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7-26 22:41:46

이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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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배구인
파일:이상렬_KB.jpg
<colbgcolor=#eeeeee> 이상렬
李尙烈[1]
출생 1966년 3월 9일 ([age(1966-03-09)]세)
파일:서울특별시 휘장.svg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국적 [[대한민국|]]
직업 배구선수(라이트 / 은퇴)
배구감독
학력 서울연희초등학교 (졸업)
서울인창중학교 (졸업)
인창고등학교 (졸업)
경기대학교 (학사)
프로입단 1989년 럭키금성 배구단
소속 <colbgcolor=#eeeeee> 선수 럭키금성-럭키-LG화재 (1989~1997)
감독 파일:경기대1.jpg 경기대학교 (2012~2020)
파일:gumi_kbstars.png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 (2020~2021)[2]
코치 파일:인창고등학교(서울)_교표.png 인창고등학교 (1999~2003)
파일:image_1527657991585.png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2006, 2009)
파일:ORCNQFM.png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2007~2009)
해설자 파일:SBS Sports 로고.svg (2013~2020)
가족 관계 배우자, 동생 이상왕[3], 딸 이유안, 이효인[4]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해설위원 경력5. 사건사고/논란
5.1. 박철우 구타 사건
6. 근황7. 기타8. 관련 문서9.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배구 선수.

선수 시절에는 국가대표 주전급의 실력으로 각광받았고 은퇴 후 지도자생활을 하면서 나름 지도력도 인정받았으나, 현재는 선수 폭력 사건을 일으킨 두 명의 감독 중 한 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사건으로 붙은 멸칭이 북두.[5] 이 멸칭이 너무 유명해서, 본명은 몰라도 '배구계에 선수 때린 북두라는 감독이 있다.'라고 널리 알려졌을 정도다(…).

2. 선수 경력

파일:이상열 럭키금성.jpg

서울 인창고 - 경기대를 거쳐 럭키금성-LG화재에서 1989 ~ 1997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인창고 시절에 랭킹 1위 자리를 진주동명고황현주현대건설 감독과 다퉜을 정도로 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주목을 받았으며, 서강대학교에 85학번으로 입학했다. 그러나 서강대 배구부가 입학과 동사에 해체된 후[6] 자퇴, 다음 해에 경기대학교에 다시 입학해 박진환 감독의 가르침을 받고 졸업해 금성으로 입단하였다.[7]

포지션은 윙 스파이커(라이트윙)이었으며, 별명은 코트의 삼손, 야생마다. 실업 시절 긴 머리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거기에 얼굴까지 받쳐주면서 여성 팬이 꽤 많았던 선수였다. 196cm의 큰 키에 엄청난 파워 스파이크와 타점을 가지고 있었고 고질적 무릎부상으로 미들블로커로 전환 했을 때도 뛰어난 활약을 보일 만큼 올라운드 플레이어. 하지만 무릎 부상이 잦았던, 요즘으로 치면 유리몸이었기 때문에 현역 시절에는 기대만큼 실망도 많았던 선수였다.[8] 풀 시즌을 뛴 경우가 많지 않을 정도. 그 때문인지 1991년에 대통령배 결승 때 한양대학교 배구부에 대통령배-슈퍼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대학교팀 우승을 내준 준우승을 기록했을 뿐,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9]

3. 지도자 경력

1997년에 은퇴한 후 모교인 서울 인창고등학교에서 코치-감독 생활을 했고, 친정 팀인 LIG의 코치도 맡았다. 대한배구협회 남자배구 국가대표팀 전력분석관과 코치를 지내기도 했으나 2009년에 후술할 박철우 구타 사건을 일으키면서 협회에서 영구제명을 당했다.

하지만 이상렬을 제명시킨 주체는 대표팀을 주관하는 대한배구협회로 프로리그를 담당하는 한국배구연맹(KOVO)에서는 징계가 유효하지 않아서, KOVO 소속인 경기 감독관으로 재직하였다.

나중에 대한배구협회가 내렸던 징계도 슬그머니 풀리면서 2012년부터 이경석 감독의 후임으로 모교인 경기대학교 배구부 감독을 맡았다. 폭행으로 말이 많았지만 대학 배구에서 지도자로서의 능력은 확실하다. 11학번인 이민규, 송희채, 송명근을 키워 내며 경기대학교의 전성 시대를 이끌어 냈다.

청소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3.1.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 감독

이후 2020년 4월 20일에 권순찬의 후임으로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생애 첫 프로 감독을 맡게 되었다. 자신도 프로 팀 감독에 대한 열망이 컸고, 적은 나이도 아니라서 제안이 오자 이 때 아니면 언제 프로 감독 해보겠나 싶어서 덥석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박철우 폭행 사건 때문에 감독 선임이 발표되자 폭행범이 프로팀 감독까지 한다며[10] 거센 비난을 마주해야 했다. 비시즌 동안 박철우가 한전으로 전격 이적하며 이목이 집중되었고, 하필 부임하면서 데려온 코치 중에 '박우철' 코치가 있어서 매일같이 북두 소리 들으며 까이는 중. 감독 선임 후 인터뷰에서 폭행 사건에 대해 사고였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거나 폭행 피해자가 직접 사과를 받은 적은 없다고 밝히면서 비시즌 내내 욕을 먹었다.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운 좋게 1위에 당첨되었고, 말리 출신의 2001년 생 노우모리 케이타를 지명했다. 기량이 출중해서 몇몇 팀에서 주목을 하기는 했지만, 프로 경력이 일천하여 우려하는 눈도 있었는데 반전이 필요하다며 전격 발탁했다. 케이타가 외국인 선수 코로나 1호 확진자가 되면서 고심을 많이 했지만 끝까지 가기로 가닥을 잡았다 한다.

부임 초기에는 '선수들이 맞기 싫어서 열심히 할 것이다', '케이타가 까불면 바로 참교육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그의 발언 하나하나를 폭행과 연계해 까이는 게 주 일과였다.

시즌이 개막하자 케이타의 활약을 앞세워 약팀 KB의 돌풍을 이끌었다. 해설위원 시절에는 스피드 배구를 추종했지만, 막상 KB 감독이 된 이후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몰빵배구를 하고 있다. 이를 두고 뭐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미 경기대학교 시절부터 해 온 몰빵이고, 해설 출신 감독이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한둘이 아니며, 특히 김밥집 팬들은 전임 감독이 스배를 지향하다 팀을 말아먹은 것을 봤기 때문에 우리는 스배 할 여건이 안 된다며 이상렬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개막 이래 5전 전승을 달리는 등 성적이 몹시 좋다. 11월 10일에 같이 전승을 달리던 OK금융그룹에 패하며 연승이 끊기자 철저히 패인을 분석해 며칠 뒤 열린 리매치에서 복수에 성공하며 점점 평이 좋아지고 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나 했지만, 하락세를 타고 있는 우리카드에 두 번 다 0:3 패배를 당하더니, 결국 12월 12일, 외국인 선수가 없는 대한항공에 패하면서 1위 자리를 내주었다. 처음 연패를 맞이하게 되자 경기 후 인터뷰에서 선수들이 열심히 연습했지만 실전에서 자신감이 없다며 답답한 속내를 내비치면서 내가 얼음물 입수라도 해야 동기부여가 될 듯 싶다는 농담을 했는데, 다음 날 홀로 강원도 산골에 가서 진짜 입수를 하는 기행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삼성화재전. 이날 삼성화재는 외국인 용병 교체로 인해 국내 선수들만 출전시킨 채 경기를 치렀는데, 이런 팀한테 셧아웃을 당했다. 이는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결과이다. 최고의 용병을 가져왔고 상대는 최하위에 국내 선수로만 구성된 팀을 상대로 셧아웃 패배는 온전히 감독의 실책이다.

케이타가 부상으로 이탈하며 연패의 늪에 빠지자 얼음물 입수에 이은 다이어트를 선언하며 선수들을 자극했다. 물론 반응은 이뭐병. 팀이 상황이 안 좋자 에 다니면서 정신수양을 한다는 드립을 쳤는데, 그래놓고 다음 경기에서 판정문제로 심판이랑 거하게 한판 붙으면서 예전 성질 나온다고 까였다.

그래도 DTD를 끊고 다시금 잘 하나 싶더니 갑자기 학교폭력 사건이 배구판을 거하게 휩쓸면서 까이고 있다. 폭행 감독 잘나가는 V리그. 북두상렬의 전과를 생각해 보면 업보이긴 한데, 조용히 있어도 모자랄 판에 자신의 경험(…)을 예시로 들며 가해자는 반드시 대가 치러 같은 인터뷰를 하고 다니면서 "맞는 말인데 니가 그런 소리를 하냐"고 욕을 드시고 있다.

그 와중에 2월 17일, 우리카드와의 경기에서 경기 중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경기장에 배달시켜 선수들에게 나눠주는 기행을 선보였다. 커피를 마시고 들어간 3세트를 이기면서 효과를 보나 했지만 결국 2:3으로 역전패당했다.

아무튼 입을 잘못 털었다가 박철우에게 인터뷰로 이상열은 그 사건을 반성한 적이 없다고 저격당했다. 그 폭행사건이 재조명되고 논란이 일자 스스로 잔여경기 출장정지를 선언했지만, 셀프 징계라는 말도 안 되는 조치로 욕만 얻어먹었다. 사태 파악이 안 됐는지 계속 핀트를 못 잡고 이상한 인터뷰나 하면서 민심이 계속 악화되었고, 추가 폭로까지 계속 나오면서 비난이 거세지자 결국 3월 12일 자진사퇴를 선언했다. 사퇴는 너무 지나치지 않느냐는 팬들도 있지만 애초에 감독으로 선임되면 안 될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제라도 바로잡아서 다행이라는 의견이 대부분.

사퇴 후 KB손해보험이 악재를 딛고 가까스로 봄배구에 진출하자 경기장을 찾아와서 선수들을 격려하고 갔다 한다. 물론 팬들은 일반인이 왜 선수들을 격려하냐는 반응.

4. 해설위원 경력

2004년 춘계고교연맹전 결승부터 MBC에서 해설위원을 하여 아테네 올림픽 배구중계도 했고, 2013-2014 시즌 V-리그 중계를 새로이 맡은 SBS 스포츠의 남자부 해설위원으로 영입되었다. 공격 패턴 분석이 뛰어나고 경기 전개 과정을 시청자들에게 잘 풀어서 설명해 준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이상렬 쑈~! 2014-2015 시즌에는 SBS 스포츠의 V-리그 남자부 해설 1선발로 자주 나오고 있다.

하지만 최태웅 감독의 스피드 배구를 지나치게 추종한 나머지, 가끔 현대 측에 지나치게 편파적인 해설을 할 때가 있다. 본인의 친정 팀이 아님에도 말이다.

5. 사건사고/논란

5.1. 박철우 구타 사건

이상렬이 엉뚱한 쪽으로 유명해진 계기. 2009년 당시 배구 대표팀은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태릉선수촌에서 모여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당시 국가대표팀 코치 신분인 이상렬이 박철우구타하는 사건이 터졌다. 내막을 두고 말이 많지만[11] 그건 둘째치고 피멍이 들도록 두들겨 패고 발길질까지 하면서 난리가 났다.

박철우는 김호철 감독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김호철은 아무런 조치도 없이 박철우를 회식자리에 참여시켰다. 이에 박철우는 선수촌을 이탈했고, 동료들의 도움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12] 사건이 보도되자 가뜩이나 체육계 폭행으로 욕을 먹어서 심기가 불편한 대한체육회에서 폭행 지도자는 체육계에서 영원히 퇴출시켜야 한다고 펄펄 뛰었고, 대한체육회 차원에서 이상렬을 고소하자 가만히 있던 배협은 부랴부랴 이상렬에게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사태를 방임했다는 의혹을 받는 김호철 배구대표팀 감독도 즉시 경질되고 훈련하던 대표팀은 태릉선수촌에서 쫓겨났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배협이 열심히 박철우를 달래자 박철우 측에서 고소 취하를 요청하며 사건은 일단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화해를 위해 대면한 자리에서 가해자 이상렬은 뻣뻣하게 고개를 든 채로 악수만 하고 오히려 피해자인 박철우가 고개를 숙이는 말도 안 되는 요식행위로 사과(?)를 끝냈고, 배협은 2년도 안 돼서 무기한 자격정지를 풀면서 박철우의 통수를 쳤다. 이렇게 이상렬은 지도자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지만 팬들이 바보는 아니라 폭행은 이상렬 배구인생에서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가 되었다.

폭행사건 이후배갤에서는 이상렬을 북두의 권에서 따온 북두라고 부르며 깐다. 일명 북두상렬. 장발까지 하고 있으니 완벽하다. 북두 별명이 널리 퍼져서 많은 팬들이 이상렬의 별명이 북두라는 것을 알고 있고, 하도 북두 북두 하다보니 뒤늦게 유입되어 이상렬을 잘 모르는 팬들도 폭행 사건은 안다. 당사자도 이 별명을 아는 눈치인데, 아프리카TV에서 KB손해보험 관계자가 본인도 북두 별명을 안다고 못을 박았다.

폭행 외에는 별다른 구설수가 없었지만 그 사건 하나 때문에 폭행은 그의 아이덴티티가 되었고 팬들에게 비호감으로 찍혔다. 당연히 박철우 팬들은 이상렬을 불구대천의 원수로 취급한다. 10년이 넘었으니 이제 잊혀질 만 한데도 이상렬 관련 기사마다 꾸준히 폭행드립이 따라와서 딸 이유안의 프로 지명 기사에서도 북두상렬이 소환되었고 KB손해보험 감독이 되자 KB 관련 기사의 베댓은 전부 폭행드립이 되었다. 김성근이나 박주영처럼 기사가 뜨면 내용 패스하고 바로 댓글로 가게 만드는 사람.

사건 발생 후 12년이 지난 2021년 배구계 학교폭력 폭로 사건이 터지자 '나도 경험이 있다'고 운을 떼면서 자신도 가해자였는데 인과응보로 벌 받았다는 식의 언론 인터뷰를 했다. 당연히 팬들에게 니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냐며 비판이 쏟아지는 와중 피해자인 박철우가 소식을 접하고 인스타그램에 분노를 표출했다. 피꺼솟 이상렬이 감독으로 리그에 복귀하자 박철우는 시즌 초에 아직도 직접 사과를 못 받았다고 인터뷰한 바 있다.

이날 경기 후 박철우는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이상렬의 행위에 대해 폭로했다. 기사에서 증언한 바에 의하면 고교 시절부터 고막이 나가도록 맞은 선수도 있고, 부모님 앞에서 맞은 선수도 있으며, 박철우 폭행 사건 당시에는 (박철우가 국가대표에서 나온 후 다른 선수들에게)몇 대 맞았다고 나가냐며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솜방망이 징계를 받은 이후에도 선수들에게 너는 박철우(폭행한 것이 걸린 것)만 아니었어도 처맞았어라며 폭언을 하는가 하면 손으로 때리지 못하니 모자를 갖고 때렸다, 과연 이러한 폭행이 '한 번의 실수'[13] 일 수 있냐며 일갈했고, 자신은 전혀 사과를 바라지 않는다는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이에 이상렬은 박철우를 향해 "죄인은 세월이 지나도 죄인이다. 철우가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사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물론 이는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일 뿐 피해자에게 직접 전한 메시지가 아니다.

이후 사태가 커지자 2월 19일 KB구단은 6시간의 회의 끝에 '박철우 선수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이상렬 감독이 용서를 구해야 한다'라는 지극히 1차원적인 결론을 내렸고(…) 이에 대해서 이상렬은 '어쨌든 어른이 다 잘못한 거죠', '(누군가)다리를 놓아준다면 저는 층분히 사과할 용의가 있어요'라며 '누군가 다리를 놓아주면 어른인 내가 먼저 사과를 해 주겠다' 는 식의 어처구니 발언을 해서 여전히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폭행 사건 당시의 사진을 보면 살짝 때린 것도 아니고 완전히 피멍이 들도록 구타를 해댔기에, 요즘 세상이었으면 바로 퇴출되어 절대로 복귀를 못 할 수준이다. 이런 사람이 복귀해서 현재 활동을 하는 것부터가 배구계의 문제인데, 말도 안되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아놓곤 조용히 살기는커녕 이상한 언론플레이나 해대면서 배구계 학교폭력 폭로 사건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2021년 v리그에 논란을 추가하고 있다.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에 배구선수가 아닌 '일반인'이 쓴 글이 게시되었다. 이상렬이 고등학교 3학년 선수일 때, 체육관을 구경하던 중학교 1학년인 자신을 이상렬이 연습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폭행했다는 내용이다. 글을 게시한 사람은 그 뒤로도 배구와는 관련이 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이상렬 감독의 인터뷰를 보고 분노해서 글을 게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상렬은 감독의 자진 잔여시즌 출장정지 라는 어처구니 없는 방법을 선택했다. 감독이 스스로 결장을 자처하는 것이나, 또 그것을 구단이 수락하는 것은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코미디다. 경기를 책임 져야 하는 신분인 감독이 자진사퇴도 아니고 자진 출장정지로 도망가고 있으니 그냥 당장의 비난을 모면하고 인터뷰를 회피하려는 명분을 만든 셈이다.

뿐만 아니라 후속 보도에 의해 이 '자진 출장정지'라는 것이 계약 기간 잔여 연봉을 보존 받기 위한 이상렬의 최후의 꼼수라는 것이 밝혀지며 끝까지 비겁한 '가해자' 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상렬은 어떻게 KB손보 감독이 됐나

결국 시즌 후 사퇴했다.[14]

6. 근황

21-22시즌 1라운드에서 시합날 KB손해보험 홈 구장을 방문해 선수들을 격려하였다고 한다.

21-22시즌 4월 7일 챔피언결정전 2차전 의정부체육관에서의 경기에 직관을 온 사진이 나왔다. 초대석이 아니라 관중석이었는데 본인이 사적으로 온 듯 하다.

7. 기타

19년 8월, 대학팀 감독을 맡는 동안 스카웃을 빙자한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있다. 접대 받을거 다 받고 해당 선수는 안뽑았다는 듯.

이유안이 학교에서 줄넘기로 맞자 학교에 찾아가서 따졌다는 얘기도 있다. 폭력 사태 이후의 일이라 깽판을 치지는 않았다지만, 남의 자식은 죽어라 패놓고 자기 자식이 맞았다니까 바로 달려가서 항의한다며 까임 소스로 활용된다.

팬들을 대하는 태도마저도 좋지 못하다. 이는 팬서비스의 수준이 4대 종목중에서는 가장 좋은 배구계는 물론 다른 종목의 안 좋은 선수들과 비교해도, 심지어 젊은시절 태도가 좋지 않았던 선수들도 은퇴 후 중년엔 괜찮아지는 편임을 생각하면 최악의 수준이다.

언론에 대서특필되었을 정도로 악질적인 이재영-이다영 팬덤, 이른바 '둥산당(쌍둥이+공산당)'처럼 이상렬은 남자배구 가해자들 중에는 유일하게 집단 쉴드가 있던 인물이다. 이들은 '북산당(북두+공산당)'이라고 불린다. 박철우의 과거 장인팀 삼성화재 이적으로 이를 갈아온 일부 현캐팬들과 박철우가 시즌 도중 입을 열어서 KB손해보험의 성적에 타격이 왔다고 주장하는 극히 일부 KB손보 팬들, 이상렬이 무사하면 이재영-이다영도 복귀할 수 있다고 계산한 둥산당 등등 인원의 면면은 꽤 복잡하다. 다만 이 중에서 진짜로 이상렬을 옹호하는 사람은 없다(…). KB손보의 성적을 신경쓰는 척하면서 이걸 이용해서 박철우를 까는 전혀 KB와 상관없는 사람들(스포츠 토토를 하는 사람들, 일명 토쟁이)도 있는 데다가, 둥산당들의 경우에는 이상렬을 복귀에 이용하면 그만이지 어떻게 되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옹호하는 사람들이 이상렬의 뇌진탕내장파열까지 갈 뻔한 폭력 행위를 외면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케이타에게는 은사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원래부터 타 리그에서 관심을 받아왔던 케이타이지만 트라이아웃에서 케이타를 발견하고 자신을 세계무대에 제대로 증명할 커다란 기회를 준 장본인이 이상렬인 셈이다. 그러한 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니 케이타도 이상렬을 잘 따르고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렬 사퇴 이후에도 개인 인스타그램에 이상렬과의 사진, 스승의 날에는 이상렬과 자신의 사진를 올리는 등 그 사이가 각별함을 보여주었다.

해설할 때나 감독 할때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유독 강조한다. 예를 들어 때리기 어려운 하이볼이 오더라도 범실은 해도 상관없으니 그러한 볼도 때리겠다는 자신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굉장히 어렵게 오는 볼도 자신있게 처리하는 케이타를 보면 이상렬의 배구 철학에 걸맞는 선수라고 볼 수 있다.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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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날 신문 기록에는 전부 李尙烈이라고 되어 있으며, 2017년 3월 12일 우리카드KB의 경기를 중계하면서 오히려 상(尙)자를 쓴다고 스스로 밝혔다.[2] 2009년에 박철우를 폭행한 사건이 재조명되어 사퇴 목소리가 커졌고, 결국 모교 후배의 추가 폭로까지 터지며 2월 20일 이후 경기 출장을 포기했고 3월 12일 자진 사퇴했다.[3] 李尙旺. 대한항공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4] 둘 다 세화여중 - 세화여고에서 배구를 했다. 하지만 실력은 영 별로였는지 이유안은 입단 후 단 한 경기도 못 뛰고 1년만에 바로 방출되었으며, 이효인은 아예 지명받지도 못했다. 지금은 둘 다 배구계를 떠나서 다른 길을 걷는다고 한다. 결국, 이유안은 길게 선수 생활을 지속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일찍 은퇴를 했는데, 주전경쟁에서 밀려서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문제도 있었겠지만 아버지 이상렬 감독이 지속적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영향도 있었던 모양이다.[5] 북두신권에서 따왔다.[6] 이에 대한 내용은 서강대 항목 참조 바람.[7] 이 당시 그와 함께 경기대를 이끌었던 선수로 김은석이 있었는데, 김은석은 이상렬과 인창고등학교 동기로 서강대에 입학했다 같이 자퇴하는 과정을 같이 겪기도 했다. 김은석은 고려증권에 입단하여 장윤창, 이재필, 홍해천 등을 받쳐주며 백업 공격수로 활동하고 있었으나 1991년에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그 해 6월에 세상을 떠났다.[8] 이 점 때문에 훗날 지도자 시절 타 선수를 부상 입힐 정도로 폭행하면 자신처럼 될 걸 알면서도 폭행했다고 까이고 있다.[9] 당시 금성으로썬 현대차와 고려증권이 이미 결승에 못 가서 우승적기였으나, 아쉽게 우승을 내줬다.[10] 다만 이상렬 외에 신영철 감독도 과거 선수 구타 전과가 있었고, 문용관 해설위원, 이경석 KOVO 경기감독관 역시 감독 시절 선수 구타 전과가 있다.[11] 이상렬 측은 박철우의 태도가 불량해서 지적하다가 흥분했다고 했지만, 박철우와 동료 선수들은 그날따라 몸 상태가 좋아 훈련을 아주 잘 소화했고 감독도 만족했는데 훈련 끝나고 난데없이 코치에게 두들겨맞아서 당황했다고 입장을 냈다. 일각에서는 박철우가 젊은 시절 태도 문제로 지적을 받은 일화가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쳐도 폭행은 절대 안 된다.[12] 그 와중에 이상렬은 박철우의 이탈을 접하고 "겨우 몇 대 맞았다고 나가는 선수는 대표팀에 필요없다"고 선수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겨우 몇 대'의 진상은 위 사진에 잘 나와있다.[13] 이상렬이 감독으로 선임된 후 그 사건에 대한 질문이 들어오자 한번의 실수 드립을 쳤다.[14] SBS 해설위원하던 시절에는 박철우와 딱히 마주칠 일도 없었고 어쨌든 중계를 잘했기 때문에 지금도 무난하게 해설위원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결국 욕심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