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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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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성인
디오니시오
Sanctus Dionysius
파일:성디오니시오.jpg
<colbgcolor=#0a51c2,#0a51c2> 출생 <colbgcolor=#ffffff,#191919>3세기
파일:로마 제국 깃발.svg 로마 제국
사망 250년/258년/270년
파일:로마 제국 깃발.svg 로마 제국 갈리아 루테티아
국적 파일:프랑스 왕국 국기.svg 프랑스
직책 제1대 파리 대교구 주교
성인명 성 디오니시오
[언어별 명칭]
라틴어: 상크투스 디오니시우스
(Sanctus Dionysius)
프랑스어: 생 드니
(Saint Denis)
영어: 세인트 데니스
(Saint Denis)
독일어: 하일리거 디오뉘지우스
(Heiliger Dionysius)
스페인어: 산 디오니시오
(San Dionisio)
이탈리아어: 산 디오니지
(San Dionigi)
네덜란드어: 신트 디오니시위스
(Sint Dionysius)
폴란드어: 시비엥티 디오니지
(Święty Dionizy)
일본어: 세이디오니지오
(聖ディオニジオ)
시성 754년 공식 인정[1] (교황 스테파노 2세)
축일 10월 9일
수호 프랑스, 파리, 두통에 시달리는 자, 광견병을 앓는 존재, 악령에 씌인 자

1. 개요2. 행적
2.1. 루테티아 포교 활동2.2. 박해 및 처형
3. 영향

[clearfix]

1. 개요

프랑스주교, 선교사, 순교자, 그리고 14명의 구난성인[2] 중 하나. 가톨릭뿐만 아니라 정교회, 성공회에서도 추대받고 있는 성인으로 프랑스 파리 대교구 최초의 주교이며 가장 대표적인 세팔로포어[3]이다.

2. 행적

2.1. 루테티아 포교 활동

성 디오니시오는 로마 제국 시절 이탈리아 지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주교에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250년경, 교황 파비아노는 성 디오니시오를 포함한 여섯 명의 주교들을 갈리아 지역으로 파견하여 포교하도록 명했으며, 성 디오니시오는 사제인 성 루스티코와 부제 성 엘레우테리오와 함께 지금의 파리루테티아로 가서 그 도시의 초대 주교로 취임해 본격적인 포교 활동을 했다. 성 디오니시오의 올바른 성품과 뛰어난 설교로 이를 본받은 많은 이교도들이 개종했으며 센 강의 한 섬에서 성당을 설립했다.

2.2. 박해 및 처형

성 디오니시오가 겪은 박해와 고문, 그리고 순교는 복자 보라기네의 야코부스가 성인들의 이야기를 저술한 《황금전설》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당시 성 디오니시오와 더불어 그와 동행한 성직자들이 포교 활동으로 루테티아에서 영향력을 끼치자, 당시 로마 황제 데키우스의 가톨릭 박해로 인해 성 디오니시오, 성 루스티코, 그리고 성 엘레우테리오가 투옥되었다.

성 디오니시오는 모진 채찍을 맞고, 이후 벌거벗겨진 채로 이글거리는 석쇠 위에서 사지가 잡아당겨지는 고문을 받은 후, 굶주린 맹수들에게 던져졌다. 맹수가 달려들자 성 디오니시오는 맹수들에게 십자 성호를 그었고, 맹수들은 이내 온순해졌다.
파일:생드니의제단화.jpg
생 드니의 제단화 (Retable de Saint-Denis)
앙리 벨르쇼즈 作, 루브르 박물관 소유
맹수들이 성 디오니시오를 먹지 않자 그는 결국 감옥으로 다시 보내졌다. 그곳에서 성 디오니시오는 같이 갇혀 있는 죄수들과 함께 미사를 집전하고 있던 도중, 예수가 환한 빛으로 나타나 그에게 성체를 가져다 주는 기적을 경험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성 디오니시오는 다시 고문을 받았고 결국 250년경 동료인 사제 성 루스티코와 부제 성 엘레우테리오와 함께 루테티아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서 참수됐는데...
파일:성디오니시오의순교.jpg
성 디오니시오의 순교 (Le Martyre de Saint Denis)
레옹 보나 作, 팡테옹 소유
참수형을 당한 성 디오니시오는 바로 죽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언덕에서 북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그의 몸이 걸어가고 있을 때 잘린 머리는 자신을 경외시하며 바라보는 주민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었고, 그가 끝내 도착해 쓰러진 곳은 신이 자신의 묏자리라고 알려 준 장소였다.

3. 영향

성 디오니시오는 자신이 쓰러진 장소인 '카톨라쿠스'라는 마을에 안장되었다. 이후 그 마을은 성인의 이름을 따 생 드니로 불리워졌고, 그가 묻힌 곳에는 생 드니 대성당이 세워졌다.

또한 성 디오니시오와 동행자들이 순교한 언덕은 이후 '순교자들의 산'이라는 뜻의 라틴어 단어 '몬스 마르티움'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에 유래되어 몽마르트르라는 지명으로 자리잡았다.

시간이 지나 성 디오니시오는 프랑스와 그 수도 파리, 그리고 두통, 광견병, 그리고 악령에 시달리는 자들을 위한 수호성인이 되었다.

성 디오니시오의 범상치 않은 죽음은 훗날 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이 되었는데, 성당의 조각상이나 종교적 색채의 작품에서 잘린 목을 두 손으로 받치고 있는 성인의 모습이 보인다면 십중팔구 성 디오니시오일 확률이 제일 높다.

성 디오니시오의 프랑스식 발음 '생 드니'는 나중에 영어식으로 변형되어 시드니라는 이름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한편 디오니시오의 영어식 이름은 데니스이다. 즉, 시드니와 데니스는 어원이 같은 셈.


[1] 이전부터 신자들과 주민들 사이에 성인으로 공공연하게 받아들여진 상태였다.[2] 가톨릭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특히 질병에 걸렸을 때 구원을 바라는 기도를 하면 도움을 주는 14명의 성인들.[3] 영어로 'Cephalophore', 목이 잘린 채 자신의 머리를 들고 있는 성인을 일컫는 단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