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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 쇼헤이/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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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타니 쇼헤이의 야구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다.

2. 프로 이전

2.1. 리틀야구~고교야구

1994년 (헤이세이 6년) 7월 5일 일본 이와테현 오슈시[1] 출생인 오타니는 사회인 야구선수 출신인 아버지와 배드민턴 선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리틀리그에 출전하면서 야구를 시작해 전국대회 출장을 이뤄냈으며, 중학교로 진학해서도 이치노세키 리틀 시니어에 소속하면서 전국대회에 출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지역 출신인 기쿠치 유세이를 동경하여 기쿠치의 출신고교인 하나마키히가시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기쿠치를 너무나도 동경하였기 때문에, 고교 시절 기쿠치의 등번호였던 17번을 1학년 때 달았다.
파일:external/bibobibobibo.up.seesaa.net/ota.jpg

고교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학년 봄부터 4번타자 우익수로 공식전에 출전하더니 가을부턴 고교 에이스 투수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최고구속 147km/h를 기록하기도 했다. 2학년으로 진급하면서 등번호를 11번으로 바꿨다. 그리고 2학년 봄엔 최고구속 151km/h를 기록하더니 하계 코시엔 대회에선 1차전에서 4회부터 등판해 150km/h를 기록, 다나카 마사히로에 비견되는 고교 2년생 최고구속 타이기록을 세웠다. 다만 이 경기에선 훗날 팀메이트가 되는 마츠모토 고에게 결승 적시타를 맞아 패전하며 2차전 진출에 실패했다. 3학년 때 춘계 고시엔에서 11사사구 9실점으로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하계 도내대회 준결승전에선 아마추어 야구 사상 최초 160km/h를 던져버리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모리오카대학부속고와의 결승전에서 거짓말같이 5실점 당하며 눈 앞에서 고시엔 우승을 놓친다.
파일:external/a378d5c4e67ba5aee663e950b274178a319f2d6392d49e0714529fcd94dd1258.jpg

고시엔 통산성적은 14이닝 평균자책점 3.77 16탈삼진 타율 0.333 1홈런.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라는 점 때문인지 고교 시절엔 제구력 불안으로 사사구 허용도 많고 성적도 영 좋지 않다. 오타니는 고교 시절 타자로서 재능이 투수로서의 재능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에 투수를 할 기회 자체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면도 있다. 고교 시절 팀 내에 또 다른 투수로는 오하라 다이키(小原 大樹)가 있었는데[2] 하나마키히가시의 2012년 에이스 넘버인 1번은 선발 고시엔 때나 여름 고시엔 예선 때나 오타니의 것이었고 오하라는 오타니가 부상일 때 또는 휴식을 취해야 할 때 대신 선발로 나오는 선수였다. 다만, 그럼에도 오타니는 졸업 당시 고교야구 최고의 타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지만, 투수로서는 그보다 잘 던진 고시엔 에이스급 투수들이 50명 이상 있었던, 투수로는 아직 미완의 투수였다. #

훗날 애너하임 입단 후 나온 TV 인터뷰 영상에서 오타니 본인은 고교 시절 투수보다 타자가 더 자신 있었다고 한다. "왜 나는 투수 평가가 더 높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고 미국에서 평가는 "투수 오타니"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교 시절 감독도 미국에서는 "투수 오타니" 만 생각했고 감독 본인도 그렇게 생각 했다고 한다. 비교적 일본구단들은 "타자 오타니" 의 평가가 상당히 높았다고 한다.[3]

이런 괴물급 성적의 이면에는 고교 시절 감독의 배려와 꾸준한 관리도 한몫했다. 감독이 오타니의 투구를 보고 "이 녀석은 일본의 보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근육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그냥 외야수로 뛰게 하였고 근육이 갖춰진 후에도 투구수 관리를 하며 다 던지면 지체없이 교체해 주었다. 한국보다 더 심하게 고교 에이스 혹사로 유명한 일본에서는 매우 보기 드문 일.[4] 오타니 역시 감독님이 자신을 제어해준 부분에 대해 감사의 마음이 크며, 일본 최고가 돼서 꼭 은혜를 갚고 싶다는 인터뷰를 하였다.

이처럼 고교 시절부터 웬만한 프로선수도 던지기 힘든 160km/h를 던진 점과 훌륭한 체격은 일본 프로야구 구단 뿐만 아니라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구단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고 오타니 본인도 "나는 메이저리그를 동경해왔다. 젊었을 때 메이저에 가고 싶다"라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 의지를 표명하면서 보스턴 레드삭스, 텍사스 레인저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 다수의 메이저리그 팀들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3. 프로 경력

3.1. NPB

일본프로야구의 드래프트에 앞서 오타니는 일찌감치 메이저 리그 진출을 선언하면서 "지명해도 메이저로 갈 것이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선수가 안가겠다고 미리 선언하건말건 무조건 최고 선수를 지명한다는 상남자 드래프트 전략을 가진 닛폰햄은 이러한 오타니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오타니를 그대로 강행 지명했고 야마다 마사오 단장, 쿠리야마 히데키 감독, 팀의 주축선수인 이나바 아츠노리[5]까지 나서서 오타니에게 지리한 구애를 펼치게 되었다.

구단 측에서도 어려운 교섭이 될 것이라 예상했으나, 야마다 단장은 "스가노 도모유키에 이어서 1차지명 선수에게 다시 퇴짜맞는다면 내가 책임지겠다!"라는 말을 남기며, 배수의 진을 펼쳤다.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철회하라고 어르는 대신 야구계 뿐만 아니라 타 스포츠까지 망라한 실제 자료[6], 스탯, 그리고 해설자로서 그를 지켜봐온 쿠리야마 감독의 메시지를 통해 오타니와 가족을 설득했다.

교섭 당시 닛폰햄은 오타니에게 약 30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제시했는데, 그 내용이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직행한 선수는 어떤 성과를 냈을까라는 내용. # 이 자료는 협상 이후 닛폰햄 파이터즈 홈페이지에 아카이브 자료로 올라갔으며 후에 공개가 종료되었고 다른 곳을 통해 볼 수 있다. # 2006년 이전에는 고졸 선수 중 메이저리그에 콜업된 선수가 네 명[7]이 있지만 2006년 이후 진출한 21명의 선수 중 단 1명도 메이저를 밟아보지 못했다는 자료[8]와 더불어 1차지명을 거부하고 미국에 진출했었던 남윤성(개명 전 남윤희)[9]과 한국에서 커리어를 쌓다가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LA 다저스와 빅딜을 체결한 류현진을 비교한 내용도 있다. 참고로 체육계 인맥이 넓은 스카우팅 디렉터 오부치 다카시가 이 자료를 10일간 작성했는데, 야구 뿐만 아니라 타 스포츠계의 사정도 담기 위해 일본축구협회, 일본육상경기연맹 관계자와 J리그 몬테디오 야마가타 감독, 일본레슬링협회 강화위원장 등에게 자료작성, 제공 협력을 구하는 등[10] 닛폰햄이 상당히 공을 들였다. 이 보고서 내용은 일본 야구팬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

3.1.1.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기나긴 삼고초려 끝에 결국 오타니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이 많다"라며 메이저리그 진출을 철회했고 닛폰햄 입단을 결정했다. 계약조건은 계약금 1억엔, 성과급 5,000만엔, 연봉 1,500만엔, 그리고 투타겸업 보장. 항간에 의하면 5년 후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 리그 진출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고 한다.
파일:오타니 파이터즈.jpg
배번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텍사스 레인저스로 간 다르빗슈 유의 11번을 제공했는데, 이에 대해 다르빗슈 유의 아버지인 파르사 다르빗슈는 닛폰햄이 구단의 역사를 소중히 다루지 않는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물론 영구결번을 시켜놓았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수년간 구단을 대표하는 선수였는데 해외로 떠난 바로 다음 해에 다른 선수에게 번호를 넘겨줬으니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쨌든 오타니의 닛폰햄 입단은 일본 내에서도 큰 화제를 낳았고, 캠프 견학투어 신청이 급증하거나 신인 입단식 최초로 스폰서가 붙는 등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관해 오타니의 고교 시절부터 닛폰햄 파이터즈 입단까지의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도 만들어졌다.

에인절스에서 함께 활약했던 마이크 트라웃도 2021년 인터뷰에서 오타니가 미국 마이너에서 출발한 것보다 일본에서 출발한 것이 "절대적으로(absolutely)" 그에게 더 좋은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
3.1.1.1.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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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2.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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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3.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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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4.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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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5.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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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MLB

예상대로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 리그 진출을 선언했다. 일본 스포츠매체 '스포니치 아넥스'는 10일 닛폰햄 구단의 고위 관계자들이 일본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타니의 포스팅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 이적을 허용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기자회견에는 다케다 노리무네 닛폰햄 사장을 비롯해 구리야마 히데키 감독이 참석해 "기자회견을 가지기 전에 오타니와 만나 메이저리그 도전 의사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구리야마 감독은 "오타니는 아직 더 성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곧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응원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

사실 오타니는 일본에서 9년을 채우고 자유계약을 통해 미국으로 가면 더 많은 돈을 챙길 수 있다. 하지만 오타니는 조금이라도 빨리 MLB 진출을 원했고[11] 그래서 선택한 것이 포스팅 시스템이다. 사실 포스팅으로 미국에 가게 되면 2000만 달러라는 계약금 상한선과 더불어 메이저리그 선수노조 규약에 따라 마이너리그 계약으로만 진행이 가능하다. '풀카운트' 등 일본 매체에 따르면, 오타니는 11월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전날 공식적으로 나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허락한 구단, 그리고 구리야마 감독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면서 "내년부터 미국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구단과 일본 야구계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늘 고민했다. 신세를 잊지 않고 보답하기 위한 마음을 늘 가지도록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

메이저에서도 이도류를 지향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나와 교섭에 임해 준 스카우트 분이나 쿠리야마 감독, 극소수의 분들이 마음에 그린 이도류였지만 5년간 정말 많은 팬들에게 응원을 받았다. 이제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있다. 다만 그런 환경이 되는지 몰라서 (미국 구단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그런 환경이 되는지 안되는지 몰라서 말을 들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파이터스에 갈 때도 그랬지만, 허락해주지 않으면 도전도 못한다. 내 마음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소수의 사람밖에 마음에 그리지 못했는데, 지금은 팬들과 쿠리야마 감독, 코치 분들 등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 분들 몫도 노력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다. 우선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다. 구단에게 일본 야구계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지 하는 것은 자문했던 부분이다. 그것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그래도 2가지 해와서 좋았다고 생각하며 안 보이던 부분이 나타난 것도 있습니다."라고 했다. #

다른 기사에서는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고등학교에서 뛸 때부터 주변 사람들은 ‘투타겸업’이라는 아이디어에 대해 부정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내가 뛰어난 활약을 펼치면 펼칠수록 많은 사람들이 나의 도전을 지지해주고 있다. 나는 나를 지지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히 뛰고 있다. 물론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게 된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어떻게 할지 결정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

3.2.1.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MLB에 입성한 오타니의 행선지는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로 결정되었다. CAA에 따르면 서부지역과 스몰마켓을 선호한다는 것은 아니고 리그와 구단 규모와 상관없이[12] 에인절스 측에 '강한 유대감'을 느껴 입단을 결정했다고 한다.[13]
파일:오타니 에인절스.png
MLB.com, ESPN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에인절스는 다른 구단과는 달리 오타니의 투타 겸업에 '날짜 제한'을 두지 않겠다고 약속했고,[14] 이것이 영입전 승리의 원동력이 된 것으로 보인다.#[15] 또한 선수들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기다려주는 마이크 소시아 감독 특유의 성향 또한 한 몫한 것으로 짐작된다.

에인절스에서는 등번호 17번을 부여받았다.
3.2.1.1. 2018 시즌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18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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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2.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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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3. 20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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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4. 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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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5. 20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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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6. 2023 시즌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2023년 MLB AL 각종 수상 및 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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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F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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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오타니는 본인이 다저스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로 "지난 10년을 실패라고 생각한다" 는 구단 경영진의 말이었다고 언급했다. 그만큼 다저스의 이기고 싶다는 의지가 크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파일:20240209_092225.jpg
등번호 17번은 조 켈리에게 양보 받는 대가로 켈리의 아내에게 포르쉐 타이칸을 선물하였다.[16]
3.2.3.1. 20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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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국가대표 경력

파일: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워드마크.svg
파일:emy8rx6z8ypa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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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연도별 주요 성적

  • 볼드체는 리그 1위 기록.

5.1. 투수 성적

5.1.1. NPB

파일:NPB 로고.svg 오타니 쇼헤이의 역대 NPB 투수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ERA+ WAR
2013 닛폰햄 13 3 0 0 0 61⅔ 4.32 57 4 33 8 46 1.46 85 0.5
2014 24 11 4 0 0 155⅓ 2.61 125 7 57 4 179 1.17 137 5.8
2015 22 15 5 0 0 160⅔ 2.24 100 7 46 3 196 0.91 175 7.4
2016 21 10 4 0 1 140 1.86 89 4 45 8 174 0.96 189 6.2
2017 5 3 2 0 0 25⅓ 3.20 13 2 19 0 29 1.26 127 0.6
<rowcolor=#373A3C> NPB 통산
(5시즌)
84 42 15 0 1 543 2.52 384 24 200 23 624 1.09 149 20.5
파일:NPB 로고.svg 오타니 쇼헤이의 역대 NPB 투수 포스트시즌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결과
2014 닛폰햄 2 1 0 0 0 13 4.85 4 3 19 1.15 CS2 탈락
2015 1 0 1 0 0 2.2 16.88 3 0 3 3.38 CS1 탈락
2016 3 1 1 1 0 14 1.93 6 0 19 0.86 JS 우승
<rowcolor=#373A3C> NPB 통산
(3시즌)
6 2 2 1 0 29.2 4.55 13 3 41 1.21 JS 1승

5.1.2. MLB

파일:MLB 로고.svg 오타니 쇼헤이의 역대 MLB 투수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18 LAA 10 4 2 0 0 51⅔ 3.31 38 6 22 1 63 1.161 128 1.1 1.3
2020 2 0 1 0 0 1⅔ 37.80 3 0 8 0 3 6.600 14 -0.1 -0.4
2021 23 9 2 0 0 130⅓ 3.18 98 15 44 10 156 1.090 141 3.0 4.1
2022 28 15 9 0 0 166 2.33 124 14 44 2 219 1.012 172 5.6 6.2
2023 23 10 5 0 0 132 3.14 85 18 55 11 167 1.061 144 2.4 4.0
<rowcolor=#373A3C> MLB 통산
(5시즌)
86 38 19 0 0 481⅔ 3.01 348 53 173 24 608 1.082 143 11.9 15.1

5.2. 타자 성적

5.2.1. NPB

파일:NPB 로고.svg 오타니 쇼헤이의 역대 NPB 타자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2013 닛폰햄 77 204 45 15 1 3 14 20 4 12 64 .238 .284 .376 .660 0.2
2014 87 234 58 17 1 10 32 31 1 21 48 .274 .338 .505 .842 1.6
2015 70 119 22 4 0 5 15 17 1 8 43 .202 .252 .376 .628 -0.2
2016 104 382 104 18 1 22 65 67 7 54 98 .322 .416 .588 1.004 4.4
2017 65 231 67 16 1 8 24 31 0 24 63 .332 .403 .540 .943 1.9
<rowcolor=#373A3C> NPB 통산
(5시즌)
403 1170 296 70 4 48 150 166 13 119 316 .286 .358 .500 .858 7.9
파일:NPB 로고.svg 오타니 쇼헤이의 역대 NPB 타자 포스트시즌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결과
2014 닛폰햄 6 17 3 1 0 0 0 0 0 0 7 .176 .176 .235 .412 CS2
탈락
2015 1 1 0 0 0 0 0 0 0 0 1 .000 .000 .000 .000 CS1
탈락
2016 10 36 9 5 0 0 5 3 0 3 8 .281 .343 .438 .781 JS
우승
<rowcolor=#373A3C> NPB 통산
(3시즌)
17 54 12 6 0 0 5 3 0 3 16 .240 .283 .360 .643 JS
1승

5.2.2. MLB

파일:MLB 로고.svg 오타니 쇼헤이의 역대 MLB 타자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18 LAA 104 367 93 21 2 22 59 61 10 37 102 .285 .361 .564 .925 2.7 2.7
2019 106 425 110 20 5 18 51 62 12 33 110 .286 .343 .505 .848 1.7 2.5
2020 44 175 29 6 0 7 23 24 7 22 50 .190 .291 .366 .657 0.0 0.0
2021 155 639 138 26 8 46 103 100 26 96 189 .257 .372 .592 .965 5.1 4.9
2022 157 666 160 30 6 34 90 95 11 72 161 .273 .356 .519 .875 3.8 3.4
2023 135 599 151 26 8 44 102 95 20 91 143 .304 .412 .654 1.066 6.6 6.1
<rowcolor=#373A3C> MLB 통산
(6시즌)
716 2860 681 129 29 171 428 437 86 351 755 .274 .366 .556 .922 19.9 19.6


[1] 헤이세이 대합병 이전에는 미즈사와시. 미즈사와시(水沢市), 에사시시(江刺市), 마에사와초(前沢町), 이사와초(胆沢町), 코로모가와무라(衣川村) 등 5개 시정촌이 합병해 출범한 게 오슈시.[2] 이후 게이오기주쿠대학으로 진학했으며, 사회인야구에 진출하였다.[3] 드래프트 당시에는 투수로 지명.[4] 반면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후지나미 신타로는 오사카 토인고교 에이스로 고시엔에서도 많은 투구수를 감당하며 혹사당했고, 이후 한신 타이거스에 들어간 후에도 곧바로 주전 선발로 발탁받으며 마찬가지로 혹사당했다. 그리고 그 영향인지 2016시즌 이후부턴 제구가 무너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내리막길로 들어섰다.[5] 2017년에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된 그 이나바이다.[6] 한일 유튜버 박가네에서도 이 에피소드가 나왔는데 심지어 한국에서 고교 졸업 후 메이저 리그로 직행한 사례까지 첨부했다고 한다.[7] 봉중근, 백차승, 추신수, 류제국[8] 그나마 2006년 이후 진출한 선수들 중 메이저리그 콜업의 가능성이 있는 선수가 이학주였으나 콜업 전 한창 기량을 뽐내던 찰나에 부상을 당해 메이저의 꿈을 접었다. 2015년 치바 롯데 마린스에서 뛰게 된 이대은도 리스트에 있다. 이 21명의 선수 중 유일하게 최지만 단 한 명만 이 사건으로부터 4년이 지나서야 겨우 메이저리그를 밟아보게 된다.[9] 공교롭게도 남윤성은 텍사스에서 방출된 뒤 닛폰햄에서 입단테스트를 받은 적이 있다.[10] 이 때 LA 다저스 산하 마이너팀에 가 있는 일본인 마이너리그 선수들에게도 사전에 취재를 했다.[11] 오타니는 이후 술회하길 명예의 전당에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굳이 돈을 덜 받고 빠르게 메이저에 진출했다고 한다.# 물론 스즈키 이치로처럼 늦은 나이에 진출해도 명예의 전당이 보장된 커리어를 쌓은 경우도 있고, 오타니가 현재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페드로 마르티네스배리 본즈 등을 제외한다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웬만한 선수들도 한참 압도하는 수준이다.[12] 사실 에인절스도 알버트 푸홀스에게 10년 2.4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안겨줄 정도의 빅마켓 팀이긴 하다.[13] 에인절스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오타니는 "많은 팀들과 좋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도 "그 중 에인절스와 인연(유대감)이 있다고 느꼈다. 다른 팀들과 우열을 따지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에인절스가 좋은 팀이라고 생각했고, 함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 유대감이 무엇인지, 왜 느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특정 구단에 대한 어떤 느낌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그저 뭔가 잘맞을 거 같은 기분이 느껴졌다. 이 결정에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14] The Angels were the only team that would agree to let Ohtani both hit and pitch every day란 표현을 보았을 때, 요일에 관계 없이 하고 싶을 때 타격과 피칭을 하라는 뜻으로 보인다.[15] 기자 회견에서 투타 겸업에 대해 “나 자신과 팬들, 구단이 함께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미완성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응원으로 성장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타격과 투구 가운데 어느 쪽이 기대되느냐”는 질문에는 “두 가지 모두 다 기대하고 있다. 최고는 한 경기에서 두 개 모두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16] 켈리의 아내는 오타니가 다저스와 계약하기 전부터 SNS를 통해 남편의 17번 유니폼을 내다버리거나(...) 아들 이름을 쇼카이로 바꾸겠다는등 오타니의 다저스 입단을 적극지지하는 퍼포먼스를 보여 큰 화제가 되었던 바가 있으며 포르쉐는 오타니의 스폰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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