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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대회 기간: 2004년 9월 30일 ~ 2005년 2월 6일
- 스폰서: NHN[1]
- 스폰서 캐치프레이즈: 엽기, 발랄, 홀인원, 한게임 당신은 골프왕
- 조 편성[2]
A조 최연성, 김동진, 서지훈, 변길섭 B조 강민, 전상욱, 박성준, 박태민 C조 박용욱, 김환중, 이윤열, 변은종 D조 이병민, 김민구, 김정민, 조용호 - 우승: 박태민, 준우승: 이윤열, 3위: 서지훈, 4위: 조용호
- 우승 상금 : 2,500만 원
- 준우승 상금 : 1,000만 원
- 3위 상금 : 400만 원
- 승자조 8강 1주차 야외 투어 장소: 서울 COEX 태평양홀 1층 특설무대
- 결승 장소: 부산 사직실내체육관
2. 사용 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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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폰서명을 붙여 사용 |
3. 특이 사항
- MSL 첫 저그 우승자 탄생
- KeSPA 양대 리그 최초로 저그가 테란을 꺾고 우승[3]
- 스타 1 양대 리그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결승전을 7전 4선승제로 진행[4]
- 박태민의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리그 우승.
- 이윤열 6번째이자 커리어 최후의 MSL 결승 진출 및 준우승.
- 사상 최초로 KOR 소속 선수들 전원이 MSL 진출 실패.
- 승자조 결승, 패자조 준결승, 패자조 결승, 최종 결승전이 모두 테저전으로 끝남.
- 결승전에서 1, 5세트 맵이 같지 않은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회.
- 16강부터 다전제로 변화. 그로 인해 리그 기간이 두 배 이상 길어졌다.
- 최종 결승전은 7전 4선승제, 승자조 결승과 패자조 준결승, 결승은 5전 3선승제, 나머지 모든 경기는 3전 2선승제로 진행됐다.
- MSL 개편 이후 최초로 공식맵에서 섬맵 제외.
- MSL의 처음이자 마지막 야외 투어.[5]
- MSL 첫 서울 외에서의 결승전. 그리고 MSL 첫 지방 결승전.[6]
- 네 시즌 연속 결승전이 일요일에 열림.
- MSL 최초로 선수들이 오프닝에 등장.[7]
- 시즌 도중 방송국 로고가 변경.[8]
- 박태민, 역대 MSL 최저 승률 우승(68.18% - 15승 7패).[9]
- 최연성이 서지훈에게 승자조 8강에서 0:2, 패자조 4라운드에서 1:2로 패하면서 4연속 결승 진출 실패.[10]
- 김동진, 김환중, 변길섭의 마지막 MSL.
- 김정민의 마지막 양대 개인리그 8강 진출.
당신은 골프왕 MSL 2004 오프닝 링크
자세한 대진표는 당신은 골프왕 MSL/대진표를 참고.
4. 리그 개편
TG삼보 MSL 이후 오랜만에 담당 PD가 바뀌면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었는지 16강부터 다전제라는 사상 초유의 방식이 도입되었다. 16강은 분리형 3전2선승제로 5~6주간[11] 치른 뒤 승/패자조 경기는 승자 4강/패자4강 2차까지는 하루에 3전 2선승제 2경기를 진행했다. 그리고 종전 패자결승전부터 적용된 5전 3선승제를 패자 준결승전과 승자 결승전에도 적용해 진행했다.하지만 무리한 시도도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7전 4선승제 결승. 최강자를 가리는 데는 손색이 없을지 몰라도 과연 7전까지 가면 체력과 정신력이 받쳐주는 게이머가 있을 것이며 오히려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는데 다행히도 기우에 그쳤다. 사실 선수보단 해설진들이 더 빨리 지쳤다.
7전 4선승제는 먼훗날 스타크래프트 2 체제로 전환됐을 때 제대로 안착하게 되었다.
참고로 이때 담당 PD가 훗날 NATE MSL을 대차게 말아먹다 못해 빈사 상태로 만들어버린 김남훈 PD다.
또한 이 리그는 2002 KPGA 시절까지 포함해도 역대 MSL 중에서 최초로 요환이도 없고 진호도 없는 리그였다.[12] 리그에 대한 주목도가 걱정되긴 했으나 이윤열과 박태민의 팀달록을 비롯한 여러 명경기들이 그 공백을 잘 매꾸어 주었다.[13][14][15]
5. 리그 진행
브루드 워 역사상 가장 빡빡한 경기 일정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결승전도 ASL이나 스타크래프트 2에서나 정석화 된 7전제로 진행되었다. 1경기, 1경기의 세트 수도 많았고, 일정도 매우 길어 가장 지루했던 리그로도 꼽힌다.어찌됐든 16강부터의 다전제는 리그를 4달씩이나 끌게 만들었고 마지막 프로토스인 박용욱이 패자조 3라운드에서 탈락하면서 8강 이후는 2002 KPGA 투어 1차 리그 이후 오랜만에 테저전과 테테전만 줄창 나오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하지만 패자조 1라운드에서 벌어진 박용욱과 변은종의 경기는 초장기전에서 프로토스가 저그를 상대하는 방법으로 마인드컨트롤로 카카루까지 정찰병으로 활용하는 등 입스타를 실현한 명경기[16]가 나오는 등 개별 경기들은 상당한 퀄리티를 자랑했지만 박용욱이 떨어진 이후 거의 반 년 동안 MSL에서 토스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토스빠들에게는 매우 우울했던 대회.[17]
또한 이 대회에서 김동진은 16강 첫 경기와 패자 8강 2차에서 디펜딩 챔피언 최연성에게 각각 세트스코어 2:1, 2:0으로 패한 이후 다음 대회인 우주닷컴 MSL부터 곰TV MSL 시즌2까지 즉, 곰TV MSL 시즌3에서 신상호가 본선에 진출하기 전까지[18] 즉 6시즌 동안 헥사트론 드림팀 선수들은 한동안 단 한 명도 MSL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19][20]
그리고 디펜딩 챔피언인 최연성도 이 대회에서 서지훈만 두 번을 만나 승자 8강에서 2:0, 패자 4강 2차에서 2:1로 패하면서 합계 4:1로 패하는 굴욕을 맛보면서 프로게이머 생애 최초로 MSL에서 4위 이내 입상하지 못하게 된다. 거기에 최연성은 서지훈을 만나게 되면 대부분 패하게 될 정도로 천적 관계가 형성하고 만다.[21]
또한 박태민은 16강 첫 경기 박성준과의 저저전 경기를 빼고는 승자 8강 전상욱, 승자 4강 서지훈, 승자 결승 이윤열, 패자 결승 서지훈, 최종 결승전 이윤열 등 테란들만 승자 8강부터 차례대로 만나며 역대 MSL 중에서도 가장 역상성 종족전 비율이 많은 선수가 되었다. 또한 상대로 만났던 선수들이 전상욱을 제외하면[22] 하나같이 우승자 출신의 엄청난 거물들에 강력한 우승후보들이었기 때문에 박태민에게는 더욱 값진 우승으로 남게 되었다.[23][24] 특히 저그가 임이서최로 대표되는 테란에 기가 완전 눌려있을 때, 임요환과 최연성을 제외한 모든 테란을 다 꺾고 우승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 대회 우승은 박태민의 커리어에 대한 후대의 평가가 올라가는 데 기여했다. 즉 같은 1회 우승이라도 그 순도나 질을 높게 쳐준 것이다. 개인리그 커리어가 완전히 같은(1회 우승 & 4강[25] 3회) 김윤환을 제치고 박태민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던 것에는 WCG 우승자였다는 점이 우선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이 점도 작용했다고 생각된다.
결승전 또한 당시 삼신전의 한 축들이었던 박태민과 이윤열의 팀달록 경기 또한 명경기의 연속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백미는 루나에서 펼쳐진 1세트 경기. 그 유명한 '메딕 홀드의 압빡'이 나온 경기가 바로 그 경기다.[26] 결국 세트 스코어 4:2로 박태민은 그동안 조진락 트리오도 달성하지 못한 MSL 첫 저그 우승자라는 저그팬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위업을 달성하면서 본의 아니게 콩을 까고 만다.[27][28] 그리고 이 결승전은 이윤열의 마지막 MSL 결승전이 되었고, 이 결승전 이후로 이윤열은 MSL에서 4강 진출조차 하지 못하게 된다.[29] 그래도 8강은 2008~2009년까지 갔었다.[30]
결승이 끝나고 박태민이 한 "더 높은 곳에서 울겠습니다." 라는 인터뷰가 논란이 있었는데 이는 이후 방빠들의 주요 싸움 소재가 되었으며, 박태민을 시작으로 박성균, 박지수, 박XX까지 박씨 MSL 우승자들이 MSL 우승 후 부진에 빠지는 박씨 우승자의 비극의 시초가 되었다. 다만 당시 우승 인터뷰의 정확한 내용은 "아직은 울지 않겠다. 저는 아직 더 남았으니 더 올라가서 최고의 자리에서 울도록 하겠다."였고 이후 박태민의 개인방송에서도 당시 언급했던 말 그대로 "리그의 차등화를 이야기한 것이 아닌 더 높은 커리어를 쌓고 울겠다고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31]
여하튼 박태민은 박성준과 함께 양박이라 불리며 저그계의 투톱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1] 전년도 시즌인 NHN 한게임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03~04에서 스폰서를 한번 담당했었다.[2] 16강 대진은 탑시드 4인(Spris MSL 1~4위)을 제외한 나머지 12인이 무작위로 추첨을 통해 조를 배정했으며, 탑시드 4인은 동전 던지기 방식을 통해 조를 결정했다. (단, 전 대회 우승자 최연성과 준우승자 박용욱은 같은 조 배정을 못하게 했다.) 그 뒤 마지막으로 탑시드 4인이 상대할 선수를 지명하는 순으로 대진표를 작성했다.[3] 이후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박성준이 이병민을 상대로 EVER 스타리그 2005에서 달성하게 된다.[4] 이후 결승전 7전 4선승제는 GSL 출범 등 케스파 공식 리그가 스타 2로 전환되기까지 나오지 않았으며, 리마스터 체제인 KSL과 ASL에 가서야 다시 등장한다.[5] 승자조 8강 1주차 경기 진행[6] 추가로 e스포츠 및 프로리그가 서울 외 지역에서 결승전이 시작된 것은 2004년 7월 부산 광안리에서 열린 SKY 프로리그 2004 1Round 결승전부터이다. 스타리그는 서울 외 지역에서 결승전이 시작된 것이 같은 해 8월 대구 EXCO에서 열린 Gillette 스타리그 2004 결승전부터이다. 팀리그도 2005년 3월 대구 EXCO에서 열린 MBC MOVIES 팀리그 결승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울 외 지역에서 열린 팀리그 결승전이었다.[7] MBC GAME 오프닝 중 최초로 선수가 등장한 오프닝은 워크래프트 3의 다음게임 프라임리그 4다.[8] 2005년 1월 3일부터 모회사인 MBC가 현재의 로고로 변경함에 따라 MBC GAME도 이에 따르게 되었다.[9] 온게임넷 스타리그까지 포함한 역대 양대 리그 최저 승률 우승자는 11승 6패, 64.71%의 승률로 2002 SKY배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 우승한 박정석이다.[10] 아울러 최연성이 MSL에 진출한 이래 결승에 진출하지 못한 첫 시즌이다. 거기에 최연성은 이후 우주닷컴 MSL 4위, CYON MSL 3위를 차지하여 MSL에서는 4강은 몇 번 더 진출하지만 결승 진출은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다.[11] 1~2주차에 1세트, 3~4주차에 2세트를 진행 한 뒤 4주간 경기 결과 1:1이 된 경기들을 몰아서 5주차를 치렀다. 만약 1:1이 된 경기들이 6경기를 넘어갈 경우 3세트도 2주에 걸쳐 치를 계획이었는데 결국 8경기 중 7경기가 1:1이 되면서 3세트 마저 2주로 나눠 치렀다.[12] 사실 임요환은 Stout MSL 이후 MBC게임 쪽에서는 마이너리그에만 전전하는 상황에서 부진이 지속되었고 이 시기 동안 MSL에서는 홍진호가 홀로 분전했다. 홍진호는 2002년 스타우트&배스킨라빈스배 KPGA 투어 4차 리그를 제외한 나머지 MSL에서는 모두 본선 진출에 성공, Spris MSL까지 활동했으나 당신은 골프왕 MSL에서는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었다. 이후 바로 우주닷컴 MSL 본선 진출에 성공한다. 임요환도 5차 마이너리그에서의 치열한 경쟁 끝에 우주닷컴 MSL 본선 진출에 성공, 약 2년 만의 MSL 복귀에 성공하게 된다.[13] 경기력으로만 보면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곰TV MSL 시즌1처럼 일종의 변곡점이 된 리그.[14] 실제로 2007년 설특집으로 방영한 MSL 100에서도 15개의 경기가 선정되며 역대 MSL 중에서 Spris MSL 다음으로 가장 많은 경기가 선정되었다.[15] 이후, 반대리그에서 펼쳐진 IOPS 스타리그 04~05 4강 경기서 만난 이윤열은 3:2 리버스 스윕으로 박태민을 통쾌하게 복수 한다.[16] 이 경기는 MSL 100대 명경기 5위다.[17] 같은 시기에 진행되던 반대편 IOPS 스타리그 04~05에서도 16강에서 유일한 토스였던 박정석이 탈락하고 줄창 테저전만 나왔다.[18] 참고로 스타리그의 경우는 AMD 시절 NHN 한게임배 온게임넷 스타리그 03~04에서 베르트랑 그로스펠리에와 조정현이 진출한 이후로 출전자가 없었다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이 되어서야 신희승이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19] 당시 드림팀의 경우 스타1 팬들에게 약팀으로 유명하고 그게 맞는데, 이지호 감독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2003년까지 AMD의 스폰서를 얻어서 AMD 드림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던 시절에는 분명히 선수층이 괜찮은 팀이였다. 기욤 패트리는 명예의 전당 헌액자니 말할것도 없는 전설급이고, 그 외에 장진남, 장진수, 조정현, 베르트랑 그로스펠리에 등의 네임밸류가 있는 선수층을 구성한 팀이였다. 다만 문제는 이 5명에 대한 감독의 신뢰도가 높은 나머지 다른 선수를 육성시킨다는 중요한 대안을 간과했고, 이 5명은 전부 스타판 극초반 세대 선수들이기 때문에 이 때까지는 상술했듯이 모든 대회에 그럭저럭 선방했으나 곧 다가오는 질레트 세대라는 신세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을 하게 되면서 대안이 없던 AMD 드림팀은 말 그대로 한순간에, 모든 대회 진출 팀에서 모든 대회 미진출 팀으로 추락한다. 어떻게 보면 1기 드림팀의 종말이며, 이 대회가 구세대의 마지막이기에 구세대 선수들로만 구성된 당시 드림팀은 필연적으로 추락할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20] 헥사트론 드림팀 시절에는 김동진이 실제로 싱하테란, 폭렬테란이라는 별명을 얻가면서 팬들에게 큰 임팩트를 남겼고, 동시에 안석열, 김갑용, 박동욱 등을 통해 리툴링을 시도했지만 육성이 없었다는 근본적인 팀의 한계를 뿌리뽑지는 못했었고, 결국 이네이쳐 PC방의 후원을 얻었던 2005년에 이네이쳐 탑으로 활동을 하던 시기에는 아예 SKY 프로리그 2005 전기리그에서 전패를 하다가 전기리그 마지막 경기(참고로 이 경기의 상대가 처음으로 여성 선수를 출전시켰다!)에서 거둔 1승이 전기리그에서 거둔 유일한 승리였을 정도로 답이 없는 시즌을 보낸 끝에 후기리그에 참가하지 못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이 충격적인 시즌이 계기가 된 것인지, 실제로 이 팀이 그나마 육성다운 육성을 해 보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상반기 드래프트로 지명된 김원기와 신상호, 신희승이 등장하면서였다. 하지만 이들이 등장한 이후에도 팀내 에이스라는 신희승은 고작 4강 1회, 8강 1회가 한계인 선수였고, 김원기는 스타크래프트 2로 가서야 S급으로 대성했으며, 신상호는 세계 3대 프로토스라는 반어법적인 밈만 되는 선수였다. 그밖에 임진묵, 김강호도 이 드래프트에서 지명했으나 임진묵은 한빛 스타즈로 이적한 뒤에야 본격적으로 빛을 봤고, 김강호는 팀플레이에서만 활동하다가 일찌감치 은퇴. 이후 데뷔한 신대근과 김성대 같은 선수들은 eSTRO가 해체되고 다른 팀에 이적해서야 조금이나마 메인급으로 부상했으니 팀의 전성기가 다시 온 것은 전혀 아니었다.[21] 심지어 최연성은 반대편 IOPS 스타리그 04~05에서도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서 진출하였지만 평생의 라이벌 박성준과 중고신인으로 알려진 조형근을 상대로 차례대로 패하면서 순식간에 2패로 광탈이 확정되고, 마지막 경기에서만 자신의 밥인 이윤열을 상대로 승리를 차지하여 총 1승 2패로 광탈을 하고 만다. 또한 최연성 자신이 가장 자신있어했던 종족전인 저그전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것은 큰 굴욕으로 남게 되었다.[22] 단 전상욱도 피망컵 프로리그에서는 어나더데이 맵의 전담 플레이어로 8전 전승으로 소속팀 슈마 GO의 우승에 크게 일조하고, 투싼 팀리그 결승전에서도 당시 최강 최연성을 선봉전에서 꺾고, WCG 2004에서도 한국대표선발전 우승, 그랜드 파이널 은메달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힘든 상대인건 마찬가지였다.[23] 이 대회에서 박태민이 치른 테란전만 무려 20경기나 된다.[24] 반대편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Daum 스타리그 2007에 출전한 김준영이 16강 첫 경기 송병구 전을 제외하면 16강 한동욱, 신베팅, 8강 진XX, 4강 이영호, 결승전 변형태를 차례대로 만나며 역대 온게임넷 스타리그 중에서도 가장 역상성 종족전 비율이 많은 선수로 기록되었다. 또한 김준영도 이 대회에서 치른 테란전만 무려 15경기나 된다.[25] 즉 결승 못 가고 4강에서 그친[26] 이 경기는 MSL 100대 명경기 4위다.[27] 당시 온게임넷 스타리그 첫 저그 우승자 타이틀을 박성준에게 빼앗기면서 콩빠들의 상실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MSL 첫 저그 우승자 타이틀이라도 따야한다는 여론이 많았지만 기량이 급락하면서 실패했다.[28] 그나마 조진락 트리오의 조용호가 CYON MSL에서 한 저그 게이머를 상대로 결승전에서 3:1로 승리를 차지하면서 늦게나마 우승을 기록한다.[29] 이후 이윤열은 반대편 온게임넷 스타리그에서는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2와 신한은행 스타리그 2006 시즌 3에 2연속으로 결승전에 진출하면서 각각 우승과 준우승을 기록하지만 MSL에서는 반대로 이 시기에 오히려 16강에서 광탈을 하거나 본선 진출조자 하지 못하였다.[30] 마지막 8강은 2009년 초에 열린 로스트사가 MSL 2009였다.[31] 사실 이 시기는 박태민의 최전성기 시절이었으며 실제로 동시에 상위 진출한 대회가 많기도 했다. IOPS 스타리그 04~05 및 2차 KT-KTF 프리미어 리그까지 상위 진출 상태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