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17:03:07

아발론 MSL 2009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SL_Logo.jpg 역대 MBC GAME 스타리그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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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용 맵3. 리그 개편
3.1. 형평성이 결여된 개편
4. 세 번째 저저전 결승과 흥행 실패5. MSL 암흑기의 발단

[clearfix]

1. 개요


아발론 MSL 티저 오프닝 링크
아발론 MSL 오프닝 링크
아발론 MSL 수정본 오프닝 링크
아발론 MSL 결승전 오프닝 링크

자세한 대진표는 아발론 MSL 2009/대진표를 참고.

2. 사용 맵

파일:attachment/avalonmsl.jpg 아발론 MSL 2009 맵
파일:external/www.teamliquid.net/206_Carthage%203.jpg
파일:external/www.teamliquid.net/197_Byzantium%203_thumbnail.jpg
파일:단장의 능선.jpg
파일:(4)Outsider 1.0.jpg
카르타고 lll 비잔티움 lll 단장의 능선 아웃사이더

3. 리그 개편

그동안 홍보 능력이 떨어져서 MSL 8강, 4강, 결승 흥행에 번번이 실패하자 MBC GAME은 아발론 MSL부터 리그 시스템 개편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 전 대회 우승자와 준우승자에게는 32강 맵 섬다운 권한을 부여한다(우승자 2개, 준우승자 1개).
  • 32강 원데이 듀얼을 분리형 듀얼로 개편.
  • 8강 분리형 다전제(1세트와 2~5세트).
  • 8강 대진은 KeSPA 랭킹을 기준으로 역순으로 배치한다.
  • 32강에서 2연패로 광속 탈락한 선수는 서바이버 예선(일명 PSL)으로 강등. 단, 12개 각 팀내 KeSPA 랭킹 1위자는 서바이버 예선 면제.

3.1. 형평성이 결여된 개편

그러나 이러한 개편을 보면 8강 대진 재배치와 KeSPA 랭킹으로 인한 서바이버 예선 면제는 누가 봐도 잘나가는 선수들에게 노골적인 특혜를 주는 소위 부커질이나 다름이 없었으며, 분리형 듀얼과 분리형 다전제 등 이해할 수 없는 일정을 잡은 것도 문제였는데 일각에선 네임드 있는 선수들의 광탈을 막기 위한 조치라며 또 다른 부커질이라고 비난하였다.

이에 MBC GAME은 공식 입장을 밝혔는데 이게 논란의 여지가 충분했다.

그런데 어차피 해명하건 말건 결과가 저저전 결승전이라는 망한 대진이 나온 데다가, 차기 MSL인 NATE MSL에서 제대로 사고를 터뜨리는 바람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4. 세 번째 저저전 결승과 흥행 실패

결국 형평성 따윈 무시한 부커질이 먹혔는지 잘 하면 결승대진이 이제동 vs 김택용이 될 수 있었지만, 8강에서 변형태를 파면서 그 꿈은 무산되었다.

차라리 변형태가 8강에서 김택용을 잡은 김에 아예 그대로 결승까지 쭉 직행했더라면 온게임넷 스타리그보다 흥행을 못할 수는 있어도 흑역사로 기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변형태가 택뱅리쌍처럼 엄청난 인기 선수는 아니지만, 특유의 공격적 플레이로 나름의 팬층을 구성했었고, Daum 스타리그 2007을 흥행시킨 전적도 있다. 그리고 8강전 5세트에서 본인의 인생경기를 보여주며 김택용을 꺾었기 때문에 본인은 물론 전체적인 분위기를 UP 시켜놨다.[7]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변형태는 테란 유저라서 저저전 결승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흥행에 상당한 이득이 된다.[8] 설령 결승 대진이 듣보잡 선수 두 명이 올라가더라도 동족전, 그것도 어지간하면 제일 빠른 시점에서 승부가 나버리는 저저전 회피라는 것 자체만으로 그 결승은 볼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

하지만 변형태는 4강에서 팀 후배 한상봉에게 세트 스코어 2:3으로 리버스 스윕을 당하면서 3번째 저저전 결승이 성사되고 말았다. 거기다가 8강 김정우와의 대결에 이어 또 저저전을 하게 된 김윤환은 예상 외로 이제동에게 3:1로 이겨[9]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결국 부커질의 끝은 두 드래프트 동기김윤환 vs 한상봉[10]의 결승으로 이어진다. 옆동네에서 비슷한 시기 펼쳐진 박카스 스타리그 2009도 결승 대진이 저저전으로 확정됐지만[11], 저저전 결승을 떠나서 결승에 오른 선수들의 인기 자체가 당시까지 역대 최악이었다. 심지어 결승전이 열리는 창원시에는 MBC GAME 채널이 나오지 않았다(...).[12] 아레나 상무님도 비웃었을 듯.[13]

거기다 위에 서술한 바와 같이 온게임넷WCG 국가대표 선발전 결승[14]을 아발론 MSL 결승전과 같은 날짜로 잡았고, 게다가 매치업은 택뱅록.

결국 MBC GAME이왕 망한 거 끝장을 보자의 심정으로 홍보를 시작했다. 하지만 예고부터 자폭이다.

저저전 결승을 이미 두 번 치러본 경험 때문인지 아발론 MSL의 결승전의 재미가 생각보단 낫다는 반응도 있었지만[15] 결국 저저전의 한계는 극복할 수 없었다. 세트당 평균 경기 시간이 10분을 못 채웠으며, 결승전이 열린 창원 경기장 관중석은 빈 좌석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 눈으로만 봐도 CYON MSL보다 더 망해보였을 정도. 사실 당연하라면 당연한 게 CYON MSL 결승전 대진은 조용호 vs 마재윤이었다. 그렇게 많았던 양대리그 저저전 결승 5번 중에서 유일하게 결승전 진출 경험이 있는 선수끼리 붙은 결승전인 데다가 이 2명은 당시 저그 Top 3에 드는, 자신들의 커리어 내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던 이들이었다. 거기다가 조용호 vs 마재윤은 저저전에서 흔치 않은, 당대 최강자 후보들의 라이벌리였다. 그것에 비해 아발론 결승 진출자 2명의 네임밸류는...[16]

4년 동안 스타판의 투명라인이자 팀플레이 전담 선수로 개인전에서는 약자 기믹이였던 김윤환의 첫 우승은 감동적이긴 했으나[17][18], 저저전 결승 라인업의 여파로 끝내 흥행에는 완전히 실패했다.[19][20]

5. MSL 암흑기의 발단

사실 MSL은 그 이전에도 리그 시스템의 문제로 인해 말이 많은 대회였으나, 그 이전의 온게임넷 스타리그 역시 부커질로 인해 욕을 엄청 먹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임요환에 대한 노골적인 부커질이었다. 2001 코카콜라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의 재경기 시 게임 내 점수득실 타이브레이킹[21]부터, 골든 마우스[22]에 갑자기 늘어난 24강 개편까지, 그렇기 때문에 비록 MSL이 2인자 리그라 불릴지 몰라도 이전 우승자들의 네임드가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특히 최연성의 경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우승한 연도가 2004년도인데도[23] 2003년부터 괴물이라고 불릴 수 있었던 이유가 이미 2003년부터 MSL을 3연패씩이나 기록하면서 MSL 우승 가치를 인정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같은 저저전 결승일지라도 조용호의 우승이 가치가 있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이 때문.[24]

하지만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이러한 부커질을 없애고 기본적인 리그의 틀을 정립했으나, MSL은 결국 흥행에 눈이 멀어 리그 시스템 개편을 가장한 부커질을 일삼으면서 결국 저저전 결승으로 응징을 받았다. 만약에 MSL이 이런 부커질성이 짙은 시스템 개편만 하지 않았어도 완불엠이란 표현 하나만으로 끝났을 것이다. 실질적인 MSL 암흑기의 시작이자 멸망의 전주곡이라 할 수 있다.

스갤러들은 이 결승을 이렇게 요약했다.
위메이드 이사: 아레나 상무[25], 동아제약 상무[26]. 그대들이 말한 것이 이것이었나...[27]

게다가 아발론 MSL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2009 시즌 결승전 투표(스타리그, WCG, STX컵, 곰클래식 포함)에서 KeSPA 비공식 대회들인 WCG와 STX컵에도 밀려 결국 꼴찌를 기록하면서 2009 시즌 최악의 리그였다는 것이 전 세계에 증명되었다.

심지어 당시 아발론 MSL 이후, 바로 이어서 스타 무한도전이 재방송으로 방영됐는데, 아발론 MSL보다 스무도의 재방송 시청률이 더 높게 나오는(...) 웃지 못할 사태도 일어났다. 어떻게 방송사에서 몇 천만 깨면서 내보낸 리그가 일개 예능 프로그램, 그것도 본방송도 아니고 재방송보다 시청률이 더 안 나왔을까? 오죽하면 그나마 이 대회를 기억하고 있는 스덕후들은 아발론 MSL이라고 기억하지 않는다. 그저 망발론 MSL로 기억할 뿐. 또한 이 대회의 실패 여파 때문인지는 몰라도 차기 대회가 스폰서 문제로 인해 개막이 2주 가량 늦어지는 일이 있었다.

참고로, 예선 면제를 받은 선수들의 서바이버 토너먼트의 성적은 다음과 같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으니….


[1] 역시 MBC GAME에서 중계했던 경남-STX컵 마스터즈가 열린 곳이기도 하며, 바로 전날에도 결승전이 열렸다. 이 날 결승전에는 SKT T1STX SouL을 꺾고 우승했는데, 전 대회 우승팀인 STX SouL이 결승에 바로 진출하고 준우승해서 전패준이라 말이 나온 것으로 유명했다. 본 대회 우승자가 STX SouL 선수라는 것을 생각하면 묘하다.[2] 대신 민찬기는 차기 대회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자동으로 직행했다.[3] MSL이 조합된 마크. 그리고 MSL 로고 서체도 각진 폰트로 교체되었으나, 별이 사용되는 건 그대로이다. 아발론 MSL 이후 사용된 MSL 로고는 여러 바리에이션이 존재한다. (NATE MSL에서는 붉은 윤곽선마크, 하나대투증권 MSL에서는 붉은색 테두리에 흰색마크, 빅파일 MSL에서는 은색 테두리에 녹색, 피디팝 MSL에서는 스트리트스타일, ABC마트 MSL에서는 노란색과 붉은색 흰색이 사용되었다.)[4] 그리고 박찬수 본인의 마지막 MSL이 되고 말았다.[5] 스타리그는 바로 다음 대회인 EVER 스타리그 2009가 일요일에 개최되었다.[6] 결승전 예고편에도 대놓고 개그로 써먹었다. 어쩐지 눈물나는 자학개그(…).[7] 이 변형태 vs 김택용 전은 대부분이 동의하는 아발론 MSL 최고의 명경기들이자 2009년 최고의 테프전이였다.[8] 거기에 변형태의 스타일 자체가 사람들이 선호하는 공격형이다. 당장 다음 스타리그 결승 대진이 확정됐을 때만 해도 망했네 뭐네 하며 안 좋은 소리들이 많이 나왔지만, 정작 김준영의 물량 플레이와 마찬가지로 가장 빛났던 건 변형태의 미칠 듯한 광전사 본능이었다.[9] 이제동이 사실상 최초로 큰 무대에서 저저전을 진 경기이며, 김윤환의 인생 경기이다. 이기고 나서 대기실에서 김윤환이 울었을 정도.[10] 단, 한상봉은 중간에 공백기가 있다가, 이듬해에 커리지를 다시 딴 뒤 추천 선수로 복귀한다.[11] 참고로 이 대회 우승은 본 대회 4강에서 탈락한 이제동이 차지하여 골든 마우스를 수상했다.[12] 다만 경남-STX컵 마스터즈 결승전을 마산MBC(이후 창원MBC를 거쳐 현재는 MBC경남)에서 MBC GAME과 공동으로 중계했다.[13] 여기에 신종플루 사건이 터진 점도 있었다.[14] 진출권은 3위까지 주어지며, 1위로 진출한다고 인센티브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결승전은 사실상 이벤트전이라고 보면 된다.[15] 1세트 김윤환이 한상봉의 초반 저글링&성큰러시를 막는 장면은 스갤러들에게 엠겜을 구원하는 명장면라고 평했다. 박카스 스타리그 2009 결승전 이후 MSL에 대한 기대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런 호의적인 평이 가능한 것도 있지만….[16] 이 이후에 2명 모두 나름의 커리어와 특이한 스타일리스트로 이름을 알렸기에 아발론 MSL 이후 결승전에서 붙었다면, 어떻게든 포장해서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이 2명은 지금보다 더 무명이었다. 둘 다 프로리그에서는 잘 했을지 몰라도 개인리그는 영 아니었는데, 한상봉은 그 전까지의 개인리그 최고 커리어라곤 곰TV MSL 시즌3 8강 1번 진출해서 김택용한테 0:3 셧아웃 패배를 당한 것이 끝이었으며, 김윤환은 아예 양대리그 진출이 2번째인, 무명의 선수였다. 실제로 이 이후에 스타리그에도 첫 진출해서 로열로더를 노리기도 했었고... 이 2명은 오히려 이 대회에서 각각 우승준우승을 한 이후 더욱더 성장한 것이다. 이렇게 선수들의 당시 네임밸류마저 처참하니 결승이 흥행하는 게 오히려 기적이었던 상황이었다.[17] 이때 김윤환의 형이자 화승 오즈 소속의 김정환 선수가 "내가 못 이룬 꿈 네가 반드시 이루어 주길 바란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참고로 이쪽도 동생과 마찬가지로 팀플레이 전담이었는데, 동생과는 달리 팀플레이가 폐지된 이후로는 여느 팀플레이 전담 선수들처럼 전혀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가 은퇴 후 군입대를 한 뒤 의병 제대를 했다.[18] 또한 대회 자체가 흥행을 하지 못해서 묻혔는데, 김윤환은 이 대회에서 프로토스전을 한번도 치르지 않았다.[19] CYON MSL의 경우 부커질이 전혀 없는 대회인 데다가, 우승자인 조용호, 준우승자 마재윤저그의 최강자들이었고, 이때에도 네임드가 있었으며(조용호야 이미 오랫동안 상위권 강자로 군림한 네임드 베테랑이였고, 마재윤도 막 첫 우승을 하고 2연속 결승을 달성한 라이징 스타였다.), 게다가 조작범의 우승을 저지해냈기에 이후에도 상대적으로 평가가 나쁘진 않다. (실제로 마재윤이 이 대회를 우승했으면 역대 스1 선수들 중 유일한 단일 개인리그 4회 우승과 4회 연속 우승의 기록을 세우게 된다!)[20] 김윤환은 이후에도 MSL에서 1번, 스타리그에서 2번 4강에 진출하여 수준급 커리어를 쌓았다.[21] 즉, 재경기 시에도 동률이 나왔을 때 게임 내 점수득실로 진출자와 탈락자를 가린다는 의미이다. 스타의 특성상 전략이나 종족전 등의 요소들이 점수를 많이 좌지우지하는 만큼 이런 규칙은 그냥 불합리한 것이며, 이 규칙이 실제로 시행되었던 것은 16강에서 임요환이 재경기를 할 때 밖에 없었다.[22] 사실 골든 마우스는 경기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아니니까 명백한 임요환 푸시이지만 부커질까지는 아니라고 여길 수도 있으나, 문제는 골든 마우스와 함께 주기로 했던 혜택이 차차기 대회 시드였던 것이다. 물론 욕만 욕대로 처먹고 철회되었다.[23] 심지어 스타리그 첫 우승 때는 박성준에게 패해서 최강자의 자리에서 다소 내려온 뒤였다.[24] 물론 조용호의 결승전 상대는 당대 최강자 후보였던 (그리고 당대 원탑 자리에 곧 올랐던) 마재윤이라는 점도 있었다.[25] 공교롭게도 이 대회부터 히어로 센터가 문래동으로 이전했다. 즉, MSL이 내리막을 걷게 된 것은 히어로 센터 이전을 기점으로 볼 수 있다.[26] 스갤에서 두 번의 박카스 스타리그 결승의 셧아웃과 경기 기대치 대비 실망감은 거진 Arena MSL 2008과 맞먹는다고 표현되었다.[27] 아레나 또한 여러 요소로 밈이 되었을 뿐이지, 이렇게 대회를 망칠 정도로 부커질을 하지는 않았다. 다음 대회인 Clubday Online MSL 2008김동준 해설이 하차하는 과정에서 트러블이 있었던 것을 빼면 전반적으로는 나름 명대회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