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5-30 00:25:15

성공회 39개 신조

1. 개요2. 탄생 배경3. 내용
3.1. 1조. 성 삼위일체 신앙에 관하여3.2. 2조. 참 인간이 된 말씀, 하느님의 아들에 관하여3.3. 3조. 그리스도께서 음간에 내려가신 일에 관하여3.4. 4조.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3.5. 5조. 성령에 관하여3.6. 6조. 구원을 위한 성서의 충족성에 관하여3.7. 7조. 구약성서에 관하여3.8. 8조. 3가지 신경에 관하여3.9. 9조. 원죄, 즉 생득의 죄에 관하여3.10. 10조. 자유 의지에 관하여3.11. 11조. 인간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일에 관하여3.12. 12조. 선행에 관하여3.13. 13조. 의롭다고 인정받기 이전의 행위에 대하여3.14. 14조. 여분의 공덕에 관하여3.15. 15조. 그리스도만이 죄 없으심에 관하여3.16. 16조. 세례 후에 지은 죄에 관하여3.17. 17조. 예정과 선택에 관하여3.18. 18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써만 영원한 구원을 얻는 것에 관하여3.19. 19조. 교회에 관하여3.20. 20조. 교회의 권위에 관하여3.21. 21조. 총회의 권위에 관하여3.22. 22조. 연옥에 관하여3.23. 23조. 교회의 사목에 관하여3.24. 24조. 회중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의 사용에 관하여3.25. 25조. 성사에 관하여3.26. 26조. 성직자의 품성 결함이 성사의 효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에 관하여3.27. 27조. 세례에 대하여3.28. 28조. 주님의 만찬에 대하여3.29. 29조. 불경한 사람이 주님의 만찬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먹지 못하는 것에 관하여3.30. 30조. 이종배찬(二種陪餐)에 관하여3.31. 31조. 십자가 위에서 끝난 그리스도의 한 번의 제물에 관하여3.32. 32조. 사제결혼에 관하여3.33. 33조. 파문된 사람을 피하는 것에 관하여3.34. 34조. 교회의 전통에 관하여3.35. 35조. 교리서에 관하여3.36. 36조. 주교와 성직 서품에 관하여3.37. 37조. 시민 통치 권력에 관하여3.38. 38조. 그리스도인의 재산은 공유물이 아님에 관하여3.39. 39조. 그리스도인의 맹세에 관하여
4. 여담5. 관련 문서

1. 개요

Thirty-Nine Articles of Religion[1] 영국 성공회 측 원본 캐나다 성공회 측 원본

영국에서 작성된 최초의 신앙고백은 에드워드 6세(Edward Ⅵ)의 명령을 받은 크랜머(Cranmer) 주교가 1552년에 작성한 42개 신조이다.[2] 에드워드 6세는 1553년 42개 신조를 승인한 후, 명령을 내려 소요리문답서와 함께 출판하게 하였다. 하지만 에드워드 6세가 갑자기 죽게 되고 철저한 가톨릭주의자인 메리 1세(Mary) 여왕이 즉위하게 되자 영국 교회(성공회)의 종교개혁은 후퇴하게 된다.

이후 로마 가톨릭 방식의 전례와 제도를 선호하는 반면, 신앙과 교리에 있어서는 개혁교회의 입장에 있었던 엘리자베스 1세메리 1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영국 교회는 다시 한번 개혁의 기회를 맞게 된다. 1563년 파커 대주교는 42개 신조를 신구 기독교 모두를 절충할 수 있는 내용으로 개정할 것을 여왕에게 건의한 후, 상하 양원의 심의를 얻어 39개 조항으로 조정된 신조를 작성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39개 신조이다.

2. 탄생 배경

14-15세기 잉글랜드 왕국프랑스 왕국 사이에는 100년을 넘기는 격렬한 전쟁이 있었는데, 그 이후로 잉글랜드는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친(親) 스페인 정책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잉글랜드 왕 헨리 7세는 아들인 아서 왕자를 스페인의 공주 캐서린과 정략결혼을 시켰다. 그런데 결혼한 지 반년도 못 되어서 아서가 죽어버린 것. 당시 국제 정세상 남편이 죽어 미망인이 된 캐서린을 스페인으로 돌려보낼 경우, 스페인의 미움을 사게 되어 잉글랜드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 남동생인 헨리가 형수인 캐서린과 결혼하게 되었고, 이후 헨리 8세로 즉위하게 되었다. 하지만 캐서린은 헨리 8세의 뒤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했다. 아들이 태어나면 곧 죽어버렸고, 그래서 헨리와 캐서린 사이에는 메리 공주밖에 없었다. 헨리 8세는 아들을 보기 위해서 이혼을 주장했다. 당시 헨리 8세의 마음은 앤 불린이라는 여인에게 끌려있었다. 왕은 아라곤의 캐서린을 폐하고 자신의 후사를 낳아 줄 앤 불린왕비로 맞아들일 방도를 모색했다. 그는 형의 미망인과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구약 성경 레위기의 구절을 들었다.
제 형제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추한 짓이다. 그것은 제 형제의 부끄러운 곳을 벗긴 것이므로 그가 후손을 보지 못하리라.
레위기 20장 21절(공동번역)
그는 교황에게 혼인 무효를 선언해줄 것을 요청했다.[3] 하지만 당시 교황은 스페인의 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를 5세헛기침만 해도 벌벌 떠는 상황이어서, 카를 5세의 고모인 캐서린의 이혼을 승인한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결국 잉글랜드 왕의 요청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헨리 8세는 교황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토머스 크랜머를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했다. 새로 대주교가 된 크랜머는 곧바로 왕의 이혼을 인정했다. 헨리 8세는 서둘러 앤 불린과 결혼했고, 왕비가 된 앤은 그 해(1533년)에 엘리자베스를 낳았다.

* 수장령과 로마 가톨릭으로부터의 독립
1534년, 잉글랜드 의회는 ‘잉글랜드 국왕이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임을 천명한 ‘수장령’(Acts of Supremacy)을 통과시켰다. 수장령은 잉글랜드 교회의 우두머리가 교황이 아닌 잉글랜드 국왕이라고 선포한 것이다.[4] 이때부터 잉글랜드 교회는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독립되었고, 이것이 성공회의 시작이 되었다. 이처럼 왕의 의도는 다분히 정치적이었고, 교회의 근본적인 개혁에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단지 교황의 권위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국교를 원했을 뿐이었다.

* 에드워드 6세와 토마스 크랜머의 개혁.
새로운 교회를 통해 정치적인 이득만을 얻으려 했던 헨리 8세가 왕위에 있는 동안에는 크랜머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이 영국 교회를 적극적으로 개혁할 수 없었다. 하지만 헨리가 죽고 나서 당시 9살이었던 그의 아들 에드워드 6세가 왕이 되자, 그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크랜머는 어린 왕 에드워드 6세의 섭정 가운데 한 명이었던 것.

크랜머는 잉글랜드 교회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여, 교회에서 성상들을 제거했고, 고해성사를 없엤다. 나아가 성직자들에게 결혼을 허락하고, 성찬식에서 평신도도 빵과 포도주를 모두 받아 먹을 수 있게 했다. 크랜머는 영문학적 소양이 출중했을 뿐만 아니라, 예배에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앞에는 당시 잉글랜드의 복잡한 정치적/종교적 상황에서 개신교 세력과 가톨릭 세력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기도서를 만들어야 하는 일생일대의 과업이 놓여있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공동기도문[5](Book of Commom Prayer)에는 개신교 신자들의 감정을 거스를 만한 가톨릭적 요소들을 모두 제거했다. 1549년에 제정된 ‘통일령’은 잉글랜드의 모든 교회에 그 해 출간된 이 기도서를 사용할 것을 의무화했다.

이 밖에도 크랜머는 잉글랜드 국교회의 교리 입장을 정리한 42개조를 공포했다. 성공회 기도서의 경우처럼, 이 42개 조항도 모든 성직자들이 의무적으로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이 가운데 성찬식에 관한 부분을 보면, 마르틴 루터의 공재설, 가톨릭의 실체변화, 훌드리히 츠빙글리의 상징설을 부정하고, 칼뱅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 메리 1세 여왕과 크랜머의 순교.
에드워드 6세가 죽자, 헨리 8세의 장녀인 메리가 여왕에 즉위했다. 메리 1세는 잉글랜드를 다시 로마 가톨릭 국가로 되돌리려 했다. 그 때문에 많은 무리가 뒤따랐고, 그녀는 가혹한 통치로 말미암아 ‘피의 메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크랜머는 거듭되는 메리 1세의 압력에 굴복하여, 개신교 신앙을 철회하고 로마 가톨릭 신앙으로 복귀한다는 진술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1556년에 열린 최종 재판에서 그는 이를 취소하고,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재확인했다. 당시 다른 개신교 지도자들이 화형을 당한 것처럼, 크랜머도 역시 화형을 당했다. 화형장에서 크랜머는 “이 손이 죄를 지었소!” 라고 외치며, 진술서에 서명했던 자신의 손을 스스로 불길 속에 들이밀었다. 크랜머의 몸이 불붙어 다 타버릴 때까지도 그는 뻗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39개 신조.
메리 1세의 뒤를 이어 엘리자베스가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개신교로마 가톨릭 사이에서 중도의 길을 걷게 된다. 신앙과 교리에 있어서는 개신교적인 입장을, 교회의 의식과 제도에 있어서는 가톨릭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크랜머의 42개조 신앙고백은 메리 1세가 여왕이 되어 가톨릭 신앙을 부활시킬 때 폐지되었다. 그래서 1558년 엘리자베스 1세가 여왕이 되자, 새로운 교리문서가 필요했다.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해 첨언하자면, 그의 치세에 '39개 신조'가 나오게 된것은 독실한 신앙심에 기인했다기 보다는 그의 철저히 중도적이고 정치적인 성향에 기인한 바가 크다. 개신교 세력들의 바램대로 종교개혁을 해야 한다는 큰 틀 안에서의 방향성에는 동의했으나, 당시 국내외의 가톨릭 세력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대표적으로 1558년 2차 수장령을 내려서 잉글랜드 교회의 수장직을 포기하였고,[6][7] 1559년 프로테스탄트 통일령(Protestant Act of Uniformity)를 선포하여 귀족들은 종교적 맹세를 면제받고, 사실상 종교의 자유를 누렸다.

1563년 캔터베리 주교회의는 42개조 신앙고백을 개정하고,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요청에 따라 개정된 내용에 몇 가지를 첨가했다. 1571년 주교회의의 마지막 개정작업 끝에 39개조 신앙고백이 완성되었다. 완성된 신앙고백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이름으로 공표되었고, 성직자들에게 부여되었다.

3. 내용

39개 신조를 주제별로 묶어서 크게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 1~5조 : 삼위일체에 관한 교리들
  • 6~8조 : 성서와 신경에 관한 교리들
  • 9~18조 : 구원에 관한 교리들
  • 19~24조 : 교회에 관한 교리들
  • 25~32조 : 성사(성례전)에 관한 교리들
  • 33~39조 : 기타 교리들

아래 번역문은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주임사제 주낙현 요셉 신부의 한국어 번역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3.1. 1조. 성 삼위일체 신앙에 관하여

한 분이시며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느님은 영원하시며, 몸도 지체도 감정도 없으시며 무한한 능력과 지혜와 선을 가지시며,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창조자이시며 보호자이시다. 그리고 이 신성의 통일 속에서 하나의 본질과 능력, 영원성을 나누는 세 위격으로 존재하니 곧 성부성자성령이시다.

3.2. 2조. 참 인간이 된 말씀, 하느님의 아들에 관하여

성부의 말씀이신 성자는 영원하신 지극히 영원하신 성부로부터 나셨으며 성부와 함께 하나의 본질을 나누며 복되신 동정녀의 태에서 여인의 본질대로 인간의 본성을 가지셨다. 그리하여 2가지의 온전하고 완전한 본질들, 즉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은 한 위격 안에 함께 참여하며 결코 나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 분이신 그리스도는 참 하느님이며 참 인간이시다. 그분은 당신의 성부와 우리들의 화해를 위하여 실제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고 묻히셨으며, 원죄뿐만 아니라 인간의 실제로 짓는 죄를 위하여 희생제물이 되셨다.

3.3. 3조. 그리스도께서 음간에 내려가신 일에 관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묻히셨던 것처럼, 음간에 내려가셨음을 믿어야 한다.

3.4. 4조.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서 진실로 부활하셨고, 살과 뼈, 그리고 완전한 사람의 본성에 속하는 모든 것을 가진 몸을 다시 취하셔서, 하늘에 올라 가셨으며, 마지막 날에 모든 인간을 심판하시러 다시 오실 때까지 거기에 앉아 계신다.

3.5. 5조. 성령에 관하여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온 성령은 참되며 영원하신 하느님 성부와 성자와 함께 같은 본질과 권세, 영광을 가진다.

3.6. 6조. 구원을 위한 성서의 충족성에 관하여

성서는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성서에서 읽을 수 없고 성서를 통해서 증명될 수 없는 것들은 어떤 사람에게도 신앙의 신조나 구원에 필요한 사상으로 요구될 수 없다. 우리는 성서라는 이름을 가진 구약과 신약의 정경들의 권위가 교회 안에서 결코 의심받지 않았다고 이해한다.

정경들의 이름과 수는 다음과 같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판관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기상
역대기하
에즈라
느헤미야
에스델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대예언서 4권
소예언서 12권

다른 책들은(제롬이 말했듯이) 교회에서 생활의 모범과 행동에 대한 가르침으로 읽을 수 있지만, 어떤 교리를 만드는 데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 책들은 다음과 같다.

에즈라 3서
에즈라 4서
토비트
유딧
에스델 잔서
마카베오상
마카베오하
지혜서
집회서(벤 시라 예수)
바룩
세 아이의 노래
마나쎄의 기도
수산나 이야기
벨과 뱀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신약성서의 모든 책들은 모두 정경으로 인정한다.

여느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이른바 구약 외경(가톨릭과 정교회의 제2경전)의 정경성을 부정하고 있다. 다만 외경을 '좋은 참고서'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칼뱅파와는 입장이 다르다. 현대 성공회에서는 구약 외경을 성경 독서 전례에 포함하는 경우가 있다.

3.7. 7조. 구약성서에 관하여

구약성서는 신약성서와 모순되지 않는다. 구약과 신약성서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이시며 하느님이요 인간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에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옛날의 족장들이 현세의 약속만을 구하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은 들을 것이 못 된다. 모세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율법은 그와 관련된 예식과 의식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을 속박하지 않으며 그 정치적 규례도 모든 국가에서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이른바 도덕적인 계명에 대한 순종에서도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3.8. 8조. 3가지 신경에 관하여

니케아 신경과 아타나시우스 신경, 그리고 이른바 사도신경, 이 3가지 신경은 철저하게 인정하고 믿어야 한다. 이 3가지 신경은 성서의 가장 확실한 보증으로 증명되어 있기 때문이다.

3.9. 9조. 원죄, 즉 생득의 죄에 관하여

원죄는 (펠라기우스파 사람들이 헛되이 말하듯이) 아담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인간의 본성에 있는 결함과 부패이다. 이것은 아담의 후손들에게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며, 이 때문에 인간은 원래의 의로움과는 멀리 떨어져 있으며 본성상 악에 기우는 향이 있다. 그러므로 육은 항상 영에 거역한다. 따라서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분노와 저주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본성의 오염은 새로 태어나는 사람들에게도 남아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리스어로 ‘프로네마 사르코스’라고 하는 육의 욕망(어떤 이는 이를 육의 지혜로, 혹은 색욕, 애착, 욕망으로 해석한다)은 하느님의 율법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는 형벌이 없을 것이지만, 사도가 고백한 대로 색욕과 욕정은 그 자체로 죄의 본성이다.

3.10. 10조. 자유 의지에 관하여

아담의 타락 이후 인간은 자신의 자연적인 힘과 선한 행위로써 신앙과 하느님을 찾는 일에 자신을 돌이키거나 준비할 수 없는 조건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 기쁘고 받아들여질 만한 선한 일을 할 능력이 없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리스도에 의한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선한 의지를 가질 수 있고, 그 선한 의지로 선한 행동을 할 수 있다.

3.11. 11조. 인간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일에 관하여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은, 오직 우리 주님이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지한 신앙으로 인한 것이지, 우리의 업적과 가치에 의한 것이 아니다.그러므로 우리가 오직 신앙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것은 이에 관한 말씀에서 표현되듯이 가장 건전한 교리의 하나이며, 지극히 넘치는 위로가 된다.

이신칭의(칭화)에 관하여 칼뱅주의의 영향을 받았음이 드러나있다.

3.12. 12조. 선행에 관하여

선행이 비록 신앙의 결실이며 의롭다고 인정을 받은 후에 따르는 것이라 할지라도 죄를 없앨 수는 없으며, 하느님의 엄정한 심판을 견뎌낼 수는 없다. 그러나 선행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용납될 수 있으며, 참되고 살아있는 신앙에게서는 반드시 나타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마치 나무가 열매를 통해 구별되듯이 선행으로 살아있는 신앙이 분명하게 알려지는 것이다.

행위구원론을 배격하지만, 강경 칼뱅주의파와 침례교의 매우 엄격한 이신칭의 구원관 역시도 지양하고 있다.

3.13. 13조. 의롭다고 인정받기 이전의 행위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영감을 받기 전의 행위들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이것으로 사람이 은총을 받을 수도 없으며, (스콜라 학자들이 말하듯이) 이에 적합한 은총을 받을 만한 가치도 없다. 오히려 이러한 행위는 하느님이 원하시고 명령하신 것에 따라 된 것이 아니며, 결국 우리는 이러한 행위가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3.14. 14조. 여분의 공덕에 관하여

하느님의 계명을 지킬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자발적으로 행한 일을 여분의 공덕이라 하는데, 이러한 주장은 반드시 교만과 불경건을 동반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러한 행위를 가지고 자기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느님께 바치기 위해서 하는 것처럼 할 뿐만 아니라, 마땅히 요구되는 의무인데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계명대로 다 행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3.15. 15조. 그리스도만이 죄 없으심에 관하여

참된 인간의 본성을 가지신 그리스도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와 같지만, 그의 육신과 영혼은 죄에서만은 분명히 제외되셨다. 그는 흠이 없는 어린 양이 되어서 자기 자신을 단 한 번의 희생제물로 삼아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하여 오셨다. 그리고 죄가(요한이 말한 대로) 그분 안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 외에 우리 모두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났지만 많은 일에서 죄를 짓게 된다. 만일 우리에게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 자신을 속이며 진리가 우리 안에 없는 것이다.

3.16. 16조. 세례 후에 지은 죄에 관하여

세례를 받은 후 자의로 지은 중대한 죄 모두가 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아니며, 전혀 용서받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은 후에 죄를 지은 사람에게도 회개의 여지가 있다. 성령을 받은 후에 우리가 주어진 은총에서 이탈하여 죄를 짓게 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느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나 우리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더 이상 죄를 지을 수 없다거나 참된 회개를 통한 용서의 여지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죄받을 것이다.

3.17. 17조. 예정과 선택에 관하여

생명에 관한 예정은 하느님의 영원한 목적이다. 이 안에서 (땅의 기초가 세워지기 전부터) 하느님은 우리에게 숨겨진 계획에 따라 인류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신 사람들을 저주와 형벌로부터 구원하시고, 고귀하게 만들어진 그릇인 그리스도를 통해 그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가져다 주신다고 지속적으로 선포하신다. 하느님의 각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목적에 따라 때가 차서 활동하시는 성령으로 부름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은총을 통하여 부르심에 순종하며, 거저 의롭다고 여김을 받으며, 하느님께서 자녀로 받아 주신다. 이들은 하느님의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이 되며, 경건하게 착한 일을 하며 살다가 마침내 하느님의 자비로 영원한 행복을 얻는다.

믿음을 가지고 예정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택을 생각하는 것은 경건한 사람들에게 참으로 달고 기쁘며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은 육체의 활동과 지상의 것들을 죽이고 그들의 마음을 높은 하늘로 들어 올리는 그리스도의 영의 활동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예정과 선택에 대한 생각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누리게 될 영원한 구원에 대한 신앙을 확립하며 하느님을 향한 그들의 신앙에 강렬하게 불붙여 주기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의심 많고 현세적인 사람들의 시각으로 하느님의 예정에 대한 선언을 계속해서 따르는 것은 가장 위험한 함정이다. 악마는 이런 사람들을 절망으로 떨어뜨리거나 절망과 다를 바 없는 가장 더러운 삶의 비참함으로 빠뜨린다. 나아가 우리는 하느님께서 성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드러나 있는 하느님의 약속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선포된 하느님의 뜻은 우리의 행동 속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어거스틴장 칼뱅에 의해 발전한 예정론을 고백하고 있다. 성공회의 구원관이 칼뱅주의를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조항이라고할 수 있다.

3.18. 18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써만 영원한 구원을 얻는 것에 관하여

모든 사람은 자신이 고백한 계명이나 종파에 따라 구원을 받으며 이에 따라 그러한 계명과 자연적인 빛에 따라 자기 생활을 맞추는데 부지런하면 된다고 말을 믿는 사람은 정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3.19. 19조. 교회에 관하여

그리스도의 가시적(可視的) 교회는 신실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순수한 말씀이 선포되며 성사들은 이에 필요한 것을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바에 따라 성사가 올바르게 집행된다.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와 안디오키아 교회가 오류를 범했듯이 로마 교회도 행위와 예배 의식의 방법에서 만이 아니라 신앙의 문제에서도 오류를 범하였다.

무교회주의를 배격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또한 현대에도 성공회가 로마 가톨릭의 교황무류성을 반대하는 근거가 된다.

3.20. 20조. 교회의 권위에 관하여

교회는 예배의식을 결정할 힘과 신앙에 관한 논쟁에 있어서 권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교회가,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에 모순된 어떤 명령을 내리는 것은 합법적이지 않고, 성서의 한 부분을 다른 부분과 모순되게 설명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비록 거룩한 말씀의 증인이며 보존자이지만 성서에 반하는 어떤 법령도 포고해서는 안되며, 성서 밖의 것을 가지고 구원에 필요한 것이라고 강제로 믿게 해서도 안 된다.

기본적으로 교도권에 관한 개신교적 입장이 드러나지만 칼뱅파에 비해서는 온건한 편이다.

3.21. 21조. 총회의 권위에 관하여

총회는 제후의 명령이나 의지 없이는 소집될 수 없다. 소집된 총회(이 모임은 성령과 하느님의 말씀이 항상 다스리는 것은 아닌 인간들의 모임이기 때문에)는 오류를 범할 수 있고, 또한 하느님에 관한 일에 있어서도 때로 오류를 범한 적도 있었다. 그러므로 총회가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제정한 것이 성서에서 근거한 것으로 밝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힘도 없고 권위도 없다.

3.22. 22조. 연옥에 관하여

연옥, 면죄, 성상 및 유물에 대한 예배와 숭배, 그리고 성인을 통한 기도에 관한 로마 교회의 교리는 어리석은 것이며 헛되게 발명된 것이고 성서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적대하는 것이다.[8]

성공회가 현재에도 연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근거이기도 하다. 다만, 현대 성공회의 일부 고교회파가 연옥을 믿는 것에 대해서 실질적인 제재가 없는 것을 보면 이 조항이 약화되었다고 볼 여지도 있으나 현대 성공회에서는 연옥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부정론보다는 불가지론에 더 가깝다.

3.23. 23조. 교회의 사목에 관하여

누구든지 합법적으로 부름을 받아 회중 안에서 공적인 설교나 성사를 집전하도록 파송받기 전에 이러한 직책을 수행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리고 우리는 합법적으로 부름을 받고 파송 받은 사람이, 회중 안에서 주님의 포도원으로 사목자들을 부르고 파송할 수 있는 공적인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에 의해서 이 일을 위하여 선택받고 부름받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사제서품을 받은 사제만이 합법적인 사목권을 갖고 있음을 밝혔다.

3.24. 24조. 회중이 이해할 수 있는 말의 사용에 관하여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말로 교회 안에서 공적인 기도를 드리거나 성사를 집전하는 것은 분명히 하느님의 말씀과 초대 교회의 관습에 어긋나는 것이다.

미사 시 사용하는 언어는 종교개혁 시발 당시 자국어와 라틴어가 혼용되고 있었는데, 종교개혁가들은 이를 자국어만으로 고정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로마가톨릭은 반종교개혁을 통해 전세계 미사를 로마전례, 즉 라틴어 미사로 통일한다. 24조는 성공회가 이 측면에서 대륙종교개혁 움직임에 동의함을 표현한 것이며, 이전까지 영국교회에서의 관행적 영어 사용을 성문화한 구절로 해석된다.

3.25. 25조. 성사에 관하여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사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에 대한 징표요 표시일 뿐만 아니라 확실하고 분명한 증거이며,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은총과 선하신 뜻에 대한 효과적인 표시이다. 이 성사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보이지 않게 활동하시며,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신앙에 활력을 주고 굳세게 하며 견고하게 한다. 복음서에서 우리 주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사는 2가지인데, 세례와 주님의 만찬이 그것이다. 소위 5가지 성사라고 말하는 견진, 고해, 신품, 혼배, 조병성사는 복음서에서 말하는 성사에 포함되지 않으며, 부분적으로 사도들을 잘못 모방한데서 나타났으며, 부분적으로 성서에서 허용하고 있는 관습에 대한 언급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세례와 주님의 만찬과 같은 성사의 본질을 갖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가시적 표시나 의식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사는 조배하거나 들고 다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로가 말한 대로 성사는 가치 있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유익한 효과와 작용이 나타나는 것이며, 이를 무가치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스스로 벌을 초래하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7성사를 부정하면서, 세례와 성찬만을 성사로 인정하고 나머지 다섯 의식은 성사적 예식으로 취급한다. (나머지 5개 예식의 효력을 부정하지 않지만 2개성사와 급이 같다고 보지는 않는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공회를 완전한 개신교로 보는 중요한 근거 중 하나이며, 성공회사도전승을 부정하는 빌미이기도 하다.

3.26. 26조. 성직자의 품성 결함이 성사의 효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에 관하여

가시적인 교회 안에서 악한 사람과 성한 사람이 섞여 있고, 때로는 악한 사람이 말씀과 성찬을 집전할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이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위임과 권위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의 집전을 이용할 수 있으며, 이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사를 받을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제정하신 것의 효과가 이들의 사악함 때문에 소멸되는 것은 아니며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도 사람들에게 베풀어진 이 성사를 신앙적으로 올바르게 받는 사람들에게서 사라지지 않는다. 악한 사람이 집전했다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시고 약속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유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사목자를 심문하여 그의 잘못을 아는 사람들의 고발에 따라 결국 유죄가 입증된다면, 면직시키는 것이 교회의 치리에 합당하다.

성사의 효력은 집전자의 품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느님의 대리인으로서 집전하는 것이라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교리이다. 이는 로마 가톨릭도 동일한 입장.

3.27. 27조. 세례에 대하여

세례는 신앙고백의 징표이며,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하는 표시일 뿐만 아니라 거듭남과 새로운 탄생의 징표이다. 이 징표를 도구로 하여 세례를 올바르게 받은 사람은 교회에 결합되며, 죄의 용서와 성령에 의하여 우리가 자녀로 받아들여진다는 약속이 가시적으로 가시적(可視的)으로 드러나며 보증을 받는다. 그리고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를 통하여 신앙은 굳어지며 은총이 더해진다. 유아 세례는 그리스도의 제정하신 것에 가장 잘 조화되는 것으로서 교회 안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보존되어야 한다.

종교개혁 과정에서 세례에 관해 크게 2가지 논쟁이 있었다. 재세례의 문제와 유아세례의 유효성 논란이 그것이다. 재세례에 대해서 1536년의 10개조에서 명시적 반대표시가 있었으나 본 27조에서는 해당 구절이 제거되었고 암시적으로만 표현된다. 그러나 유아세례에 관해서는 가톨릭 및 다른 주류 대륙 종교개혁 움직임과 동일하게 유아세례를 인정하는 입장을 대변한다. 요약하자면 27조는 재침례파에 대한 반대를 표명한 것이다.

3.28. 28조. 주님의 만찬에 대하여

주님의 만찬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사람과 함께 이루어야 할 사랑의 표시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우리의 구원에 관한 성사이다. 그러므로 올바르고, 합당하게, 또한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떼는 빵을 영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먹는 것이다. 주님의 만찬 안에서 화체(즉 빵과 포도주의 실체의 변화)가 된다는 주장은 성서에서 입증될 수 없는 것이다. 성서의 분명한 말씀에 위배되며 성사의 본질을 버리고 많은 미신의 여지를 주었다. 그리스도의 몸은 이 성찬에서 오직 천상적이고 영적인 방법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이며 받아서 먹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먹는 길은 바로 신앙이다. 주님의 만찬의 성사, 즉 성체와 보혈은 그리스도의 제정에 따르면 보존하거나 여기저기 들고 다니거나 들어 올리고 경배[9]하는 대상이 아니다.

로마 가톨릭의 실체변화(화체설)와 성체조배 예식을 부정하고 있다. 따라서 성공회의 공식적인 성찬론은 '성사적 임재설'이다. 다만 현대 성공회에서는 일부 고교회파가 실체변화를 믿으며 심지어 성체조배를 하기도 하는데, 거기에 대해 교회 차원에서의 별 다른 제재도 없다. 그 이유는 아래 34조에서 후술.

3.29. 29조. 불경한 사람이 주님의 만찬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먹지 못하는 것에 관하여

불경건한 사람과 분명한 신앙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성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 육체적으로 가시적으로 입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는 성사를 댄다하더라도, 그리스도를 나누어 먹은 사람이 아니며 오히려 이렇게 위대한 성사와 그 표지를 먹고 마시는 것이 그에게는 벌을 초래한다.

모령성체의 개념이 성공회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 사실 여타 개신교 신조들도 상당부분 동일 하다.

3.30. 30조. 이종배찬(二種陪餐)에 관하여

주님의 잔을 평신도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을 거절해서는 안 된다. 주님의 성사의 두 부분 모두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같이 배찬되어야 함을 그리스도가 제정하시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이 조항에 따라 성공회는 로마 가톨릭과 달리 양형 영성체를 실시한다.

3.31. 31조. 십자가 위에서 끝난 그리스도의 한 번의 제물에 관하여

단 한 번 이루어진 그리스도 자신의 봉헌은 원죄와 실범죄를 포함하여 세계의 모든 죄를 위하여 행하신 완전한 속죄이며, 화해이고 변상이다. 그리고 이 밖에는 죄를 보상할 어떤 것도 없다. 그러므로 이른바 미사를 희생제의로 보고 사제가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고통과 죄를 덜기 위해 그리스도를 봉헌했던 것은 불경하게 지어낸 이야기이며 위험한 기만이었다.

28조와 마찬가지로 대륙 종교개혁가들의 입장을 따른다. 가톨릭의 미사 이해는 그것이 반복되는 희생제의라는 것인데, 종교개혁가들은 히브리서 10장에 표현된 기독론 즉 그리스도의 희생이 '한번의 완전하고 영원한 희생제의'라는 입장을 받아들여 천주교 미사가 반성경적이라고 보았다.

한편 현대의 성공회는 로마 가톨릭의 영성체 개방을 희망하고 있는 입장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에큐메니컬 차원에서 현대에는 로마 가톨릭 미사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단 천주교의 성변화(화체설) 성찬론에 대한 거부는 28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비-고교회 성공회에서 21세기 이후 천주교와의 영성체 개방을 추진하고 있는 배경에는 1971년 성공회-천주교 성찬례 교리 합의 등의 교유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성공회 내의 고교회파라도 로마 가톨릭의 미사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으며 저교회파라도 로마 가톨릭의 미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한편 장로회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여기서 더 나가 아예 미사에 참석하지도 말라는 강경한 어조다.

3.32. 32조. 사제결혼에 관하여

하느님의 법은 주교와 사제와 부제독신 생활을 해야 한다거나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하지 않았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결혼하는 것처럼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더 낫다고 판단한다면 결혼 또한 정당한 것이다.

사제 독신제를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결혼의 의무를 강조하는 보수 개신교와 달리 성직자의 자발적인 독신을 부정하진 않는다.

3.33. 33조. 파문된 사람을 피하는 것에 관하여

교회의 공개적인 선언에 따라 교회 공동체에서 정당하게 제외되고 파문된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회개를 통하여 공개적으로 화해하여 교회의 권위에 따라 교회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교회의 모든 신자들은 이방인과 세리 취급을 받아야 한다.

3.34. 34조. 교회의 전통에 관하여

전통과 예배 의식은 반드시 어디에서나 한 가지이거나 똑같을 필요가 없다. 모든 시대에 걸쳐 전통과 예배 의식은 다양했기 때문이며, 나라와 시대와 사람들의 관습의 다양성에 따라 변할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에 위배되어 제정할 수는 없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사적인 판단에 따라 하느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일이 없는 교회의 전통과 예배의식을 공공연히 파괴하는 행위, 즉 교회의 공적인 질서에 반대하고 교회 재판소의 권위를 해치며 약한 형제들의 양심에 상처를 주는 행위는 공개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일을 두려워할 것이다).

전통에 관한 개신교적인 관점을 취하면서도 칼뱅파와 달리 전통을 되도록 배척하려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앵글로-가톨릭 교회에서 성체조배와 화체설을 주장하더라도 공식적으로 발언, 언급하지 않는 이상 제제하지 않는다.

3.35. 35조. 교리서에 관하여

제2교리서는 그 내용의 제목을 이 조항에 부기하여 두거니와, 에드워드 6세 때 발행된 제1교리서와 같이 하느님께 합당한 전체적인 교리를 담고 있으며, 이 시대에 필요한 것들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서 사목자들이 이를 충실하고 명확하게 읽어 주어 신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교리서의 내용
1. 교회의 올바른 이용에 대하여
2. 우상의 위험에 반대하여
3. 교회의 수리와 청결 유지에 대하여
4. 선행, 특별히 단식에 대하여
5. 과식과 과음에 반대하여
6. 지나친 치장에 반대하여
7. 기도에 대하여
8. 기도의 장소와 시간에 대하여
9. 반드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사용한 공동 기도와 성사에 대하여
10.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에 대하여
11. 구제 활동에 대하여
12.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하여
13.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하여
14.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15.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사를 올바르게 받는 것에 대하여
16.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17. 기원절(공도재)에 대하여
18. 결혼생활의 상태에 대하여
19. 회개에 대하여
20. 태만에 반대하여
21. 반란에 반대하여

3.36. 36조. 주교와 성직 서품에 관하여

에드워드 6세 때에 발행되어 의회의 승인을 받은 대주교와 주교의 축성 및 사제와 부제의 서품식 예식문은 축성과 서품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 예식문에는 미신적이거나 불경건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성직자는 앞에서 말한 에드워드 왕 제2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도서의 의식에 따라 축성되고 서품되었으며, 이후에도 이와 같은 의식에 따라 축성되고 서품될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하여 축성되고 서품을 받은 모든 성직자를 올바른 질시에 따라 정당하게 축성받고 서품받은 사람으로 인정한다.

참고로 로마 가톨릭 측에서는 에드워드 6세기에 개정된 서품 양식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구실로 그 시점을 기해 성공회의 사도전승이 단절되었다고 본다.

3.37. 37조. 시민 통치 권력에 관하여

왕은 잉글랜드 왕국의 영토와 그의 통치권이 행사되는 지역에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다. 이 영역에 속하는 재산에 대해서 최고 지배권은 교회와 시민 권력을 불문하고 외국의 치리에 종속되지 않는다. 우리가 왕권에 최고의 통치권을 부여한 이상, 이에 대해 중상모략을 하는 이들의 생각은 과오를 범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해한다. 우리는 왕에게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를 집전할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에 관하여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발표한 최근의 칙령이 가장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성서에 기록된 경건한 모든 왕들에 대하여 하느님 자신이 늘 부여하신 독자적인 특권이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책임을 주어 맡긴 모든 재산과 계급을 교회의 것이든 아니든 통치하며, 또 다스릴 때에 국가의 권력을 가지고 완고하고 악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을 말한다.

로마의 주교는 잉글랜드 왕국 영토 안에서 어떤 치리권도 갖지 못한다. 잉글랜드 영역을 지배하는 모든 법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악하고 중대한 범죄에 대하여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통치자의 명령에 따라 무기를 들고 전쟁에 나가는 것은 정당하다.

교황의 교도권을 거부하며, 잉글랜드 내 교회의 치리권은 잉글랜드가 독자적으로 갖는다는 것으로 표명하고 있다. 그리고 일부 재침례파 등의 급진적 평화주의 또한 배격하고 있다.

3.38. 38조. 그리스도인의 재산은 공유물이 아님에 관하여

그리스도인의 부와 재산은 그 권리와 명칭과 소유에서, 재세례파 사람들이 거짓되고 과장하여 말하는 것처럼 공유물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그 소유물을 가지고서 자신의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가난한 사람을 구제해 주어야 한다.

3.39. 39조. 그리스도인의 맹세에 관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야고보께서 우리의 공허하고 경박한 맹세를 금지하고 있지만, 기독교의 신앙과 사랑을 위하여 통치자가 맹세를 요구할 때는 맹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예언자들의 교훈에 따라서 정의와 올바른 판단과 진리로 맹세해야 한다.

4. 여담

  • 훗날 감리회는 이 39개 신조에서 예정론 등을 뺀 25개 신조를 채택하게 된다.한국어 자료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보면 감리회의 25개 신조도 사실은 칼뱅주의의 영향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 한국 감리회는 사도신경, 25개 신조, 웨슬리의 표준 설교, 웨슬리의 신약 주석, 한국의 교리적 선언, 이 다섯 자료를 교리의 기반과 표준으로 삼고 있다. 참고로 한국 감리회는 미국 감리회의 25개 신조를 그대로 계수하였다.[10] 또한 미국 감리회 버전의 '저승에 가시어'가 빠진 사도신경이 계수된 차원을 넘어서서 그게 한국 개신교 전반에 퍼져버렸다. 이에 대한 우려로 장로회에서는 일부 소장파 목사들이 원래대로의 사도신경을 사용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선교자 유산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사례로 현재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
  • 종교개혁 시기 잉글랜드 국교회 내부의 장로파들은 잉글랜드 국교회(성공회의 전신)가 더 확실히 로마 가톨릭을 배척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이었다.[11] 당시 성공회에서 만든 39개 신조에서 로마가톨릭의 영향이 완전히 배제되지 않은 것이 그들 눈에는 불충분해 보였기에 성공회 39개 신조보다 더 개신교다운 신조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청교도 혁명 와중 의회파 젠트리들의 주도로 1643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모여 성공회 39개 신조보다 더 적극적인 신조 작성 작업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현대 장로회 계열 교회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다. 다만 장로회가 만든게 아니라 잉글랜드 국교회 내 장로회 신학에 가까운 장로파가 만든 것이다.[12] 당시 청교도 혁명 당시 젠트리 주류는 장로파였고, 크롬웰의 독립파(회중파)[13]는 소수였다.
    당시 영국에선 왕당파에 국교회의 전통주의 계열(오늘날의 성공회 고교회파)이 많았고 잔존하던 로마 가톨릭 교도들도 많은데다가 국왕 찰스 1세의 친 로마적인 대외 정책에 학을 띈 개혁주의자들이 많았기에 39개 신조보다 더 개혁주의를 강조하였다. 이는 대륙에서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과 종교재판, 네덜란드 독립 전쟁, 30년 전쟁 시기 로마 가톨릭군의 마그데부르크 학살 등으로 개신교인들의 로마 가톨릭에 대한 적개심이 극에 달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 미국 성공회의 경우 영국 성공회로부터 독립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영국적인 상황에 기초한 항목들, 즉 제21조제36조, 제37조에 대해서는 변경 작업을 해서 1801년에 승인하여 받아들였다.
  • 신학적 스펙트럼이 넓어진 현대 성공회에서는 이 39개 신조의 구속력이 다소 약화 되었지만[14], '성공회의 일원인 것(=캔터베리 대주교와 일치여부)'을 확인하는 선언적 의미도 가지고 있다.
  • 구원관, 성찬론 등에서 칼뱅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 때문인지 로마 가톨릭에서는 복고 가톨릭교회와 다르게 성공회를 완전한 개신교로 보고 있다.[15] 7성사에 대한 성공회의 입장이 애매하다고 보기 때분이다. 또한 로마 가톨릭과의 영성체 개방 문제 등 상호 교류의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반대로 저교회파는 성공회의 개신교적 정체성을 내세우는 중요한 문건으로 삼기 때문에 개신교단들과 교류를 할 수 있는 근거로 본다. 그리고 일부 성공회 교인들은 39개조 신조가 개신교로서의 정체성을 나타낸 고백인 동시에 기존 가톨릭적인 내용을 재확인했을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5. 관련 문서


[1] 혹은, the Thirty-nine Articles 나 the XXXIX Articles 라고도 불린다.[2] 42개 신조에서 성찬에 관한 부분을 보면, 로마 가톨릭의 화체설(성변화), 루터의 공재설(편재설), 츠빙글리의 상징설(기념설)을 부정하고 칼뱅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3] 기독교 교리상 이혼이 불가했던 당시 유럽에서는, 왕족들이 교황에게 '혼인 무효'를 선언받아서 사실상 이혼을 하는 경우가 종종있었다. 헨리 8세도 이것을 원했던 것.[4] 엘리자베스 1세 즉위 초기 2차수장령을 통과시켜 영국 교회 수장직위를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교회의 수장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라는 복음주의자들의 주장과 교회의 머리는 교황이라는 로마 가톨릭의 반발을 받아들여 최고 통치자(Supreme Governor)로 선포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영국국왕이 성공회 수장으로 알고 있으나 명백히 잘 못 알고 있는내용[5] 훗날 '성공회 기도서'로 이름이 바뀌어, 현재까지도 성공회 교인들의 신앙생활의 교본이 되고 있다.[6] 특별히 스페인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컸다.[7]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성공회의 수장이 영국 여왕인 줄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영국의 왕이 성공회의 수장이었던 기간은 1534년부터 1558년까지 고작 24년간에 불과하다. 헨리 8세가 내렸던 수장령의 임펙트가 너무 컸던 것.[8] 이 신조를 포함하여, 여타 개신교 신조들에서도 연옥에 대한 격한 반대입장이 드러나는데, 종교개혁 전후 당시에는 가톨릭 교회가 연옥 교리를 이용하여 신자들을 경제적, 정신적으로 착취한 폐단이 컸다는 시대적 배경도 고려해야할 것이다.[9] 천주교에서 얘기하는 '성체조배'[10] 미합중국 운운 등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일부 조항이 그대로 들어있다.[11] 이건 넓게 보자면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톨릭으로부터의 개혁이 자신의 정체성인 개혁교회/장로교회 입장에서는 천주교에 우호적인 면이 있는 성공회가 곱게 보이지만은 않는 것.[12] 흔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성공회와는 전혀 관련 없는 문서라고 생각하는데, 이 문서의 저자들은 대부분 장로회/개혁교회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성공회 교인들이었다. 현재 장로회의 정체성을 가장 잘 제시한다는 평을 받는 이 문서가 어째서 성공회 교회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의문을 같는 장로교인들도 있는데, 당시에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공회가 아닌 장로회/개혁교회를 위한 문서였다기 보다는 당시 성공회 내부의 쇄신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문서라고 보는 편이 더 사실에 가깝다.[13] 성공회 내부 개혁에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교회 설립을 주장하며 장로 제도에 부정적임[14]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극단적 고교회파와 저교회파. 39개조가 엄격히 준수되었다면, 구원론, 성찬론에서 상당히 가톨릭적인 색깔을 드러내는(다시 말하자면, 교황수위권을 온전히 인정하고, 7성사를 인정하는 등의) 극단적 고교회파들이나 칼뱅주의를 벗어나거나 삼성직을 부정하는 극단적인 저교회파 그룹은 진작에 성공회에서 추방당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공회는 비아 메디아(Via Media)라 해서 공식적으로 39개조 신조를 대놓고 부정하지만 않는다면 모두에게 포용적인 입장에 있다.[15] 다만 개신교 목사와는 달리 성공회 신부는 가톨릭으로 옮기면 1~2년만에 가톨릭 신부로 재서품받을 수 있는 등 어느 정도의 특례는 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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