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Wilhelm Röpke |
출생 | 1899년 10월 10일 |
독일 제국 니더작센주 | |
사망 | 1966년 2월 12일 (향년 66세) |
스위스 제네바 | |
직업 | 정치학자, 경제학자, 윤리학자 |
사상 | 질서자유주의, 보수자유주의 |
연관 인물 | 루트비히 폰 미제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알렉산더 뤼스토,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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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빌헬름 뢰프케는 독일의 보수주의, 자유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학자로 질서자유주의에 이론적 공헌을 하였다. 또한 사회주의에 대해 반대하였다.2. 생애
1899년 독일 제국의 니더작센주 Heidekreis구 Schwarmstedt촌에서 태어났다.1922년 25세 때 예나 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이는 독일 역사상 최연소였다. 1928년에는 그라츠 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 교수를 지냈고, 1929년에는 필립스 대학교로 옮겨서 마찬가지로 정치경제학 교수를 지냈다.
1933년에는 나치의 자유주의 탄압을 피해 터키 이스탄불로 이주하여 1937년까지 거주했다.
1961년부터 1962년까지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의 소속이였고 고전적 자유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3. 사상
3.1. 고전적 자유주의와 케인스주의에 대한 비판
뢰프케는 무간섭주의, 자유방임주의적인 고전적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비판했다. 정부가 시장에 어느 정도 개입하여 시장의 폭정으로 인한 독점을 막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1957년 공정거래법이 독일에 도입되도록 노력했다.그러나 그는 동시에 과도한 규제정책에 기반한 경제정책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재정보수주의자였으며, 케인스주의적 경제정책을 무분별하고 과도한 지출에 기반한 '재정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비판했다.
그는 사회적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시민들이 어느정도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시장개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 시장개입은 독점을 막고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았으며, 따라서 고전적 자유주의적인 경제관과 케인스나 루스벨트 같은 사회자유주의적 경제관 양자 모두와 구별된다.
또한 뢰프케는 고전적 자유주의에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제안한 것이 그 유명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이다. 실제로 그는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여러 차례 변형과 급진화를 겪었기 때문에, 현재 대중적으로 인식되는 의미의 신자유주의와 뢰프케의 신자유주의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시장개입을 어느 정도 옹호하는 질서자유주의/사회적 시장경제와 깊은 연관이 있는 학자긴 하지만 그는 사회주의와 케인스주의에 대해선 고전적 자유주의보다 훨씬 더 비판적이였고, 루트비히 폰 미제스 같은 자유주의/자유지상주의 학자들과 친하게 지냈다.[1]
3.2. 윤리적 귀족
뢰프케는 나치즘이나 공산주의 같은 대중 중심 사상의 폭력성과 위험성을 경고하였다. 대중의 폭주는 전체주의 체제로 이어지게 됨으로써, 엘리트주의로 이 문제를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러므로 바람직한 사회는 계층질서를 다잡아야 하며, 최상층에 '윤리적 귀족'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윤리적 귀족은 멍청한 대중 계층도, 독재자나 정치꾼도 아닌, 성직자와 지식인 같은 이성적이고 높은 사고수준을 가진 엘리트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정치철학 때문에 그 자신은 기독교 민주주의자가 아니었으나, 비사회주의적 기독교 민주주의자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4. 같이 보기
- 질서자유주의
- 사회적 시장경제
- 신자유주의
- 보수자유주의
- 보수주의
- 기독교 민주주의
- 오스트리아 학파 - 오스트리아학파에 속하긴 하지만 오늘날의 일반적인 오스트리아학파 느낌과는 많이 다른 학자였다.
- 라인강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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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는 시장개입 문제를 가지고 다투었다고 한다. 하이에크도 신자유주의의 아버지이지만, 뢰프케와 달리 시장경제 개입에 훨씬 더 회의적이였다. (물론 불가피하게 필요한 개입은 있음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