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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n University (OU) 오픈 유니버시티 / 개방대학 / 開放大學 | |
휘장 · 로고 | |
설립일 | 1969년 4월 23일 |
첫 개강 | 1971년 1월 3일 |
소재지 | 영국 버킹엄셔 밀턴킨스 |
웹사이트 | 홈페이지 오픈런(OpenLearn) 퓨처런(FutureLearn) |
SNS |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
1. 개요
밀턴킨스의 왈튼홀 캠퍼스의 동쪽 입구의 베릴 빌딩[1] |
또한 세계 최대의 대학이다. 2022년 기준 재학생이 21만 명, 교직원이 8천 명, 대학본부가 45만 제곱미터 가량에 달한다.[3] 45만 제곱미터면 대한민국 서울의 캠퍼스 중 6등인 건국대 수준으로 크다.
2. 역사
2.1. 설립 이전
이전까지는 '통신대학'이라 하여 우편물로 따는 학위만 있었다. 학사 학위를 주는 학습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1920년대 라디오와 텔레비전 기술이 보급되며 광범위한 청중에게 교육방송을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생겨났다.1956년, 사회학자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 능력주의를 타도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영국 노동당의 싱크 탱크로 중용되었다.
1963년, 해럴드 윌슨 총리 후보는 2월 휴가 때 '공중대학(University of the Air)'을 처음 구상했다. 9월 글래스고에서 이 계획을 공개적으로 연설하며 공약화했으며, 10월 1일 노동당 회의에서 대대적으로 연설했다. '기술의 백열'[4]이라고 불리는 이 연설은 기술과 저렴한 교육비를 통해 '기회의 평등'과 '계층 간 사다리'를 이룩해내리란 인간 찬가로서 "20세기 가장 기록적인 연설"로 기록되었다.
1964년, 해럴드 윌슨 내각이 집권하였고, 윌슨 총리는 제니 리(Jennie Lee)를 예술부장관(Minister for the Arts)에 임명한 뒤 대학 설립 프로젝트를 요청했다. 리 장관은 방송통신위원회 산하에 위원회를 구성하고 교육계-방송계 전문가들을 초빙해, 1966년 2월까지 백서를 발간한다.
1967년 9월, 내각이 '개방대학 설립 기획위원회'를 설치했다. 애스턴 대학교의 부총장 피터 베나블스(Peter Venables)가 위원장을 맡아, 설립계획, 헌장, 정관의 초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1968년 1월, 초대 총장을 구인하는 신문 광고를 실었고, 5월 월터 페리(Walter Perry)가 임명되었다. 10월 무렵 런던 벨그레이브 스퀘어 인근 빌딩에 임시 대학본부를 세웠다.
1969년 1월 27일, 기획위가 보고서를 발간했고, 테드 쇼트(Ted Short) 교육과학부장관은 하원에서 내각의 인가를 받았다. BBC가 입주해 있는 알렉산드라 궁전[5]에서 강의를 촬영하기로 했다. 1969년 4월 1일, 촬영장소와 가까운 밀턴킨스의 왈튼 홀(Walton Hall, 1970년에 건설된 장원의 사무실 건물)을 구매해 정식 대학본부로 삼고 그 주위에 캠퍼스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1969년 4월 23일, 영국 추밀원으로부터 영국 국왕의 칙허(Royal Charter) 즉 설립 인가를 받았다. 1969년 7월 23일, 왕립학회에서 개최된 전국 대학총장협의회에서, 윌슨 총리가 인가받은 대학의 헌장을 소개발표했다.
2.2. 설립 이후
1971년 1월 3일, 세계 최초로 방송으로 배우고 취득하는 학사과정을 도입했다. BBC Two 채널이었고, 25000명이나 받았다. 자연 수업 수강생에게는 가정용 현미경/플라스틱성형 세트가 배송되었다. 컴퓨터 수업은 휴렛 팩커드사의 HP 2000 컴퓨터로 BASIC 언어를 가르쳤다. 이를 시작으로 방송통신을 이용한 개방대학/원격대학들이 전세계에 들어서게 되었으며, 바로 다음 생긴 것이 1972년 대한민국의 한국방송통신대학교다. 오픈 유니버시티가 전세계 개방대학들의 설립과정에 컨설팅 업무를 수행했다.1973년 6월 23일, 첫 학위 수여식을 알렉산드라 궁전에서 했으며 BBC Two에서 이를 전세계 생중계했다.
1976년, 휴렛 팩커드사의 DEC 2040 컴퓨터(1MB CPU, 100MB HDD)를 도입해, 32명의 동시접속 수업이 가능해졌다. 또한 사이클롭스사의 텔레라이팅을 도입해, 오늘날 프레젠테이션처럼 교수가 전자보드에 쓰거나 그리는 내용을 컴퓨터화면으로 공유할 수 있게 했다.
1979년, 창립 10주년을 맞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캠퍼스를 방문했다. 이 해 영국 보수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며 정부지원금은 1/4 이하로 크게 삭감되었다.
1981년, 영국통신과 제휴해 텔레라이팅을 250개 지역대학(스터디센터)과 연결하고, 학생들이 튜터에게 질문할 수 있게 했다.
1985년, 비디오 테이프를 통한 녹화강의를 보내는 방식이 생겨났다.
1987년, 세계 최초로 온라인 도서관 검색을 도입했다. 하지만 평균 검색 비용이 아직 무려 20파운드였다. 1987년 당시 1파운드가 2달러 정도였고, 맥도날드 빅맥버거 가격 역시 세계적으로 2달러 정도였다. 즉 검색 한 번이 빅맥버거 20개어치나 했던 것이다.
1988년, 세계 최초로 가정 컴퓨터 수강을 도입했다. 수강생 2000명에게 IBM 사의 PC1512(512kb RAM,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는 없고 플로피 디스크로 부팅) 컴퓨터를 대여해주는 방식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당시 컴퓨터 가격이 2009년 대비 5배였기 때문. MS-DOS 2.1(운영체제), First Word Plus(워드프로세서), Lotus-123(스프레드시트), DacEasy Base(재무관리), Gem Paint(그림판), 인터넷의 개념을 가르쳤다.
1989년, 첫 경영대학원(MBA) 입학생을 받았다.
1990년, TV 방송시간이 야간으로 옮겨졌다. 비디오 녹화가 일상화되어, 야간에 녹화하고 나중에 봐도 되었기 때문.
1993년, CD-ROM이 수업자료로 도입되었다.
1996년, 월드 와이드 웹 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이에 기반해 1997년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판 운영을 시작했으며, 1998/1999년 세계 최초로 완전한 온라인 대학원/학부 과정을 도입했다.
2006년 10월, 오픈런(OpenLearn) 사이트를 개설했다. MOOC 열풍과 같이 강의자료를 무료개방하기로 하여, 학적이 없어도 볼 수 있게 했다.
2006년 12월 15일, 학위과정용 TV 방송을 종료했다.
2008년 2월, 세컨드 라이프와 제휴해 'OU 섬'/'OpenLife'라는 가상현실/메타버스 캠퍼스를 만들었다. 2012년 시점 유튜브 영상
2010년 중반, iTunes U 플랫폼을 통해서만 2천만 건 이상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했다. iTunes U엔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등 유명한 대학교가 엄청나게 많고 이들도 자료를 올리는데, 그 중 오픈 유니버시티가 다운로드 순위 1위를 한 것이다.
2012년 12월, 퓨처런(FutureLearn) 사이트를 개설했다. 역시 MOOC로 무료로 강의를 제공한다. 민자합작이라 SEEK와 지분을 공유한다.
3. 학제
정규과정에 등록하면 우편으로 교재를 보내준다. 인터넷을 통해 강의를 수강한다.모듈 당 30~60학점이며, 360학점을 취득하면 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일부 모듈은 의무 오프라인 참여가 있으나, 면제 및 참작 요소가 많다. 일부 모듈은 여름학교를 운영하기도 한다.
수강생들은 '튜터'(부강사)가 매칭되어 전화/인터넷으로 질문을 상담할 수 있다.
영국 국방부도 협정을 맺고, 타국에 파병된 현역 장병들이 현역이면서도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졸업 성적은 영국식 성적을 따르며, 2, 3학년 과정 학점만 반영된다. 3학년 성적에 가중치가 부여된다.
4. 출신 인물
5. 관련 문서
[1] 1997년 준공한 대학 방문자 접수처 겸 지식미디어연구소 건물. 1983~1996년 오랫동안 대학 이사회 의장을 맡아 온 케네스 베릴(Kenneth Berrill)의 이름을 기렸다. 베릴은 재무부 고문, 중앙정책국장, 증권위 의장, OECD-세계은행 고문 등을 섭렵한 경제학자로 기사 작위를 받았다.[2] 사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가 오픈 유니버시티를 모델로 삼은 최초의 대학이다(즉, 한국방송통신대학교는 세계 두번째 개방대학·원격대학). 영문명이 Korea National Open University인 것에서 이 사실을 알 수 있다.[3]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의 경우 재학생이 10만 명, 교직원이 1천 명, 대학본부가 2만 제곱미터 가량이다.[4] White heat of Technology. 백열등은 인류로부터 어둠을 몰아낸 위대한 발명의 상징이다. 그래서 '최첨단', '정점' 등의 뜻도 가진다.[5] 영국 왕실의 것이 아니라 공공청사다. 세계 최초의 엑스포인 1851 런던 엑스포를 주도한 건축가 오웬 존스가 인민의 레크레이션, 교육 등 일종의 공공청사인 '인민의 궁전'을 구상했고, 회사를 차려 자금을 모집해 1863년 건설했다. 최종 이름은 '인민의 궁전'이 아니라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왕비를 기리는 것으로 변경했다. 이후 1900년에 지방 당국이 인수하여 진짜 공공청사가 되었으며, 1935년부터 BBC에 방송국 공간으로 임대를 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