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1b><colcolor=white> 이동준 李東濬 | Lee Dongjun | |
출생 | 1958년 10월 13일 ([age(1958-10-13)]세) |
충청북도 청주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한산 이씨 |
가족 | 배우자 염효숙, 아들 이일민, 며느리 김혜림, 조카 송진우[1] |
신체 | 180cm, 80kg, B형 |
병역 | 면제[2] |
종교 | 불교[3] |
학력 |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졸업) 청주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 / 학사) |
종목 | 태권도 |
체급 | 미들급(-78kg 및 -83kg) |
소속 | 나눔엔터테인먼트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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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태권도 선수이자 現 배우, 가수.2. 태권도 선수 경력
태권도 7단으로, 1979년부터 국가대표로 활동해 1983년과 1985년 세계선수권[4] 2대회에서 연속으로 미들급 금메달을 차지한 태권도계의 스타 선수였다. 참고로 이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았다.
이동준이 현역 시절이었던 당시의 태권도는 헤드기어도 머리에다 안쓰고 손발에다 붕대 두르고[5] 몸통에 호구만 하고 격하게 싸우던 시절이라 KO도 많이 나왔다. 신기한 것은 선수들이 발차기를 얼굴에 제대로 맞고도 자세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선수들도 발로 얼굴에 살짝만 맞아도 쓰러지는데 경이로울 정도(...)인데 엄청나게 맞고 수련된 듯 하다. 헤드기어를 안 꼈기에 서로 KO를 시키려고 풀파워로 안면에다 발차기가 엄청나게 들어옴과 동시에 몸통 주먹도 실전 격투기처럼 엄청나게 꽂았던 시절이다.
이동준 하면 가장 유명한 무용담인 술집에서의 11대 1 싸움이 있는데, 이는 실화다. 특수부대 출신 군인들이 술이 떡이 되어서 나이트 클럽을 깽판치며 완전히 뒤집어 놓는 상황에서 혼자 나서서 1분만에 다 털어버렸다고 한다.[6][7] 태권도에 대해서 과소평가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대로 맞으면 발차기 한방에 뇌출혈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태권도가 실전성이 낮다고 평가절하되는 이유는 스포츠 태권도의 규칙 때문이다. 실전 태권도에서는 하단 공격이나 안면을 때리면 안된다는 규정이 없다. 팔보다 근육량이 많고 축의 길이가 긴 다리를 이용해 공격하는 발차기의 위력은 주먹보다 훨씬 뛰어나며, 태권도의 발차기 역시 제대로 적중만 한다면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복싱과 같은 다른 무도와 결합되면 태권도도 충분히 강하다. MMA계의 레전드 앤더슨 실바도 태권도 공인 5단이다.[8] 또한 중국 영화배우 한 명인 견자단 역시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를 수련했는데 태권도 공인 6단이라 잘못알려졌고 실제로는 흰띠이다. 최근 UFC 페더급에서 야이르 로드리게스가 태권도 스타일로 상당히 잘 나가고 있다.
더군다나 그냥 '태권도를 잘한다' 정도가 아니라 엄연한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였고, 얼굴은 단련이 불가능한 부위라는 것을 감안하면[9] 실로 엄청난 파이터인 셈이다. SBS 미운우리새끼와 여러 방송에서 뒤돌려차기로 정확하게 날렸는데 60대 중반의 나이대라는 점을 감안해도 정말 대단한 감각이 아닐 수 없다. 역시 국대 출신답다.#
이동준의 모습을 본 주점 여주인의 부탁으로 주점의 기도를 맡았다가, 우연히 최불암의 눈에 띄어 연예계에 데뷔했다. 얼굴도 남부럽지 않게 잘 생기고 몸도 다부진데다 무술 유단자라는 것까지 알려지면서 액션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다.
2.1. 선수 은퇴
1986년 2월 23일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선발전 결승에서, 분명히 자신의 판단이나 관객들의 반응으로 보나 판정에서 이긴 것이 확실한데도 뭔가 알 수 없는 석연찮은 이유로 판정이 미루어지다가 억울하게 판정패를 당했다.사실, 태권도를 오랫동안 수련을 해 왔던 경우라면 굳이 판정패를 진행하지 않더라도 심판뿐만 아니라 국가대표급으로 실력이 있는 태권도 선수들은 대련이 끝난 뒤에 암묵적으로 누가 이겼는지 정도는 쉽게 눈치채고 다 알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이동준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게 패배했으니 당연히 분한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었고 화가 나서 항의하다가 도복을 찢어가며 난투극을 벌였고, 당연히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후일 태권도협회에서도 비디오 판독을 해보니 이동준이 판정에서 이긴 게 맞지만 심판을 상대로 난투극을 벌인 것이 문제가 되어서 판정의 번복은 불가하다고 전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인해 이동준은 태권도를 그만 두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후 클레멘타인에서 주인공의 승부조작 장면도 이 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이야기를 한다.
3. 배우 활동
야망의 세월 출연 당시 사진.[10] |
성격이 괄괄한데다가 본인 말로는 연기 이외에 다른 일(아마도 밤무대 행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출연제의를 거절하는 바람에 방송국의 높으신 분들에게 찍혀서라고 한다. 그리고 2000년에는 트로트 앨범을 내고 밤무대 가수일도 병행하는 등, TV활동보다는 밤무대 행사를 더 선호하는걸로 보인다. 여러모로 스티븐 시걸과 비슷하게 액션 이미지만 빠르게 소모 되어버린 케이스다.
적색지대 드라마는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고아원 출신으로 조직의 보스가 되어가는 드라마로 개성 강한 드라마였었다. 그렇게 활동하던 2004년 그의 일생을 바꾼 사건을 맞으니 바로 클레멘타인. 2004년 자비로 제작한 걸작영화 클레멘타인에 52억이라는 사재를 털어서 스티븐 시걸까지 비싼 돈 주고 특별출연 시켜 한국 태권도 홍보영화[12]라고 만들어 놨는데 그게 그냥 흑역사 수준도 아니고 대한민국 영화상 최악의 졸작이라는 평을 받고 쫄딱 망하는 바람에 연예계 활동에 직격탄을 맞고 부산으로 내려가 밤무대를 뛰면서 돈을 모아야 할 상황이 되었다. 후술한 똥꼬쇼 사건도 이때 있던 일이다.
연예계에 발을 내딛게 만든 것도 유흥가였고 영화 제작 실패 후 빚을 갚기 위해 나선 곳도 유흥가였다. 노래 실력도 뛰어나고 남자다운 마초 기질도 충만해서 유흥가에서만큼은 몸 좋고 노래 잘하고 호쾌한 중년 미남 스타로 인정받고 있다. 그렇게 2~3년동안 부산에서 밤무대를 뛰면서 빚을 청산한 뒤 2007년 임성한 작가의 아현동 마님으로 TV드라마에 복귀 후, 인기를 누렸다. 그 후 임성한 사단으로 들어갔는지 2011년 신기생뎐까지 출연했다.
2014년에는 아침 드라마 나만의 당신에 출연했고, 그 이후에는 간간히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얼굴을 비추고 있다.
이환경, 정하연, 손영목 작가의 프로그램에 모두 출연했었다.
3.1. 똥꼬쇼 사건
자세한 내용은 똥꼬쇼 문서 참고하십시오.4. 수상 기록
월드 게임 | ||
금메달 | 1981 산타클라라 | -78kg |
세계선수권 | ||
금메달 | 1983 코펜하겐 | -78kg |
금메달 | 1985 서울 | -83kg |
아시아선수권 | ||
금메달 | 1984 마닐라 | -83kg |
5. 기타
- 탤런트로 활동 중인 아들 이일민이 있으며 스타부부쇼 자기야에 같이 출연해 여자 보는 눈이 같다고 말한 일화가 있다. 이일민은 2013년 10월 해병대에 입대하여 군 복무했다가 2015년 7월에 제대했다.
- 물티슈 '만능크리너'의 모델로 라벨에 사진이 삽입된다. 2016년 생산분부터 다시 찍은 사진으로 교체되어 계속 나오고 있다.
- 클레멘타인의 제작 후 인터뷰 당시 블랙 로터스라는 할리우드 영화에 주조연급으로 출연한다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 언론에선 박중훈의 뒤를 이을 한국의 두 번째 할리우드 스타라고 설레발을 쳤지만 영화가 무산되어버린 듯하다.[13] IMDb에서조차 자료를 찾을 수 없다.
- 전술했듯 힘들게 살아왔지만, 그한테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태권도 관련해서 허세를 푼 것이 그것인데, 태권도를 시작한 계기는 국민학교 시절에 반에서 가장 덩치가 크고 싸움 잘하는 애한테 맞고 가방을 들어주는 굴욕을 당한 적이 있어서[14]라고 한다. 그러나 재미있는 점은 태권도를 익히고 나서도 졌다고 하는 점이다. 빨간띠를 따고 자신감이 생겨서 덤볐는데 힘 차이가 나서 도저히 안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 친구 4명을 동원해서 5대 1 다구리를 했다. 복수에 성공했고, 그날 이후 두들겨 맞은 싸움꾼 친구는 그때부터 결국 찍소리도 못하고 기가 죽어 다녔다고 한다. 그때의 경험이 기억에 남아서 그 시절부터 태권도를 통해 강자와의 싸움에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결국에는 태권도 "만" 으로 이긴게 아니라 태권도로도 힘드니까 친구들 도움 받아서 이긴건데 "이게 전부 태권도 덕분입니다"라는 사실과는 다른 소리를 하고 있다.
- 방송에서 허세로 보일 만큼 자신의 싸움 실력에 대해 자랑인냥 얘기해서 이슈가 되긴 했지만, 전술했듯 연예계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사람 중에 한 명으로 인정을 받는다. 애초부터 이동준은 주먹 좀 휘두르다 연예인이 된 일반인도 아니고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 출신에다 세계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의 실력자인 엘리트 체육인이었고 선수 은퇴 이후에도 최소한 태권도 도장을 차려서 관장으로 일할 계획도 있었던 진짜배기 무도인이었다.[15] 연예계 데뷔 자체도 술집에서 행패 부리는 불한당들을 제압하고 연예인들을 구해주면서 그들의 도움을 받아 데뷔한 것이고, 성인이 되어서도 싸움경력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부분을 볼 때 청소년기의 싸움에 대한 실전감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떨어진 것은 아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연예계 데뷔 이후에도 밤무대 생활을 적지 않게 해왔는데, 사실 TV에 꾸준히 출연하는 톱스타가 아닌 수준의 B급 배우나 가수들이 돈만 보면 방송출연보다 밤무대 출연이 금전적으로 더 이득됨에도 밤무대를 기피했던 이유는, 지금도 그렇지만 밤무대가 애초에 무법지대에 가까워서 취객, 깡패, 사기꾼 등 온갖 더러운 인간들이 꼬이기 마련인데 이동준은 애초에 그런 불한당을 상대로 수 년동안 해오면서 다져진 싸움 실력이 있었기에 자진해서 저런 일을 한 것이다.[16]
- 복면가왕 77차 경연에서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스승의 날'이라는 가명으로 참여했다.
- 가수 휘성의 팬이라고 한다.
-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과거 그의 경기 영상을 보며 철권 시리즈의 화랑을 연상케 한다는 반응이 많다. 수려한 외모에다 훤칠한 피지컬로 고난이도의 발차기를 연발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화랑의 플레이 모습이다. 다만 화랑은 ITF계열이고, 이동준은 WTF계열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6. 관련 문서
6.1. 작품
6.1.1. 드라마
- 1990년 야망의 세월 - 최태환
- 1992년 나목
- 1992년 적색지대 - 나종수
- 1993년 먼동
- 1993년 나는 천사가 아니다
- 1994년 남자는 외로워
- 1994년 두 형사
- 1995년 장녹수
- 1995년 야망의 불꽃
- 1995년 여울
- 1995년 코리아게이트 - 김진영
- 1997년 가족
- 1998년 행복을 만들어 드립니다
- 1999년 전설의 고향 신조(神鳥) - 한나라 무열태자 역
- 2000년 민들레
- 2000년 천둥소리 - 박치의
- 2001년 미나
- 2002년 제국의 아침 - 좌장군
- 2007년 아현동 마님 - 성종
- 2011년 신기생뎐 - 금강산
- 2014년 나만의 당신 - 이병준
6.1.2. 영화
- 1987년 불이라 불리운 여인[18]
- 1989년 서울무지개 - Q(보좌관)
- 1990년 머나먼 사이공
- 1990년 애마부인 4 - 남편
- 1990년 코리안 커넥션
- 1991년 바람불면 일어서는 숲 - 경욱
- 1992년 캉캉 69
- 1992년 안개에 젖은 리오의 밤은 깊어
- 1996년 카리스마 - 박동진
- 2004년 클레멘타인 - 김승현
6.1.3. 가족오락관
※ 손미나 아나운서가 진행한 회차는 굵게 표시.- 1995년 8월 17일
- 1995년 10월 25일
- 1996년 10월 2일
- 1997년 6월 25일
- 2000년 7월 6일
- 2000년 11월 25일
- 2001년 5월 26일
- 2002년 5월 4일
- 2002년 10월 19일
- 2003년 1월 4일
- 2003년 3월 29일
- 2003년 7월 26일
- 2004년 2월 28일
- 2004년 7월 31일
- 2005년 7월 30일
- 2005년 12월 10일
- 2006년 5월 6일
[1] 이동준의 누나가 송진우의 어머니[2] 1983년, 1985년 태권도 세계선수권 미들급 금메달리스트.[3] 종파는 조계종인 듯 하며 링크의 기사에서 좀 내리다 보면 이 사람의 이름 석 자가 나온다.[4] 당시 태권도가 올림픽 종목이 아니었지만, 국내 국가대표 선발은 그 시절에도 매우 치열했다. 그 시절에는 태권도계에선 외국인 선수층이 얇았으나 흑인이나 유럽인들이 많다.# 그 시절에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었다면 유력한 금메달 0순위 후보였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1960년대 유도 세계선수권 때의 일본과 비슷하다.[5] 이것도 자율이다. 자신에게 골절/탈골을 방지하는 것이다.[6] 지금의 태권도는 올림픽 종목으로 선정된 후 스포츠화의 길을 가게 되면서 선수층 대부분이 경기에 특화된 발차기 위주의 태권도를 하지만, 70년대나 80년대 초까지도 태권도는 정권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상대방을 제압하는 무술에 가까웠고 도장 분위기도 유치원, 어린이 놀이방 역할까지 하는 지금보다 훨씬 깐깐했다. 대야망이나 바람의 파이터에 나오는 도장 분위기가 그 때까지는 있었다. 이동준이 현역 선수였던 시절에는 모든 운동계에서 선후배 관계도 지금보다 엄격해서 사실상 구타가 난무하던 시절이며, 격투기 종목은 훈련이나 스파링을 한다는 명목으로 실전처럼 두들겨 팰 수 있었다.[7] 이동준은 60이 가까운 시점에 라디오스타에 "싸움의 달인" 컨셉으로 출연했을 당시 자기보다 12살이나 어리고 자기보다 큰 184cm의 김구라와 팔씨름을 했을 때 "뭐야? ㅎㅎ"하며 우습게 넘겼다. 아무리 상대가 일반인이지만 체격과 나이 차이를 생각하면 엄청난 힘이다. 이후 이재윤에게 졌지만 (죽을 힘을 다해) 꽤 오래 버티긴 했다. 사실 이재윤도 브라질리언 주짓수 브라운 벨트일 정도로 특출난 몸과 운동신경이라 나이가 아버지뻘인 이동준이 졌다고 창피할 건 없다.[8] 또한 태권도가 실전성이 낮다는 소리를 듣는 진짜 이유는 태권도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스포츠 태권도의 규칙 때문이다. 태권도장에서는 품새 위주의 훈련만 반복시켜서 무술보다는 체조에 더 가까운 형태가 되었기 때문이며 태권도 자체는 굉장히 고급무술인 것은 맞다. 과거 나락쓸기 기술(↓+D)이 봉인되기 전의 태권도는 진짜 강한 무술이었다.[9] 월드클래스 태권도 선수의 발차기 위력은 어마어마하며, 만약 얼굴에 맞아 안면이 함몰되거나 목이 꺾이거나 뇌에 손상이 가게 되면 사람이라면 누구든 사실상 남은 인생은 아주 운이 좋아봐야 사지불구가 되는건 일도 아니고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거나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괜히 격투기 선수들이 자기들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무력을 행사하지 않고 참고 넘어가는게 아닌 것이며, 특히나 격투기 종목 선수는 잘못하면 폭행을 넘어 살인미수 판정까지 나올 수 있다.[10] 사진 좌측은 최민식이다. 이때가 바로 최민식이 인기를 얻은 꾸숑때다. 1990년에 방영한 드라마인데, 최민식은 재벌의 망나니 사생아로, 이동준은 재벌의 적자로 나온다. 여기서 이동준이 최민식에게 두들겨 맞는다.[11] 애마부인4는 물론 안개에 젖은 리오의 밤은 깊어, 머나먼 사이공과 같은 멜로를 위장한 에로 영화들.[12] 실제 인터뷰에서 그렇게 밝혔다.[13] 준 리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것도 이 영화 때문이라고 한다.[14] 당시 이동준이 "내가 그때는 약간 앞에 앉았거든"이라는 말을 한 걸로 보아, 그 시절에는 이동준의 체격이 그리 크지 않았다는 듯하다. 키가 작은 친구들이 앞에 앉으니까.[15] 실제로 이동준은 지인들 중에서도 태권도 관장들이나 태권도 협회 관계자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야망의 세월에 나오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을 때 연예가 중계에 출연해 서 있는 사람의 머리 위에 올려 놓은 사과를 뛰어 뒤돌려차기로 날려버리기도 하는 실력까지 인증을 했었다.[16] 사실, 국가대표,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라는 명성만 들어도 함부로 못 한다. 게다가 체격만으로도 위압적이다. 요즘 기준으로는 아주 큰 것 같지 않지만, 2022년 기준 환갑인 나이에 키 180cm는 어마어마한 장신이다. 그 나이 대 남성 평균 키는 167-168cm 정도에 불과하다. 라디오스타에서 싸움 잘하는 스타들 특집으로 출연했을 때 엄청난 자뻑과 허세를 보였는데 막상 팔씨름 대결을 해보라하니 꽁무니를 빼다가 레이먼 킴이 김구라에게 맥없이 지자 자신감을 얻고 김구라와 붙어서 쉽게 넘겼다. 본인 왈, (레이먼 킴이) 무지하게 쎈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레이먼 킴은 이동준보다 훨씬 젊은데다 실제로 나이트클럽 기도 출신인만큼 덩치도 크고 인상도 강하다. 그런데 뒤이어 이재윤과 붙게 되자 눈에 띄게 당황하고, 오만상을 다 써가며 넘어가지 않으려고 애썼으나 결국 넘어갔다. 물론, 당시 이미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였다는 것을 생각해도 굉장한 힘이긴 하다. 게다가 이재윤은 헬스를 즐겨하고 브라질리언 주짓수를 한 지 오래되지 않아서 브라운벨트까지 따낸 운동 마니아다. 게다가 30대의 전성기의 힘, 즉 웬만한 운동선수들과 맞먹거나 더 강할 정도로 힘이 엄청나게 세다. 그런 이재윤을 상대로 환갑의 나이에 꽤 버틴 게 대단한 것이다.[17] 여담으로 현빈도 이동준과 같이 개띠이다.[18] 배우로 전향 후 데뷔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