데다, 데이먼도 2010년 발표한 고릴라즈 신보 때문에 당분간 블러 활동은 보기 힘들 듯 싶다. 그래도 녹음한 곡이 있었는지 2003년 이후 7년만에 2010년 4월 17일 신곡으로 'Fool's Day'를 싱글로 내놓았다. 레코드점의 날(Record Store Day)을 위한 곡이라고.[17]

2011년 말, 알렉스 제임스가 '블러는 성탄절 이후에나 녹음을 재개할 것'이라며 뭇 블러팬들을 설래게 했다.

2월 19일. War Child 공연에서 데이먼과 그레이엄이 같이 나와서 신곡 Under The Westway를 연주하고 The Great Escape과 Blur에 들어 있던 두 곡(He Thought Of Cars, Strange News From Another Star)도 공연했다. 그리고 2월 21일 2012 브릿 어워즈에서 공로상을 받게 되었다

모두들 블러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거라 기대만발 이였으나... 데이먼이 더 이상의 블러 활동은 없다는 식으로 말해 팬들을 패닉으로 몰아넣었다가, 곧 그게 꼭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고 누군가 해명을 하는 일을 반복하며 전세계 팬들을 낚고 있다.
데이먼은 멤버들이 오랫동안 각각의 솔로 활동을 하며 음악색, 성향이 너무 진하게 달라졌기 때문에 멤버들이 함께 음악을 만들 때 합의점을 찾는것이 불가능할 정도이며, 그레이엄과 자신과는 달리 나머지 두명이 풀 타임 뮤지션이 아니라는 블러 활동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정치인으로 활동 중 인 데이브는 예정 된 런던 올림픽 폐막식 공연 등 블러 활동을 위해 휴가를 모두 써야했다.

데이먼이 호로비츠가 주관하는 런던 시낭송 대회에서 블러의 신곡 The Puritan 을 처음 발표, 전에 그레이엄과 라이브 공연으로 들려줬던 Under The Westway 와 함께 7월 3일, 블러의 옥상 라이브를 라이브 스트림으로 생중계하고 트위터에서 팬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받는 시간도 가진다. 두 곡은 7인치 싱글이 한정반으로 발매됐고 아이튠즈에서 다운 받을 수 있다.

13의 윌리엄 오빗이 말하길 재결합 이후 2012년 즈음에 레코딩 세션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데이먼이 중지 시켰다고... 꽤나 화가난건지 다시는 데이먼하고 작업하지 않겠다고까지 했다.

블러 21주년 기념으로 블러 리마스터링 앨범과 LP앨범, DVD 등 박스 세트를 내놓았다. 우리 돈으로 35만원. 개별적으로도 발매되는 앨범들은 본 앨범과 함께 B사이드, 라이브 세션, 일부 팬클럽 싱글을 모아서 Disc 2로 정리했고[18] Rairities 1-4 디스크는 시모어 시절부터 재결합 이후까지의 자료들이 수록되어있으며 라이브 영상 Showtimes, The Singles Night, Live 13가 DVD에 수록되어있으며 시모어 시절의 곡인 Superman의 라이브가 7인치 싱글로 발매되었다. 하지만 Rairties나 라이브 영상들이 유튜브에 이미 많이 퍼져서인지 앨범을 각각 따로 사는 쪽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 박스셋을 비추천하는 이유

4.8. The Magic Whip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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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2년만에 발매된 정규앨범. 블러에게 있어 두 음반 사이에 가장 긴 공백을 가진 음반이기도하다.

데이먼 알반은 2013년 홍콩 투어 도중에 15곡 정도를 녹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알렉스는 괜찮은 곡들이었지만 데이먼이 가사를 쓰지 않아서 발매하기는 힘들다고 밝힌 바 있다.

신보 공개 이후 신보 발매를 2주 앞둔 노엘 갤러거와 함께 묶여 브릿팝 전쟁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는 반응이 줄을 이뤘다. 햇수로도 딱 20년. 그러나 이들의 스타일 변화등으로 브릿팝 전쟁으로 보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19]링크

그러다가 2015년 NME 매거진에서 "독점 공개되는 유명 밴드의 신보 커버"라면서 중국어로 된 한 사진을 공개했다. 몇 시간 되지 않아 팬들은 표지의 중국어 '模糊'가 '흐린'이라는 뜻임을 알아내고 이것이 블러의 신보라고 추측했고, 이후 2월 19일 블러는 공식적으로 신보 'Magic Whip'의 발매를 발표했다. 신보 발매 기념으로 BST Hyde Park에서 헤드라이너로 공연할 예정. 또한 이 시기 즈음하여 유튜브에 이전 앨범들의 싱글 컷 되지않은 곡이 업로드 되었다. 선공개된 트랙리스트 중 'Pyongyang'이라는 곡이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3월 20일에 런던의 클럽 MODE에서 앨범 발표 이후 첫 공연을 가졌다. 비츠의 스폰을 받아 하게되며 홈페이지에서 추첨한 200명[20]+초대된 100명으로 300명의 관객이 모였다.[21] 같은 날 There Are Too Many Of Us가 공개되었다. 25일 영국 기준 저녁 8시(한국 시간으로는 26일 새벽 5시)및 태평양 표준시 기준 저녁 8시 (한국 시간으로는 낮 12시)에 비츠사의 유튜브에서 스트리밍 하였다.

4월 14일 Later... with Jools Holland에 출연[22]을 시작으로 활동을 이어간다.

그리고 영국 차트에 데뷔하지마자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빌보드 차트에서도 역대 블러 앨범 중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고.

2015년 6월 9일에 공식 코믹북인 Travel Hong Kong With Blur를 내놓을 것임을 발표했다. 홍콩의 만화가 Kongkee의 작품이라고 한다. 인터뷰 영상

The Magic Whip 투어가 끝나고 다시 멤버들이 개인활동에 집중했지만, 2019년 깜짝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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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4일에 2023년 7월 열릴 웸블리 스타디움과 더블린 콘서트를 발표했다. 7월 8일 웸블리 공연은 티켓 오픈을 하자마자 바로 매진되었고, 그로 인해 7월 9일 웸블리에서 하루 더 공연을 하게 되었다. 게스트 라인업으로는 족스트랩, 슬리퍼드 모즈[23], 셀프 이스팀이 공연했다.

4.9. The Ballad of Darren (2023)

2023년 1월 25일, 2023 SUMMER SONIC에 헤드라이너로 서는 것이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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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는 새 앨범 발매 소식이 갑작스레 발표되었다. 8년만의 정규앨범이며 앨범 타이틀은 The Ballad of Darren. 2023년 7월 21일 발매되었다.

7번째 트랙 "The Narcissist"가 첫 싱글로 공개되었다. 음원

2023년 6월 29일 두 번째 싱글 "St. Charles Square" 가 공개되었다.

이후 프리마베라, 코로나 캐피탈, 로스킬데 등과 같은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를 장식했으며, 2024년 코첼라 공연을 마지막으로 다시금 휴식기에 들어갔다.

2023년 웸블리에서 열린 재결합 공연 실황이 2024년 7월 26일 발매될 예정이다.

The Ballad of Darren의 작업기를 다룬 다큐 To the end는 2024년 7월 19일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개봉하며 2025년에 한국 개봉이 예정되어 있다.

5. 내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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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엠넷의 공연 녹화 영상[24]

1997년 10월 21일 오후 7시 30분에 정동문화체육관[25]에서 내한 공연을 했다. 2015년 블러의 8집이 나오고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도 블러 이야기가 나왔는데 블러를 섭외했던 공연 기획사 예스컴 사장이 라디오 방송 도중 배철수에게 보낸 문자에 따르면 자신의 홍보 부족으로 관객이 적게 들은거 같다고 한다.

데이먼이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말하길 지금까지 한국에 와보지 않은 것 같아서 아시아 투어 첫 장소로 한국을 잡았다고는 한다.

멤버 모두 태권도에 관심이 많다.[26] 내한 당시 다 함께 태권도 하러 가야 한다고 아침에 태권도장에 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게다가 이때 연습하다 발톱이 빠져 병원까지 갔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해, 일본의 Most Wanted 인터뷰에서도 태권도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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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에피소드로는 당시 브릿팝은 죽었다는 발언할 때 와서 국내 기획사가 건 플랜카드에 '브릿팝 밴드 블러'라는 문구를 보고 가리려고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또 경향신문 기자가 데이먼을 만났을 때, 씻는 것을 싫어하는 데이먼에게 심한 악취가 났다고 한다.[27] 이러한 일화들을 보면 한국에 대한 인상이 굉장히 안좋았을 법 하지만 후에 내한 당시 관계자의 말 따르면 내한 공연에서 의외의 반응에 매우 깜짝 놀랐다고 한다. 또한 내한 공연 후 3년 뒤 진행되었던 데이먼과의 전화 인터뷰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시간이 많지 않아 많은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자신에게는 새로운 환경이어서 매우 좋았다고 한다. 특히 태권도를 배웠던 것이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또한 영국에서는 한국이란 곳을 매우 특색 있고 신비한 곳으로 보기 때문에 한국에 직접 와 볼 수 있었다는 것은 자신에게 아주 좋은 경험이었으며 인삼 음료가 참 맛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도 했다.

5.1. 이후

1997년 이후로 블러는 오지 않았고 많은 한국 팬들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아직도 블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심지어는 지산락페 트윗에서 지산락페에 오면 좋을 밴드 중에서 블러가 상위권에 들어가 있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리고 2012년 월드투어를 돌 당시, 자주 가지 않았던 지역에서 공연할 예정이라고 하여 그레이엄의 트위터에 남한을 와달라고 한 팬이 있었으나 그레이엄은 매몰차게 한국은 이미 갔다왔다고 한 적이 있다. 하필 2012년에 2012년 최고의 핫이슈 강남스타일을 싫어한다고 한 적 있는 사람한테... 그리고 2013년 10월, 데이먼이 BBC 라디오에서 방북한 사실을 말한 뒤로는 왜 북한에는 가면서 남한에는 오지 않냐며 내(남)한을 외치는 중이다.

2014년 CJ E&M현대카드가 엄청나게 공들여서 섭외를 하려고 했지만 거절했다는 거물급 뮤지션 D가 데이먼과 헤비시즈라는 설이 돌고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두번 다시 블러가 내한 올 가능성은 낮을 듯 하다.

2015년 2월 공개된 8집 트랙에 'Pyongyang'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남한의 팬들 사이에서는 공연하기에 상당히 어려움이 따를 북한 대신 혹시라도 남한에 올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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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5년 4월 28일, 뜬금없이 블러의 공식 페이스북에 진한 구글 번역기의 냄새가 나는 한글로 쓴 앨범 홍보글이 올라왔다! 해당 게시물은 다른 언어로 같은 내용의 글이 올라오지는 않았으며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들만이 볼 수 있게 설정돼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한국팬들은 이 때문에 혹시 내(남)한을 하려는 것이 아닐가 기대하였지만 물론 북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연합뉴스와의 인터뷰 내용을 참고하면 그저 오래 기다린 남한 팬들을 위한 서비스성 글로 생각된다. 현재 해당 게시물은 삭제된 상태이다.

10주년에다 그해 가장 강렬한 헤드라이너[28]를 데려온다는 호언장담 때문인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공개된 예스컴 사장의 블러 내한에 대한 자책 문자 때문인지 2015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로 내한을 온다는 이야기도 돌았으며 그 때문에 트위터에서는 검색창에 펜타를 치면 '펜타포트 블러'가 자동완성으로 떴으나 결국 이런 들이 헤드라이너로 결정되면서 없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8집이 발매되어 진행된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내(남)한 계획을 묻자 The Magic Whip 투어에서는 남한으로 가는건 어렵지만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라고 하고 대신 유엔과 논의하여 북한으로 가는걸 추진중이라고(...).[29] 북한 찍고 남한 올 생각도 안했나보다(...) 평양에서 인천공항까지 한 시간도 안걸리는데 차라리 이분처럼 DMZ에서 공연 하고싶다 하거나 이분처럼 통일 후에 다시 찾겠다고 했다면 좋았을걸 새 앨범을 발매하거나 새로운 투어를 할 때 까지는 블러의 내한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듯 하다. 그리고 해당 인터뷰에서 블러는 "K팝을 들어본 적이 있다"며 "영국 어린 친구들이 많이 듣는 음악인 걸로 안다. 한국 록 음악도 들어본 적이 있다. 가끔 한국 팬들이 한국 록 CD를 건네줘 컨템퍼러리 록부터 옛날 한국 록까지 들어봤다. 마지막으로 받은 한국 CD는 1970년대 록 밴드의 음악이었다. 최근 들어 한국 음악이 세계 시장에서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으며 그 중 데이브는 "굉장히 즐거웠던 걸로 기억난다. 데이먼과 나는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를 배워 당시 내한 공연 때 한국 도장에서 태권도 수업을 받은 기억이 난다. 한국 팬들이 오래 기다렸고 그간 젊은 세대의 다양한 팬들이 생겼다고 들었다. 꼭 다시 가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2015년 7월, 홍콩 공연 기자회견에 참석한 워너 뮤직 코리아의 남한 언급에 알렉스가 데이브에 이어 꼭 다시 남한을 찾고 싶다고 하였으며 같은 날, 백스테이지로 찾아간 피키캐스트의 기자가 데이먼에게 내한 오라고 말을 전했다고 해 내(남)한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졌다.

이후 2017년 7월,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고릴라즈가 참여하면서 데이먼은 두번째로 내한하게 되었다. 공연장에는 고릴라즈 팬과 더불어 블러와 데이먼 알반의 수많은 팬들이 모였고, 심지어 일부 팬들은 입출국 비행기 시간까지 알아내 공항에까지 따라가기도 했다(...) 가히 20년만의 내한이었던 만큼 데이먼을 비롯한 뮤지션들과 관객 모두의 호응으로 공연은 성황리에 끝났다.

2018년 6월 23일 데이먼 알반이 비공식적으로 내한했다는 사실이 트위터로 알려지면서 한국 팬들을 충격에 빠트리기도 했다.

6. 그 외

6.1. 다른 밴드와의 관계

  • 오아시스
    오아시스의 갤러거 가 무지 싫어했던 밴드. 90년대 중반에 오아시스와 블러가 대판 싸운 과거는 '브릿팝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흑역사화 됐다. 두 밴드가 서로를 얼마나 증오했냐면 블러가 활동을 잠정 중단한 후에도 갤러거 형제가 데이먼이 활동하고 있는 고릴라즈 마저 "어린애들이나 들을만한 음악을 하고 있다."고 깔 정도였다.
하지만 2012년, 노엘 갤러거가 인터뷰 때 요즘 데이먼이 활동하는 The Good The Bad & The Queen의 음악이 의외로 괜찮다고 했다. 노엘은 데이먼과 술집에서 만나 화해도 했다.(...) 브릿 어워즈 2012에서도 만나서 서로 껴안는 포즈를 취하기도...
그리고 2012년 9월에 데이먼이 진행하는 African Express에 노엘이 초대받았다! 그러나 평소 노엘의 행보를 봤을 때 이 공연에 참여의사를 표할 가능성은 낮았고, 데이먼도 이를 알기 때문에 사람들의 계속되는 관심에 수락 가능성이 적은 초대를 대충 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노엘은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2013년 노엘 갤러거와 데이먼 알반, 그레이엄 콕슨이 TCT 무대에서 함께 블러의 노래를 불렀다! 락덕들은 기적적인 일이라며 경악해 하면서 데이먼 알반하고도 공연하는데 왜 리암과는 재결합을 하지 않느냐고 노엘에게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후 노엘은 이전의 싸움에 대해서도 기자들이 계속 쓰레기 같은걸 물어봤고 취한 상태에서 했던 말일 뿐이었고, 원래 데이먼을 좋아했다고 밝혔다. 고릴라즈에 대한 평도 어느새 '어린애들이나 듣는' → '우리 애들도 사랑하는'으로 바뀌었다.
2017년, 노엘이 고릴라즈의 신보 Humanz의 'We Got the Power'에 피처링을 하게 되며 수십년만에 오아시스와 블러의 프론트맨이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30]
노엘과 데이먼이 오랜 시간 반목했던 것과 달리 데이먼과 리암은 예전부터 사이가 그다지 나쁘지 않다. 2015년에는 리암이 트위터에서 Lonesome Street를 극찬하기도 했다. 그런데 솔로 투어에서 부를 오아시스 노래를 추천받을 때 블러가 나오자 단단히 삐졌다(...)
  • 스웨이드
    스웨이드의 리더 브렛 앤더슨은 블러에 대해 '블러는 팝 밴드가 아닌 코미디 밴드'라고 비야낭 거린 것으로 유명하다. 여기에 데이먼 알반은 '마약중독자 약쟁이'라 받아쳤고 그러자 브렛 앤더슨은 '너도 헤로인 중독자인건 피차일반. 그리고 나와는 달리 너는 주삿바늘을 무서워하는 겁쟁이.'라고 했다.
또한 브렛 앤더슨이 스웨이드를 재결성했을 때 인터뷰어가 브렛에게 블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하자 브렛은 "맨날 똑같은 음악만 하는 밴드일 뿐이다."라고 깠다.
브렛이 블러를 싫어하는 것은 엘라스티카의 저스틴 프리쉬먼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브렛 앤더슨과 저스틴 프리쉬먼이 동거에까지 이른 상태에서 저스틴 프리쉬먼이 데이먼 알반과 불륜을 시작하면서 관계가 파탄났으니... 실제로 오아시스가 데뷔하기 전까지 영국 언론들은 이들의 삼각관계를 부각시키면서 스웨이드와 블러를 라이벌로 칭했다.
참고로 브렛은 저스틴과의 갑작스러운 결별로 인한 충격과 상실감을 잊기 위해 코카인에 무심코 손을 댔다가 마약중독자가 되었고, 결국 헤로인까지 하게 되었다. 데이먼과 저스틴은 이후 쭉 사귀다가 13 때 헤어졌다. 그리고 저스틴 프리쉬먼은 재입학한 대학의 교수와 결혼했다.
실제로 브렛과 데이먼은 여전히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다고. 저스틴이 화해시키려고 두 사람을 만나게 했는데 악수만 하고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저스틴은 여전히 두 남자와 친하게 지내고 있다(…).

6.2.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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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새 데이먼은 머리가 벗겨지고 있다. 치아 상태도 좋지 않다. 대체 왜 금니야!!!! 하지만 원판이 워낙 좋아서인지 아직도 훈남 소리 듣고 산다. 금니를 박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빨이 빠진 이유에 대해선 그냥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없었다고... 2019년 들어와서는 머리를 박박 밀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주먹밥에 감싸진 김 같다(...) 어쩐지 자신도 어색한지 비니를 많이 쓰고 다니는 것 같음. 팬들은 빨리 데이먼의 머리가 자라길 기다리고 있다..
  • 알렉스는 치즈를 사랑한다. 직접 만들고도 있다. 왕실에 납품도 한다. 그의 치즈 사랑은 유명하다. 노엘 갤러거의 팬들은 그의 와싯 이후 거취를 궁금해하며 그가 하지 않을 일 리스트로 '알렉스와 치즈 만들기'를 꼽은 적이 있다.포장 디자인 변천사
  • 치즈 사랑과 함께 같은 밴드 멤버 그레이엄 콕슨을 항한 사랑도 유명하다. 그가 묘사하는 그레이엄 콕슨은 이 시대 최고의 기타리스트이며, 그림도 잘 그리고 기타도 잘 쳐서 학교 다닐 때 인기가 짱이었고, 좋은 냄새가 난다고 한다...
  • 데이브는 데이먼이 승부욕이 예전에 정말 심했다고 말하면서, 들고있던 짐을 들기 싫으면 데이먼한테 가서 이렇게 말하면 됐다고 한다. "야 이거 진짜 무거워. 넌 이거 못 들걸?" 그러면 데이먼은 "내가 이걸 못 들 것 같아?! 잘 봐!" 이러는 식이라고...
  • 데이먼은 알렉스 집에 찾아가서 절대 노크를 하지 않았었다. 창문에 돌을 던졌다.
  • 그레이엄은 옷과 신발과 오토바이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 이 중에서 신발은 그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무생물이며, 옷은 보존을 정말 잘 하는지 15년도 전에 공연에서 입었던 티셔츠를 또 입고 공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데이브는 여러가지 블러 외 활동들을 하는데개인 사이트(링크 죽음), 블러 외에 The Alierons라는 밴드에서 드럼을 친다. 또한 애니메이터로도 활동해 Empire Square라는 애니메이션을 감독하거나 Nanomation이라는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2012년 부터는 DJ로도 활동중. 초기에는 DJ Dark Destroyer(...)라는 중2병스러운 이름으로도 활동했다. 여기서 DJ로서 활동 기록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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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브의 음악 외 활동 중 가장 잘 알려져있는 것은 변호사 일과 정치인데, Kingsley Napley라는 로펌에 소속되어있으며 여기서 프로필과 중년간지 사진을 볼 수 있다. 범죄 관련 전문이라는 듯. 정치인으로서는 2002년 영국 노동당에 가입하며 웨스트엔드 지부에 의장으로 앉았기도 했다. 이후 Marylebone의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하고 다음해 7월 노동당 텃밭인 Church Street에 출마했는데 팬들이 정치인이 드럼치면 맛이 안난다(...)며 애써준 덕분(...)에 또 낙선.덕분에 노동당은 텃밭을 잃었..나? 결국 2010년 총선에서 웨스트민스터 선거구에 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당시 블러 재결성 공연에서 오바마의 선거포스터를 패러디해 위 처럼 Vote Dave라고 적힌 티셔츠를 무려 블러 공식 머천다이즈로 판매하고 공연장 전광판에 구호까지 띄웠으나 결국 보수당 마크 필드에 밀려 낙선.. 다음 총선을 위해 Norwich South 지역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저널리스트 출신의 클리브 루이스에게 밀려서 낙천.드럼칠 운명이다.[31]
  • 정치인으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았던 데이브 로운트리는 2017년 5월 4일에 열린 영국 지방선거에서 노포크 카운티 의회 의원(Councilor)으로 당선되었다. 지역구는 Universitiy Division으로 1,173표를 획득하여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이 지역구는 본래 노동당의 텃밭이다.
  • 중국어 표기는 '블러'를 음차한 布勒(포륵, 보통화로 발음하면 '블러'와 비슷하게 들린다.)이라고 쓰이다가 The Magic Whip 발매 이후로 模糊가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 한때 그때 그 사람들이란 한국영화의 포스터가 Song 2의 싱글 커버를 표절했다고 하여 논란이 된 적 있다.
  • 2003년에 있었던 유명 인터뷰어 날드와르와의 인터뷰가 안좋은 쪽으로 유명하다. 다른 블러 멤버들은 그다지 친절하진 않아도 그럭저럭 상대를 해주었지만, 데이브 로운트리의 태도가 특히 논란이 되었고, 데이브는 후에 코카인의 영향 때문에 그랬다고 사과했으나 댓글을 보면 알 수 있듯 반응은 여전히 좋지 않다.
  • 라디오헤드의 프론트맨 톰 요크는 2003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타 뮤지션의 곡들 중 내 곡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한 곡이 있느냐' 라는 질문을 받자 블러의 Girls & Boys를 꼽았다. '내가 만들었어야 하는 곡인데 블러 그 개자식들이 먼저 뺏어갔다'라고 장난삼아 얘기했다. 그만큼 그 곡을 좋아하는 듯 하다.

6.3. 국내의 팬덤 및 인식

사실상 현재 활동중인 유일한 블러 팬 카페

97년 전후를 시작으로 여러 팬사이트가 생겨났었지만 대부분 활동이 중단된 상태이다.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국내 블러 덕후들은 희귀종족"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현재로서는 데이먼의 팬카페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팬덤을 다시 부흥시키려는듯한 새로운 움직임도 보이는 중이다.

국내 블러 팬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는 장기하가 있다. # # 데이먼의 솔로 프로젝트인 Rocket Juice & The Moon의 LP를 인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본인이 말했듯이 오아시스에 빠져 블러에 많이 소홀해진 상태(...)

잔나비 역시 블러의 팬으로 꾸준히 자신들의 공연 리허설 및 출연하는 방송에서 블러의 Tender를 자주 커버하고 있다. 덕분에 그들이 자신들의 개인 방송에서 Tender를 커버하자 갑자기 Blur와 Tender가 멜론 실시간 검색어에 각각 1위와 3위로 등장하기도 했다.

6.4. 어록

  • 데이먼 알반
"나는 아침에 매우 섹시하다."
"난 종종 알렉스를 때렸어, 걔가 계속 정말 짜증나는 짓을 하잖아. 난 걔가 맞는걸 좋아한다고 생각했어."
"진실로 난 우리 엄마에게서 영향을 받았어, 나는 엄마에게 사랑과 존경을 갖고 있고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엄마는 항상 날 웃게 만들어, 나는 그녀를 전적으로 믿고있어. 부모님 두 분 다 아티스트이고 나는 꽤 자유로운 가정에서 자랐어, 나는 내가 원하는건 뭐든지 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만 그건 모두 강한 도덕적인 기초를 기반으로 했어야 했어. 내 생각에 부모님이 아이가 어릴 때 그런걸 허락해주는건 중요한 일인 것 같아 강렬한 욕구를 좀 더 잘 해소할 수 있지. 나는 정말 우리 엄마를 사랑해."
  • 그레이엄 콕슨
"우리집은 냉각기가 망가져서 계속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어야해."
"내 옷장을 칭찬해 준 노엘...고마워.Cheers, 그리고 나 가디건 없어, 개새끼야."
"나는 싱글이니까 마돈나에게 결혼해 달라고 할겁니다. 진짜라니까. 만약에 마돈나가 좋다고 하면, 신문 1면에 날 만한 짓을 해보고 싶어. 권총을 한 자루 사서 내 머리에 대고 마돈나를 젊은 락 스타 과부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협박하는거죠! 뭐 안 할 수도 있고...
"알렉스, 데이먼은 블러가 자기 밴드라고 생각하고, 그레이엄도 블러가 자기 밴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블러는 내꺼야"
  • 데이브 로운트리
' blur'가 위대한 앨범이라고는 하지 않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 '블러가 오아시스한테 승부수를 띄웠어!' 그게 오아시스 vs 블러 전쟁의 대가야. 뭘해도 계속 오아시스가 언급되는 거지. 영원히!"

7. 관련 문서



[1] 일렉기타 보단 거의 어쿠스틱 기타가 주 악기였다.[2] 특이하게도 미들 네임로 불린다. 데이브의 말에 따르면 고향에서는 스티븐이고 런던에서는 알렉스라고..[3]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데이먼 알반, 그레이엄 콕슨, 알렉스 제임스, 데이브 로운트리.[4] 콜체스터는 데이브의 고향이기도 하다. 데이먼, 그레이엄, 데이브는 지역적 연고가 같은 셈이다.[5] Random Gender라는 밴드의 기타리스트 출신.[6] 사실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었다고 한다. 데이브가 공연 때 파자마를 입고 드럼을 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7] 매드체스터슈게이징 등.[8] 이 회사가 바로 데이먼과 데이브가 지금까지도 즐겨입는 브랜드인 프레드 페리이다. 한국 프레드 페리 블로그에서는 자신들이 블러의 투어를 지원해줬다고 홍보(?)하기도. 그리고 2021년에는 20주년을 맞은 데이먼의 밴드 고릴라즈와도 콜라보레이션을 했다.[9] 애초에 큰 관계가 없던 영국 밴드들을, 미국 음악에 의해 음악시장이 잠식된 상황에 대항할 인기를 얻고 있다는 공통점만으로 묶은 것이기 때문에 브릿팝이라는 장르는 그 어떤 장르보다 모호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언론에 의해 브릿팝과 대립각을 세운 것처럼 묘사되었던 미국의 그런지 또한 밴드들의 고향이 시에틀 출신이라는 점만으로 묶인 것은 마찬가지였다.[10]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표현하는 커버 이미지에 타이틀또한 'Blur' 셀프타이틀이다. 전작과는 달리 blur 자신들에 대한 앨범. 좀 더 감정적이고, 개인적이며, 거칠다.[11] 싱글 제작에만 참여하고 실제로 공연에 나타나지는 않았다.[12] 앨범 13의 이름의 유래가 된 그 스튜디오 맞다. 스튜디오가 완성된 이후 블러의 노래 뿐만 아니라 고릴라즈 등 데이먼의 솔로 프로젝트의 곡은 대부분 이곳에서 작업되었다. 데이먼이 프로듀싱한 바비 워맥의 The Bravest Man In The Universe와 The Best Is Yet To Come 등 다른 뮤지션의 앨범들도 Studio 13에서 작업되었다.[13] 알렉스, 그레이엄과는 같은 골드스미스 미대 출신이다. Country House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도 했다.[14] 앨범에 실린 것은 1곡 뿐이다. 2곡은 B사이드가 되었고 나머지 1곡이 마지막 팬클럽 싱글인 Some Glad Morning.[15] 앨범커버는 아직도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뱅크시의 작품이다.[16] 네이버 기사들을 잘 뒤지다 보면 블러 멤버들이 법정 싸움으로 갔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는 멤버간의 갈등이 아니라 공연 스폰서와의 갈등으로 빚어진 해프닝이다.[17] 레코드점의 날 기념이라 특이하게도 앨범 자체는 7인치 축음기 음반으로만 1000장 한정판으로 발매했다. 그리고 팬들이 질 떨어지는 불법 복제된 앨범을 사가는 것을 막기 위해 앨범 발매일 다음 날 MP3 형식의 파일로도 무료 다운로드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18] 개별적으로 발매되는 버전은 각각 4장의 사진과 인터뷰집이 동봉된다.[19] 여담으로 위키피디아에서는 8집을 브릿팝으로 분류하고 있었다.[20] 공식 샵과 달리 국가 선택에 남북한 모두 가능했었다..[21] 데이먼이 공연장에 아이스크림 차를 타고 왔다고 한다..[22] 재결합 이후 첫 TV출연이라고 한다.[23] 원래는 슬리퍼드 모즈가 아닌 슬로우타이가 게스트 라인업에 있었으나, 성폭행 루머로 인해 라인업에서 제외되었다.[24] Beetlebum이 Bettlebum으로 오타가 났다.[25] 지금은 건물을 헐어버렸다.[26] 알렉스를 제외한 전원이 태권도를 배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레이엄이 자신은 태권도 워리어고 한 적이 있을 정도.[27] 알렉스의 이름이 잘 알려진 미들 네임인 알렉스가 아닌 퍼스트 네임인 스티븐으로 소개되었다.[28] 결국 그 헤드라이너는 서태지 밴드로 밝혀졌다.[29] 하지만 블러의 공식 내(북)한은 성사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 인터뷰가 나오기 얼마 전, UN의 수장 반기문 사무총장이 방북하려다 북한의 변심으로 취소된 일이 있었기 때문...인줄 알았으나 슬로베니아의 락밴드 '라이바흐'가 락밴드 최초로 2015년 8월 19~20일 평양에서 하는 내(북)한 공연이 성사되었다. 해당 밴드는 나치 퍼포먼스로 유명한 상당히 파격적(...)인 밴드인데 이런 서방세계의 파격적인 락밴드가 선례를 남겼으니 블러의 북한 공연 가능성도 높아진 셈. 더군다나 김정은의 형인 김정철이 락에 관심이 많고 에릭 클랩튼의 대단한 팬이어서 한때 에릭 클랩튼의 평양 공연을 추진한 적이 있던걸 생각하면...[30] 그리고 리암은 이를 두고 "형이 나사가 빠졌다 (seriously lost the plot)"라는 말을 남겼다.(...)[31] 데이브 로운트리가 출마한 지역구 중 웨스트민스터는 보수당의 Saft-Seat, 즉 텃밭이라고 불리는 지역구이다. 출마 당시부터 당선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던 곳이었다. 상대가 현역 국회의원이기도 하고...... 총선 후보자로 선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차차기 총선에서나 다시 도전할 수 있을 듯 하다. 그와는 별개로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는 계속 진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