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4 01:08:41

비르기트 닐손

그라모폰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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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모폰 명예의 전당은 예술적 탁월함, 혁신, 혹은 상상력을 통해 클래식 음악 녹음에 기여한 예술가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는 첫 발표(2012년)때 헌액된 인물들이다.
☆는 두번째 발표(2013년)때 헌액된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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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파일:bn-met1.jpg
비르기트 닐손 (Birgit Nilsson 1918년 5월 17일 ~ 2005년 12월 25일)는 스웨덴 출신의 소프라노 가수이다.성량은 드라마티코 소프라노에서 리릭 소프라노이다.

2. 일생

1918년 스웨덴 출생으로 데뷔는 비교적 늦은 1947년에 했다. 초창기에는 한스 크나퍼츠부쉬등과 협연을 하거나 주로 바그너의 음악들을 맡아 했다. 1950년대를 기점으로 가장 인기있는 소프라도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특히 1950년대 후반부터는 푸치니투란도트의 타이틀롤을 맡기 시작했는데 주로 상대역은 프랑코 코렐리였다. 그녀는 1970년대에 들어서자 소프라노들 중에서도 원로급 대우를 받기 시작했는데 자신보다 나이가 4살 어렸던 레나타 테발디가 은퇴하고 3년 위인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가 은퇴를 하자 그 경향이 더 두드러졌다.


1977년에는 2차 세계대전때 활동했던 자라 린더[1]와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1981년에는 같은 스웨덴출신의 가수 릴 린드포스[2]와 Tv쇼에 출연하는 등 인기를 누렸고 1983년에 은퇴한 이후 주로 독일이나 스웨덴계열의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1983년에 있었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100주년 공연에서는 레온틴 프라이스와 루치아노 파바로티 전에 노래 순서를 받았는데 출연 가수들 중 가장많은 박수갈채를 받았고 유일하게 2곡을 부르고 꽃다발을 받았고 연설기회까지 얻었다.[3]

그러나 이 공연을 끝으로 그녀는 활동을 줄이더니 이듬해인 1984년에 은퇴했다.

1996년의 제임스 레바인 취임 20주년 기념공연에는 깜짝 출연해 78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발퀴레의 간단한 타이틀롤을 선보였다.

2005년 고향 스웨덴의 바스투라 카루프에서 영면했다.

3. 트리비아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의 일화가 유명한데 카라얀은 비공식석상에서 닐손을 더러 토스카스카르피아를 분장없이도 연기 가능하다고 했으며 닐손은 1965년에 카라얀과의 녹음계획에 대해 카랴얀이 자신을 녹음 작업에 포함시킬 마음이 없다며 거절했다. 1967년에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총감독인 루돌프 빙의 초청으로 카라얀이 미국에 왔을 때도 조명을 자신에게 비춘 카라얀에게 대항해 광부들이 쓰는 헤드라이트를 써서 반항하기도 했다. 카라얀이 대놓고 그녀의 외모를 비하하다가 결국 당한 것이라 봐야한다.
  • 오스트리아의 대 지휘자인 카를 뵘은 닐손이 오페라 무대를 은퇴하면 자신도 오페라 지휘를 그만두겠다고 선포했다. 하지만 뵘이 1981년에 사망하면서 이뤄지지 못했는데 뵘은 무려 87세의 나이에 사망해 지휘자 치고는 장수했다. 그만큼 닐손이 늙은 나이에도 무대에 섰다는 반증이다. 참고로 닐손은 1982년에 오페라 무대를 떠났다.

* 프랑코 코렐리와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하는데 70년대에 프랑코 코렐리와 Tv쇼에 출연해 우정을 과시했다. 그냥 카더라통신의 일부로 보는게 좋다.
  • Tv 출연을 자주했다. 은퇴 전인 50대 초반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말이다. 앞서 말한 프랑코 코렐리, 자라 린더, 릴 린드포스와 함께 토크쇼나 Tv쇼를 하고 은퇴후에는 인터뷰나 토크쇼, 스웨덴이나 독일의 Tv광고에 나오기도 하고 심지어는 몰래카메라의 대상(!)[4]이 되기도 하였다.
  • 상당한 대식가였다. 몽셰라 카바예는 각종 합병증과 잦은 수술로 비대해 진 것이지만 닐손도 한 몸 했다. 닐손은 키가 174cm로 알려졌는데 그녀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크리스마스에 자신의 집에 놀러온 손님을 위해 요리를 하다가 또는 만든 요리를 중간중간 먹는 모습이 보인다.

[1] 1907~1981. 2차세계대전 때 나치에 부역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독일군을 위해 위문공연을 다니거나 했다. 특유의 중후하면서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가수이다. 대표 노래로 Wunderbar가 있다.[2] 1940~, 스웨덴의 가수. 우리나라로 따지면 김연자와 같은 위치의 가수이다. 노래를 할 때 여러가지 기행을 선보였다.[3] 그녀가 어떠한 위치에 있었으며 인기와 대우를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공연에는 몽셰라 카바예, 쓰리 테너는 물론 미렐라 프레니와 조안 서덜랜드 등 전설적 성악가들이 모두 나왔다.[4] 비르기트 닐손이 기자와 인터뷰 하는 도중 차가 낭떠러지(그래봐야 높이는 한 4m 깊이다.)로 떨어지거나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보여 줘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만들다 그녀를 놀래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