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0 13:17:46

이스다렌의 여인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골짜기에서 발견된 여인의 사체3. 사망자의 신원을 찾아라4. 죽은 여성의 정체, 자살설과 타살설5. 현재 상황

1. 개요


1970년 11월 29일 노르웨이 베르겐 근교에 위치한 이스달렌(Isdalen) 골짜기에서 신원 미상의 여성이 불에 타 죽은 채로 발견된 사건. 사망자의 소지품에서는 신원을 알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8개국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발행된 여권이 발견되었지만 경악스럽게도 그 모든 게 위조여권이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age(1970-11-29)]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범인은커녕 피해자의 신원조차도 밝혀내지 못했다.

2. 골짜기에서 발견된 여인의 사체

사건의 발단은 1970년 11월 29일 베르겐 근교에 위치한 울리켄(Ulriken) 산 북쪽의 작은 언덕을 하이킹하던 한 남자와 두 딸이 시신 1구를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발견 장소는 흔히 이스달렌 계곡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발견자들은 이른바 죽음의 골짜기라고 불리는 곳에서 바위들 사이에 숨겨진 채 일부가 불에 탄 나체의 여성 시신 1구를 발견하였다.

시신 주변에는 분홍색 페노바비탈 수면제 1다스와 도시락, 산크트할바르(St. Hallvards) 술병, 휘발유 냄새가 나는 플라스틱 병 2개, 모노그램이 지워진 은색 숟가락이 있었다. 시신을 발견한 남자는 딸들과 함께 곧바로 시내로 돌아가 노르웨이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법의학자와 경찰견을 이끌고 시신이 발견된 이스달렌 골짜기로 향했으며 현장을 조사한 후 불타 버린 여권 하나를 추가로 발견했다.

시신을 부검한 결과 여성의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시신의 위장 속에서 무려 50알이나 되는 수면제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목에는 타격에 의한 타박상이 있었고 지문은 갈라져 있었다. 치아 상태를 볼 때 남미에서 치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어느 나라 출신인지 알려주는 정보가 되진 못했다. 시신이 발견된 이스달렌 골짜기는 풍경이 웅장하고 베르겐에서도 몇 km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인적은 매우 뜸한 곳이었다.

3. 사망자의 신원을 찾아라

경찰은 우선 사망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사건 현장에는 죽은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여권이 발견되었으나 이미 불에 다 타 버려서 아무 쓸모가 없었다. 더 납득하기 힘든 것은 시체 주변에서 발견된 의류는 불에 타지 않았는데도 상표와 라벨이 모두 뜯겨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모든 소지품 마크들은 물론 플라스틱 병 바닥의 라벨조차도 모두 박박 긁혀 제거되었는데 여성의 신원을 감추려는 목적이 분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포기하지 않고 수사팀을 증원해 여자의 신원을 밝히려고 노력했다. 마침내 시신이 발견되고 3일이 지난 12월 2일 첫 번째 실마리가 나왔다. 베르겐 기차역의 짐 보관소에서 여행가방 2개를 찾아내어 그 중 한 가방에 들어있던 선글라스에서 여성의 지문에 해당되는 것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발견된 여행가방 2개는 오히려 더 큰 의문점만 남겨주었다. 여행가방 안에 있던 물건들은 결코 일반인들의 소지품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가방 속 소지품은 500 독일 마르크[1]와 130 노르웨이 크로네, 모든 라벨이 제거된 옷, 처방한 의사 이름과 날짜가 삭제된 연고, 생산정보가 박박 지워진 머리빗, 사건 현장에 있던 것과 같은 은색 스푼, 스타일이 특별한 이탈리아드레스, 가발, 안경들이었다. 마치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는 사람의 소지품과 같았다. 여기에 더해서 수수께끼 같은 메모장이 있었다. 암호로 작성된 메모는 죽은 여자가 방문했던 장소의 리스트로 결론이 났다.

사망자의 짐에서 한 이탈리아인 사진 작가의 그림엽서도 발견되었다. 경찰이 그 이탈리아인 사진작가를 찾아가 죽은 여성에 대해 묻자 그는 죽은 여성을 노르웨이 로엔에 위치한 알렉산드라 호텔에서 만났고 함께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으며 그 여자는 자신이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북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 출신이며 6개월 전에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풍경에 반해 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스달렌 계곡에서 발견된 변사자는 가발을 착용했으며 프랑스어·독일어·네덜란드어·영어를 구사했다고 한다.[2] 베르겐 시내의 호텔 몇 곳에서 머물렀으며 체크인 후에 여러 차례 방을 바꾸었다고 한다. 호텔 직원에게는 여행 중인 세일즈우먼이라고 했으며 앤티크 가구 수집가라고도 말했다. 사망자가 오트밀우유를 자주 주문했던 기억도 있었다. 한 증인은 우연히 죽은 여성이 베르겐 호텔에서 한 남성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의 증언에 따르면 죽은 여성이 독일어로 "난 곧 온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스다렌 계곡에서 발견된 이 여성의 마지막 행적은 호르다헤이멘(Hordaheimen) 호텔로 드러났다. 사망자는 11월 19일부터 23일까지 이 호텔 407호실에서 머물렀다. 호텔 직원은 죽은 여성이 키는 164cm이고 외모는 준수한 편이었고 눈은 작았으며 나이는 30대~40대로 보였다고 진술했다. 호텔 투숙객은 경찰에게 죽은 여성이 '사우스스테이트(South State)'[3]라는 담배를 피웠다고 진술했다. 죽은 여성은 11월 23일에 체크아웃을 했는데 현금으로 계산하고 택시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망자가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한 11월 23일부터 시신으로 발견된 11월 29일까지 6일 동안의 행적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사망자가 죽기 전에 머물렀던 호텔들을 돌면서 얻어낸 사실은 최소 다른 여권 8개를 들고 체크인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도 사망자의 정체에 대해 의문점을 더해주었다. 경찰은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인터폴과 공조해 유럽은 물론이고 북아프리카, 중동까지 싹 다 뒤져 보았지만 사망자가 호텔에 체크인할 때 썼던 여권은 8개 모두 가짜였다.

죽은 여성은 시신으로 발견되기 전에 이미 이스달렌 골짜기에 있었다고 추정되었다.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현지에 사는 남성이 사망자의 몽타주를 보고 경찰에 찾아와 한 증언이었다. 그는 11월 24일에 친구와 함께 하이킹을 하던 중 이스달렌 계곡 일대에서 죽은 여성이 검은 코트를 입은 외국인으로 보이는 남자 2명과 있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아울러 죽은 여성이 그날 야외 활동이나 하이킹에는 어울리지 않는 우아한 복장을 입었는데 얼굴이 매우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고 진술했다. 그 때 그들이 서로 지나쳤는데 죽은 여성이 뭔가 말하는 듯한 입 모양을 했지만 자기를 뒤따르는 남성들에게 공포를 느끼는 듯 보였다고 했다.

이렇게 사망자에 대해 여러 가지 증언이 나왔지만 신원을 알 수 있을 만한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노르웨이 경찰은 이스다렌 계곡의 여성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베르겐 경찰 몇 명만이 참석한 채 치러진 조촐한 장례식을 끝으로 이름도 모른 채 땅에 묻혔다. 현재까지도 사망자는 이름 없이 이스달렌의 여인이라고만 불린다.

4. 죽은 여성의 정체, 자살설과 타살설

죽은 여성의 신원과 함께 증폭되는 의문은 죽은 여성의 정체이다. 최소 8개나 되는 가짜 여권과 가명을 사용한 점, 여행가방 안에 있던 변장도구 등은 사망자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의미한다. 가명을 쓰고 변장하기란 자기 정체를 숨겨야 할 필요성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이스달렌 계곡에서 사망한 여성은 적국의 스파이였거나 국제 범죄 조직의 일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1970년은 냉전 시대였고 노르웨이는 엄연히 북대서양 조약 기구에 가입한 제1세계에 속하는 나라였다. 냉전 시대에 동구권 국가에서 서방국가에 첩보원을 암암리에 파견하는 일이 잦았음을 고려하면 이스달렌 계곡의 여성도 동구권 국가에서 파견된 첩보원일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첩보원들은 첩보원이 된 순간부터 첩보행동이 발각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신원정보에 관한 모든 기록이 말소된다고 한다. 어느 나라에서도 죽은 여성의 신원에 대한 정보가 없음을 고려하면 이스달렌의 여인은 적국의 첩보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이스달렌의 여인이 적국의 첩보원이라면 사용 언어와 소지품 중 독일 마르크가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본다면 출신지는 동독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 그간의 중론이었지만 필적 감정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인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스파이들은 의심받을 위험이 큰 타국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는 현지에서 협력자를 구하는 일이 많으니 이 여성도 협력자였을 수도 있다.

또 한 가지의 의문점은 이 여성이 자살했는지 살해당했는지의 여부다. 당시 수사당국에서는 이 여성이 자살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는데 위장 속에서 발견된 수면제 50알이 근거였다. 물론 이 수면제는 녹지 않은 상태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아니었지만 본인의 의지가 있지 않고선 그 많은 수면제를 삼켰음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게 자살설의 주된 근거였다.

한편 타살설도 만만찮다. 11월 24일에 죽은 여성을 봤다는 남자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스파이 혹은 범죄 조직의 일원으로 추정되는 이스달렌 계곡의 여인이 어떤 임무에 실패해서 그 대가로 죽음을 강요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설령 사망자가 스스로 수면제를 50알이나 삼켰다고 해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의 강요에 의한 선택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타살설 측의 주장이다.

5. 현재 상황

노르웨이 경찰은 현재도 이스달렌의 여인이 누구인지를 추적하고 있다. 개선된 몽타주를 공개하고 2016년에는 시신의 앞니에서 DNA를 추출한 걸 토대로 피해자의 신원을 추적하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신원을 밝혀낸다고 해도 이 사건이 해결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1948년 호주에서 일어난 타맘 슈드 사건, 2009년에 아일랜드에서 일어난 피터 버그만 사건과도 유사한 점이 매우 많다. 그 사건들도 사망자의 신원조차 밝혀내지 못한 채 영구 미제사건으로 종결되었으며 이 사건의 사망자와 마찬가지로 사망자가 적국의 스파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된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단, 피터 버그만 사건은 스파이가 아니라 단순 신분 도둑이나 철저히 잊혀지고 싶어 자신의 진짜 신분을 철저히 파기한 뒤 이국만리에서 세상을 뜬 사람일 가능성도 크고 타맘 슈드 사건은 최근에 피해자의 신원으로 유력해 보이는 사람을 찾았다.

1995년에 같은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오슬로 플라자 호텔 여성 사망 사건도 신원 미상 여성이 살해된 점, 여성의 신원을 특정할 만한 모든 단서들이 제거된 점 등이 매우 유사하다.
[1] 당시 서독에서 쓰던 화폐였다. 독일 재통일 이후 통일 독일의 공식 화폐가 되었으나 2002년부터 독일이 유로를 사용하면서 통용이 중지되었다.[2] 단, 영어는 서툰 편이었다고 한다.[3] 노르웨이 브랜드 담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