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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시미할 | }}}}}}}}}}}} |
<colbgcolor=#14497a><colcolor=#fee449> 출생 | 1960년 11월 27일 ([age(1960-11-27)]세) | ||
소련 우크라이나 SSR 드네프로페트롭스크 (現 우크라이나 드니프로) | |||
재임기간 | 제10대 총리 | ||
2005년 1월 24일 ~ 2005년 9월 8일 | |||
제13대 총리 | |||
2007년 12월 18일 ~ 2010년 3월 4일 | |||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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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대학교 (경제학 / 학사) | ||
직업 | 정치인 | ||
종교 | 우크라이나 정교회 | ||
의원 선수 | 7 | ||
의원 대수 | 2, 3, 4, 5, 6, 8, 9(現) | ||
소속 정당 | |||
경력 | 최고 라다 의원 바티키우시나 대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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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크라이나의 정치인으로 제10·13대 우크라이나 총리를 역임했다. 바티키우시나(舊 율리야 티모셴코 블록)'의 대표도 맡았다.2. 행적
1960년 11월생으로, 태어났을 적 성씨는 아래 가족 관계 문서에서도 나오듯이 '흐리햔'이었다. 즉, 부계가 아르메니아계인데[2] 부친의 여권에는 라트비아 SSR 출신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볼로디미르 흐리햔은 율리야가 1~3살 사이에 가족을 버렸기 때문에 율리야는 모친의 성씨인 텔레히나를 썼다. 올렉산드르 티모셴코와 결혼 후 남편의 성씨를 쓰고 있다.[age(1960-11-27)]세라는 나이가 무색한 충격과 공포의 동안.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보다는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인다.# 특유의 벼머리는 우크라이나의 전통 머리 스타일이라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뒤로 봉제공장에서 일하다가 고르바초프 집권기 한창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 때 비디오 대여점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 그 뒤에 가스산업에 진출해서 "가스여왕"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성공하면서 포브스에서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안에 들게 된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레오니드 쿠치마 정권인 1996년 총선 때 36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선출되었다. 에너지부 차관을 지내다가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이 빅토르 유셴코 총리를 해임하고 권위주의적 통치를 계속하자 2001년부터 야당 인사로 변신하게 되었다. 이후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의 후임자를 뽑는 2004년 대선에서 빅토르 유셴코와 손을 잡고 러닝메이트로 뛰었는데, 2차 결선투표에서 뒤집히자 부정선거 사례를 대대적으로 폭로하면서 민중시위를 이끌었다. 결국 오렌지 혁명으로 빅토르 유셴코가 대통령에 취임하고 티모셴코는 총리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막상 집권 후에 갈등이 생기면서 결국 2006년에 빅토르 유셴코와 결별하면서 이후 계속 대립하게 된다. 2010년 대선에 출마하게 되었지만 이 당시에 그래도 득표율은 꽤나 잘 얻은 편이지만 결국 대통령 당선에는 실패했고, 야누코비치의 지역당과 유셴코의 우리 우크라이나당이 손을 잡으며 총리직에서 해임되었다. 유센코와 얼마나 원수지간처럼 되었는지 알수있는 징표로 이 당시에도 친서방파가 의회에서 과반을 확보하고 있는데다가 대선에서 패배했다해도 45%라는 만만치 않는 표를 얻음에도 야누코비치가 티모센코를 눈치를 보지 않고 감옥에 보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3] 물론 이건 나중에 악수로 작용한다.
2002년에는 평범한 브루넷 긴 머리였다. 금발은 염색을 한 것이다. 덤으로 옛날 쌩얼 사진이 간간히 돌아다닌다.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지도자 1위로 뽑히기도 했다. 관련 링크
2010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에서 친러 계열 반대파인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당선된 이후, 우크라이나 법정에서 총리 시절의 직권남용이란 석연치 않은 죄목으로 2011년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 남편은 이미 국외로 망명한 상태. 기사 그 권력을 남용했다는 사안 역시 러시아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문제여서, 오렌지 혁명 당시 밀려났던 친러파의 정치보복 이상의 배경이 있다는 의혹이 사태에 감돈다.
2012년 5월, 옥중에서의 간수의 폭행과 신병치료 문제를 둘러싸고 단식투쟁 끝에 당시 정부가 지정한 의사[4]가 아닌 독일 의료진의 치료를 받게 되었다.기사1기사2
여기에 우크라이나 검찰은 갱단에 사주하여 정적을 살해한 혐의로 그녀를 추가기소했다. 문제는 이 사건이 17년 전의 일이라는 점. 만약 살인교사가 인정되면 종신형까지 선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사실상 그녀를 영구히 감옥에 가두겠다는 의지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실제로 종신형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도 지배적이다. EU 가입을 추진하려고 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의 상황상 EU의 압박을 뿌리치고 티모셴코를 평생 감옥에 가둘 수는 없다는 것. 일각에서는 "독일에서의 치료를 명분으로 그녀를 독일로 추방할 것"이라는 추정도 나왔다.
한편, 2013년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가 연일 계속되면서 티모셴코 전 총리의 딸인 유제니아가 시위대 앞에서 어머니가 감옥에서 보낸 편지를 대신 읽었는데, MBN은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티모셴코 전 총리를 성전환시켰다. 기사보기 기자가 티모셴코 전 총리의 딸이라는 수식어만 보고 아마 총리니까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하고 보도를 한 듯하다. 게다가 티모셴코는 이명박 대통령 때 방한하여 이명박 대통령과 회담한 적도 있다.
나락으로 떨어진 오렌지 공주?
그러나 우크라이나 시위가 한창인 2014년 2월 21일 수도 키예프가 반정부 시위대에 장악당하여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수도를 탈출했고, 2014년 2월 22일 반정부 세력이 새로 구성한 우크라이나 의회는 표결에서 티모셴코 전 총리를 즉각 석방하는 안을 압도적 다수로 가결함으로서 석방되었다. 5월에 시행될 총선거에서 다시 총리로 복귀할 것이 유력시되었다.
직후의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출마할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경제장관 등을 역임하고 제과회사 '로셴'을 세워 '초콜릿 왕'[5]이라는 별명이 있는 정치인 페트로 포로셴코가 급부상하면서 티모셴코의 재집권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포로셴코는 빅토르 유셴코 전 대통령을 도와 2004년 오렌지 혁명에 자금을 댔고, 유셴코 정권의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포로셴코가 대선 1순위 후보로 떠오른 것은 재산을 모두 잃을 위험을 무릅쓰고 이번 반정부 시위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유일한 재벌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현재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로부터 분리독립을 꾀하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도 고른 지지를 받고 있다. 게다가 티모셴코가 러시아의 크림 공화국 합병을 비난하며 "러시아와 전면전도 불사하자"는 식의 막말을 쏟아내는 바람에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는 추세라 재집권이 어려울 것 같다는 전망이 높다.
갈 데까지 갔는지 민병대까지 모았다고 한다. 러시아인들에 의해 민병대들의 머리에 티모셴코 머리를 합성한 사진까지 만들어지며 이래저래 조롱당했다.#
그리고 낙선했다. 페트로 포로셴코가 첫 두표에서 50% 이상의 득표를 기록하며 대통령에 당선. 이어서 열린 총선에서도 티모셴코가 이끄는 조국당은 5%를 득표하면서 한때 정치 생명에 위기를 겪었으나 몇년이 지난 2019년 대선 여론조사를 보면 포로셴코와 막상막하의 지지율로 1위를 달렸다.
2018년 12월 기준으론 1차투표에선 승리가 유력했지만, 결선투표에선 코미디언 출신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에게 오차범위 내에서 밀렸다. 다만 젤렌스키는 1차투표 통과부터가 불확실한지라, 가장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평소에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기성정치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상황이라 결국 2019년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의 1차 투표에서 3위로 낙선하여 결선조차 못가는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6] 그리고 당선된 건 다름아닌 젤렌스키. 젤렌스키는 코미디언 출신의 초짜 정치인인 데다가 나이마저 1978년 생으로 어리다.
러시아에서 굉장히 싫어하는 외국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심지어는 평소에는 러시아어를 사용하지만, 러시아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할 때에는 러시아어 사용을 거부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기행으로 유명한 극우 정당인 러시아 자유민주당의 알렉세이 미트로파노프 전 의원은 율리야 티모셴코가 미헤일 사카슈빌리 전 조지아 대통령과 육체적 관계를 가진다는 내용의 에로 영화를 제작해 물의를 빚었다.
2020년에 남편, 딸과 함께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SNS로 러시아를 비난하고 있다.[7] 또한 정적이었던 페트로 포로셴코와 마찬가지로 일선에서 러시아에 맞서 싸우는 중이다.
다만, 이번에 러시아에 용감하게 맞서서 인지도가 높아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현 대통령이나, 부정부패가 있긴 했지만 자신의 재산을 털어 러시아에 맞서서 재평가도 받게 된 페트로 포로셴코 전 대통령, 반부패 및 탈러시아•서구화 개혁으로 우크라이나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려던 빅토르 유셴코 전 대통령에 비하면 아직도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는 인식이 좋지는 않다. 왜냐면 티모셴코가 내세우는 모든 것은 전부 표를 위한 거짓이고, 그녀에게 진실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반러를 외치지만 막상 우크라이나 측에 불리한 가스계약을 푸틴과 체결한 것도 그녀였고, 이 가스 계약 때문에 가스 공주라는 멸칭이 붙었다. 또한 총리 재임기 동안 빅토르 유셴코 전 대통령이 기획한 반부패, 서구화 계혁을 전부 훼방 놓아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권좌를 잡게 일조하는 등, 티모셴코 역시 우크라이나가 망가지는데 큰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8][9]
하지만 2023년 1월 , 두바이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던 것이 적발되었다.## 전쟁 초반에 민병대와 함께 저항하고 있다는 것은 다 쇼였던 것. 페트로 포로셴코는 같은 시기에 자산 기부 규모를 늘리고 젤렌스키와 함께 MSC 2023에도 참석하는 등 공적인 행보를 보인 것과 반대되는 행동이다.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내에서 비난을 받았고 이제 사실상 티모셴코의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
2023년 3월 사위인 아서 체체킨의 일가가 경영하는 회사가 4억 흐리우냐의 탈세를 저지른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한다. 이 회사는 정부 기관에 식품을 공급했다고 한다.##
3. 가족 관계
- 아브람 카피텔만(Абрам Кельманович Капітельман): 조부[10]
- 마리야 흐리햔(Марія Йосипівна Грігян): 조모
- 볼로디미르 흐리햔(Володимир Абрамович Грігян, 1937년 12월 3일~): 부친[11]([age(1937-12-03)]세)
- 류드밀라 텔레히나(Людмила Миколаївна Телегіна, 1937년 8월 11일~): 모친([age(1937-08-11)]세)
- 볼로디미르 흐리햔(Володимир Володимирович Грігян): 남동생
- 올렉산드르 티모셴코(Олександр Геннадійович Тимошенко, 1960년 6월 11일~): 남편([age(1960-06-11)]세)
- 예우헤니야 티모셴코(Євгенія Олександрівна Тимошенко, 1980년 2월 20일~): 외동딸([age(1980-02-20)]세)
미모가 자기 어머니만큼은 된다. 최근 어머니를 따라서 정계에 입문했다고 전해진다. 2014년 우크라이나의 기업인 아서 체체킨(1982년생)과 재혼[12]하여 세 명의 자녀가 있다. 참고로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한터라 영어를 잘한다.
4. 여담
2009년에 한국에 국빈 방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회담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묘한 시선이 SNS에서 화제가 되었다.#5. 선거 이력
<rowcolor=#ffd500>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1차 득표수 (득표율) | 2차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10 |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 우크라이나 | 6,159,810 (25.05%) | 11,593,357 (45.47%) | 낙선 | [13] | |
2014 |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 2,310,050 (12.81%) | -[14] | 낙선 | [15] | ||
2019 |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 2,532,452 (13.40%) | - | 낙선 | [16] |
[1] 결혼 전의 성은 흐리햔(Грігян)[2] 아르메니아인의 특징인 '얀'으로 끝나는 성씨.[3] 우크라이나의 총선은 2012년에야 치러졌는데, 티모셴코를 감옥에 보낸것은 2011년도였다.[4] 2004년 선거 당시 러닝메이트였던 빅토르 유셴코 전 대통령은 친러파에서 사주한 독살기도를 받았을 정도였다.[5] 영어권에서는 'Chocolate Baron'이라고 부른다.[6] 사실 이는 티모셴코 본인이 극우에 가까운 점도 한몫했다. 돈바스 분리의 원인 중 하나가 극우세력의 대두였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인들은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서방과 친해지기 위해 극우세력을 배척했다. 물론 그렇다고 티모셴코가 아조프 연대 급 극우파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과격한 성향은 맞다.[7] 러시아의 지도자들이 모두 3월에 죽었다며 푸틴도 3월에 죽을 것이라는 식의 게시글도 올렸다.[8] 당장 출처에 있는 사진만 봐도 목발을 짚고 있는데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있다.[9] 우크라이나 전통머리를 하면서 우크라이나인임을 어필하지만 막상 우크라이나어는 할 줄도 모르는 건, 위선적이라며 추가적으로 더 싫어할 이유는 되어도 그게 주된 이유는 아니다. 당장 젤렌스키 현 대통령과 포로셴코도 모어가 러시아어이고, 개전 전엔 오히려 리비우 중심의 서부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떨떠름해 했다.[10] 유대인, 독소전쟁때 전사.[11] 국적은 라트비아 SSR이지만 부계는 아르메니아인이다.[12] 예우헤니야는 2005년에 결혼했다가 2013년에 이혼했다.[13] 1차 투표 2위, 2차 투표 2위[14] 페트로 포로셴코의 과반 득표로 결선투표 미실시[15] 1차 투표 2위[16] 1차 투표 3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