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23:54:51

동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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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제10대 황제
동치제 | 同治帝
파일:1200px-清_佚名_《清穆宗同治皇帝朝服像》.jpg
출생 1856년 4월 27일
청나라 직예성 북경 자금성 저수궁
(現 베이징시 둥청구)
사망 1875년 1월 12일 (향년 18세)
청나라 직예성 북경 자금성 양심전
(現 베이징시 둥청구)
능묘 혜릉(惠陵)
재위기간 제10대 황제
1861년 11월 11일 ~ 1875년 1월 12일 (13년 6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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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9d83e><colcolor=#00386a> 성씨 중국식 : 애신각라(愛新覺羅)
만주어 : 아이신기오로(ᠠᡳ᠌ᠰᡳᠨ ᡤᡳᡠ᠋ᡵᠣ)
중국식 : 자이춘(載淳)
만주어 : 자이슌(ᡯᠠᡳ ᡧᡠᠨ)
한국식 독음 : 재순
국적 청나라
부모 부황 문종 현황제
모후 효흠현황후
형제자매 2남 1녀 중 장남
배우자 효철의황후 아로특씨
후궁 숙신황귀비 부찰씨, 공숙황귀비 아로특씨
헌철황귀비 혁사리씨, 돈혜황귀비 서림각라씨
신장 160cm[1]
한호 야오닝아 다산 한(ᠶᠣᠣᠨᡳᠩᡤᠠ ᡩᠠᠰᠠᠨ ᡥᠠᠨ᠌)
칸호 부린 자사그치 칸(ᠪᠦᠷᠢᠨ ᠵᠠᠰᠠᠭᠴᠢ ᠬᠠᠭᠠᠨ)[2]
묘호 목종(穆宗)
시호 중국식 :
계천개운수중거정보대정공성지성효신민공관의황제(繼天開運受中居正保大定功聖智誠孝信敏恭寬毅皇帝)
만주어 : 피링아 후왕디(ᡶᡳᠯᡳᠩᡤᠠ ᡥᡡᠸᠠᠩᡩᡳ)
연호 1862년 ~ 1875년
중국식 : 동치(同治)
만주어 : 야오닝아 다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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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즉위 후3. 기타4. 매체에서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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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의 10대 황제이다. 청나라 최후의 직계 혈통 황제이자 중국 역사 전체를 통틀어 최후의 직계 혈통 황제다. 그의 죽음으로 청나라 황실의 직계 혈통은 단절되었다. 그리고 중국 역사상 친아버지로부터 황제위를 이어받은 마지막 황제이기도 하다. 어머니 서태후가 모든 권력을 장악하며 아들에게 권력을 주지 않다보니 사실상 아무런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 황제로 불운한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청나라 역대 황제들 중 도광제(청나라 유일의 적장자 출신 황제) 다음으로 강한 정통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도광제의 실질적 장남인 함풍제(형들이 모두 요절)에게서 외아들로 태어난 점은, 장자상속제와 거리가 멀었던 청나라의 황위계승법을 감안하면 동치제 본인의 강한 정통성을 더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렇기에 동치제의 짧고 불행한 삶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만약 동치제가 천수를 누렸다면[3], 청나라 말기가 청나라 초기에 비해 지배민족인 만주족이 유교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시기인 만큼 동치제의 강한 정통성이 나름대로 메리트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시기 청나라는 백련교도의 난, 아편전쟁, 태평천국의 난 등 이미 수많은 국난들을 거치며 망해가고 있는 국가였다. 특히 제2차 아편전쟁 때에는 서구 침략군들이 수도 베이징까지 약탈하며 위신이 땅에 떨어진 상태였고, 함풍제는 피서산장이 있는 승덕으로 튀어 국정도 제대로 돌보지 않고 시름시름하다 죽은 후였다. 이후 함풍제의 아내인 서태후가 권력을 잡고 뒤에서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 다만 동치제와 광서제 전반기는 일시적으로 국력이 되살아났던 시기였던지라 그나마 청나라가 마지막으로 힘을 썼던 시기였기는 했다.

2. 즉위 후

5세라는 워낙 어린 나이에 즉위했기에 즉위 직후에는 함풍제의 유언에 의해 숙순을 비롯한 찬양보정팔대신이 섭정을 하였다. 함풍제는 이들과 태후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모든 성지는 어상과 동도당이라는 도장을 찍어야만 효력을 가진다라고 하여 동태후와 당시 황태자인 재순에게 각각 주었다.

그러나 보정팔대신과 황태후 간에 대립이 심해지고 베이징에 남은 재경대신과 열하에 있는 고명대신 간에 불화로 인하여 기상정변이 발발하여 삼촌인 공친왕의 도움을 받아 함풍제의 정식 부인인 동태후와 생모인 서태후가 공동 섭정했다. 사실상 실권은 대부분이 어머니 서태후에게 있었다고 하지만 동태후가 서태후보다 황실에서의 서열이 더 높아 이로 인한 갈등이 있었기에[4] 동치제 즉위 초기의 청나라는 혼란스러운 편이었다고 한다.

또한 두 태후의 갈등은 정치적인 것만이 아니라 동치제 양육 방식 문제도 끼여 있었다. 동치제 본인은 냉정하고 엄격했던 친어머니보다 어리광을 받아주고 절대 혼을 내지 않고 따뜻한 성격의 동태후를 더 좋아했다고 한다. 이것은 모자간의 사이가 나빠지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물론 서태후는 자신의 유일한 자식인 동치제를 자식으로서는 많이 생각해주었기에 광서제와 효철의황후에게 했던 것 같은 악랄한 핍박까지는 하지 않았다.

게다가 서태후가 그의 아내 효철의황후(孝哲毅皇后 阿魯特氏)를 싫어하자, 서태후와 동치제 사이의 거리는 갈수록 멀어져만 갔다. 참고로 안타깝게도 효철의황후 역시 불운했다. 그녀의 아버지 알루터 초치(阿魯特 崇綺)는 동치 4년(1865년)에 중국 역사상 유일하게 장원급제한 몽골인이었다. 이후 벼슬이 이부상서에 이르렀으며, 동치 11년에는 국구까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출세엔 동태후의 입김이 영향을 미친 거였고, 애초에 시어머니 서태후는 며느리 효철의황후를 싫어했기 때문에[5] 능력과 별개로 초치 역시 서태후의 미움을 샀다.

결국 초치는 추탈되었으며, 효철의황후는 동치제의 요절 이후 동치제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는데도 서태후의 핍박을 받아 거의 유폐된 상태에서 지내게 된다. 그녀는 얼마 후에 금조각을 삼켜서 자살하는데,[6] 100년도 되지 않아 군벌 쑨뎬잉 (孫殿英)이 묘를 도굴하여 금조각을 찾기 위해 시체 복부를 갈라 내장을 헤집는 만행을 저질렀다.

2.1. 양무운동

이 시기 청나라는 양무운동이란 개혁을 추진한다. 우선 1861년 '총리각국사무아문(總理各國事務衙門)'[7]이 설치됐는데, 이로서 청나라는 오랜 사대 외교 노선을 공식 포기하고 적어도 서양에 대해서는 '대등한 외교 관계'를 인정하게 된다. 또한 서구의 조선 기술을 들여와 명나라 시기 이후 거의 진전이 없던 중국의 군함을 발전시키려 노력하였고, 증기기관을 수입하여 나름대로 산업화를 시도해보았다. 주로 1860년대에는 강남기기제조총국, 금릉기기국, 복주선정국 등을 세워 군선과 무기들을 자체 제작하였으며, 국비를 들여 외국에 고위급 자제들을 유학까지 보냈다. 70년대에는 해군 양성과 기술자 양성에 힘을 쏟았으며, 동치제 사후인 80년대에는 산업의 근대화에 온 힘을 쏟았다. 양무운동은 이같은 노력들 덕분에 나름대로 성과도 생각보다 괜찮았으나, 개혁파 관료들이 통일되지 못하고 각기 따로따로 개혁을 진행했기에 옆나라 일본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보수파들이 워낙 굳건하게 버티며 개혁을 반대하고 나서며 개혁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아무튼 동치제 연간에는 중체서용(中體西用)의 기치 아래[8] 이른바 양무운동으로 알려진 중국식 근대 개혁이 진행되었다. 물론 결과는 다 알다시피 1894년 ~ 1895년 청일전쟁의 패배로 증명되는 실패한 개혁이었지만... 그래도 이때가 청나라가 망하기 직전에 그나마 숨을 조금 돌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지라[9] 동치중흥이라 불리기도 한다.

한편 동치제 시기의 청나라는 1864년에 태평천국이 장악하고 있던 난징을 함락했다. 그리고 태평천국의 천왕 홍수전(洪秀全)이 자결하면서[10] 겨우 강남을 평정하고, 청 정부는 일단 한숨을 돌렸다. 동시에 태평청국 봉기를 진압하면서 성장한 향신(鄕紳) 출신 의병장들인 증국번(曾國藩), 이홍장(李鴻章), 좌종당(左宗棠) 등 또한 공친왕(恭親王)[11]의 개혁에 동참하게 된다.

청나라가 그나마 개혁의 모양새라도 낼 수 있었던 것은 동치제 연간 동안에 유럽이 그나마 좀 덜 찝적거렸기 때문이다. 그 당시 서구 열강들은 유럽 대륙에서 벌어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1866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1870년 ~ 1871년) 등으로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이미 함풍제 시대에 이권을 나름 두둑히 챙겨놨었다.[12] 하지만 동치제가 죽을 무렵엔 그런 불안한 평화도 흔들리게 되었다.

2.2. 죽음

동치제는 성년에 가까워지자 황제로서 친정을 하기 위해 어머니에게서 실권을 가져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서태후가 그의 아내 효철의황후 아로특씨(孝哲毅皇后 阿魯特氏)를 싫어했기에 이로 인한 갈등이 발생했고, 이 탓에 정무에 흥미가 사라진 동치제는 유흥과 색에만 열중하다가 천연두로 인해 만 18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일설에는 열병으로 죽었다고도 하고, 실권을 가져오려다 실패한 후 어머니 서태후가 자신의 권력을 위해 아들을 정치에서 철저히 배제하자 실의에 빠져 집창촌을 돌아다니다가 매독에 걸려 죽었다고도 한다.[13]

동치제가 후사를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안그래도 불안정한 청 조정에는 비상이 걸렸다. 결국 당시 황실 최고 어른이었던 동태후와 서태후는 동치제의 3살짜리 사촌인 애신각라 재첨을 황제로 올렸으며, 이가 바로 광서제이다.

3. 기타

한편, 그 당시 조선은 1863년 26대 고종이 등극, 흥선대원군에 의해 10년 간 섭정 통치가 진행되었다. 동치제가 죽을 무렵(1874년)은 고종이 친정을 선포(1873년)하면서 명성황후 민씨의 세도 정치가 막을 올린 시기였다. 또한 운요호 사건(1875년), 강화도 조약 체결(1876년)도 멀지 않았다. 결국 동양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조선도 나라의 문을 열게 된 것이다.

또한 일본메이지 덴노의 등극과 함께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면서 근대 국가의 길을 밟기 시작했다. 일본의 제국주의 경향도 점차 심해져 동치제 연간 동안 명목상 청나라와 일본의 동시 번국이었던 류큐 왕국을 완벽한 지배하에 두었으며[14], 동치제가 죽던 1874년에는 대만에도 군사를 파병하여 찝적거리기도 했다. 20년 뒤에 일어날 충돌의 전주곡은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청나라에 의해 실록이 편찬된 마지막 청 황제이기도 하다. 동치제의 실록인 목종실록은 사후 광서제 재위 기간에 편찬되었지만, 다음 황제인 광서제의 실록인 덕종실록은 청나라에 의해 편찬되지 못하고 청나라 멸망 후 민국시대에 편찬되었기 때문에 목종실록은 왕조시대에 편찬된 실록으로서는 중국의 마지막 실록이 되었다.

4. 매체에서

  • 주성치 주연의 코미디 영화 구품지마관에서 배우 황일산(黄一山)이 동치제로 분했다. 봉래루에서 기생 여연을 억지로 취하려다가 협리대신이 나타나자 협리대신에게 들키면 안된다고 포룡성과 함께 숨게 되지만, 포룡성의 기지로 위기에서 벗어난 후 척씨 일가 살인사건의 재심을 허락하고 포룡성을 1품 관직인 팔도순안에 임명하여 재심을 맡게 한다. 근데 막판에 반전으로 매독으로 죽었음이 드러나서 주인공들을 경악하게 한다.
  • 1994년 개봉된 홍콩 영화 <滿清禁宮奇案(만청금궁기안)>[15]에서 송본중(宋本中)[16]이라는 배우가 동치제 역으로 나온다. 여기서는 동치제의 사인(死因)이 천연두가 아닌 매독이라는 야사를 따른다.

5. 둘러보기

청사고(淸史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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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권 「조사일등전(曹一士等傳)」 307권 「위위곽전(魏韋郭傳)」
조사일 · 이신수 · 호정 · 중영단 · 시조생 · 저인지 윤계선 · 유우의 · 진대수 · 장윤수 · 진굉모
308권 「나소도등전(那蘇圖等傳)」
나소도 · 왕초증 · 서사림 · 윤회일 · 왕서 · 방현 · 풍광유 · 양석불 · 반사구 · 호보전 · 왕창
318권 「아계전(阿桂傳)」 319권 「우민중등전(于敏中等傳)」
장가아계 우민중 · 뉴호록 화신 · 소릉아
322권 「두광내등전(竇光鼐等傳)」 323권 「황정계등전(黃廷桂等傳)」
두광내 · 이수방 · 범의빈 · 조석보 · 사진정 · 전풍 · 윤장도 황정계 · 악미달 · 양정장 · 장유공 · 이시요 · 오미태 · 관보
324권 「방관승등전(方觀承等傳)」
방관승 · 부찰부명안 · 주원리 · 이한 · 이세걸 · 원수동 · 정대진 · 유아 · 육요 · 관간정 · 장조규 · 호계당
325권 「이청시등전(李淸時等傳)」 326권 「개태등전(開泰等傳)」
이청시 · 요입덕 · 이굉 · 하위 · 오사작 · 살재 · 난제석 · 한횡 개태 · 아이태 · 계림 · 원푸
340권 「왕걸등전(王傑等傳)」 341권 「경규등전(慶桂等傳)」
왕걸 · 동고 · 주규 경규 · 유관지 · 대구형 · 대균원 · 탁진 · 장후 · 노음부
342권 「보녕등전(保寧等傳)」 343권 「서린등전(書麟等傳)」
보녕 · 송균 · 배탄 · 박계특 서린 · 각라길경 · 각라장린 · 비순 · 장백령 · 백린
344권 「늑보등전(勒保等傳)」 345권 「영보등전(永保等傳)」
늑보 · 액륵등보 ,호시현, · 덕릉태 영보 · 혜령 · 의면 · 영선 · 복녕 · 경안 · 태승은
386권 「문경등전(文慶等傳)」 387권 「숙순등전(肅順等傳)」 388권 「계량등전(桂良等傳)」
문경 · 문상 · 보윤 숙순 · 목음 · 초우영 계량 · 서린 · 관문 · 문욱
389권 「백준등전(柏俊等傳)」 390권 「가정등전(賈楨等傳)」 391권 「왜인등전(倭仁等傳)」
백준 · 인괴 · 서상 · 전경 가정 · 주조배 · 주봉표 · 단무겸 왜인 · 이당계 · 오정동
392권 「새상아등전(賽尙阿等傳)」 393권 「이성원등전(李星沅等傳)」 394권 「서광진등전(徐廣縉等傳)」
새상아 · 눌이경액 이성원 · 주천작 · 노숭광 서광진 · 엽명침 · 황종한
395권 「상대순등전(常大淳等傳)」
상대순 ,쌍복 왕금수 왕수동, · 장문경 · 도은배 ,다산, · 길이항아 · 나준전 · 서유임 · 왕유령
396권 「오문용전(吳文鎔等傳)」 397권 「육건영등전(陸建瀛等傳)」
오문용 · 반탁 · 등이항 육건영 · 양정문 · 청린 · 숭륜 · 하계청
399권 「여현기등전(呂賢基等傳)」
여현기 · 추명학 · 대희 · 장비 · 황종 · 도정걸 · 풍배원 · 손명은 · 심병원 · 장석경
400권 「하계진등전(何桂珍等傳)」 401권 「상영등전(向榮等傳)」
하계진 · 서풍옥 · 온소원 · 김광저 · 이맹군 · 조경현 상영 · 화춘 · 장국량
402권 「오란태등전(烏蘭泰等傳)」
오란태 · 등소량 · 주천수 · 요문선 · 문서 · 팽사거 · 장옥량 · 노점오 · 유계삼 · 서쌍래 · 구등룡 · 왕국재 · 호곤원 · 대문영
403권 「승보등전(勝保等傳)」 404권 「승격림심등전(僧格林沁等傳)」
승보 · 탁명아 · 진금수 · 덕흥아 승격림심 · 서통액 · 항령 · 소극금 · 하건오 · 전순 · 사영춘 · 악선
405권 「증국번전(曾國籓傳)」 406권 「낙병장등전(駱秉章等傳)」 407권 「강충원등전(江忠源等傳)」
증국번 낙병장 · 호림익 강충원 · 나택남
408권 「이속빈등전(李續賓等傳)」 409권 「탑제포등전(塔齊布等傳)」
이속빈 · 정예의 · 증국화 · 이속의 · 왕진 · 유등홍 · 장익풍 탑제포 · 필금과 · 다융아 · 포초,송국영 누운경 담등달, · 당인겸 · 유송산
410권 「팽옥린등전(彭玉麟等傳)」 411권 「이홍장전(李鴻章傳)」
팽옥린 · 양악빈 · 왕명산 · 손창개 · 양명해 · 사준여 이홍장
412권 「좌종당전(左宗棠傳)」 413권 「증국전등전(曾國荃等傳)」
좌종당 증국전 · 심보정 · 유곤일
414권 「이신전등전(李臣典等傳)」
이신전 · 소부사 · 이원길 · 유연첩 · 팽육귤 · 장시일 · 오유수 · 주남계 · 나봉원 · 이상화 · 소경연 · 오종국
415권 「황익승등전(黃翼升等傳)」
황익승 · 정의방 · 왕길 · 오가방 · 이성모 · 이조빈 · 강복산 · 유배원
416권 「정학계등전(程學啟等傳)」
정학계 · 하안태 · 정국괴 · 유명전 · 장수산 · 주성파 · 주성전 · 반정신 · 오장경
418권 「원갑삼등전(袁甲三等傳)」 419권 「낙병장등전(左宗棠傳)」 420권 「한초등전(韓超等傳)」
원갑삼 · 모창희 유장우 · 유악소 · 잠육영 한초 · 전흥서 · 증벽광 · 석보전
421권 「심조림등전(沈兆霖等傳)」
심조림 · 조육영 · 허내보 · 조광 · 주준 · 이함 · 장상하 · 나돈연 · 정돈근 · 방종로
422권 「왕무음등전(王茂廕等傳)」
왕무음 · 송진 · 원희조 · 문서 · 육록 · 서계여 · 왕발규 · 염조윤 · 뇌이함 · 도양 · 오존의 · 은조용
423권 「종직진등전(宗稷辰等傳)」 424권 「오진역등전(吳振棫等傳)」
종직진 · 윤경운 · 왕증 · 목집향아 · 유백천 오진역 · 장량기 · 모홍빈 · 장개숭
425권 「이혜등전(李僡等傳)」 426권 「왕경운등전(王慶雲等傳)」
이혜 · 오당 · 영한 · 유용 · 교송년 · 전정명 · 오원병 왕경운 · 담정양 · 마신이 · 이종희 · 서종간 · 왕개태 · 곽백음
451권 「이조의등전(李朝儀等傳)」
이조의 · 단기 · 정수창 · 증기봉 · 저유립 · 서철산 · 계중행 · 유함방 · 진횡거 · 유지개 · 이용청 · 이금용 · 김복증 ,웅기영 사복가, · 동조용
452권 「홍여규등전(洪汝奎等傳)」
홍여규 · 양종렴 · 사박 · 사극관 · 심보정 · 주기앙 ,주기조, · 종원한 · 서경장 · 서진 · 괴광전 · 진휼성 · 반민표 · 엄작림 · 당석진 · 누춘번
457권 「장동재등전(蔣東才等傳)」
장동재 · 이남화 · 동리고 · 동전승 · 우사한 · 조덕경 · 마복진 · 정문병 · 방요 · 등안방
458권 「서연욱등전(徐延旭等傳)」
서연욱 · 당형 · 하경 · 장조동
459권 「풍자재등전(馮子材等傳)」
풍자재 · 왕효기 · 진가 · 장종한 · 소원춘 · 마성치 · 왕덕방 · 장춘발 · 소득룡 · 마유기 · 오영안 · 손개화 · 소득승 · 장고원 · 구양이견
460권 「좌보귀등전(左寶貴等傳)」 461권 「송경등전(宋慶等傳)」
좌보귀 · 원영산 · 등세창 · 유보첨 · 대종건 송경 · 여본원 · 서방도 · 마옥곤 · 의극당아 · 장순
462권 「정여창등전(丁汝昌等傳)」 463권 「당경숭등전(唐景崧等傳)」
정여창 · 위여귀 · 엽지초 당경숭 · 유영복
464권 「이단분등전(李端棻等傳)」
이단분 · 서치정 · 진보함 · 황준헌 · 증화 · 양심수 · 양예 · 유광제 · 담사동 · 임욱 · 강광인
465권 「서동등전(徐桐等傳)」 466권 「서용의등전(徐用儀等傳)」
서동 · 강의 · 조서교 · 고아랍계수 · 하영년 · 희탑랍유록 · 육현 서용의 · 허경징 · 원창 · 토묵특입산 · 최가연원
471권 「성선회등전(盛宣懷等傳)」 472권 「육윤상등전(陸潤庠等傳)」
성선회 · 서징 육윤상 · 세속 · 이극탄 · 양정분 · 서방 · 노내선 · 심증식
473권 「장훈등전(張勳等傳)」 474권 「오삼계등전(吳三桂等傳)」 475권 「홍수전전(洪秀全傳)」
장훈 · 강유위 오삼계 · 경정충 · 상지신 · 손연령 홍수전
476·477·478·479권 「순리전(循吏傳)」
백등명 ,탕가상 임진단 우종요, · 송필달 · 육재신 · 장목 ,장훈(張塤), · 진여함 · 목수 ,진시림, · 요문섭 ,황정린, · 낙종린 ,최종태 조진조, · 조길사 · 장근 · 강고 ,장극억 가박, · 소사요 ,위입정 고음작 근양, · 최화 · 주중횡 · 유계 · 도원순 · 요기형 · 동국롱 · 육사 · 공감 · 진덕영 · 예복전 · 장림 · 염요희 · 남정원 · 엽신 · 시초정 · 진경문 · 주인룡 · 동화 · 이위 · 사중훈 · 이대본 · 우운진 · 장견도 · 소대업 · 주극개 ,정기 강기연 언여사 주제화, · 왕휘조 ,여돈화 주휴도, · 유대신 · 오환채 · 기대규 · 소희증 · 장길안 ,이육창, · 공경한 · 개방필 · 사소등 · 이갱예 · 이병수 · 적상경 · 장돈인 · 정돈윤 · 이문경 · 유체중 ,유후, · 장기 ,석가소, · 유형 ,서동, · 요간지 · 오균 · 왕조겸 · 조근 · 계초만 · 장작남 · 운무기 · 서대영 · 우수매 · 하왈유 · 오응연 · 유병림 ,진숭지 하자령 소세본, · 이병도 ,유주 주근인 추종준 왕무훈, · 괴덕모 · 임달천 · 방대제 · 진호 · 양영서 · 임계 · 왕인복 · 주광제 · 냉정형 · 손보전 · 가소경 · 도관준 · 진문불 · 이소 · 장해 · 왕인감
480·481·482·483권 「유림전(儒林傳)」
손봉기 · 황종희 · 왕부지 · 이옹 · 심국모 · 사문존 · 고유 · 탕지기 · 육세의 · 심윤 · 응휘겸 · 주학령 · 심호정 · 백환채 · 호승락 · 조본영 · 유원록 · 안원 · 이공 · 조포 · 이내장 · 이광파 · 장형양 · 왕무굉 · 이몽기 · 호방 · 노사 · 고동고 · 맹초연 · 왕불 · 요학상 · 당감 · 오가빈 · 유희재 · 주차기 · 성유 · 소의진 · 고염무 · 장이기 · 만사대 · 호위 · 모기령 · 염약거 · 혜주역 · 진후요 · 장림 · 임계운 · 전조망 · 심융 · 강영 · 저인량 · 노문서 · 전대흔 · 왕명성 · 대진 · 단옥재 · 손지조 · 유대공 · 공광삼 · 소진함 · 왕염손 · 왕중 · 무억 · 장술조 · 척학표 · 정걸 · 손성연 · 왕빙진 · 능정감 · 계복 · 강성 · 전대소 · 허강좌 · 공음식 · 육기 · 광계
484·485·486권 「문원전(文苑傳)」
487·488·499·490·491·492·493·494·495·496권 「충의전(忠義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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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용순 · 오번창 오겸목 · 주정 · 적요 · 이경염 · 왕호 · 황농 · 조형 · 황가장 · 정명윤 · 유종수 · 하복한 · 허계각
500·501권 「유일전(遺逸傳)」
502·503·504·505권 「예술전(藝術傳)」
506 · 507권 「주인전(疇人傳)」
설봉조 · 공사연 · 왕석천 · 방중통 · 매문정 · 명안도 · 유상규 · 왕문계 · 주홍 · 박계 · 허여란 · 이황 · 왕래 · 진걸 · 시왈순 · 이예 · 낙등봉 · 항명달 · 정취충 · 사가화 · 오가선 · 나사림 · 고관광 · 좌잠 · 증기홍 · 하란상 · 추백기 · 이선란 · 화형방
508·509·510·511권 「열녀전(列女傳)」
518·519·520·521·522·523·524·525권 「번부전(藩部傳)」
526·527·528·529권 「속국전(屬國傳)」
조선 · 유구 · 월남 · 면전 · 섬라 · 남장 · 소록 · 구르카 · 호한 · 보노특 · 합살극 · 안집연 · 마이갈랑 · 나목간 · 탑십간 · 바다흐샨 · 박라이 · 아부한 · 감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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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자들의 연구결과에서 나온 키이다.[2] bürin ǰasaɣči qaɣan. 현대 몽골어로 Бүрэн засагч хаан (Büren Zasagch Khaan)[3] 58세까지만 산다고 가정해도 1915년이다. 동갑인 인물들 중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939년, 필리프 페탱1951년까지 살았다.[4] 사실 동태후는 온화한 성격이라 권력욕이 강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동태후가 아예 안 나선 것은 아니었다. 대체로 서태후의 말에 동의한 편이었다지만 간혹 두 태후는 충돌했다.[5] 효철황후의 생모가 정친왕 단화(鄭親王 端華)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정친왕 단화의 처는 동태후의 고모이기도 하다. 정친왕 단화와 그의 아우 숙순(肅順)은 서태후가 정권을 잡기 전 최대의 정적이었고, 서태후의 권력독점을 저지하였기에 서태후가 그들을 증오했다. 정친왕 단화와 숙순을 제거한 신유정변 이후에서야 서태후는 온전히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6] 광서제의 후궁인 진비와 달리 서태후가 죽이지 않은 것은 정실 황후인데다 임신을 하였고 동태후가 살아있었고 반목을 겪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신 중에 금조각으로 자살을 할 정도면 서태후의 핍박이 상상 그 이상으로 심각했을 가능성이 높다.[7] 조선통리기무아문의 모델이기도 했다.[8] 이 슬로건 역시 조선의 동도서기(東道西器)에 영향을 미쳤다.[9] 태평천국을 무너뜨리며 강남을 다시 평정하였으며, 러시아와의 국경도 확정하였고 서양도 그나마 덜 청나라에 간섭했다.[10] 단, 잔당은 1866년까지 활동했다.[11] 함풍제의 동생. 즉, 동치제의 삼촌이다. 이름은 아이신기오로 이힌(愛新覺羅 奕訢). 베이징 조약 체결에 앞장섰다. 동치제의 즉위 직후 서태후와 손을 잡고 이친왕 재원(怡親王 載垣), 정친왕 단화(鄭親王 端華), 숙순(肅順) 등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았으나 이후 경계를 받아 1865년에는 의정당 대신에서 물러나면서,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다.[12] 러시아도 1860년에 연해주를 얻는 선에서 만족한 상황.[13] 이 내용은 마오쩌둥주치의였다가 미국으로 망명한 리즈수이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혔다. 리즈수이의 조상이 동치제를 치료한 황실 어의였는데, 동치제가 유곽을 즐겨 다니면서 창녀들과 음란한 놀이를 즐기다가 매독에 걸렸다고 말하자 서태후가 분노하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윽박질렀다고 한다. 청나라 최후의 환관 중 하나였던 신슈밍이 지은 책 자금성, 최후의 환관들에서는 동치제가 매일 밤마다 환관들이 입는 평상복을 입고 심복으로 부릴 환관 하나와 함께 유곽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이에 환관 중 하나가 그러지 말라고 간언했으나 듣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환관들은 이 소식을 공친왕에게 알렸고, 공친왕 역시 유곽에 드나드는 것은 황제가 할 일이 아니라고 했으나 동치제는 "네 장남이나 똑바로 관리해라"고 일갈하고는 무시했다고 하며, 세간에 병명이 천연두로 알려진 것은 어의가 차마 황제가 성병에 걸렸다고 고하지 못하여 우물쭈물하다가 천연두라고 둘러댄 탓이라고 하는데, 이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었다고 한다. 당시 청나라의 야사에 의하면 동치제는 1류 유곽에 가면 고관대작이나 부자들이 자기를 알아보고 소문을 낼까봐, 2류 유곽에 가면 중하급 관리들이 자기를 알아보고 소문을 낼까봐 일부러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3류 유곽에 자주 들렀다고 한다.# 당연하지만 3류 유곽일수록 허름하고 질도 안 좋아서 성병 노출 위험도 커진다.[14] 사실 청나라의 번국이란 것도 지극히 형식적인 것이었고, 이미 일본의 지배하에 있던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여하간 류큐는 1872년 일본의 번이 되었고, 1879년엔 강제로 합병당한다.[15] 한국에서는 <후궁:천년금애>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다.[16] 어머니가 프랑스인인 혼혈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