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20:52:03

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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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례3. 창작물에서

1. 개요

을 이용한 공격. 특히 물을 대량으로 모아서 적을 공격하는 전술을 말한다. 서양 쪽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지만 동양 전투 기록에서는 종종 언급된다.

대량의 물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넓은 공간과 깊이를 요구하므로 성공시키면 그 모습이 굉장히 장관이며, 특히 한번에 터뜨려 대량의 물을 흘려보내는 경우 콸콸콸 쏟아져내려오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깊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쟁 이야기에 자주 회자된다.

그러나 적이 한곳에서 계속 농성하고 있는 상태라면 모를까, 언제 올지 모를 적을 상대하기 위해 많은 물을 모아둔다는 것도 힘들고, 그만한 물을 지탱할 둑을 만드는 것도 몹시 힘든 데다가, 전화기나 무전기가 없는 이상 실시간 소통이 안 되어서 타이밍을 맞추기가 굉장히 힘든 관계로 흔히 생각하는 대규모 수공은 굉장히 드물었다. 대량의 물을 한번에 풀더라도 적을 수장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일시적으로 수량을 늘려서 적이 강을 건널 때 혼란을 일으키고 허리를 끊어 각개격파하기 위해 쓰였다.

손자병법 등 수많은 병법서에도 강을 건너는 순간은 기습 받기 좋은 위험한 순간이라고 서술하며, 역사적으로도 도강 중인 적을 기습해 재미를 본 사례가 많다. 괜히 도강중인 적을 방치했다가 털린 전투를 송양지인이라 칭하며 두고두고 조롱받는게 아니다. 강을 건너는 순간은 이동하는 군의 안전을 자연이 위협하는 상황인데 거기에 공격까지 받으면 2중으로 공격받아 큰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전쟁을 지휘하는 지휘관은 언제나 강을 건널 때 큰 결단을 내린 뒤 도하 작전을 벌이고, 강을 건너다 공격을 받아 휘하 군사들을 사지로 몰아넣지 않도록 안전하게 군인이 강이나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고심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위해 만들었던 퍼니전차 시리즈다.

이상적으로는 엄청난 양의 물이 적 부대를 휩쓸어서 죄다 물귀신으로 만드는 것이지만, 적이 성 안에 있을 때는 무릎 아래까지 찰랑거리게 물을 채우기만 해도 적들을 통째로 수재민으로 만들어 지옥을 맛보여줄 수 있다.
  • 1. 성 내부의 식량이 물에 잠기게 되면 금세 상해서 농성 기간을 줄여주고
  • 2. 겨울이라면 곧 이 물이 얼어서 백성과 군인 모두를 동사하기 쉽게 만들어 사기를 떨어뜨리게 되고,
  • 3. 물이 빠지지 않는 시점에서 하수도가 멀쩡할 리 없기 때문에 똥물이 역류하는 등 위생상태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이 푹 썩은 고인물이 그대로 온갖 역병의 근원으로 변신한다. 물이 썩는 거 기다려 줄 필요 없이 시체를 던지거나 독을 푸는 등의 생화학 무기로 식수를 오염시키고 위생 상태를 개판으로 만들어 주는 것도 유효하다.

대신 성을 점거하게 되도 얻을 것이 없어진다. 애초에 홍수가 난 곳은 자원을 뽑을 수 있는 땅이 아니라 재건과 복구의 대상이니까. 그래서 수공은 생각보다 효율적으로 상대를 무너뜨릴 수 있지만, 성을 공략하는 이유인 전리품이나 성내부의 백성들의 민심은 사실상 포기하게 된다. 게다가 들이찬 물이나 내부의 오염요소도 승리해서 점거하게된 공성측이 처리해야되니, 점령 후에도 공성측 병력의 피로를 일으킨다. 여러모로 청야전술과 굉장히 비슷하다.

2. 사례

진시황진나라위나라 수도 대량을 함락시킬 때 식량이 충분하고 방비가 잘된 대량을 함락하기 위해 주변의 강과 운하를 막아 수공을 가했고, 대비가 되어 있지 않던 대량은 물바다가 되어 곧 함락되었다. 이는 진나라의 통일 과정을 참조하면 좋다.

그리고 1800년 뒤 1600년대 초 중국의 명나라 말기 이자성의 반란 때 명나라 관군이 카이펑의 이자성군을 수공으로 몰살시킨 적이 있다. 이 수공으로 카이펑은 황폐화되었다. 같은 장소에서 두 번이나 수공이 성공한 것.

그리고 1930년대 카이펑에서 수공이 한 번 더 벌어진 적이 있었으니, 바로 중일전쟁이다. 장제스는 정저우로 몰려든 일본군을 상대로 황허 제방을 폭파시켜 수공을 가했고, 효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 대규모 수공의 문제점이 오직 일본군의 진격을 막는데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에 주민들한테 대피 명령을 전혀 내리지 않고 은밀히 진행했다는 점이다.그 결과 대홍수가 일어나 주민 89만 명이 사망하고 무려 125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희생을 치러야 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전세계가 장제스의 국민당을 비난했고 심지어 당시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이였던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황하제방폭파는 최악의 악행'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1][2]

198년 중국의 조조여포가 농성하던 하비에 수공을 가했으며 원소가 사망하고 204년 심배가 지키던 업성에도 수공을 써서 포위했다. 이 두 사례는 콸콸콸 쏟아져내려오는 수공이 아닌 포위용 수공으로, 하비성은 이내 배반자가 여포를 포박해서 항복했고 업성도 아사자가 절반이상 나온 끝에 심배의 친족이 배반해서 점령된다.

초한전쟁 시기 한신은 북벌의 막바지인 유수 전투에서 모래를 넣은 자루들로 강의 상류를 막았다가 터뜨려 적의 군대를 분단시킨 후 적장 용저를 참살하고 대승을 거두었다.

1500년대 말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공성전에 능했는데 수공 또한 잘 썼으며 1582년의 빗추 다카마쓰성 전투가 유명하다. 1591년 호죠씨 정벌 때 직신인 이시다 미츠나리에게 오시 성에 수공을 가하게 했으나 실패한 사례도 있다.

한국에서는 은근히 위인들과 관련된 전쟁에서 수공을 썼다는 픽션이 자주 가미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을지문덕살수대첩강감찬귀주대첩이다. 특히 이상하게도 한국에선 살수대첩으로 수공의 개념을 배울 정도로 살수대첩에 대해 오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살수대첩의 살수라는 이름은 물로 죽인다는 살수(殺水)가 아니라 보살 살 薩 자에 물 수 水 자를 쓰며 수나라 군대가 당을 건너는 도중 공격한 것이지 수공은 쓰지 않았다. 아무튼 도강하는 군대를 물로 쓸어버리는 건 현대전에서도 거의 불가능하다.

1018년 강감찬 장군은 귀주대첩의 전초전인 흥화진 전투에서 실제로 수공을 가해서 요나라 군대에 타격을 입혔다. 물론 이 때도 대규모 수몰은 아니고 일시적으로 물의 양을 늘려서 적군의 대열을 어지럽게 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정도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 때 요나라 군이 피해를 입긴 했지만 그래도 개성 인근까지 진격할 전력은 있었다. 진짜 타격은 고려군의 포위 섬멸전인 귀주대첩이었다.

참고로 이걸 소규모로 시도한 양덕후가 있는데, 물의 유입량 자체는 그리 무섭지 않은데, 뻘이 많아 진탕처럼 발이 빠져서 강을 건너기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수공으로 뭔가를 노린다면 이쪽이 더 타당할 듯하다.

네덜란드도 둑이 많기에 많이 쓴 편이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 독립 전쟁 당시 독립군이 포위당하자 포위망을 깨트리기 위해 둑을 무너뜨렸다. 바다보다 낮은 지형이 많아 둑을 터트리는 것이 효과적이라 스페인에게서 독립한 이후에도 몇번 썼지만 프랑스 혁명군이 침략했을때는 겨울이라 물이 얼어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강물도 아닌 바닷물이 밀려오는거라 농지가 황폐화 되는 리스크도 컸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이스라엘군이 하마스가 숨어든 땅굴에 바닷물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수공을 시행했다.

3. 창작물에서

반지의 제왕 2편에서 엔트들이 수공으로 아이센가드를 함락시켰다.

얼음과 불의 노래타이윈 라니스터는 과거 레인-타벡 반란에서 카스타미어에서 버티고 있던 레인 가문을 수몰시켰다.

니켈로디언우주 스파이 짐에서는 주인공 짐이 외계 오버 테크놀로지를 동원해 지구상의 모든 물을 우주에 설치한 장치로 빨아들인 뒤 그걸 다시 지구로 발사하는 물풍선 모양으로 궁극의 수공을 펼친 바 있다(...). 실제로 이랬다면 지구는 진즉에 멸망하고도 남았겠지만 개그 보정이라 별 일 없었다? 사실 지구로 다시 받아칠 것도 없이 그대로 딴데로 던져버려도 지구인들을 몰살시키기엔 그걸로도 충분했다.


[1] 이때는 아직 폴란드 침공조차 개시되지 않은, 나치 독일이 본격적으로 광기를 드러내기 전인 시기로, 나치 독일에 대한 대외적 인식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시기임을 감안해야 한다. 즉, 이때까지는 독일이 중국을 비난할 정도로 도덕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었다.[2] 또한 이 시점에서 독일은 주중 독일 군사고문단을 철수시키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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