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6-11 16:06:40

하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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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배구인
파일:attachment/하종화/Exmple.jpg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감독 시절. 자 우리꺼 하자
<colbgcolor=#eeeeee,#191919> 하종화
河宗和
출생 1969년 8월 28일 ([age(1969-08-28)]세)
경상남도 진주시
국적 [[대한민국|]]
신체 195cm | 체중 102kg
가족 장녀 하정민[1], 차녀 하혜진, 장남 하혜성[2]
직업 배구선수 (레프트 / 은퇴)
배구감독
학력 진주동명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졸업)
경남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프로입단 1992년 현대자동차서비스 배구단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현대자동차서비스 (1992~2000)
감독 진주동명고등학교 (2003~2011)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2011~2013)
진주동명고등학교 (2014~2018)
코치 현대자동차서비스 (2000~2003)

1. 소개2. 선수 시절3. 코치-고교 감독 시절4. 현대캐피탈 감독 시절5. 이후6. 기타7. 관련 문서

[clearfix]

1. 소개

대한민국의 前 배구선수, 前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감독 및 진주동명고등학교 배구부 감독 겸 체육교사. 前 KOVO 경기 전문위원(감독관)

신장 195cm, 체중 102kg. 포지션은 레프트였으며 실업 시절 현대자동차서비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였으나, 성급하게 프로 감독으로 나가는 실수로 인해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라는 말의 산증인이 되었다.

2. 선수 시절

파일:attachment/하종화/Example.jpg
현역 시절.

진주동명고등학교를 거쳐 1988년 한양대학교에 입학했으며 1987년 제5회 대통령배 대회[3] 남자부 신인상을 수상했다. 4학년으로 올라가기 전이었던 1990-1991 대통령배 대회에서는 소속팀인 한양대학교의 주포로 맹활약하며 한양대학교가 대학팀 최초로 대통령배 대회 정상을 차지하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대학교가 프로팀을 이겼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리고 본인은 이 8회 대회에서 MVP에 등극했다. 이런 활약으로 일찌감치 국가대표에 발탁되었다. 아시아의 거포라는 별명을 가진 강만수 감독의 뒤를 이은 공격수로 평가받았으며, 1990년대 초반 당대 일본 최고의 배구스타인 나카가이치 유이치(中垣内祐一)의 라이벌로 불렸다. 비주얼이 살짝 모자라보일지 몰라도 대한민국 배구에서 최고의 토털 패키지형 공격수에서 올타임 베스트에 들만한 천재 선수였다.

1992년 졸업을 앞두고 실업팀들의 스카웃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현대자동차써비스는 91-92 슈퍼리그 한양대학교 멤버 중 졸업반이었던 88학번 하종화, 문양훈, 윤종일, 장재원 4명[4]을 데려가기 위해 헬기까지 동원해 스카우트전쟁을 벌였고 무려 7억이라는 거금을 쏟아부었다. 여기에 럭키금성이 돌연 영입경쟁중이던 윤종일과 장재원의 영입을 포기했고 고려증권과 영입경쟁을 벌였던 경기대학교의 207cm 장신 센터 제희경까지 빼오는 슈퍼리그 역사상 최고의 돈지랄을 선보여 대학 정상급 선수들을 영입했다. 이것이 배구 올드팬들에게 알려진 일명 88학번 싹쓸이.[5] 그러나 그들이 모인 현대자동차써비스는 기존 베테랑들이 은퇴하고 한양대팀을 통째로 뜯어와 프로화한거나 마찬가지라 팀으로써 완성도가 부족했고 특히나 세터 장재원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 한국 최고의 세터 신영철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상무, 선수 10명만으로 어렵게 꾸렸던 고려증권에 밀려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이 경험이 쌓이고 손발을 제대로 맞추기 시작한 1993-94 시즌 대통령배에서 팀을 정상으로 올리며 이 대회에서 2번째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다. 그러나 1994년 말 군 입대를 놓고 현대차써비스와 상무의 감정 대립이 발생하면서 선수 생활에 중대한 기로를 맞게 된다. 왜냐하면 1991-92 시즌 상무의 대통령배 우승 이후 실업팀들이 상무에 군입대를 시키는 것을 굉장히 꺼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남자 대표팀이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하종화는 곧바로 군 입대를 통보받았다. 그리고 현대차써비스는 그를 상무로 보내지 않고 방위병으로 입대시켰다. 이 당시는 보충역 판정을 받아 방위병 입대 대상이 되었던 선수들도 상무에서 복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방위병이 폐지되고 보충역이 공익근무요원으로 전환되면서 상무는 현역 대상자들만 받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었다. 이렇게 되자 1974년생 이전 배구 선수들 중 보충역 대상자들은 공익요원 복무를 택하게 된다. 이들은 재검을 받지 않는 이상 기존 방위병의 복무 기간만 복무하면 되었다.

그렇게 해서 하종화는 일반 부대(72사단)에서 복무하게 되었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상무로 옮겼다. 그러나 선수 등록이 늦어지는 바람에 1994-95 시즌 슈퍼리그에는 뛰지 못했다. 복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했을 때에는 이미 임도헌이 간판 스타로 자리잡고 있었고, 신인인 후인정이 새로 가세한 상태였다. 하종화는 더 이상 예전같은 기량은 보이지 못했고 1999-2000 시즌 슈퍼리그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운 뒤에 은퇴했다.

하종화의 선수 시절 영상(1991년 월드리그)이 있다. 꼭 보자. 신영철 세터와 호흡이 잘 맞았다.

3. 코치-고교 감독 시절

은퇴 후 곧바로 현대자동차의 코치를 맡았으나 2003년 송만덕 감독에 대한 선수들의 항명 파동 때 코치직에서 물러난 후 낙향했다. 공백기를 가진 동안 경남대 교육대학원에 진학해 교원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모교인 진주동명고등학교의 체육 교사로 부임했으며, 진주동명고등학교가 배구부를 재창단하자 배구부 감독을 맡아 팀을 여러 차례 우승으로 이끌었다. 김진만, 김광국, 전광인, 정민수 등이 당시 그가 진주동명고등학교에서 지도했던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하지만 2008년 진주동명고 감독 시절 대입 입시 커미션 행위에 의한 배임 수재 혐의가 드러나 현대캐피탈 감독 재임 중에 기소되어 1,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흑역사도 있었다.

4. 현대캐피탈 감독 시절

현대캐피탈은 2010 - 2011 시즌 결승 진출 실패의 책임을 물어 김호철 감독을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고 팀의 프랜차이즈 중 한 명인 하종화를 새로운 사령탑으로 영입했다.

그러나 프로는커녕 성인배구 지도 경력도 전무한 상태에서 갑자기 프로에 온 하종화 감독이 지휘한 2011 - 2012, 2012 - 2013 두 시즌 동안 현대캐피탈대한항공에 밀려 결승 진출도 하지 못했고, 삼성화재를 상대로도 계속 열세를 보였다. 호구캐피탈. 애초에 고교 감독 외엔 대학교 무대 감독 경력조차도 없는 경험 부족인 지도자를 김호철 감독의 후임으로 놨으니... 거기에 당시 답이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던 드림식스의 구원투수로 들어온 김호철 감독에게도 크게 발리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그는 2012-2013 시즌이 끝나자 성적 부진으로 인해 계약 기간을 1년 남긴 상태에서 현대캐피탈에서 해임되었다.

물론 하종화 감독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것이, 현대캐피탈송만덕 감독 시절에 스카웃해 왔던 선수들(권영민, 장영기, 윤봉우, 이선규, 박철우 등. 그 중 박철우는 FA로 풀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인의 팀으로 갔지만...)에게 너무 오래 의지해 왔던 반면, 프로화 이후 드래프트로 입단한 선수 중에서 팀에 제대로 정착한 선수가 거의 없다시피하면서 고령화가 심각한 정도였다.[6]

5. 이후

현대캐피탈에서 물러나 휴식기를 가진 후, 2014년 모교인 진주동명고등학교에 복직하였다.

2017년 6월, 딸과 함께 김영준 스포츠동아 기자의 인터뷰에 응했다.

이후 2018년 3월 5일 자로 KOVO 경기감독관으로 선임되었다. 다만 KOVO 규정상 딸 하혜진이 있는 한국도로공사 경기에는 일절 배정되지 않는다.

2018년 7월, KOVO 조직개편으로 경기감독관과 심판감독관이 한 팀으로 통합됨에 따라, 경기전문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2018 KOVO컵대회 때는 한국도로공사를 제외한 경기에 자유롭게 배정되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2018 - 2019 V리그부터는 아예 여자부 경기 자체에 전혀 배정되지 않고 남자부 경기에만 배정되고 있다. 혹시나 하종화가 담당하는 경기가 도로공사와의 순위 연계성이 있을 가능성이 없지 않아 아예 배제한 듯.

2018년 12월 25일에 열렸던 남자부 경기에서, 비디오 판독을 잘못 하여 징계를 받았다.

2019년 12월 11일 KGC인삼공사 vs GS칼텍스 경기의 경기감독관으로 배정되면서 2018 KOVO컵대회 이후 오랜만에 여자부 경기를 맡았다. 그리고 2019 - 2020 V리그를 끝으로 경기전문위원에서 물러났다.

6. 기타

파일:external/img.yonhapnews.co.kr/PYH2014091104070001300_P2.jpg
두 딸과 함께. 가운데는 작은딸 하혜진, 오른쪽은 큰딸 하혜민(이후 하정민으로 개명).

슬하에 네 자녀가 있다. 특히 큰딸인 하혜민과 둘째딸인 하혜진이 아버지를 따라 배구에 입문하여 2010년대 여자고교 배구에서 진주 선명여자고등학교가 강팀이 되는 데 주역으로 활약했다. 하혜민은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2013년에 수시모집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하여 한때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고, 언니보다 키가 더 큰 하혜진은 아버지를 따라 프로선수가 됐다. 하혜진은 2014 KOVO 드래프트에서 전체 3번으로 한국도로공사에 지명되어 2014-15 시즌에 데뷔했고 2020-21 시즌 후 신생팀 광주 페퍼저축은행 배구단의 창단 멤버로 이적했다.

그리고 아들인 하혜성은 배구를 했던 아버지, 누나들과 달리 야구선수로 활동 중이다. 2021년 현재 덕수고등학교 야구부 소속 투수로(3학년) 활약중이다. 강스파이크를 때리던 아버지의 손 감각을 물려받아서인지 공을 채는 힘이 남다르다고 한다. 한슝쾅 하고 강속구 던지는 모 투수그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8월 9일 2021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횡성 베이스볼파크) 32강전(vs 예일메디택고등학교)에 선발로 등판하여, 본인의 주가를 높였다.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KBO 스카우트들의 눈이 번쩍 뜨였는데 마침내 2022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되어 프로의 길을 걷게되었다.

하혜성의 쌍둥이 여동생만 운동선수의 길을 걷지 않았다.

낙향한 후 사실상 고향에 정착하다 보니, 친정 팀의 감독을 맡았을 적에는 시즌 중 당시 선수단 숙소 소재지인 용인[7]에 있게 되어 본의 아니게 가족들과 떨어져서 살아야 했다.

배구계 학교폭력 폭로 사건 후 쌍둥이 선수(1996)들의 과거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2012~14년 선명여고에서 쌍둥이들은 의외로 조용했던 것 같다. 이들은 하혜진(1996)과 하정민(개명 전 하혜민, 1995) 자매를 의식했는지도 모른다. 하씨 자매는 하종화의 딸이기 때문. 쌍둥이들이 학교에서 날뛰지 못하게 막은 것은 물론 쌍둥이 뒤에서 막후 실력자 행세를 했던 쌍둥이 엄마도 함부로 할 수 없었을 정도로, 하종화의 이름은 힘이 있었던 셈이다.[8] 물론 전라북도 전주시와 경상남도 진주시의 거리는 113km으로서, 전주시에서 거주하던 김경희의 영향력이 경상남도 진주시(경해여중 및 선명여고)에 뻗치지 못했을 것이다.

7. 관련 문서


[1] 하혜민에서 개명. 현재 체육교사.[2] 2003년생. 덕수고등학교 야구부 소속 야구선수로 포지션은 투수이며 2022년도 신인 2차 5라운드에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았다. 그리고 쌍둥이 여동생(넷째)이 있다.[3] 이 해에는 1988 서울 올림픽 준비로 1988년 대회를 2개월 앞당겨서 진행했다.[4] 여기에 현대는 89학번 라이트 강성형까지 스카웃한다. 나머지 한자리였던 장홍석만 럭키금성행.[5] 이 88학번 싹쓸이 때문에 삼성화재의 창단과정에서 싹쓸이에 쉴드를 치는 일부 빠들도 있지만, 현대의 88학번 싹쓸이는 협회가 개입하지 않은 순수한 쇼미더머니의 결과였다.[6] 물론 하종화도 이거에 대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이, 하종화 역시 신인들을 키우기보다는 당장의 성적에만 급급해 세터인 이효동을 내주고 임동규를 트레이드받는 등의 행보를 보였던 거다. 그러나 지금은 재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7] 현대캐피탈은 연고지 천안시구단 전용 클럽하우스를 만들기 전까지 용인시 소재 대웅제약 연수원을 숙소와 클럽하우스로 썼다. 현대캐피탈이 떠난 후 이 숙소는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가 임차해서 이용 중이다.[8] 국가대표 세터 출신인 김경희는 하종화보다 3년 선배다. 그러나 선수 커리어의 등급이나 인지도의 측면으로 따지면 하늘과 땅 차이 수준으로 하종화가 김경희를 압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