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06-23 23:52:20

세고돈/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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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인물관계도3. 등장인물
3.1. 주요인물3.2. 사츠마 번
3.2.1. 사이고 家3.2.2. 오쿠보 家3.2.3. 세츄구미(精忠組)3.2.4. 시마즈
3.2.4.1. 시마즈 본가3.2.4.2. 히오키 시마즈
3.2.5. 사츠마의 중신3.2.6. 사츠마의 사람들3.2.7. 아마미 군도
3.2.7.1. 오오시마3.2.7.2. 오키노에라부
3.3. 조슈 번3.4. 토사 번3.5. 사가 번3.6. 미토 번3.7. 후쿠이 번3.8. 아이즈 번3.9. 에도3.10. 교토
3.10.1. 조정3.10.2. 기요미즈데라 죠쥬인3.10.3. 카기야3.10.4. 시게노야3.10.5. 교토의 사람들

1. 개요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 <세고돈>의 등장인물을 다루는 문서.

2. 인물관계도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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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등장인물

3.1. 주요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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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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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사이고 키치노스케
西郷吉之助

(유소년: 와타나베 아오 분)
(스즈키 료헤이 분)
본작의 주인공. 기도 다카요시, 오쿠보 도시미치와 함께 유신삼걸(維新三傑)로 불리는 인물. 가난한 하급 무사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명은 코키치(小吉). 타고난 인품 덕분에 남녀 가리지 않고 주변에 사람이 항상 모여 든다.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 싸움에서 오른쪽 어깨에 칼을 맞고 막대기를 치켜들 수 없게 되자 검술을 포기하는 대신 학문에 전념했고, 무술에 있어서는 스모로 대신했다.[1][2] 성인이 되자 군방서역보조[3] 임무를 맡는다. 이윽고 나리아키라의 눈에 띄며 참근교대 행렬대로서 에도로 상경하였고, 번의 비서 역할인 니와카타(庭方[4]),카치메츠케(徒目付) 등을 역임하며 나리아키라의 오른팔로 활동한다. 그러나 나리아키라를 잃고 안세이의 대옥으로 수배자가 된 키치노스케는 겟쇼와 사츠마로 망명하지만 추방령[5]을 받아 겟쇼와 바다 속에 같이 뛰어들었다. 키치노스케는 가까스로 구출되었고 한달 뒤 키쿠치 겐고(菊池源吾)[6]로 개명하고, 번의 명령으로 오오시마에서 잠복한다.[7] 섬에 도착하여 아이카나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 섬 생활이 3년째가 되는 어느 날, 귀환을 통보받은 키치노스케는 섬에서 신세진 사람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사츠마로 돌아간다. 3년 만에 돌아온 키치노스케는 오오시마 산에몬(大島三右衛門)으로 개명하고[8] 히사미츠의 상경을 비판한다. 그러나 히사미츠는 상경을 강행했고 키치노스케는 시모노세키에서 맞이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아리마 신시치가 교토에서 도막 운동을 전개한다는 소식을 듣고 교토로 향해 진정시킨다. 할복의 명이 떨어지자 스스로 오랏줄을 받는데 코마츠, 오쿠보 등의 탄원으로 섬 유배로 죄가 감면되었다. 키치노스케는 떠나기 전에 사츠마의 한 오두막에 감금되어 있었는데 테라다야 사건으로 아리마 신시치가 사망했다는 편지를 받고 오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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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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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오쿠보 이치조
大久保一蔵

(유소년: 이시카와 타츠키 분)
(에이타[9])
이전 이름은 쇼스케(正助). 키치노스케 평생의 죽마고우이자 라이벌. 훗날 유신삼걸(維新三傑)로 불리는 인물로,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일본 최초의 내무경(内務卿)에 취임했다.[10] 키치노스케를 비롯한 향중(鄕中)의 동무들과 함께 아카야마 유키에 밑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오유라 소동에 휘말려 스승과 아버지를 떠나 보내고,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은 근신형을 받았지만 나리아키라가 취임하면서 근신에서 풀려났고 기록소(記録所)의 오구라(御蔵) 역에 복직했다. 1857년, 키치노스케가 또다시 에도로 떠나면서 오쿠보는 그와 함께 구마모토에 들려 나가오카 겐모츠를 만난다. 나리아키라가 죽은 뒤 나리오키가 다시금 권력을 잡으면서 오쿠보는 나리오키에 접근한다. 나리오키의 마음을 산 오쿠보는 카치메츠케(徒目付)로 임명받고, 이번에는 시마즈 히사미츠에게 접근한다. 1859년 오쿠보는 세츄구미 동지들의 폭주를 억누르며 히사미츠 밑에서 두각을 보인다. 히사미츠를 보좌하는 위치로 성장한 오쿠보는, 나리아키라의 오른팔로 있으면서 각 번의 유력 제후와 공경들과 친분이 있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이고 키치노스케를 귀환시키기 위해 탄원서를 작성한다. 오쿠보는 코마츠 타테와키와 함께 히사미츠 사천왕으로 출사하였고, 이윽고 번의 명령으로 이치조(一蔵)라는 이름을 하사받는다. 테라다야 사건으로 시마즈 히사미츠는 조정의 신임을 얻었고, 오쿠보는 히사미츠 측근의 1인자로서 출세 가도를 달린다.

3.2. 사츠마 번

3.2.1. 사이고 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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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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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사이고 신고
西郷信吾

(니시키도 료[11])
사이고 집안의 삼남이자 키치노스케의 남동생. 일본 해군 최초의 원수. 혈기왕성한 성격으로 아리마 신시치와 함께 교토로 상경하면서 첫등장. 누구보다 키치노스케에게 인정받고 싶어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집을 자주 비웠던 키치노스케와는 대화가 적어 사이가 소원했으나 형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점차 관계를 회복한다. 테라다야 사건에서 유혈사태를 막아보려 했지만 역사의 소용돌이 앞에서 무력했다. 아리마 신시치 등 과격한 지사들과 함께 있었던 탓에 징벌을 피할 수 없었지만 나이가 어린 탓에 근신형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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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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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사이고 키치지로
西郷吉二郞

(유소년: 아라이 타케토 분)
(와타나베 고타 분)
사이고 집안의 차남이자 키치노스케의 남동생. 키치노스케가 참근교대 행렬로 집을 비우면서부터 가장 역할을 시작하여 늘 사이고의 집안을 지탱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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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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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사이고 소노
西郷園

(카시와기 유키[12])
키치지로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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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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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사이고 코헤에
西郷小兵衛

(카미카와 슈사쿠 분)
사이고 집안의 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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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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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사이고 코토
西郷琴

(유소년: 쿠리모토 유키 분)
(사쿠라바 나나미 분[13])
키치노스케의 여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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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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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사이고 키치베에
西郷吉兵衛

(카자마 모리오 분)
키치노스케의 아버지. 키치베에는 통칭으로 본명은 다카모리(隆盛). 사실 본명에 대한 작은 해프닝이 있었는데, 메이지 유신 이후 키치노스케가 이름을 다카나가(隆永)로 신청을 했는데 요시이 토모자네의 실수로 아버지 이름인 다카모리로 등록을 해버렸다. 그러나 키치노스케는 아버지 이름을 계속 사용했다고 전해진다.[14] 사이고 다카모리 2세 사이고 집안은 나리아키라를 지지했는데, 그 나리아키라 파의 중신이자 키치노스케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아카야마 유키에에게 할복 명령이 떨어지고, 아카야마의 부탁에 의해 카이샤쿠를 맡는다. 키치노스케의 할아버지 류에몬이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급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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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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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사이고 마사
西郷満佐

(마츠자카 케이코 분)
키치노스케의 어머니. 집안 내력인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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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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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사이고 류에몬
西郷龍右衛門

(오오무라 콘 분)
키치노스케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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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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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사이고 키미
西郷きみ

(미즈노 쿠미 분)
키치노스케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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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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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쿠마키치
熊吉

(츠카지 무가 분)
사이고 집안의 하인. 서남전쟁에서 키치노스케의 장남 키쿠지로를 구출한다.

3.2.2. 오쿠보 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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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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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오쿠보 마스
大久保満寿

(미무라 분)
오쿠보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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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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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오쿠보 지에몬
大久保次右衛門

(히라타 미츠루 분[15])
오쿠보의 아버지. 오유라 소동에 휘말려 유배형을 받았다가 돌아와 오쿠보에게 가독을 물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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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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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오쿠보 후쿠
大久保福

(후지마 리코 분)
오쿠보의 어머니.

3.2.3. 세츄구미(精忠組)

존황양이 사상의 니세(二才, 사츠마의 젊은 번사들을 뜻하는 통칭)들로 이루어진 사츠마의 정치결사단체. 사이고 다카모리는 이 집단의 우두머리였다. 다른 미디어 매체에서는 이 모임을 통틀어 세츄구미(精忠組)라 불렀다. 하지만 이 명칭은 후대에 만들어진 역사 용어인데, 시마즈 모치히사가 니세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친필 서신의 말미에 "精忠士面々へ"라고 쓰여져 있던 것에서 유래 되었다. 때는 1859년, 시마즈 나리오키의 섭정 아래 사츠마 번은 막부에 공순의 태도를 취하자, 아리마 신시치 등 혈기 넘치는 급진파 지사(志士)들이 이이 나오스케 암살과 막부의 개혁을 목적으로 탈번을 도모했다. 그러자 오쿠보 도시미치가 시마즈 히사미츠에게 이 사실을 누설하여, 당주인 시마즈 모치히사는 위와 같이 친필 서신을 작성해 탈번을 막았다. 이후, 이 젊은 지사들은 번정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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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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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오야마 카쿠노스케
大山格之助

(유소년기: 이누카이 나오키 분)
(키타무라 유키야 분)
옆동네인 고라이쵸(高麗町) 향중[16] 출신. 어렸을 때에는 키치노스케의 동네 패거리와 자주 싸웠으나 시간이 지나 같은 향중에서 수학하면서 친해졌다. 사츠마 번에서는 검의 달인으로 불려왔다. 시마즈 히사미츠의 상경에 동행하여 1862년에 아리마 신시치 등의 과격파 숙청에 중심적인 역할로 참가했는데, 특히 사이고 쥬도, 오야마 이와오 등을 투항시키는 공을 세웠다. 훗날 가고시마 현 첫 권령(현령)[17]. 사이고 다카모리가 낙향하고 설립한 사학교 운동의 적극적인 후원자였고, 서남전쟁(1877년)에서는 사츠마 반란군에게 정부의 돈을 제공했다는 죄로 도쿄로 압송당해 재판을 받고 나가사키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여담으로 이 사람이 현령 재직 시절에 현청에 보관되어 있던 사츠마 번 시대의 공문서를 '구습이 사라지지 않아서'라는 이유로 소각해버리는 병크를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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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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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카이에다 타케지
海江田武次

(유소년기: 이케다 유토 분)
(타카하시 미츠오미 분)
이전 이름은 아리무라 슌사이(有村俊斎). 오야마와 같은 고라이쵸(高麗町) 향중 소속. 소년기에는 머리를 빡빡 민 동자승으로 등장한다. 사츠마 번사로서 사쿠라다 문 밖의 변에 막내 지사에몬과 함께 참가한[18] 그의 동생 아리무라 유스케의 카이샤쿠를 맡았다. 이후 안세이의 대옥으로 체포되어 옥사한 쿠사카베 이소지(日下部伊三治)의 차녀인 마츠와 혼인을 맺었다. 원래 쿠사카베 가문을 잇기로 했던 동생 지사에몬을 위해 데릴사위로 들어가면서 이름을 카이에다 노부요시(海江田信義)로 개명했다. 통칭은 타케지(武次). 카이에다는 쿠사카베의 옛 성씨였다. 카이에다는 이후에도 종종 아리무라 슌사이라는 이름도 함께 썼다. 사쓰에이 전쟁의 발단이 되었던 나마무기 사건에서 칼을 맞고 빈사 상태가 되어있던 영국인을 확인사살했다. 훗날 나라 현 관선 3대 현지사(県知事)를 거쳐, 시마즈 히사미츠를 보필하며 신정부에 불만을 품은 시마즈 히사미츠와 메이지 정부간의 중재 역할도 맡았다. 1906년(메이지 39년)에 사망했는데 향중의 동료들 중에서는 가장 장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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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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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무라타 신파치
村田新八

(유소년기: 카토 켄시로 분)
(호리이 아라타 분)
사이고 다카모리와 같은 마을(下加治屋町)의 향중 소속. 1836년생으로 동네 형님격인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에게 귀여움을 받고 자란 후배. 1862년에 사이고와 함께 번의 명령을 거역하고 양이파의 폭주를 막으려 갔다가 기카이 섬(喜界島)으로 유배 당했다. 사이고의 천거로 궁내대승(宮內大丞)을 역임(1871년)했다. 이와쿠라 사절단에도 참가하는 등 장래가 촉망받는 수재였는데[19], 메이지 6년 정변(1873년)로 인해 다카모리가 낙향하자 오쿠보 도시미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뒤따라 낙향하여 오쿠보는 망연자실했다.[20] 결국 서남전쟁(1877년)에 참전하여 사이고의 자결을 지켜봤고, 패전이 확실시 되자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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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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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아리마 신시치
有馬新七

(유소년기: 이자와 마사키 분[21])
(마스다 슈이치로 분[22])
사이고 다카모리와 같은 마을의 향중이며 키치노스케의 죽마고우. 사츠마의 존황지사들이 교토로 상경하여 과격한 존황양이 운동을 계획하다가 시마즈 히사미츠의 명을 받은 오야마 츠나요시 등에 의해 무력숙청 당한 테라다야 사건(1862)의 주인공.

3.2.4. 시마즈

3.2.4.1. 시마즈 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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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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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시마즈 나리아키라
島津斉彬

(와타나베 켄 분[23])
시마즈 나리오키의 아들. 시마즈 28대 당주. 에도 막부 말기 4현후(四賢侯)[24]로 꼽힌다. 사이고 다카모리를 중용했다. 참근교대 제도로 볼모 생활을 하느라 40살이 되도록 에도에서 자라서 사츠마 벤을 쓰지 않는다. 할아버지를 닮아서 서양문물을 좋아해 등장부터 화혼양재(和魂洋才)의 복식을 입었다.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아편 전쟁을 언급하며 서양 세력을 견제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추었다. 당주가 되어서는 정적이었던 나리오키 파들을 포용하여 사츠마를 단결 시킨 뒤,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부국강병을 추진하는 정책을 펼쳤다. 서양 정세에도 밝아 나가사키로부터 미국의 함대가 일본으로 오고 있다는 첩보를 막부보다 빨리 입수하였고, 당시 그 누구보다 서양 열강의 무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를 우려했다. 사상적으로는 공무합체파로, 정치 일면에 나서기 위해서[25] 아베 마사히로에 접근하고, 히토츠바시 파에 접근하거나 아츠히메를 도쿠가와 쇼군의 정실로 보내는 등 많은 시도를 했었다. 그러나 막강한 조력자인 아베 마사히로가 급사하고 정적 이이 나오스케가 다이로(大老)에 취임하고 도쿠가와 이에모치가 차기 쇼군을 승계받자 이에 항의하기 위해 5천의 군사를 이끌고 교토로 상경할 준비를 한다.[26] 그를 위한 열병식에 참관 도중 원인불명의 병으로 쓰러져 며칠 뒤 사망했다. 현대의 분석으로는 당시 유행하던 콜레라로 사망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임종 직전에 히사미츠의 아들을 당주로 앉히고 히사미츠를 그의 후견인으로 임명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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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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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시마즈 히사미츠
島津久光

(아오키 무네타카 분)
나리아키라의 이복 동생이자 사츠마의 국부(國父).[27] 통칭 사부로(三郎). 사이고 키치노스케와 평생의 앙숙. 코마츠 타테와키의 진언으로 오쿠보 도시미치 등 젊은 하급 무사들을 중용했다. 나리아키라의 사망 이후 히사미츠의 적자가 시마즈 29대 당주로 등극하고, 히사미츠는 당주의 후견인이자 국부로서 사츠마를 통치하면서 아마미 군도에서의 유배를 마치고 귀환한 사이고 키치노스케와 독대한다. 나리아키라의 의지를 잇겠다는 뜻을 가진 히사미츠는 나리아키라의 최측근이었던 사이고에게 자신의 원대한 꿈을 밝혔으나 되려 욕을 들은 히사미츠는 격노한다. 그리고 히사미츠는 사이고에게 시모노세키에서 대기하라는 명을 내렸으나, 사이고는 교토의 정세가 심상치 않아 양이파를 진정시키러 간다[28]는 구실로 히사미츠의 명령을 거역하고 시모노세키를 떠나 교토로 가버리자 히사미츠는 사이고 체포 명령을 내렸다. 사이고는 이내 체포되어 귀환 반 년만에 오키노에라부 섬으로 유폐되어 둘 사이의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그 사이 나마무기 사건, 사쓰에이 전쟁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터졌고 오쿠보 도시미치 등이 사이고의 귀환을 계속해서 건의하여 마지못해 2년만인 1864년에 사이고를 귀환시킨다. 1867년에 막부 개혁을 단념하고 무력 토벌을 결의할 때까지는 꾸준히 이복형인 나리아키라의 의지(意志)를 이어받아 사츠마가 주도하는 정국을 만들기 위해 공무합체(公武合体) 운동을 전개하였다. 아버지를 닮아 보수적인 면이 다소 있어 메이지 유신 이후, 신정부의 사이고와 오쿠보가 추진한 폐번치현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뜻으로 밤새 폭죽을 발사했다. 뿐만 아니라 평생 죽을 때까지 상투를 자르지 않고 검도 계속 패용했다. 서남전쟁 당시에는 중립을 표방하며 사쿠라지마로 대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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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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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시마즈 나리오키
島津斉興

(카가 타케시 분[29])
시마즈 27대 당주.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아버지. 나리아키라가 40세가 될 때까지도 은거를 하지 않고 있다. 서양 문물에 심취해있는 나리아키라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며, 둘째 히사미츠에게 당주 자리를 물려줄 생각이 완고하다. 그러나 나리아키라의 공작에 의해 측근인 즈쇼 히로사토가 음독 자살을 했고, 이에 단단히 화가난 나리오키는 오유라 소동을 일으켜 나리아키라 파의 많은 중신들을 제거하며 사츠마에 피바람을 몰고 왔다. 이후 역사대로 류큐 출병 거부, 밀무역 등으로 인해 막부의 눈 밖에 났고, 결국 막부로부터 차 도구를 하사 받으면서 사실상 은거를 종용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리오키는 전부 가로에게 죄를 떠넘기고 뻔뻔스럽게 은거하지 않고 버티자, 아카야마의 피묻은 옷이 담긴 사이고들의 탄원서를 들고 온 나리아키라가 미제 권총 한 자루를 꺼내며 당주 자리를 건 내기를 제안했으나, 나리오키가 도중 포기하면서 은거를 결정했다. 극중에서는 암군처럼 안좋은 모습만 그려지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사츠마의 경제 개혁을 성공시켜 번의 재정을 풍족케 했던 공도 있었다. 나리아키라가 죽은 뒤에는 다시 권력을 잡는다. 히사미츠가 나리아키라의 의지를 이어 교토로 출병하려는 것과 군비 강화를 철저히 금지시킨다. 친막부 성향의 나리오키는 막부의 추격을 받고 있는 키치노스케와 겟쇼에게 사츠마 번내 휴가 국으로의 추방을 명하였다가, 사이고를 살려달라는 직소를 받아들인 나리오키는 재고하여 키치노스케에게 겟쇼 암살을 명한다. 그리고 사이고와 겟쇼의 입수 이후에는 약속대로 막부의 눈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키치노스케에게 아마미 군도로 유배형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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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유라
由羅

(코야나기 유미코 분)
시마즈 나리오키의 측실(첩). 히사미츠의 친모. 오유라 소동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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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키쿠
喜久

(토다 나호[30] 분)
나리아키라의 첩.

3.2.4.2. 히오키 시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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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아카야마 유키에
赤山靱負

(사와무라 잇키 분[31])
나리아키라의 중신으로 가로에 버금가는 위치에 있다. 사이고 다카모리의 정신적 스승. 시마즈의 분가인 히오키 시마즈 출신으로 개명 전 이름은 시마즈 히사히로(島津久普). 오유라 소동에 휘말려 할복을 명받고 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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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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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가츠라 히사타케
桂久武

(이토다 쥰 분)
아카야마 유키에의 동생으로 개명 전 이름은 시마즈 토시사다(島津歳貞). 아카야마가 세상을 떠나고 카츠라 가문의 양자로 들어갔다. 서남전쟁(1877년)에서는 거병에 참전,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3.2.5. 사츠마의 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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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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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코마츠 타테와키
小松帯刀

(마치다 케이타 분)
28살에 사츠마의 가로(家老)[32]로 천거되었다. 하급 무사들의 중용을 히사미츠에게 진언하여 사이고, 오쿠보 외에도 세츄구미의 여럿 젊은 수혈들이 출사하였다. 사카모토 료마와도 친분이 있으며 삿쵸 동맹, 대정봉환 등 굵직한 사건 속에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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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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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야마다 타메히사
山田為久

(도쿠이 유 분)
나리아키라의 측근으로 활동했던 실재 인물인 야마다 타메마사(山田為正)를 모티브로 만든 가공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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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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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즈쇼 히로사토
調所広郷

(류 라이타 분[33])
나리오키의 측근이자 사츠마의 가로. 오유라 소동 당시, 나리오키의 은거를 막기 위해 음독자살한다.

3.2.6. 사츠마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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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이와야마 이토
岩山糸

(유소년기: 와타나베 코노미 분)
(쿠로키 하루[34])
본작의 히로인. 키치노스케의 세번째 부인.[35] 서남전쟁으로부터 21년 뒤, 1898년 우에노의 사이고 다카모리 동상 제막식에서 '이건 우리 남편이 아니야'라는 한마디[36] 와 함께 극의 시작을 알린다. 키치노스케를 사모했지만 집안의 결정을 따라 결국 혼례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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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스가
須賀

(하시모토 아이 분)
사이고 다카모리의 첫 번째 부인. 사이고가 나리아키라를 따라 에도로 떠나면서 이혼한다.

3.2.7. 아마미 군도

사이고 다카모리는 1859년부터 1864년까지 중간에 반년을 제외하고 4년반동안 섬에서 유배 생활을 보냈다. 그의 사상인 경천애인(敬天愛人)은 5년의 섬 생활에서 형성되었다. 그가 섬에 있는 동안 혼슈[37]에서는 사쿠라다 문 밖의 변, 사쓰에이 전쟁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다.

3.2.7.1. 오오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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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38]
아이카나
愛加那

(니카이도 후미 분[39])
키치노스케가 오오시마에서 결혼한 두 번째 부인. 이름의 카나(加那)는 아마미어로 '사랑하는 사람', '연인'을 의미하는데 섬에서는 기혼 여성에게 붙이는 이름이었다. 실제로 사이고가 그녀의 이름에 '愛'를 붙여주었다. 둘 사이에서 아들 키쿠지로(西鄕菊次郎, 1861-1928)[40]와 딸 키쿠소(菊草)[41]를 낳는다. 1861년 말, 귀환 명령이 떨어진 사이고는 아이카나를 사츠마로 데려가려 했으나 함께가지 못했고 훗날 아이카나는 키쿠지로를 사츠마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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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류 사민
龍佐民

(에모토 아키라[42])
아이카나의 백부. 류큐에서 건너온 유서깊은 가로이자 호농으로 가로 사탕수수 재배부터 흑설탕 생산까지 다루고 있다. 그의 하인들은 그에게 있어 가족같은 존재로 여겨져 일절 소작료를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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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이시 치요카네
石千代金

(키우치 미도리 분)
류 사민의 아내. 사츠마 무사임에도 불구하고 섬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하는 키치노스케에 매료되어 그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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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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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유타
ユタ

(아키야마 나츠코 분)
섬의 점술가로, 투마(아이카나)의 남편에 대한 예언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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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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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토미켄
富堅

(타카하시 츠토무 분)
투마(아이카나)의 오빠. 사츠마에 대한 강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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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력 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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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사토 치요카네
里千代金

(사토 안나 분[43])
토미켄의 아내. 메인 테마에서 노래를 담당했다.[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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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다나카 유노스케
田中雄之介

(콘도 요시마사[45])
아마미 오오시마의 대관(代官)[46]으로 부임한 사츠마 번사. 사츠마 번에 대한 충의라는 명목아래 흑설탕을 채취하는 섬 사람들을 착취하고 있어 키쿠치(사이고 키치노스케)와 대립한다. 오쿠보의 편지에 의해 사이고 키치노스케는 살아있고, 키쿠치 겐고가 바로 사이고였다는 사실을 듣고 더이상 그를 건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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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코바 덴나이
木場伝内

(타니다 아유미 분)
아마미 오오시마에 부임한 사츠마 번사. 오쿠보에게 키쿠치(사이고 키치노스케)가 섬에 있는 동안 사츠마와의 연결고리를 이어주는 부탁을 받으면서, 키쿠치가 사이고 키치노스케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키치노스케의 인품에 반해 그의 섬 생활을 지원한다.

3.2.7.2. 오키노에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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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카와구치 셋포
川口雪篷

(이시바시 렌지 분)
사츠마의 서예가. 키치노스케가 오키노에라부에서 두 번째 유배 생활을 보내면서 만나게 되는 인물이다. 마찬가지로 10년도 더 전에 시마즈 나리아키라를 섬겼지만 오유라 소동에 휘말려 섬에 유배된 몸이다. 섬에서 키치노스케와 의기투합하였고, 훗날 키치노스케의 집에 식객으로 눌러 앉는다. 사이고 다카모리의 무덤에 있는 글귀는 셋포가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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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츠치모치 마사테루
土持政照

(사이토 요시키 분)
오키노에라부의 섬 관리인. 사이고의 인품에 반하여 그를 돕고자 고군분투하게 되고 훗날 사이고와 의형제를 맺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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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츠마
츠치모치 츠루
土持鶴

(오오시마 요코 분)
마사테루의 어머니. 생사를 방황하는 사이고를 간호하고 아들과 함께 사이고를 지원한다.

3.3. 조슈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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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
카츠라 코고로
桂 小五郎

(타마야마 테츠지 분)
조슈 양이파 지사들의 정치적 리더. 훗날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와 함께 유신삼걸(維新三傑)로 불리는 인물. 번교 명륜관에서 요시다 쇼인에게 수학하였고 검술에도 따라올 자가 없었다. 무사 수행으로 에도에서 체류하면서 페리 함대의 내항을 목격한다. 이후 진정한 양이를 실행하기 위해 서양의 기술과 학문에 광적으로 몰두한다. 8.18 정변으로 조슈가 실각하면서 신센구미에게 주요 타깃이 되어 쫓기는 몸이 된다. 키치노스케와 함께 삿쵸 동맹의 중심 인물로 활약하였고, 메이지 신정부의 중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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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
이토 슌스케
伊藤俊輔

(하마노 켄타 분)
조슈 지사이자 훗날 초대 일본 총리. 쇼카손주쿠의 문하생으로, 요시다 쇼인의 추천으로 카츠라 코고로와 함께 상경에 동행하면서 카츠라를 수행한다. 쿠사카 겐즈이, 다카스기 신사쿠 등과 함께 양이론자였다가, 이노우에 카오루와 함께 영국 유학을 수행하면서 압도적인 국력을 체험하고 도막 개국론자로 돌아섰다. 유신 후에는 이와쿠라 사절단에 합류하면서 정치에서 차츰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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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
오무라 마스지로
大村益次郎

(하야시야 쇼조 분)
조슈 지사이자 일본 육군의 아버지. 무진전쟁에서 조슈군을 지휘하며 승리를 이끈다. 우에노 전투를 진두지휘하여 창의대를 토벌한다.

3.4. 토사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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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
사카모토 료마
坂本龍馬

(오구리 슌 분[47])
토사 번 출신의 낭인이자 사업가, 정치가, 무역회사 및 정치단체 해원대(海援隊)의 대장. 앙숙 관계의 사츠마와 조슈를 결합하여 삿쵸동맹을 이끄는 중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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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
나카오카 신타로
中岡慎太郎

(야마구치 쇼고 분)
무력 정치결사단체 육원대(陸援隊)의 대장. 사카모토 료마와 운명을 함께하는 라이벌이자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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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
존 만지로
ジョン万次郎

(게키단 히토리 분)
가고시마로 표류된 수수께끼의 남자. 사실 그의 정체는 토사 번의 평민 출신 '존 만지로'이며 본명은 만지로(万次郎)[48]. 1841년 14살 때 어업을 하러 나갔다가 표류, 미국의 포경선한테 구조되어 10년간 미국 생활을 하고 류큐를 통해 일본으로 돌아왔다. 일본인 최초로 철도, 증기선을 타보고, 최초로 근대식 포경업에 종사한 역사적인 인물.[49]

3.5. 사가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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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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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
에토 신페이
江藤新平

(사코다 타카야 분[50])
사가 지사. 유신십걸, 사가의 칠현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정한론자로서 사이고 다카모리와 함께 한국에서 비판적인 시각이 가장 많은 인물. 유신 후에는 사이고 다카모리와 뜻을 함께하다가, 메이지 6년의 정변으로 사이고와 함께 하야한다. 후에 사가로 낙향하여 사족들과 함께 사가의 난을 일으킨다. 결국 신정부군에 진압당하고, 사이고 다카모리에게 사족봉기를 촉구한다.

3.6. 미토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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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
히토츠바시 요시노부
一橋慶喜

(마츠다 쇼타 분[51])
도쿠가와 이에모치의 후견인이자 도쿠가와 막부 제 15대 정이대장군. 원래 요시노부는 고산쿄(御三卿) 중 하나인 히토츠바시 집안 출신으로, 쇼군을 배출하는 반열의 고산케(御三家) 중 하나인 미토 도쿠가와(水戶德川)의 도쿠가와 나리아키의 양자이다. 처음에는 키치노스케가 옹립해야 할 쇼군 후계자 중 한 명이었으나 나중에는 막부와 함께 반드시 넘어뜨려야 할 숙적이 된다. 극중에서 히사마(ヒー様)[52]이라는 또다른 이름으로 불리운다. 히토츠바시 파벌에서 차기 쇼군 후계자로 추존되고 있는데, 실제로 요시노부는 이에 대해 "천하를 얻고자 하는 것처럼 귀찮은 일은 없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난색을 표한다. 이이 나오스케가 대로(大老)에 집권한 이후에 덴노의 윤허없이 날치기로 체결한 미일수호통상조약에 대하여 항의를 했다가 몇 년동안 칩거형을 받는다. 그러나 1862년, 분큐의 개혁에 의해 근신에서 풀려났고 쇼군 후견직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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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토
도쿠가와 나리아키
徳川斉昭

(이부 마사토 분[53])
미토 번의 다이묘이자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아버지. 고산케(御三家)이지만 쿠로후네 사건 때에는 양이를 외치며 이이 나오스케의 난키(南記)파와 대립한다. 결국 패배하여 은거당했고, 사쿠라다 문 밖의 변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3.7. 후쿠이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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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이
마츠다이라 슌가쿠
松平春嶽

(츠다 칸지 분)
후쿠이 번의 다이묘. 에도 막부 말기 4현후(四賢侯)로 꼽힌다. 안세이의 대옥에 의해 도쿠가와 요시노부, 도쿠가와 나리아키와 함께 근신 처벌을 받는다. 그러나 사츠마의 시마즈 히사미츠가 교토에 직접 상경해서 근신중이던 요시노부와 마츠다이라 슌가쿠의 처벌을 풀어줄 것을 요구. 1862년에 요시노부와 함께 근신에서 풀려나면서 분큐의 개혁에 의해 막부의 정치총재직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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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이
하시모토 사나이
橋本左内

(카자마 슌스케 분)
후쿠이 번의 의사. 뒤에서는 사이고와 똑같이 마츠다이라 슌가쿠를 위해 밀정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14대 쇼군 옹립 문제에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밀어 붙이다 안세이의 대옥에 엮이며 히코네 번에 의해 체포되고 참수당한다.

3.8. 아이즈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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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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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마츠다이라 카타모리
松平容保

(카시와바라 슈지 분)
제 9대 아이즈 번주. 아이즈의 가훈에 따라 끝까지 도쿠가와 가문에 충성을 관철한다. 정치적 혼란 가운데 교토 수호직에 요청을 받는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 쓰고 취임했다. 처음에는 양이파와의 융화를 도모하는 온건 정책을 펼치지만, 곧 태도를 돌변해 강경주의로 돌아선다. 왕정복고와 무진전쟁을 거치면서 조적(朝敵)의 오명을 받으면서도 철저한 항전을 주장한다. 이는 결국 아이즈의 비극을 부르게 된다.

3.9. 에도

3.9.1. 도쿠가와 막부

3.9.1.1. 도쿠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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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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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막부
도쿠가와 이에사다
徳川家定

(마타요시 나오키 분)
도쿠가와 막부 제 13대 정이대장군이자 아츠히메의 남편. 역사적으로 뇌성마비의 증세를 보인다. 건강 문제로 오래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고 1858년 사망했다.
3.9.1.2. 오오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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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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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막부
텐쇼인
天璋院

(키타가와 케이코 분)
아명은 '一'(첫 번째 아이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카츠 또는 이치). 본명은 시마즈 아츠코(島津篤子)이며 아츠히메(篤姫)로 유명하다. 시마즈 가문의 분가인 이마이즈미 시마즈 가문의 딸로,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양녀로 들어가면서 스미코(敬子)에서 아츠코(篤子)[54]로 개명한다. 이후 코노에 타다히로의 양녀 신분으로 에도 막부의 제1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의 세번째 정실이 되었을 때는 다시 스미코로 개명한다. 이에사다 사후에는 오오쿠의 역대 미다이도코로와 측실들이 그랬듯 불가에 귀의하고 텐쇼인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키치노스케와의 인연은 에도 무혈 개성으로 이어진다. 그녀의 생애를 다룬 드라마로는 오오쿠NHK 대하드라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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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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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막부
혼쥬인
本寿院

(이즈미 핀코 분)
도쿠가와 이에사다의 생모. 이에사다 이후의 후계자 문제로 아츠히메와 대립했다.
3.9.1.3. 막부의 수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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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막부
이이 나오스케
井伊直弼

(사노 시로 분[55])
히코네 번의 다이묘 겸 에도 막부의 다이로(大老)[56]. 도쿠가와 고산케에 못지 않는 위상을 자랑하며 막부의 요직을 꿰찼던 히코네 이이 가문[57] 출신 인물이며, 별명은 조상인 이이 나오마사와 같은 이이의 붉은 귀신(井伊の赤鬼). 히토츠바시 파와 대립 관계에 있는 난키(南紀) 파의 좌장이며 쿠로후네 사건 당시 전면적인 개국을 주장한다. 도쿠가와 이에사다가 병약해 후계자 논의가 들끓자 도쿠가와 이에모치를 내세웠고,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옹립하려는 도쿠가와 나리아키, 시마즈 나리아키라와 대립각을 세운다. 극중에서는 나리아키라를 암살하려 음식에 비소를 타는 모략을 벌인다. 정쟁에서 승리한 뒤, 이이는 덴노의 윤허없이 미일수호통상조약을 강행하였고 상황이 이리되자 히토츠바시파는 덴노의 권위를 빌어 이이 나오스케를 밀어내려했다. 고메이 덴노에게 상황을 알리자 고메이 덴노는 격노하여 막부에 의한 정치쇄신과 다이묘들의 결속을 명하는 무오의 비밀칙서를 미토번에 내리고 세력이 큰 다이묘들에게 사본을 보내게 했다.

비밀 칙서였음에도 불과하고 이 사실은 이이 나오스케도 알게 되어 큰 문제가 되었다. 덴노가 정식절차를 거치지 않고 막부를 무시하고 다이묘에게 직접 칙서를 내리는 경우는 막부 체제를 흔드는 전대미문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이이 나오스케는 대대적인 조사와 심문을 시작했다. 고메이 덴노의 칙서의 배후에 미토 번이 있다는 측근의 진언에 따라 배후들에 대한 철저한 탄압을 결심했다. 이에 따라 안세이의 대옥이 일어나 히토츠바시 요시노부, 마츠다이라 슌가쿠, 다테 무네나리, 야마우치 요도 등이 근신이나 은거 처분을 받고 하시모토 사나이, 요시다 쇼인 같은 존왕양이 지사들이 투옥되거나 참수당했다. 사이고 키치노스케 또한 존왕양이론자로서 수배 대상이 되어 몇 년동안 성과 이름을 바꾼 채 머나먼 남쪽 섬에서 유배 생활을 보냈다. 이후 눈 내리는 사쿠라다 문 밖에서 미토 번의 가신들에게 암살당한다. 이이를 암살한 미토 번의 가신 중에는 아리무라 지사에몬이라는 사츠마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이 사람은 일개 하급무사가 아니었고 사이고 다카모리의 비밀 정치결사인 세츄구미의 일원이자 아리무라 슌사이의 친동생으로 밝혀져 한 때 이 뒤에서 아츠히메가 암살을 지시했다는 음모론이 나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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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막부
아베 마사히로
阿部正弘

(후지키 나오히토 분)
도쿠가와 막부 쇼군의 직속 신하이자 보좌역인 로쥬(老中). 시마즈 나리아키라와는 친한 사이로, 나리아키라의 아버지 나리오키를 은거하도록 한 오유라 소동에서 나리아키라를 도와줬다. 1857년, 쇼군 후계자 문제로 막부가 한창 시끄러울 때에 급사하여 히토츠바시 파 몰락의 불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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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막부
카츠 카이슈
勝 海舟

(엔도 켄이치 분)
광대한 지식과 행동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 사카모토 료마의 스승. 막부의 각료이면서 키치노스케에게 막부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와 새로운 정치 체제를 주장한다. 키치노스케와 인연은 에도 무혈 개성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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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쿠가와 막부
야마오카 텟슈
山岡鉄舟

(후지모토 타카히로 분)
막신이자 막부 말기의 검호이며 카츠 카이슈와 함께 삼슈(舟)로 유명하다. 카츠와 함께 에도 무혈 개성을 결정하였으며 사이고의 부탁으로 훗날 메이지 덴노의 시종으로 일한다.

3.9.2. 시나가와 이소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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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후키
ふき

(유소년기:카키하라 린카 분)
(타카나시 린 분)
사츠마의 가난한 농부 집안의 딸. 2화에서 빚쟁이들에게 끌려가는 것을 사이고가 구해주려 했으나 결국 팔려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했다. 그러나 후키는 결과를 떠나서 자신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사이고에게 호감을 가진다. 몇년 후, 에도에서 사이고와 시끌벅적한 상황 속에서 재회한다. 이소다야에서는 요시(よし)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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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타마
タマ

(다나카 미치코 분)
후키의 동료.

3.10. 교토

3.10.1. 조정

3.10.1.1. 이와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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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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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이와쿠라 토모미
岩倉具視

(쇼후쿠테 츠루베 분)
일본의 공가(公家) 귀족, 정치인. 이와쿠라 사절단으로 유명하다. 한 때 공무합체파의 선두주자였으나 실각하고 이와쿠라 마을에 은거하게 된다. 이후 사츠마와 손을 잡고 함께 도막파로 전향하여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신정부를 세운다.
3.10.1.2. 코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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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코노에 타다히로
近衛忠熙

(쿠니히로 토미유키 분)
공가(公家) 가문인 후지와라 가문을 승계한 코노에 가문의 당주. 아츠히메의 형식적 양아버지. 키치노스케가 나리아키라의 밀정 업무를 맡던 시절 알게 되어 교토에 있는 동안 여러가지 힘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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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이쿠시마
幾島

(미나미노 요코 분)
나리아키라와 친분이 깊은 공가인 고노에 타다히로로부터 사츠마로 파견된 아츠히메의 노녀(老女). 덴쇼인이 도쿠가와 가문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결의를 들으며 사츠마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자신이 방해 될 것을 우려하여 은퇴를 선언하고 오오쿠를 떠났다. 이후에는 코노에 가문으로 돌아갔다.

3.10.2. 기요미즈데라 죠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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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겟쇼
月照

(오노에 키쿠노스케 분[58])
존황양이 사상의 기요미즈데라 죠쥬인의 주지스님. 고노에 타다히로와 함께 교토에서 히토츠바시 요시노부를 쇼군으로 옹립하는데 힘을 쏟았지만 실패하며 사이고와 함께 움직인다. 에도 막부 말기 존황양이 파로 암암리에 활동하다가 탄압을 피해 사츠마로 피신했다. 이후 그는 막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대군(大君)을 위해서라면 세토 해에 기꺼이 가라 앉으리라"는 뜻의 사세구를 남기며 함께 행동하던 사이고 다카모리와 함께 차가운 겨울 바다에 투신했다. 사이고는 가까스로 구출되어 살아남았으나 겟쇼는 고령으로 인해 겨울 바다를 견딜 수 없는 체력인지라 그대로 사망했다.

3.10.3. 카기야[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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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토라

(콘도 하루나 분)
사츠마 번의 숙소인 카기야의 나카이(仲居)[60] 키치노스케를 매우 좋아한다.

3.10.4. 시게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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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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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유우
ゆう

(우치다 유키 분)
기온의 게이샤. 다양한 무사들이 왕래하는 가게에서 오쿠보를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진다. 메이지 유신을 이끈 오쿠보를 헌신적으로 지원하고, 무진전쟁의 큰 전환점이 된 니시키노미하타를 꿰메기에 이른다.

3.10.5. 교토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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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명 /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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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오료
お龍

(미즈카와 아사미 분) [61]
료마의 부인.


[1] 어깨의 후유증은 몇년 후에는 완치됐다.[2] 이 상처는 실제로 서남전쟁에서 목이 없고 고환이 부풀어 있는 시신을 보고 사이고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고환이 부풀어있는 것은 당시의 풍토병이라 그 것만으로 사이고라 짐작하기에는 섣부른 감이 있었는데 오른쪽 어깨의 흉터를 보고 사이고임을 확신했다고 한다.[3] 농정 전반을 담당하고 연공 징수 등을 기록하는 업무의 보조[4] 상시 다이묘의 저택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역할[5] 말이 추방이지 추방되어 처형당하는 것을 의미했다.[6] 드라마에서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키치노스케가 사츠마로 돌아오자마자 번의 명령으로 사이고 산스케(三助)로 개명당했다.[7] 이이 나오스케에 의해 숙청 피바람이 불고 있어서 사츠마는 사이고를 어디론가 숨겨야만 했고 대신 이름을 바꾸고 유배를 보냈고 그동안 무덤까지 세워 죽은 사람 취급했다.[8] 오오시마에 3년을 살았다는 말장난. 사이고 역을 맡은 스즈키 료헤이가 고증 선생님한테 전화를 했는데 스스로 지은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9] 아츠히메에서는 같은 사츠마 번 출신의 코마츠 타테와키 역을 맡았다. 10년만에 사츠마 배경의 대하 드라마에 출연.[10] 내무경은 오늘날 일본 정부 총무대신의 전신에 해당하지만, '내무경'이라는 명칭을 쓸 때에는 오늘날 일본 총리로서의 기능도 맡고 있었다. 즉,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 일본 최초의 총리로 봐도 무방하다. 참고로 내무경은 1885년 12월에 폐지되었고, 초대 '총리대신'은 이토 히로부미다.[11] 여담으로 어머니가 아마미 오오시마 출신이며, 스즈키 료헤이와는 아라가키 유이 주연의 전개걸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12] AKB48 Team B와 NGT48 Team NⅢ의 멤버로 가고시마 출신이자 가고시마 현 홍보대사[13] 가고시마 출신[14] 본명보다는 통칭으로 부르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다분하다.[15] 나는 듯이(1990)에서 조슈의 오오무라 마스지로 역을 맡았다.[16] 향중(鄕中)이란 에도 시대 중기부터 사츠마 고유의 교육 시스템으로 자리잡은 제도로서, 보이스카우트 비슷하게 각 동네 단위로 저년층 소년층 청년층으로 나이 또래끼리 남자 아이들이 모여서 어울리고 함께 무사(武士)가 지녀야 할 소양인 학문과 검술을 익히는 조직이었다. 사이고 다카모리가 메이지 6년 정변(1873년)으로 낙향해서 설립한 사학교(私學校)는 이런 전통적인 교육 시스템을 근대식으로 발전시킨 학교 제도였다. 참고로 일본이 서양을 모방해서 소학교(훗날 국민학교로 개명했다가 다시 소학교로 되돌린) 교육 제도를 도입한 것은 같은해 였다.[17] 현재의 현지사(県知事) 이전의 명칭이며, 원래 폐번치현을 단행하면서 첫 현령부터는 출신이 다른 인물을 등용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가고시마 만은 그 원칙에서 벗어난 유일한 사례.[18] 20화에서 지사에몬이 히코네 번에게 당했다는 나레이션이 있었는데 현지에서는 사츠마에서 할복했다고 알고 있어 말이 많았다. 그러나 일본 위키피디아 사쿠라다 문 밖의 변 문서에는 히코네 번사 오가와라 히데노죠(小河原秀之丞)에게 뒷통수를 베여 중상을 입고 할복, 구출되어 에도 막부의 와카도시요리 엔도 타네노리(遠藤胤統)의 저택으로 옮겨졌으나 곧 절명했다.[19] 일본 전국에서 사족들의 봉기(반란)가 일어난 후, 사이고 다카모리를 찾아와서 무력 궐기를 촉구하는 각 지방의 사무라이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했다. 무력 반란을 자제하고, 대의명분을 내세우고 메이지 정부와는 타협점을 찾자는 태도를 취했다.[20] 맹우 사이고의 낙향에도 불구하고 오쿠보는 무라타만 있으면 된다고 할 정도로 아꼈다.[21] JIN-진-에서 어머니를 여의고 팥도너츠를 팔던 아이 역할을 맡았다.[22] 군사 간베에에서 오오토모 요시무네 역으로 출연했다. 수하 가신인 요시히로 무네유키 역의 마토바 코지와 함께 10년에 걸쳐 아리마 신시치 배역을 소화했다.[23] 2001년 호조 도키무네 이후로 17년만에 대하드라마 출연[24] 번정 개혁에 성공해 막부 말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네 명의 다이묘들을 일컫는다. 사츠마의 시마즈 나리아키라, 토사의 야마우치 요도, 우와지마의 다테 무네나리, 에치젠의 마츠다이라 슌가쿠[25] 막부와 조정의 상호협력 하에 웅번의 다이묘들이 모여 정치를 꾸려나가는 제도. 쿠로후네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제번의 다이묘들에게 '기탄없는 의견을 받겠다'며 공포한 아베 마사히로에 의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막말의 사츠마가 항상 막부 개혁을 외치던 것이 바로 이 것이며, 이 것을 통하여 정치 일면에 나서려는 야망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류큐 지배, 밀무역, 군비 확장 등으로 근근히 힘을 길러 마침내 제번 중에서 제1의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 사츠마였지만 도자마로서 일체 정치에 간섭할 자격이 안되었기 때문이다.[26] 아베 마사히로가 죽자 공경들과 연줄이 있던 사츠마는 교토로 눈을 돌려 조정의 힘을 빌어 막부를 개혁하고자 한다. 이 때부터 쿠로후네 사건을 계기로 막부의 위상이 추락하는 현상이 맞물려 사츠마뿐 아니라 존황양이 성향의 조슈 번 및 수많은 지사들이 교토로 몰려들어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고, 그리하여 막부에서는 각지의 낭인들을 끌어 모아 신센구미를 설치하였다. 나중에는 에도에 있는 쇼군이 교토로 상경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아예 교토 니죠성에서 업무를 수행했다. 훗날 사츠마는 제후회의에서 막부 개혁이 수포로 돌아가자, 아예 막부를 무너뜨리고 조정을 중심으로 유력 제번들이 모여 정치를 꾸려 나가는 새로운 일본을 만들기로 결심한다.[27] 다이묘로 즉위하지 않고, 현 다이묘의 아버지가 되는 사람을 국부라고 불렀다.[28] 한 달도 안지나서 과격한 존황양이 사츠마 무사들을 무력으로 숙청한 데라다야 사건(1862)이 터졌다.[29] 90년 대하드라마 '나는 듯이'에서 오쿠보 도시미치[30] 영화 덕혜옹주에 이방자 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31] 가고시마 출신. 에이타와 마찬가지로 10년만에 사츠마 배경의 대하 드라마에 출연[32] 에도 시대의 가로란 가신의 최고 직위를 뜻했다.[33] 나는 듯이(1990)에서 가와구치 셋포 역을 맡았다. 한국에서는 양평이형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다.[34] 스즈키 료헤이와는 천황의 요리사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스즈키 료헤이는 주인공의 형으로, 쿠로키 하루는 주인공의 아내로 각각 분했다.[35] 1843년생으로 드라마가 시작하는 1840년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상태, 사이고 다카모리가 39살인 1865년에 결혼했다. 당시 이토는 23살로 다카모리는 3번째 결혼이고 이토는 재혼이었다. 다카모리는 1852년 28살 때 스가라는 여인(1832년생)과 첫 번째 결혼을 하고 이혼했는데, 첫 회에 등장하는 어린 시절의 이토는 드라마상의 허구이다.[36] 실제 인물도 당시의 우에노 동상을 처음 보고는 비슷한 말(やどんしは、こげな人じゃなかったこてえ)을 했다고 한다.[37] 일본 본토[38] 류큐 문화권이지만 사츠마의 지배를 받고있다.[39] 오키나와 출신의 배우[40] 다카모리와 함께 서남전쟁에 참전했으나 오른 발에 총탄을 맞아 무릎을 절단하여 전열에서 이탈된 후 쿠마키치가 보살핀다. 쿠마키치는 키쿠지로를 등에 업고 달려가 사이고 쥬도에게 투항했고, 쥬도는 조카의 투항을 기쁘게 받아주었다. 전쟁 이후에는 외무성, 궁내성 등을 거쳐 대만 식민지의 신베이시 지청장, 이란현 장관을 역임했고, 귀국하여 6년 반동안 교토 시장의 임기를 수행하였다.[41] 훗날 오야마 이와오의 동생의 아내가 된다.[42] 공명의 갈림길에서 도요토미 하데요시를 열연한 것으로 유명하다.[43] 아마미 오시마 출신의 가수[44] 중간에 아~아아~ 부분[45] 군사 간베에에서 시바타 카츠이에를, 사나다마루에서 히라노 나가야스를 연기했다.[46] 주군(主君)을 대리하여 행정을 보던 사람[47] 스즈키 료헤이와는 변태가면에 함께 출연하면서 친분이 있으며 마츠다 쇼타와는 꽃보다 남자에 함께 주연으로 참여했다. 그에게는 야에의 벚꽃요시다 쇼인 이후 5년 만의 대하 드라마이며, 7번째 대하 드라마이다.[48] 평민이기 때문에 성씨가 없다. '나카하마'라는 성도 훗날 막신이 되면서 부여받은 성씨다.[49] 이후 미국 경험을 토대로 존 만지로가 막신으로 대출세를 거듭하자, 요시다 쇼인, 이토 히로부미 등이 서양 열강으로 밀항을 시도했다.[50] 가고시마 출신으로서 세고돈에서는 사투리 지도를 겸하고 있으며, 사나다마루에서 산쥬로 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51] 아츠히메에서는 도쿠가와 이에모치를 맡았다.[52] 히토츠바시 사마의 줄임말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요시노부는 신몬 타츠고로라는 소방대 오야붕과 친분 관계가 있었는데 이를 이용한 극중 설정으로 보인다.[53] 풍림화산에서 셋사이,영화 고에몬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연기했다.[54] 토쿠코라고도 발음할 수 있다.[55] 나는 듯이에서 아리무라 슌사이(가이에다 노부요시) 역을 맡았다.[56] 로쥬(老中)의 우두머리.[57] 도쿄 치요다 구에 키요이 언덕(紀尾井坂)이라는 지명이 있다. 에도 시대에는 키요미즈 언덕(清水坂)이라 불렸으나, 키이 도쿠가와(紀伊德川), 오와리 도쿠가와(尾張徳川)와 히코네 이이(井伊)의 저택이 붙어 있어서 세 가문들의 앞 글자를 따 지명을 바꾸었다.[58] 아오이 도쿠가와 삼대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연기했다.[59] 사츠마 번의 숙소이자 겟쇼와의 밀회 장소[60] 여관 등에서 접대를 맡는 여성 점원을 일컫는다.[61] 2011년 대하드라마 고우 ~공주들의 전국~의 세 명의 주인공 중에서 죠코인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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