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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주의 마르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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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AD3F9><colcolor=#000000> 잉글랜드 헨리 6세의 왕비
앙주의 마르그리트
Marguerite d'Anjou
파일:Margaret_of_Anjou.jpg
19세기 상상화
이름 프랑스어 앙주의 마르그리트
(Marguerite d'Anjou)
영어 앙주의 마거릿
(Margaret of Anjou)
출생 1430년 3월 23일
프랑스 왕국 로렌 퐁타무송
사망 1482년 8월 25일 (향년 52세)
프랑스 왕국 앙주
배우자 헨리 6세 (1445년 결혼 / 1471년 사망)
자녀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
아버지 앙주의 르네
어머니 로렌 여공작 이자벨
형제 , 루이, 니콜라, 욜랑드, 샤를, 루이, 안
종교 가톨릭
1. 개요2. 생애
2.1. 유년기2.2. 결혼2.3. 장미 전쟁2.4. 말년
3. 여담4. 대중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잉글랜드 왕국헨리 6세의 아내이자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의 어머니.

장미 전쟁에서 랭커스터 가문을 이끌어 요크 가문과 맞서싸웠다.

2. 생애

2.1. 유년기

1430년에 나폴리시칠리아의 왕이자 앙주 공작 르네로렌 여공작 이자벨의 차녀로 태어났다. 마거릿은 어린 시절을 주로 프로방스카푸아에서 보냈다. 그녀는 매우 활동적이고 변덕스러운 성격이었으며, 사냥을 즐겼다고 한다. 또한 매우 아름답고 총명했다.

그녀의 어머니 이자벨은 자식들의 교육에 관심이 많아 프랑스의 유명한 학자이자 작가인 앙투아 드 라 살이 아이들을 가르치게 했다. 또한 이자벨은 남편 못지 않게 통치자로 활발한 활동을 한 여성인데, 남편을 대신해 영지를 통치하거나 직접 군대를 이끌곤 했다.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은 훗날 마거릿의 행보에 영향을 주었다.

2.2. 결혼

1445년에 샤를 7세가 잉글랜드와 맺은 평화 협약의 조건 중 하나로 샤를 7세의 친척[1]인 마거릿은 잉글랜드의 국왕과 약혼하게 되었다. 당시 프랑스와 잉글랜드는 백년전쟁의 막바지에 향하고 있었다.1445년 4월에 15살의 마거릿은 8살 연상인 헨리 6세와 결혼해 잉글랜드의 왕비가 되었다. 똑똑하고 다부진 마거릿은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고 고국인 프랑스에게 유리하도록 영국 왕실에게서 협상을 이끌어냈다. 이로인해 잉글랜드 대중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지 못했다.

1453년에 유일한 자식이자 외아들인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를 낳았다. 그러나 당시에 헨리 6세는 자기 자식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상태였다. 또한 결혼 후 8년만에 갑자기 생긴 자식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에드워드가 왕의 친자식이 아닐 것이라고 의심했다. 때문에 마거릿은 자신과 정치적 유대 관계에 있던 서머셋 공작 또는 월트셔 백작과 불륜 관계라는 루머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마거릿은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닌 남편 대신 국정을 돌보았다.

2.3. 장미 전쟁

잉글랜드의 국정은 마가릿이 안심할 수 없는 형태로 흘러갔다. 헨리 6세는 백년전쟁에서 패배하고 정신적 문제를 보이면서 왕의 자질을 의심받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날이 권세가 높아지던 요크의 리처드가 마거릿과 정치적으로 대립했다. 마거릿은 위협을 느끼고 그의 정적들을 도우는 등 견제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는 리처드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고 리처드는 요크 가문을, 마거릿은 랭커스터 가문을 지지하는 세력을 각각 모았다. 1455년, 요크 공작이 왕좌를 노리고 군사를 일으키면서 장미 전쟁이 발발했다.

마거릿은 남편을 대신해 아들과 함께 군대를 이끌었다. 반복되는 전투 끝에 1460년 12월에 웨이크필드 전투에서 리처드를 죽이는데 성공한 마거릿은 리처드의 목을 잘라 요크 성문에 효수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리처드의 뒤를 이은 그의 아들에게 쫓겨 마거릿과 그녀의 아들 에드워드는 도주하였다. 리처드의 아들은 에드워드 4세로 즉위했고, 헨리 6세는 사로잡혀 런던탑에 감금당했다.

웨일스스코틀랜드를 지나 도망가던 마거릿은 프랑스로 향했다. 그리고 사촌인 루이 11세와 동맹을 맺었다. 루이 11세는 에드워드 4세와의 반목 끝에 반란을 일으키고 프랑스로 도피한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을 받아들여 마거릿과의 화해를 중재했다.[2] 마거릿은 리처드 네빌의 막내딸 앤 네빌과 자신의 아들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를 결혼시키면서 그와 손을 잡았다. 1470년에 랭커스터 가문은 반격에 성공했다. 감금되어있던 헨리 6세는 복위하고 마거릿은 잉글랜드로 돌아갔다. 그러나 몇달 후 에드워드 4세가 돌아와 왕위를 탈환하였다. 1471년, 마지막 전투인 튜크스베리 전투에서 마거릿의 군대는 대패하고 아들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는 전사했다. 헨리 6세는 살해되었고 마거릿은 포로로 붙잡혔다. 크게 상심한 마거릿은 남편이 갇혀있었던 런던탑에 감금되었다.

2.4. 말년

1475년에 루이 11세가 몸값을 지불하면서 마거릿은 프랑스로 돌아갔다. 마거릿은 프랑스로 돌아간 뒤 7년을 더 살고 앙주에서 사망하였다.

3. 여담

지적 욕구가 높았으며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잉글랜드의 왕비로 있는 동안 케임브리지 대학교퀸스 컬리지 설립을 후원했다.

4. 대중매체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6세와 리처드 3세에서 권력욕이 강하고 무지비한 인물로 등장한다. 해당 연극을 모티브로 하는 만화 장미왕의 장례 행렬에서도 초반에는 냉혹하고 권력욕이 부각되나 공녀시절 프랑스 영웅 잔다르크를 동경해 검술을 익히고, 이후 잉글랜드의 왕비가 되어 왕실을 장악한 권신들을 몰아내고 연약한 남편을 대신해 장미전쟁을 이끄는 등 랭커스터 왕조의 마지막 버팀목이자 강인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2013년 BBC 드라마 《The White Queen》에서는 벨기에 출신 배우 벨 배턴스가 연기했다.

영국 BBC에서 셰익스피어 희곡들을 원작으로 방영하는 연작 시대극 《The Hollow Crown》에서 소피 오코네도가 연기했다.[3]

얼음과 불의 노래의 저자 조지 R.R. 마틴은 주역급 인물 중 하나인 세르세이 라니스터의 모티브를 앙주의 마르그리트에게서 따왔다고 밝혔다.


[1] 샤를 7세의 아내 앙주의 마리가 아버지 르네의 누나이자 마거릿의 고모였다. 즉 마거릿은 샤를 7세의 처조카이자 루이 11세의 이종사촌인샘[2] 리처드 네빌은 에드워드 4세의 사촌으로 헨리 6세를 몰아내고, 에드워드 4세를 옹립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요크 왕조의 일등공신이였다. 때문에 역사상 최초로 킹메이커로 불릴만큼 에드워드 4세의 집권 초기에 가장 큰 세력을 누린 인물이다. 그만큼 앙주의 마거릿에게 있어서 리처드 네빌은 원수나 다름없었다. 참고로 리처드 네빌이 에드워드 4세를 배신한 이유는 그가 자신이 주선한 프랑스의 공주가 아닌, 평민인데다 랭커스터를 지지한 가문 출신인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멋대로 결혼했기 때문이였다.[3] 다만 소피 오코네도는 흑인 배우로 실제 역사상 백인이었던 마르그리트와는 명백히 고증오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