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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고려시대의 정변 | }}}}}}}}} |
1. 개요
利備·孛佐─亂1202년부터 1204년까지 경주시에서 이비와 패좌가 연합해서 일어난 반란.
2. 설명
1202년에 경주에서 반란이 일어나 최충헌이 이를 듣고 노해 김척후, 전원균, 최광의, 이이, 강순의, 이유성을 토벌군으로 보내자 이비는 경주도령이 되어 군사를 일으켰으며, 패좌는 12월 6일에 청도 운문산에서 군사를 일으켰다가 운문산, 울진, 초전의 세력들이 연합해 3군으로 나누고 정국병마로 자칭하면서 주, 군을 달래거나 위협했다.김척후, 전원균은 운문산, 강순의, 이유성은 기양현 등 경주의 외곽, 최강의, 이신의는 기계현 등 경주 북부를 공격했으며, 김척후, 전원균은 운문산을 공격해 경주 세력을 이겼지만 저항이 거세서 큰 피해를 입었다. 전원균이 오이를 심어 물러날 의사가 없음을 보이면서 농민군이 포기하기를 유도했고, 김척후가 싸우지 않아서 경주의 세력들이 점차 강해지자 1203년에 김척후를 개경으로 소환하고 정언진으로 교체했으며, 경주의 세력들이 기양현을 공격했다가 최광의에게 크게 패했다.
정언진이 환난을 없애는 기도를 한다면서 성황사로 가서 무당에게 경주의 적들을 잡을 방법을 알려줬고, 이비 부자가 사당으로 와서 몰래 기도를 하자 무당이 이비를 속여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술에 취하게 한 후 정언진에게 압송했으며, 경주 세력들이 기계현을 공격했다가 이유성이 공격하자 패좌는 도망치려 했고, 방수정이 두 아들과 함께 경주의 세력을 공격해 1,000여 명을 죽이고 250여 명을 사로잡았다.
함연수, 강숙청을 운문산에 보내 패좌에게 안심하고 본업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패좌가 듣지 않았고, 운문산의 부두목이 함연수에게 눈짓을 하자 밖으로 나가 칼을 가져와 패좌를 공격했고, 강숙청이 패좌의 목을 베 개경으로 보냈다. 운문산의 일당들이 함연수를 죽이려 하자 부두목이 말려 죽음을 면했다.
이비, 패좌의 난을 포함한 남쪽 지역의 반란을 평정하면서 1205년에 최광의, 이이, 강순의, 이유성 등이 동경을 평정한 공이 크다고 해서 작위와 봉록을 올리고 휘하 관료들에게도 상을 차등 있게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