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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을 찾아서/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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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주인공3. 주인공의 가족/친척4. 내지인 (일본인)
4.1. 한도우 경금속 관련 인물4.2. 그외 내지인
5. 조선인6. 기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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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인공

  • 기노시다 히데요(木下英世)
    쇼와 62년 (1987년) 기준 39세.[1] 고향은 세이슈우(淸州)이다. 경성제국대학 상학과를 졸업하였으며, 갑종간부후보생 출신으로 만주국 최전방의 소대장(소위)로 복무한 경력이 있다.[2] 전역 이후 현재는 노구치 그룹(노구찌 그루뿌) 계열사인 한도우(半島) 경금속 주식회사에서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시집을 출간한 무명 시인이기도 하다.
    우연히 처남이 일본에서 가져온 사노 히사이찌(佐野久一) 교수의 『독사수필(讀史隨筆)』을 통하여 "조선에서도 19세기 후반에 〈동학란(東學亂)〉이 있었으니, 조선 정부 자체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어 일본과 청의 출병으로 수습해야만 했었다." 라는 대목을 읽고는 조선에 독자적인 정부가 있었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품게 된다. 이후 자신의 시집 출간 기념으로 세이슈우의 큰아버지 댁을 방문하여 우연히 큰아버지 기노시다 헤이따로우(木下平太郞)로부터 죽산 박씨 가문의 족보를 보게 된 후, 뒤늦게 자신의 원래 이름이 '박원신'이며, 할아버지는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억지로 창씨개명을 한 후 조상님을 뵐 낯이 없다고 그날로 자결하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자신에게 '박(朴)'이라는 성씨가 있었다는 사실과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히데요는 큰 충격을 받는다.[3]

3. 주인공의 가족/친척

  • 기노시다 세쯔꼬(木下節子, 이절자)
    히데요의 부인. 모또야마(元山)의 부유한 명가 출신의 여성으로 결혼 전 성은 리노이에(李家)이다. 다만, 그녀가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는 작중 명확히 나타나지 않는다. 세쯔꼬의 남동생, 즉, 히데요의 처남이 해외출장을 자유로이 하고 검열을 덜 받는 점, "히데요가 내지인이었다면 내조를 잘했을 것"이라는 히데요의 대사와 내지인이 아니라면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하는 점 등을 통하여 내지인으로 짐작할 수도 있겠으나, 장모의 장례식 장면을 보면 조선식 장례 풍습[4]에 더 가깝기 때문에 조선인으로 해석하는 쪽에 무게가 더 실려 있다.[5] 세쯔꼬의 가문은 원산항이 개항하면서 증조부 때 쌀 장사로 떼돈을 벌어 1세기 동안 줄곧 정착한 가문이며, 히데요의 집안 역시 지방 검사 등을 배출하는 등 식민치하의 조선의 중~상류층 가문으로 준 일본인 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 기노시다 게이꼬(木下惠子, 박혜자)
    히데요와 세쯔꼬의 외동딸. 중학교 3학년.
  • 기노시다 헤이따로우(木下平太郞/본명: 박원신[6])
    히데요의 큰아버지. 세이슈우(청주) 거주. 히데요에게 조선의 실체에 대해 이야기하여 역사적 각성을 이끌어낸다.
  • 기노시다 헤이지로우(木下平次郞/본명:박정신[7])
    히데요의 아버지. 소학교 교사와 교장을 지냈으며 바람직한 "황국신민"으로 무정하게 살았지만 후반부에야 아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다.
  • 리노이에 도시오(李家敏雄, 이민웅)
    히데요의 처남이자 세쯔꼬의 남동생. 스나가와 건설회사에 근무한다. 누나인 세쯔꼬와 히데요와 매우 친하게 지낸다. 히데요의 가족이 거주하는 스나가와 아파트의 분양권도 그가 구해줬으며, 히데요가 구속되자 세쯔꼬와 함께 면회를 온다.

4. 내지인 (일본인)

4.1. 한도우 경금속 관련 인물

  • 시마즈 도끼에(島津時枝)
    한도우 경금속 직원. 히데요의 직속 부하로, 가고시마시마즈 공작당주의 조카. 그러니까 시마즈 요시히로의 직계후손인 화족이다. (시마즈가 사츠마번인 만큼 해군 출신 조선 총독의 영부인을 "사에코 언니"라 부를 정도다.) 히데요가 마음에 두고 있었으나 에릭 앤더슨과 결혼한다. 정황상 히데요와 서로 짝사랑했던 것으로 보인다.[8]
  • 다나카 슈지(田中修二)
    한도우 경금속 부장. 히데요의 상급자. 이후 이사로 승진하면서 그 자리가 야마시다에게 간다. 도쿄제국대학 출신으로 식견이 높고, 가고시마 출신으로 해군과 민주화에 우호적인 편이다. 아들 도라따로(寅太郞)도 해군에 보내고 싶어한다. 자택은 아사히마찌(旭町)의 고급 주택가다. 히데요에게 <도쿄, 쇼와 61년의 겨울>을 소개한다.[9][10]
  • 다까야마 가즈오(高宮和夫)
    한도우 경금속 과장. 게이죠우 다꾸쇼꾸 대학교(京城拓殖大學校) 출신. 유치원에 들어간 딸 요시꼬(芳子)와 돌을 맞은 아들이 있다. 아들의 돌잔치에 히데요를 포함한 직원들을 초대했는데, 히데요는 보통 그런 곳에 빠지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한참 조선 관련 책에 빠져 있어서 거절하고 대신 요시꼬에게 주는 양과자 한 상자를 들려보냈다.
  • 야마시다 소타로(山下曾太郞)
    한도우 경금속 과장. 히데요의 경쟁자. 오사카 대학 출신으로 입사도 늦고 태만한데다 능력도 없으나, 군부 요직인 외삼촌의 백을 써서 승진이 예정된 히데요 대신 부장으로 진급한다. 히로시마 출신으로 조슈번에 친화적이다. 작중에서 히데요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 자기도 딸이 있으면서 결혼으로 퇴직하는 토키에의 후임을 뽑으려는 히데요에게 여자를 왜 뽑냐고 딴죽을 걸고, 조선인 여비서에게 성희롱을 일삼는데다, 조선인들을 '반도인'이라는 멸칭으로 부르며 멸시한다. 무능해서 업무시간에 주식이나 하러다니고, 중요한 회의나 업무는 히데요에게 다 떠넘기며 성격도 쪼잔하기 이를 데 없어서 시카자와 이사는 서양인들 앞에서도 저러면 뭐라고 하겠냐며 히데요 앞에서 대놓고 깠다.
  • 하세가와 이치로(長谷川一郞)
    한도우 경금속 감사. 히데요의 조력자. 예비역 육군 중장.[11] 히데요를 엘리트 사원으로 보고 있다.[12]
  • 시카자와 쪼우에이(鹿沢長英)
    한도우 경금속 이사. 히데요의 조력자, 후견인. 잠시 상무이사가 되었다가 도우아 경금속으로 개명되면서 다시 이사가 된다. 내지인 직장 상사 중 히데요에게 가장 우호적인 인물 중 하나.
  • 이시다 겐지(石田顯治)
    한도우 경금속 직원. 히데요가 무척 아끼는 인물인 듯 하다. 사실상 차기 과장.
  • 히라오카 요시코(平岡芳子)
    한도우 경금속의 신입직원. 아사히(旭) 여자대학교[13] 영문과 출신. 본적은 사카이(堺)로 꽁고우산(금강산) 전철 집안의 딸. 야마시다와 집안이 인맥이 있다.

4.2. 그외 내지인

  • 야나기자와 다다오(柳澤忠雄)
    일본 시인 협회 조선 지회의 간사이자 조선 시인 연맹 부위원장. 히데요의 문학계에서의 조력자. 아버지는 남작 야나기자와 사나도미(柳澤實美)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과 일본 내무대신을 지냈다고 하며 미기요마찌(三淸町)에 저택이 있다.
  • 미야모도 도꾸조우(宮本德三)
    미국계 감사 회사인 존슨 애치슨 앤드 카펜터[14]의 게이조우 지점 직원. 한도우 경금속의 자산을 실사했다. 게이죠우 다꾸쇼꾸 대학교 상학부 출신. 재교육 때, 회사 일로 만주에 갔다가 연락이 안 되어 예비군 훈련에 2회 불참이 되어버려 고발을 당해 수습하느라 고생하고 있다. 인맥 덕에 담당 검사가 기소 중지 처분을 내릴 것 같다고.
  • 오오꾸보 나리히라(大久保業平)
    검사. 가네우라(김포) 공항에서 사상범 용의자로 수감된 히데요의 담당 검사.
  • 아오끼 리에(靑木李枝)
    세쯔꼬의 후배이자 류우자부로의 아내.
  • 아오끼 류우자부로(靑木龍三郞)
    리에의 남편. 보안대 소속의 일본 제국 육군 헌병 소좌. 호탕하고 남자다운 이미지로 첫 등장하나, 처음부터 아오끼가 벗어놓은 군화로[15] 겉멋만 들고 영 불성실한 사람이라는게 암시되는 등 마냥 좋은 이미지로만 등장하진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히데요가 전향서를 쓰고 석방되게 힘을 써준 대신 세쯔꼬를 농락한 사실을 알게 되고 마침내 딸인 게이꼬까지 성추행하다 히데요에게 살해당한다.
  • 사노 히사이찌(佐野久一)
    교우또우 데이다이(京都帝大) 교수. 56세. 『독사수필』의 저자. 7.31 도쿄 정변("7.31 궐기") 이후 '일본 헌정 연구회'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국가보위법 ‧ 치안유지법 ‧ 방공법(防共法)'의 적용을 받아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7년 징역을 선고받는다.[16]
  • 도우고우 노부오(東郷展男)
    조선 총독. 현역 해군대장.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전두환박정희를 섞어놓은 필의 인물. 영부인 사에꼬는 활발하다고 한다. 해군의 유력 총리대신 후보로 지속 거론되었지만, 공군 수상이 등장하면서 낙마, 총독을 그만둔 후 칙선 귀족원 의원이 된다.
  • 도우고우 사에꼬(東郷佐衞子)
    조선 총독 영부인. 활발하고 정치적 식견이 높다고 한다. 도끼에와도 아는 언니로 친분이 있는 듯하다. 남편보다 낫다는 평이 있고 히데요도 그렇게 여긴다. 육영수이순자를 섞어놓은 필의 인물.
  • 도우조우 히데끼(東条英機)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쇼우와 유신"으로 18년간 철권 통치를 한 인물.[17] 현실인물이지만 실제 행태나 집권 기간은 박정희의 유신통치를 모티브로 한 인물로, 세계관에선 1970년대와 1980년대 일본 사회는 예비역 군인들이 총리로 나섰지만 1987년 육군의 쿠데타로 다시 도우조우 이래 처음으로 다시 현역 육군이 수상에 오르게 된다.
  • 아베 하루노리(阿部治憲) 총리
    이 소설 시작 시점의 일본 총리. 예비역 육군 대장. 전임 조선총독이기도 하다. 평판이 영 좋지 않다. 민주화 운동 진압에 실패하여 사퇴한다. 모티브는 이승만이라는 시각도 있다.
  • 사또우 게이스케(佐藤圭介) 총리
    아베 총리 후임으로 들어선 공군 예비역 대장 출신의 총리. 아베 총리 사임 후 공군이 (해군의 조력을 얻어) 조각한 내각이나 결국 육군의 7.31 쿠데타에 무너진다. 쿠데타군의 총리공관 습격 당시 사망 보도가 있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으며, 연금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티브는 윤보선 및 최규하.
  • 아라끼 마사야스(荒木昌保) 중장
    사또우 내각을 뒤엎은 쿠데타의 주역인 육군 중장으로 쿠데타 당시 보직은 수도군단장. 처음에는 히또쯔바시 대장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나 곧 반혁명죄를 뒤집어 씌워 체포하고 자신이 전면에 나서 총리가 된다. 모티브는 이쪽도 박정희와 전두환.
  • 히또쯔바시 히로모또(一橋廣元) 대장
    육군 대장으로 현직 육군 참모차장. 아라끼의 쿠데타를 묵인하는 대가로 호국군사위원회 위원장이 되나 곧 아라끼의 손에 반혁명죄를 뒤집어쓰고 제거된다. 모티브가 된 실존인물은 5.16 쿠데타 당시 육참총장이던 장도영.
  • 쇼와 덴노
    일본의 현 천황. 아라끼의 쿠데타를 승인하는 내용의 TV 긴급 특별담화에 등장. 주인공 히데요도 "연로하신 폐하를 저놈들이 억지로 방송에 끌어내었구나"하고 분개할 정도로 일본에 동화되어 있는 것을 상징하는 묘사가 나온다.

5. 조선인

  • 후꾸다 스즈꼬(福田鈴子)
    한도우 경금속 직원. 비서로 근무한다.
  • 가나자와 하나꼬(金沢花子)
    한도우 경금속 직원. 비서로 근무한다. 히데요를 대단히 존경하지만 히데요는 항상 "그 옷 예쁜데, 얼마 주고 산건가?"(...)라고만 질문한다.[18]
  • 이또우 소우끼(伊東桑姬)
    한도우 경금속 신입직원. 젠슈우(全州) 출신으로 지역 유지 집안. 하나꼬의 고향 동창. 게이조우 여자대학교(京城女子大學校)[19] 영문과 출신. 여자치고는 키가 큰 편.
  • 쇼우고우(小空) 스님
    샤꾸오우지(석왕사, 釋王寺)의 고승. 조선 불교 연맹(朝鮮佛敎聯盟) 고문을 역임하였으며, 일찍이 시집 『세한(歲寒)』을 냈을 정도로 시에도 능하였는데, 한시(漢詩)에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본래 만해 한용운 스님에게서 내려온 의발의 두번째 계승자였으나, 히데요와의 단 한번의 만남으로 그 의발을 히데요에게 물려준다.[20]
  • 하꾸야마 마사오미(白山正臣)
    조선 평론가 협회 간사이자 전선사상보국연맹 회원. 히데요의 '갱생교육'(전향교육) 강사. 히데요에게 한 고백에 따르면 본래 촉망받던 평론가였으나, 일본에서 열린 학회에 갔을때 가야마 미쯔로우의 소설 원본을 발견하여 처음 조선의 존재를 알고 독립운동을 하려 했지만 고문을 받고 전향했다고 하며, 고문 후유증으로 한 팔이 불구이다.
  • 가야마 미쯔로우(香山光郞) (이광수)
    조선의 대문호. 소설에서는 이미 사망하여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하꾸야마 마사오미(白山正臣)의 말에 의하여 그의 삶이 간접적으로 언급되는데, 자신의 작품인 『이순신(아발도의 죽음)』, 『단종애사(애종비사)』, 『마의태자(초의태자)』 등을 조선사 왜곡에 맞추어 17세기 몽골의 가상왕조인 항해왕조 소설로 개작(改作) 하였다. 그의 사후 고향인 조우슈우(定州)에 세운 묘비에는 그저 '가야마 미쯔로우 여기 잠들다'라고만 적혀 있다고 한다. 조금 길기는 하지만, 하꾸야마 마사오미의 말에서 언급되는 그의 삶은 아래와 같다.

    "기노시다 씨에게 미리 한 가지만 경고해 두겠읍니다. 갱생 교육을 받고 감방에서 풀려 나온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인이 되는 것은, 특히 지금의 일본 사회에서 지식인이 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믿음을 바꾸는 일에는 그 나름대로의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배교가 순교보다도 훨씬 더 어렵고 고귀한 길일 수도 있읍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죠." 하꾸야마는 주위를 한번 살핀 다음, 목소리를 좀 낮춰 말을 이었다, "기노시다 씨, 가야마 미쯔로우(香山光郞) 선생은 젊을 때 조선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분이었읍니다. 아십니까?"

    "모르는데요. 가야마 선생께서 그러셨었나요?"

    "가야마 선생은 조선 독립 운동을 하려고 젊을 때 지나로 망명까지 했었던 분입니다. 그런 분이 결국엔 '조선 민중의 살 길은 일본 제국의 충성스러운 신민들이 되는 길뿐이다' 라고 부르짖게 되었읍니다. 그 분은 자신을 '불행한 푸로메떼우스'라고 불렀읍니다. 물론 아시죠? 푸로메떼우스의 신화?"

    "예."

    "푸로메떼우스는 처음으로 사람에게 불을 가져다 준 신이었죠. 인류 문명의 어버이인 셈이죠. 대신 그는 다른 신들의 미움을 받아야 했고, 화가 난 제우스에 의해 바위에 묶여진 채 독수리에게 끊임없이 간을 먹히는 벌을 받았죠. 가야마 선생은 조선인들이 살아남으려면 조선에 관한 위험한 지식들을 모두 잊고 일본 제국의 충성스런 신민들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 주장을 앞장 서서 실천에 옮겼읍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조선인들에게 지식이라는 불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위험한 불을 빼앗아 가야만 되는 사람이라고 해서 '불행한 푸로메떼우스'라고 한 것입니다." 하꾸야마는 반도 채 태우지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문질러 껐다.

    갑자기 숨이 가빠진 듯해서, 그는 숨을 깊이 쉬었다.

    "그러나 이 얘기엔 또 한 가지 의미가 있읍니다. 푸로메떼우스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자기는 좋은 일을 했고 사람들이 자기를 칭송한다는 생각에서 위안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야마 선생에게 돌아온 것은 변절자라는 비난밖엔 없었읍니다. 그런데 '푸로메떼우스'라는 말은 선지자라는 뜻이죠. 나는 가야마 선생께서 스스로를 '불행한 푸로메떼우스'라고 불렀을 때는 두 가지를 뜻했다고 생각합니다─위험한 지식의 불을 조선인에게서 빼앗아 가는 사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암담하고 슬픈 사실을 미리 보아서 옳은 일을 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변절자의 낙인을 받고 살아가야 되는 사람." 하꾸야마의 얼굴에 비감한 표정이 어렸다. "언젠가 가야마 선생은 친구 한 사람이 변절자라고 욕을 해대자, 잠자코 듣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그러나 역사는 내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 나는 역사를 믿는다.' 이제 역사는 가야마 선생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준 셈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 복거일 지음, 『비명을 찾아서』, 서울, 문학과지성사, 1987, p.425-426.


    "기노시다 씨도 알고 계시겠지만, 지금의 조선은 원래의 조선은 아닙니다. 말도, 글도, 역사도, 문물 제도도, 심지어 지명이나 인명까지도 조선것은 다 없어졌읍니다. 지금의 조선은 하도 많이 일본화되어서, 조선 사람 누구도 어느 것이 조선적인 것이고 어느 것이 일본적인 것인지 모를 지경이 되었읍니다." 하꾸야마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예를 하나 들어보죠. 우리가 잘 아는 문학 얘기를 해 봅시다. 조선 문학에 대해 얘기할 때는 누구나 가야마 미쯔로우(香山光郞) 선생을 근대 조선 문단의 태두로 꼽습니다. 누구나 조선 문단에 미친 그의 커다란 영향을 얘기합니다. 나 자신만 하더라도 그 분에 관해 쓴 글로 문단에 나왔읍니다. 「가야마 미쯔로우의 항해 소설(沆海小設)의 현실성」이란 논문으로 스물 여섯 살 때 총독문학상을 받아 '조선 문단의 신데레루라'로 불렸읍니다. 그럴 만도 했죠. 안도우 기상(安藤輝三) 총독 때로, 내가 수상한 것이 이십 팔회였는데, 그때까지 총독문학상을 받은 가장 젊은 사람은 『장성비추(長城悲秋)』로 서른 아홉 살에 수상했던 기노시다 쇼우세쯔(木下正雪)였으니까요. 가야마 선생이 쓴 일련의 몽고 제국 후예들에 관한 역사 소설들이 처음으로 '항해 소설'이라고 불린 것도 바로 그 논문에서였읍니다. '항해 소설'들은 모두 항해산(沆海山)을 중심으로 한 몽고 제국의 후예들이 서쪽으로부터 침입해 들어오는 노서아에 대항하여 선조의 유산을 지키려고 투쟁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읍니다. '그러한 주제는 몽고와 만주를 넘보는 노서아와 대치한 지금의 우리나라의 현실과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 역사 소설로서는 보기 드물게 현실성을 지닌 작품들이다' 하는 것이 내 논지였고, 그 뒤로 그것이 조선 문단의 정설로 되어 왔읍니다." 하꾸야마는 말을 멈추고,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웠다.

    그는 꼼짝하지 않고서, 하꾸야마가 말을 계속하기를 기다렸다. 아까보다는 좀 나아졌지만, 그래도 머리는 무겁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삼 년이 지났을 때, 난 우연히 '항해 소설'에 관한 진상을 알게 되었읍니다. 내지에서 열린 회의에 조선 대표로 참석했다가 이노우에 하꾸세끼(井上白石) 선생의 집에 묵게 되었읍니다. 거기서 난 그 소설들의 원판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 소설들은 원래 조선의 역사에서 취재된 것들이었읍니다. 조선어로 씌어져서 조선어로 발표되었읍니다. 그 뒤 조선어와 조선 역사가 총독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말살되기 시작하자, 가야마 선생은 그 소설들을 개작했읍니다. 조선 역사를 몽고 제국의 후예들이 세웠다는 '항해 왕조'라는 가공의 역사로 바꾼 것입니다. 『아발도(阿拔都)의 죽음』, 『사해대사(沙海大師)』, 『꿈 속의 사랑』, 『대지(大地)』, 『애종비사(哀宗悲史)』, 『초의태자(草衣太子)』, 그 모두가 애초에는 조선 역사에서 나왔던 것입니다. '항해 소설'의 마지막 작품인 『초의태자』만 하더라도 원래는 『마의태자(麻衣太子)』라는 작품이었읍니다. 마의태자는 옛날 조선에 실재했던 사람입니다. 십 세기 조선 신라 왕조의 마지막 왕자를 십육 세기 몽고 항해 왕조의 마지막 왕자로 바꾼 것입니다. 기노시다 씨,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내 심정은 어떠했겠읍니까?" 하꾸야마의 눈길이 그의 눈 속으로 밀고 들어왔다. 이 세상의 어떤 사악(邪惡)에도 이미 놀라움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차가운 눈길이었다.

    그는 눈길을 돌리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참신한 시각과 발전된 방법론으로 조선 문단에 활력을 불어넣은 젊은 비평가'라는 소리를 들으며 내지 문단에의 진출을 꿈꾸던 야심 만만한 스물 아홉 살의 문학 청년에게 그것은⋯⋯. 지옥의 밑바닥을 본 것과 같았읍니다⋯⋯. 그로부터 꼭 이 년 뒤에 이 팔이 부러졌읍니다."



    - 복거일 지음, 『비명을 찾아서』, 서울, 문학과지성사, 1987, p.429-431.


    하꾸야마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한참 동안 바깥을 내다보더니, 그에게 등을 돌린 채 말했다

    "기노시다 씨."

    "예?"

    "조우슈우(定州)에 있는 가야마 선생의 묘비에 무어라고 씌어 있는지 아십니까?"

    "모르는데요."

    "'여기 잠들다'입니다. '가야마 미쯔로우 여기 잠들다' 그 한 마딥니다. 그것이 가야마 선생께서 유언으로 남긴 자작 비명(碑銘)입니다. 불란서 혁명 때 혁명을 주도하다가 처형된 로베스삐에루셍주이스또가 묻힌 묘지의 입구에 그와 비슷한 말이 새겨져 있다고 들었읍니다. '도루미루'라고. 자신의 믿음을 가슴에 안고 부대낀 사람이 쉴 곳은 무덤뿐입니다. 가야마 선생께서 자신의 비명을 지었을 때의 심정을 난 요새 와서 비로소 이해할 것 같습니다."



    - 복거일 지음, 『비명을 찾아서』, 서울, 문학과지성사, 1987, p.433.
  •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
    육군 대장으로 바로 예편했으나 조선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대장 직위에 올라 조선인 중에 가장 출세했던 인물인데 정황을 따져 보면 아무래도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추측된다. 다만 오카모토 미노루는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이 아닌 한 일본인 교사의 이름으로 결론이 지어졌기 때문에 고증오류가 되었다.
  • 노다 슈우이찌(野田周一, 송주일)
    친일파 송병준의 직계후손으로 노다 백작가의 당주 자리를 이어받았다.[21] 히데요의 대학 동창으로 사람은 착한 편. 히데요 등 동창들과 간간히 집에 불러 정구(소프트 테니스)를 친다.
  • 김두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비서장. 『뉴스월드』의 「어느 망명 정부의 황혼」이라는 기사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언급된다. 임정 요인들과 함께 "본토에서 잊혀진 역사와 언어 같은 조선의 '정신'을 보존"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조선어 사전을 편찬 중이다.

6. 기타

  • 에릭 앤더슨
    스웨덴계 미국인. 한도우 경금속과의 합작대상인 미국 회사 '유사라무'[22]의 직원.[23]
  • 브라우넬
    유사라무의 일본 지사장.[24]
  • 토니아
    백계 러시아인 여자다. 히데요보다 4살 어리며, 그가 북만주에서 소위로 근무할 때 자주 다니던 카페에서 일했다고 한다. 히데요의 첫사랑이라고 하며, 가끔씩 그녀를 그리워하는 히데요의 모습이 작중 간간이 등장한다. 실제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 장세빈(張世彬)
    중화민국 총통. 1987년 1월『도우꾜우 타임즈』의「일중 정상 회담에 거는 우리의 기대」라는 사설을 통하여 '일중 정상 회담'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언급되고 있다.
  • 제임즈 이스트먼
    미국 대통령. 세제 개혁으로 치통을 앓고 있는 풍자화가 글로우브 잡지의 만평으로 게재됐다.
  • 빅토르 그리신
    소련 서기장. 이스트먼과는 달리 실존인물로 현실에서는 소련 공산당 내 보수파로서 고르바초프와 서기장 자리를 두고 경쟁했다. 그의 집권을 통해 현실에서 같은 시기 일어나던 소련의 개방이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1] 실제 역사에서는 대한민국 제헌헌법 제정과 정부 수립이 있었던 1948년생. 작중에서 황국신민번호가 231018-*******이라는 서술로 보아 1948년 (쇼와 23년) 10월 18일생이다.[2] 복거일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최전방에서 장교로 복무한 경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실질적으로 기노시다 히데요는 작가 본인의 페르소나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3] 작중의 조선인들에게 '조선'은 민족 또는 지역명 정도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제주 양씨라는 본관을 지닌 인물이 제주도에 대하여는 쉽게 떠올리지만, 제주도의 기원인 탐라국에 대하여는 잘 떠올리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예라고 생각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4] 화장도 내지와 조선이 다르다고 한다. 참고로 장례 대목에는 불교의 고왕경과 반야심경의 앞부분이 외워진다.[5] 98년 판본 상권 72쪽에 '내지인 아니면 시집을 안 간다고 했으니.'와 '조선인 여자치고 내지인 남자와 결혼 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라고 간접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더해서 리노이에는 전주 이씨의 창씨이기도 하다.[6] "모토노부(元信)"[7] "마사노부(正信)"[8] 시마즈 도끼에는 작가의 페르소나인 히데요에게 가장 이상적인 여성의 속성을 갖고 있다는 해석이 있다. 상식적으로 이런 이력의 화족가의 여성이 굳이 조선의 중견 대기업에서 일할 이유는 없다. (+ 더욱이 히데요를 내심 짝사랑할 리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작중 인간관계나 친분관계로 따져도 작품에서 유독 뚝 떨어져 있는 캐릭터다. (동경의 대상으로서 미국을 상징하는, 작중 초반부터 불쑥 나타난 에릭 엔더슨과 짝을 이룬다는 점도 주목 할 만 하다.) 즉, 히데요의 내지인(곧 일본제국)에 대한 환상과 (다소 부도덕한) 허영, 욕망이 투영된 캐릭터. 히데요가 가장 잘 보이고 싶어하고, 또 자존심이 상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캐릭터가 도끼에이다. 이런 이중적 욕망의 캐릭터가 작품 전반부까지 히데요의 역설적 각성을 인도하다가, 결혼과 함께 훌쩍 사라지는 건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문자 그대로 '조선인 남성들이 지닌 마음의 성감대(72장)'인 것이다.[9] 그러나 그 역시 민주화가 불가능하더라도 식민지배는 계속 되어야한다며 "조선은 일본이 진 십자가"라고 말하는 제국주의자일 뿐이다. 결국 히데요가 수사를 당하면서 <도쿄> 건으로 다나카도 함께 연루되면서 복직 후에도 일체 인연 없게 된다. 다나카는 내지인이란 이유로 수사선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히데요가 다나카와 자신의 격차를 참새와 파리로 실감한다.[10] 다나카는 페르소나인 히데요, 나아가 (한국 엘리트로서의) 저자가 계속 의식하는 일본 엘리트를 상징한다. 다나카는 동경제대, 히데요는 경성제대로 나열하는 식으로 히데요는 은연중 자신을 다나카에 버금간다고 생각하지만 이 은근한 자존감이 승진 문제에서 시작되어 결국 사상죄 처벌에서의 대우로 박살이 난 것이다. 히데요를 은근 차기 부장으로 대우해주던 다나카가 이사 승진 이후로 점점 소원해지다가, 출소 후 복직 면담에서 시까자와 이사만 언급되는 등 다나카가 껄끄러움을 넘어 없는 사람처럼 묘사되는 서술을 주목할만 하다.[11] 찰합이성(차하얼) 전투에서 그가 지휘하던 사단이 큰 피해를 입자 책임을 지고 퇴역했다고 한다. 1987년 현재 조선군 참모장과 육사 동기생이다.[12] 히데요가 체포당해 조사를 받고 나서 보호관찰로 인해 회사 퇴직이 임박했던 결정적 상황에서 '일본에서 제대로 배운 젊은이라면 엄격하게 보안법을 적용하여 걸리지 않을 사람이 없다'(!)라는 비범한 말로 그를 구명한다. 그런 은혜를 입은 지라 히데요가 망명할 때 그를 실망시킨 것을 가장 마음에 걸려한다. 이 점에서 하세가와 감사는 히데요가 여전히 마음에 품은 (긍정적인 의미의) 일본제국 시스템에 대한 미련을 상징한다.[13] 경성에 있는 여대로 내지인이 주로 다닌다고 한다.[14] 유사라무가 한도우 경금속과의 합작 투자에 관한 회계 업무를 맡긴 회사[15] 지퍼와 끈이 동시에 있었다. 군화끈은 그저 겉멋일 뿐, 정작 신을 땐 지퍼를 여닫는 것이었던 것. 히데요는 그걸 보고 군인이니까, 급한 상황에서 빨리 군화를 신기 위해 지퍼를 달 수도 있지만 그럴 거면 뭐하러 끈을 또 달아놓냐고 속으로 못마땅해했다.[16] 열다섯살 (여)제자와의 성스캔들은 사노 히사이찌가 아닌 히데요가 애송하는 시인 기다하라 고우운사이(北原耕雲齋)가 도우조우 히데키 정권의 육군 헌병사령부에 붙잡혀 갔을 때의 죄목이다.[17] 다만 실제 집권 시기와 생몰연도 등을 감안하면 40년대와 50년대가 맞는다.[18] 외모가 뛰어나다는 묘사가 종종 등장한다. 조선인이면서도 일본인 상급자들의 성추행을 단호히 거절한다. 비서들은 대다수 첩이 된다는 걸 생각할 때 보기 드문일이다. 망명할 때 하세가와 감사와 함께 히데요가 가장 마음에 걸려했던 사람. 작품 초반의 도끼에가 히데요가 동경/욕망하던 (이상적인) 일본제국을 상징한다면, 하나꼬는 히데요가 망명으로 남겨두고 가는 조선에 대한 부채의식을 상징한다.[19] 기독교 계통으로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하는 걸로 보아 모티브는 이화여자대학교. 내지인이 주로 다니는 경성의 아사히(旭) 여대와 대조된다.[20] 쇼우고우 스님이 6월에 입적한 사실을 히데요는 「쇼우고우(小空) 스님 입적」이라는 신문기사를 통하여 확인하게 된다. 서로 이름조차 묻지 않는 인연법으로 가르침을 전수하였기에 히데요는 이 기사를 통해 스승의 이름을 알게 된다.[21] 물론 이 세계관에서 조선이 독립국이었음은 완벽히 은폐되었기 때문에 노다 백작 본인은 물론이고 사람들 모두 조상 송병준, 아니 노다 헤이지로를 이토 히로부미의 심복 부하였던 사람 정도로만 알고 있다.[22] US alum(inium)인듯. 철강왕 카네기가 설립한 회사를 모체로 하는 US스틸(미국철강)이 모티브인듯 하다.[23] 도끼에와 결혼한다. 합작투자 당시의 원 계획과 달리 신혼 직후 도끼에와 스웨덴으로 부임했다. 할머니가 옛 스웨덴 왕실인 홀슈타인-고토르프 왕가의 후손이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하며, 도끼에와 결혼한데는 도끼에가 시마즈 공작가 영애인 점도 많이 관여했다.[24] 합작 투자 후 부사장으로 부임한다. 히데요의 협상 상대였음을 감안하면 갑자기 엄청난 격차가 벌어진 셈(...). 히데요에게 매우 우호적이었기에, 회사내에서도 그에게 올라갈 서류의 번역을 히데요에게 다 맡기고 있었다. 아오끼 소좌와의 사건이 없었다면 히데요는 그의 비서실장(부장급)으로 영전했을 것이다. '프린스통'(작내 표기)에서 공부한 법률가로 히데요가 위기에 몰렸을 때 자신은 이중 처벌을 이해할 수 없다며 두둔하여 그를 구명한다. 참고로 프린스턴 대학은 법대가 없다. 이 역시 작가의 장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