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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市旗) | 문장(紋章) | ||||
기본 정보 | |||||
국가 | 일본 | ||||
지방 | 홋카이도 | ||||
도도부현 | 홋카이도 소라치 종합진흥국 | ||||
면적 | 763.07km² | ||||
인구 | 6,125명[1] | ||||
인구밀도 | 8.03명/km² | ||||
시장(市長) | [[무소속(정치)| 무소속 ]] 아쓰야 쓰카사(厚谷司) | ||||
시의회 (8석) | |||||
의장(議長) | [[무소속(정치)| 무소속 ]] 고바야시 나오후미(小林尚文) | ||||
회파 | 공명당 (1석 / 11%) | ||||
일본 공산당 (1석 / 11%) | |||||
무소속 (6석 / 78%) | |||||
상징 | |||||
시화 | 진달래/철쭉(ツツジ) | ||||
시목 | 벚나무(サクラ) | ||||
유바리역 (2019년 4월 1일에 폐지되었다.)
컨트리 사인
夕張市 / ゆうばりし
[clearfix]
1. 개요
홋카이도 소라치 종합진흥국에 있는 도시. 지명의 유래는 아이누어로 '광천이 샘솟는 곳'이라는 뜻의 '유파로(ユーパロ)'. 면적은 763.2km²이고 인구는 약 6천 명. 일본에서 인근의 우타시나이시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적은 시이며, 우타시나이와 달리 유바리는 면적이 넓기 때문에 인구밀도는 유바리 쪽이 더 낮다. 한국으로 치면 우타시나이는 면 하나 정도, 유바리는 군 하나 정도 면적이다. 다만 시역의 동쪽 절반이 유바리타케의 산지이고 대규모 댐 수몰이 있어 거주가 가능한 면적은 서쪽을 남북으로 달리는 현 시가지 일대가 전부이다.삿포로시에서 약 61km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 특산의 최고급 멜론 품종과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등등으로도 알려져 있으나, 정작 유바리 얘기를 하면 일본인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막대한 지방 재정부채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한 도시이다.
현 홋카이도 지사로 재임중인 스즈키 나오미치가 8년간 시장을 역임했던 시인데, 도쿄도의 유바리시 파견 공무원으로 시작하여 유바리시 부채를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 도지사까지 진출하게 되는 정치적 발판으로 만들어준 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임 당시 중국 부동산 업자에게 매각한 관광시설이 약속한 투자와 경영개선은 없이 2019년 전매되는 등 자산매각 부실로 논란이 되고 있다.
도시의 성장과 쇠락 과정이 대한민국의 태백시랑 똑같다.
2. 인구
연도 | 인구 |
1950년 | 99,530명 |
1960년 | 107,972명 |
1970년 | 69,871명 |
1980년 | 41,715명 |
1990년 | 20,969명 |
2000년 | 14,791명 |
2010년 | 10,925명 |
2015년 | 9,362명[2] |
2019년 | 7,769명 |
2024년 11월 | 6,125명 |
전성기에 12만명까지 올랐던 인구는 2024년 10월 31일 기준으로 1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는 6,125명으로 급감했다. 전성기 시절 인구와 비교하면 무려 94.5%나 감소한 것이다. 2024년 12월 기준 한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기초자치단체인 울릉군(9,144명)보다도 인구가 적다.[3]
1943년 시로 승격한 이후 1950년에는 인구가 10만여 명에 이르러 일본 65위를 기록하였다. 당시 비슷한 순위의 도시는 후쿠이시(63위), 오미야시(64위), 키시와다시(66위), 마에바시시(67위) 등이 있었다.[4] 이 중 가장 인구가 적은 키시와다시도 인구가 19만명 정도는 되고, 사이타마시의 일부가 되어 있는 오미야시 지역의 경우 2001년 통폐합 당시 인구가 50만을 넘기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유바리시의 인구는 60년대에 최고점을 찍은 이래 이내 탄광산업이 사양화되면서 줄어들기 시작했다. 인구는 전성기 대비 10분의 1 미만으로 추락했고, 인구 순위는 1970년에 223위, 1980년에 485위를 거쳐 2000년대 들어서는 1000위 밖까지 추락한 상태이다. 그리고 시 중에서는 우타시나이시 다음으로 인구가 적다.
사실 인구구조 자체도 문제. 2010년 기준으로 평균연령은 57.2세, 중위연령은 61.6세로 고령화가 매우 심각한 상태이며, 전체 인구 중 유소년층이 6.6%에 불과한데 비해 노년층 인구가 무려 43.8%에 달했다. 노년층 인구 비율은 당시 일본의 1,969개 시정촌 중 무려 40위이고 당연히 도시 중에선 1위. 반면 유소년층 인구 비율은 끝에서 16위였다. 결국 2017년에는 기어이 65세 이상 고령층 인구가 50%를 돌파하기에 이르렀다. 2024년 12월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3,310명으로 노년층 비율은 54.05%이다.
특히 유바리시가 파산한 후 청년층 입장에선 사회인프라도 안 좋고 직장도 없는 유바리시가 채무탕감을 위해 주민세를 포함한 모든 지방세를 타지역보다 높게 거두기 시작하자 생계를 위해 타지역으로 이주하여 젊은 층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게 되었다. 빠르면 중학교 늦으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지역으로 이주하는게 당연시 되었다.
심지어 바로 옆에 붙어있는 구리야마정보다도 인구가 적다. 구리야마정은 그래도 2024년 11월 30일 기준 인구가 1만 674명이다. 쇠락을 상징하듯 경찰 또한 정 단위의 구리야마 경찰서로 통폐합되었다.
3. 기후
홋카이도 내륙에 있어 따뜻한 여름과 추운 겨울을 가졌다. 1월 평균기온이 -6.6°C로 대한민국으로 봤을 때 강원도 산간지역 수준이긴 하나, 역대최저기온은 -23.6°C로 서울보다 조금 낮고 그렇게까지 일교차가 크지 않다. 여름에도 8월 평균최고기온이 24.4°C로 심한 폭염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파산도시라는 이미지에 가려져서 전혀 언급되지 않지만 홋카이도에서도 손꼽히는 엄청난 다설지이다. 연강설량이 평균 872cm로 겨울내내 눈이 쉬지않고 쏟아지며, 심지어 1987년에는 12.6m라는 역사에 남을 연강설량을 찍기도 했다.#1#2 이 때문에 겨울의 유바리 여행 영상에는 관리가 되지 않는 건물의 2층 높이까지 눈이 쌓여있는 것도 볼 수 있다.
4. 짧은 번성과 긴 쇠락
메이지 시대부터 탄광이 많아지면서 석탄 산업으로 먹고 살았던 도시다. 한국의 정선/문경/태백과 비슷하다. 하지만 7~80년대 이후 석탄산업이 사장되고, 그 대책으로 1980년대부터 석탄박물관을 시작으로 공공시설을 지었다. 하지만 거품경제 붕괴로 관광객이 줄어들자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다. 그래서 당시 시장이었던 나카다 데쓰지는 "투자 없이는 유바리를 재생시킬 수 없다"면서 관광 투자를 무리한 수준으로 확충했다.대표적 예시 중 하나가 유바리 판타스틱 영화제[5]라는 행사까지 만들었고,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리한 테마 시설, 리조트, 호텔의 난립으로 적자는 커져가는데 관광객은 점점 줄어들었다. 분식회계로 막아보려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관광객 유치와 일자리 창출을 하려 만든 놀이공원, 스키장, 박물관, 공원 등을 테마파크 전문기업이 아닌 시청에서 경영하고 경영 책임을 맡은 임원들도 기업경영에 전문성 없는 공무원으로 채워 만성적자에 시달리다가 부도나기가 반복되어 지역재정을 거덜내었고 관광객 유치도 힘들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시 소속 공무원의 숫자는 인구가 많던 시절부터 전혀 삭감을 하지 않은 채로 수백 명 이상을 줄곧 유지했던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인구가 1만5천명 이하로 줄어들었던 2001년 당시에도 공무원 수는 200명이 넘었고,[6] 결국 2007년과 2008년에 공무원 수를 대폭 삭감하게 되었다. 2021년 현재 81명의 공무원이 근무중이다.
결국 2002년 무려 6선이나 했던 나카다 시장이 타계하고 실상이 드러나면서 시는 파산을 선언했다. 빚이 많은 상황에서 공공재 투자가 실패했을 경우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예시가 되었다.
KBS1에서 방영하였던 <KBS 스페셜> '도시파산, 유바리의 잔혹한 봄(2007년 4월 7일 방영분)' 편에서도 유바리시의 처참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젊은 사람이 극도로 부족한 전형적인 농촌의 연령분포를 보여주고 있어 눈물이 난다. MBC의 <세계와 나 W> 2007년 1월 12일 방영분, <뉴스 후> 2009년 7월 30일 방영분 에서도 소개하기도 했다.
구글 스트리트뷰로 유바리를 둘러보면 폐건물로 된 거리가 적나라하게 보이는 등 처참함을 엿볼 수 있다.
5. 현 실태
파산 이후 빚을 갚기 위해 지방세는 두 배가 올랐다. 그래서 지방세는 일본 최고 수준인데 공공 서비스는 일본 최저 수준이다. 소학교와 중학교가 각각 1개씩밖에 남지 않았고, 시장월급이 대졸초봉수준인 25만엔에 불과하며 지방공무원 30% 감축 및 100여명이 희망퇴직한 상황인데다, 공중화장실 7곳 중 2곳만 남기고 폐쇄, 시립병원의 응급실 야간진료 폐지 및 인공투석 폐지, 도서관 폐지, 수영센터 철거[7] 등 시골 촌락만도 못한 상황이 되어버렸다.2008년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시영주택들 중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2동을 매물로 내놓았는데, 매각가가 토지 포함 1000엔이었던 사례도 있다. # 당시 기준으로도 건축된 지 이미 50년이 넘어 노후할 대로 노후한 주택이다보니 개수비용도 거의 100만엔 이상이 들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1980년대 지어진 유바리 테마파크는 1980년대엔 전성기를 누리며 홋카이도의 주민들이 많이 놀러 왔으나, 시 재정이 파탄난 이후로는 재정재건단체로 지정되었고, 2008년에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유바리로 가는 길의 분기점에 있어 유바리의 입구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시 경계에 들어서자마자 유바리의 문제점이 뭔지 보여주고 있는 씁쓸한 공간이다.
유바리 석탄박물관. 유바리시의 희망이자 영화제와 함께 거의 유일한 밥줄이다. 일단 2ch에서도 강력 추천할 정도로 볼 만은 하나 휴관이 잦다. 그러다가 마음 단단히 잡고는 지난 30년간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케케묵은 전시 콘텐츠를 2년 여에 걸쳐 대거 개선하여 2018년 4월 28일 재개관하였다. 홈페이지 그런데 사립 박물관도 아니면서 입장료는 성인 기준 무려 1,080엔! 2018년도 도쿄국립박물관의 입장료가 620엔, 교토국립박물관과 나라국립박물관의 입장료가 520엔임을 생각하면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비싼 액수다. 2019년 11월 초까지는 30% 할인된 가격으로 성인 기준 700엔을 지불하도록 입장료가 인하됐으나, 모의 갱도를 견학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가격을 인하한 것으로 보인다. 인하하기 전에는 유바리시 주민에게도 220엔의 입장료를 받았으나 갱도가 폐쇄된 2019년에는 무료이다.
붕괴된 유바리시립미술관이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같은 해체주의 건축양식이 아니라 폭설로 인해 무너져내린 사진이다. 폭설이 왔음에도 관리가 안 되어서 눈의 중량으로 붕괴했고, 2013년에 폐관했다. 시립 미술관이 이 모양이니 사람들이 떠나버린 일반 건물들의 붕괴는 두 말하면 잔소리 상태로, 유바리에서 폐가의 붕괴는 일상생활이 되어버렸다.
기찻길이 끊긴 철도로 과거 유바리는 석탄 수송과 함께 불어난 인구를 지탱하기 위해 유바리선이라는 오늘날 세키쇼선의 원류가 되는 철도를 필두로 3개사의 노선이 시내를 누볐다. 그러나 인구 급감으로 오비히로, 네무로 방면으로 통과하는 세키쇼선만이 남아 있으며, 미쓰비시석탄광업의 미쓰비시오유바리철도선[8]은 중간역인 미나미오바리역이 위와 같이 근대화 유산으로서 보존되고 있다.[9] 말하자면 일본판 철마는 달리고 싶다이나 관리상태가 좋지 않아 한때는 미술관 건물과 같이 적설에 눌려 쓰러졌던 걸 복원해 놓은 것이다.
버스도 1~2시간에 한 대 겨우 오는데다 탑승객이 하루 10명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어린이 100엔, 청소년/노인 170엔, 성인 250엔 등으로 버스 요금 자체가 상당한 수준으로 뛰어올랐고[10] 정류장 관리나 버스 관리도 사실상 전혀 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아무리 인구 감소가 심하기로서니 엄연히 취락이 존재하는 오유바리, 카에데, 노보리카와 쪽은 아예 노선이 없다.[11]
아직도 유바리시의 채무는 약 72억엔[12]이나 남아 있고 2037년까지는 아무것도 못하고 계속 긴축 상태로 빚을 갚아야 하는데, 인구가 너무 줄어들고 민간업체들도 발을 빼고 있어서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사람이 너무 줄어들어서 오히려 치안이 좋아졌다고 할 수준이며, 시내에서도 계속해서 이러다가 수십년 후면 유바리시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구 유바리역 앞에 위치한 마운트레이 유바리 리조트가 2021년 2월에 경영파탄으로 폐업하였으나 중국 출신 경영자 鄭剣豪[13]가 리조트의 스키장 분야의 운영권을 인수하였고, 동년 12월 18일부터 스키장 영업 재개를 발표하였다.
스키장에 설치된 곤돌라 1기와 리프트 4기 중 곤돌라 1기, 리프트 2기를 재가동하고 전 17개 코스를 전부 오픈하나 야간스키는 개장하지 않는다고. 리조트 호텔 자체는 건물의 수선 등을 포함해 운영재개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유바리시의 현 실태
후술하겠지만 유바리시는 '빚'을 가지고 자학개그를 벌이며 시를 홍보하고 있으며, 실시간으로 부채를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까지 시청 홈페이지에 마련을 했다.#
6. 유바리 멜론
일본에서 유바리 하면 유명한 것이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상기한 대로 "파산한 시"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 최고의 멜론의 원산지"라는 것이다. 유바리 멜론(夕張メロン)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멜론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정식 품종명은 유바리 킹 멜론이며, "유바리 멜론"은 상표명이라 다른 지역에서 쓸 수 없다. 2016년에는 2개 1세트에 300만 엔이라는 정줄 놓은 가격에 경매에서 팔리기도 하였다. 다만 이는 매해 첫 경매에서 유통업자의 과시용으로 벌어지는 일이라 통상적으로 이렇게까지 비싼 것은 아니다. 2017년 기준으로 온라인 구매 기준 시세는 양품[14] 8kg에 최소 3,500엔 이상.[15] 이렇게 비싼 데에는 특유의 맛과 향 때문이라고 하는데 향긋한 향이 강하며 과육이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부드러운데다가 당산비(糖酸比)가 조화를 잘 이루어 아주 맛이 좋다고 한다.
1961년, 인근 쿠리야마정 농가 직원 30명과 유바리시 농가 직원 10명이 힘을 합쳐 멜론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 유래라고 한다. 처음에는 쿠리야마정 농가의 주도로 농사가 이루어 졌지만 쿠리야마정 농가는 직원을 늘리지 않은 반면 유바리시 농가 직원은 꾸준히 늘려서 현재는 쿠리야마정 농가 직원 10명과 유바리시 농가 직원 180명이 멜론 농사를 짓고 있다. 유바리시 농협(JA)에서 유바리 멜론의 판매권을 가지고 있으며 오로지 주문판매로만 공급이 된다. 물론 당연하겠지만 주문해서 사는 사람은 일본내에서도 부유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사는 과일이다.
해당 멜론은 물 빠짐이 좋은 검은 사질토에서 재배하고, 비닐하우스에는 투과성이 아주 좋은 고급 비닐을 사용하며, 각종 첨단 기기들을 이용해 온도와 습도 유지를 상당히 깐깐하게 하는 편이다. 유바리 농협에서는 해당 멜론의 가격대와 희귀성을 유지하기 위해 판매한 멜론 만큼만 멜론 재배를 허가하고 있다.
유바리의 멜론 생산액은 2016년 기준 23억 6,500만 엔[16]으로 명실공히 유바리를 지탱하는 기간산업이다. 다만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이마저도 쇠퇴하는 실정이다.
7. 교통
시내 교통은 철도 사업자에서 버스 사업자로 전환된 유바리 철도가, 시외 교통은 JR 홋카이도와 홋카이도 츄오 버스가 책임지고 있다.세키쇼선 본선 타키노우에역~신유바리역 구간이 관내에 속한다. 한때 유바리 지선 전체 구간이던 신유바리역~유바리역또한 관내에 속했으나, 시설의 노후화와 더불어 수익성 감소로 인해 2019년 4월 1일에 폐선되었다.
8. 캐릭터 산업
パッパヤ パパパヤ [ruby(負, ruby=ふ)]の[ruby(遺産, ruby=いさん)] 팟파야 파파파야 빚진 유산 パッパヤ パパパヤ [ruby(負, ruby=ふ)]の[ruby(遺産, ruby=いさん)] 팟파야 파파파야 빚진 유산 [ruby(金, ruby=かね)]はないけど [ruby(愛, ruby=あい)]はある 돈은 없지만 사랑이 있다 この[ruby(街, ruby=まち)]で[ruby(生, ruby=う)]まれて この[ruby(街, ruby=まち)]で[ruby(育, ruby=そだ)]った 이 도시에서 태어나 이 도시에서 자랐다 (1960년대 탄광 관광에) でも、みんな[ruby(出, ruby=で)]て[ruby(行, ruby=い)]った 하지만, 모두 나가버렸지 (여러가지 건설을 벌려놨는데도) [ruby(気, ruby=き)]がつきゃ人口減っていた 정신을 차리니 인구는 줄고 있었어 (정말로, 열심히 버텼지만) 残ったものは メロンと[ruby(負債, ruby=ふさい)] 남은 것은 멜론과 부채 (인구는 1/10로)[17] フサイ フサイ [ruby(夕張, ruby=ゆうばり)][ruby(夫妻, ruby=ふさい)] 부채 부채 유바리 부부 (유바리 로봇대(大)과학관/웰컴 로봇 <노부스케信介군>) フサイ フサイ [ruby(夕張, ruby=ゆうばり)][ruby(夫妻, ruby=ふさい)] 부채 부채 유바리 부부 (세계의 박제관/알려진 세계의 동물(박제)들) ここは[ruby(終着駅, ruby=しゅうちゃくえき)] なの 여기는 종착역이야 でも、愛の始発駅 하지만, 사랑의 시발역 パッパヤ パパパヤ 負の遺産 팟파야 파파파야 빚진 유산 パッパヤ パパパヤ 負の遺産 팟파야 파파파야 빚진 유산 (놀이공원 시설 "어드벤쳐-패밀리" 즉각 영업 중지!) 金はないけど 愛はある 돈은 없지만 사랑이 있다 この街の友達 この街の知り合い 이 도시의 친구 이 도시의 지인 (유바리 중학교 2005년 휴교/ 인구 12,270명) そう、みんな出て行った 그래, 모두 나가버렸어 振り向きゃ街の灯消えていた 뒤돌아 보니 도시의 가로등이 꺼져 있어 残ったものは メロンと負債 남은 것은 멜론과 부채 フサイ フサイ 夕張夫妻 부채 부채 유바리 부부 フサイ フサイ 夕張夫妻 부채 부채 유바리 부부 もう、後がないのよ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거야 (유바리시 재정파탄!) ただ、先だけがある 그저 앞으로 가는 것만 있어 (늘어나는 것은 부부의 사랑/유바리 부부 탄생!) フサイ フサイ 夕張夫妻 부채 부채 유바리 부부 (세계가 인정하는 유바리 멜론! / 넓은 대자연!) フサイ フサイ 夕張夫妻 부채 부채 유바리 부부 (훌륭한 스키장이 있다!/온천도 충실하다!) 別れなんて言わないで 헤어지자는 말은 하지 말아줘 (그런 유바리시는 일본에서 가장 이혼수가 적다!) この愛は永遠 이 사랑은 영원해 それは 정말로! パッパヤ パパパヤ 負の遺産 팟파야 파파파야 빚진 유산 パッパヤ パパパヤ 負の遺産 팟파야 파파파야 빚진 유산 金はないけど 愛はある 돈은 없지만 사랑이 있다 愛の始発駅 夕張 사랑의 시발역 유바리 |
파산한 지자체에 캐릭터가 있다. 이름은 유바리후사이(夕張夫妻). 부채(負債)의 발음도 후사이다. 즉 자학개그성 다자레. 캐릭터의 각 이름도 토상(父さん)과 맛카상(まっ母さん). 역시나 도산(倒産)과 적자(真っ赤)의 언어유희. 부부 컨셉으로 나와서 "돈은 없지만 사랑이 있다"고 노래하는 이유는 이 영상이 제작될 당시만 해도 이혼건수가 일본 전국을 통틀어 가장 적은 도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에 자학개그 레벨이 심한지라 결국 '메론쿠마(メロン熊, 직역하면 멜론곰)'라는 이름의 다른 마스코트로 교체되었다. 상기했듯 유바리시의 특산물이 멜론이다. 거기에 홋카이도에 널리고 널린 마스코트급 동물인 곰을 끼워넣은 것.
전형적인 유루캬라와는 상극인 생김새에서 바로 알 수 있다시피 초창기의 반응은 당연히 '무섭다'였지만, 이것이 메론쿠마만의 독창적인 특징으로 부각되면서부터 서서히 인기를 얻기 시작해 지금은 홋카이도의 대표적인 유루캬라로 자리매김했다. 메론쿠마의 대표적인 특징은 만나는 상대마다 꼭 문다는 것.
메론쿠마 앞에서 후낫시는 단지 맛있는 배일 뿐이다.
동족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인간도 문다.
이것이 널리 알려지자 사람들은 메론쿠마를 만날 때마다 곰에게 물리는 포즈로 인증샷을 남긴다.
하드웨어적인 면으로 돌파구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2010년부터 유바리 만화 축제(夕張まんがまつり)라는 걸 열고 있는데, 이후 지역 특산물인 멜론과 연계해 이름을 '유바리 만화멜론 축제'로 바꾸고 2014년까지 행사를 이어 오고 있다. 각종 온리전이나 코스프레 행사 이외에도 넓은 외부주차공간을 활용한 이타샤 경연대회가 특징으로,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자유롭게 이타샤 전시공간에 들어와 재미있어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다른 이타샤 경연대회와의 차이점. 유바리시의 아슬아슬한 재정상태와 크게 상관 없는 소자본 서브컬처 행사인지라 2014년까지 지속적으로 개최되었고, 나름대로 규모 있고 역사 있는 정기행사가 되었다.
2014년에는 6월 14일부터 15일까지 함대 컬렉션의 인기에 힘입어 칸무스 유바리와 하쿠레이 레이무를 전면에 내세웠는데, 칸코레 부문의 경우 유바리를 중심으로 한 경순양함 칸무스 온리전이었다. 그러나 이 이벤트는 2014년을 끝으로 더 이상 개최되지 않고 있다.
9. 여담
- 비슷한 신세의 도시로 같은 홋카이도의 우타시나이시가 있다. 특히, 일본 시정촌 지방의회 정수가 시에서 가장 적은 지방단체 중 하나이다.
- 유소년 축구단과 축구장도 있다. 물론 상황은 열악하여 축구장도 주민의 지원과 기부금으로 간신히 유지중이라고 한다. 또한 미우라 호라는 유바리시 출신의 현역 수석 축구 선수이자 지역 협회의 사무국으로서 폭넓게 축구 관계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축구단을 운영하며 사비로 겨우겨우 운영중이라고 한다. 자세한 것은 후원을 호소하는 사이트를 참조하길 바란다.
- 포켓몬스터DP 디아루가·펄기아, 포켓몬스터 Pt 기라티나의 '무쇠시티'는 유바리시가 모델이다.
- 가면라이더 BLACK의 37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고, 두 번째 극장판인 '공포! 악마고개의 괴인 저택' 편에서는 섀도우 문이 유바리를 노린 적이 있다.[19]
- 드래곤 퀘스트 4에 등장하는 앗테무토가 이곳과 마찬가지로 탄광으로 흥했다가 망했기 때문에 엮이기도 한다. 니코니코동화에서 해당 도시 플레이 동영상 나올때 댓글 태그에 유바리 드립이 나오는 것은 기본이다.
- 키테레츠 대백과에서 신오월이 공연을 위해 잠시 이 곳으로 이동했었다. 한지수 역시 '자신의 가게가 유바리 멜론을 직접 공수해 와서 이 곳에 인맥이 있다'고 언급. 다만 방영 당시는 90년대인지라 아직 완전히 망한 건 아니고 서서히 망해가는 수준의 평범한 시골 마을 정도로 표현되었다.
- 무적왕 트라이제논에서 주인공인 카무이 일가가 거주하는 지역이 유바리이며, 주역 메카인 트라이제논 역시 이 곳에 묻혀있었다.
[1] 주민기본대장 2024년 11월 30일 기준.[2] 2010년까지는 국세조사, 2015년은 주민기본대장인구[3] 인구 밀도는 더 심각한 수준인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낮은 영양군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심지어 유바리시의 전체 인구가 영양군의 중심인 영양읍의 인구보다도 약간 더 적다.[4] 당시의 한국과 비교해 보면, 유바리의 1945년 인구가 7만 4천 명이었는데, 1944년 기준으로 남한 지역에서 인구가 7만 명을 넘기는 도시는 6곳으로 서울, 부산, 인천, 대구, 광주, 대전에 불과했다.[5] 2008년부터 규모를 축소하여 매년 개최되고 있다. 전성기 끗발은 허우샤오셴도 밀레니엄 맘보를 찍을 때 다른 일본 도시도 아니고 유바리를 로케이션했을 정도이다.[6] 인구 5만명이 넘는 우리나라 기장읍의 공무원 수는 50명이 채 되지 않는다.[7] 하절기 한정으로 운영할 계획이었지만 눈 때문에 건물이 일부 붕괴되면서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결국 철거해 버렸다.[8] 과거 유바리 지선의 시미즈사와역에서 동쪽의 오유바리(大夕張) 지역을 이은 지역내 노선이다. 오유바리 일대는 슈파로댐에 수몰되었다.[9] 철도 동호인 만화인 테츠코의 여행 3대째에서 '철도로 갈 수 없는 역'으로 등장한다.[10] 일본의 타 지역 평균 버스요금인 160~200엔 내외의 1.5배 수준이다. 단 사실상 농어촌 노선으로 구간운임을 징수하기 때문에 기본요금은 무의미하며, 신유바리역에서 석탄박물관까지 약 20km 거리에 830엔으로 일본의 다른 시외 노선에 비해서는 그럭저럭 유사한 수준이다.[11] 오유바리는 위에서 언급한 미쓰비시 오유바리 철도선이, 카에데와 노보리카와는 세키쇼선 노보리카와 지선이 있었지만 모두 폐선되었다. 이후 지금의 카에데 신호장 자리에 카에데역이 다시 생겼지만 처참한 이용률 때문에 신호장으로 격하되었다.[12] 2024년 5월 기준. 2027년 완전 청산이 목표이다.[13] 한국식 독음으로는 정검호, 일본어식 독음으로는 테이켄고[14] 말이 양품이지, 상품화될 수 있는 최저 등급에 해당한다. 등급이 오르면 오를수록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15] 같은 무게의 멜론을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구매한다면 13,000원에서 18,000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16] 시민 1인당 원화로 300만 원에 달한다.[17] 그래프에 따르면 유바리시의 인구는 1960년대 10만을 넘기던 선에서, 1965년 8만, 1970년 7만, 1980년 4만, 1990년 2만, 2010년 1만이며, 현재는 7천 아래로 떨어졌다!!![18] 단, 장동혁은 유바라시라고 잘못 말했다.[19] 극장판에서 섀도우 문이 고르곰의 전선 기지를 물색하다가 최종적으로 낙점된 곳이 바로 유바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