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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주(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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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의정
충정공(忠貞公)
이홍주
(李弘胄)
출생 1562년 (명종 17)
사망 1638년(인조 16)
본관 전주 이씨
백윤(伯胤)
이천(梨川)
시호 충정(忠貞)
부모 부친 - 이극인(李克仁)
모친 -이조참의 유환(兪煥)의 딸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조선중기의 문신.

2. 생애

1582년(선조 15) 진사시에 합격, 의금부낭관이 되고, 1594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주서·교산찰방을 거쳐 예조·병조·이조좌랑을 역임하였다. 1609년(광해군 1) 부수찬·교리·의주부윤·안동부사를 거쳐, 1618년 전라도를 순찰하고 돌아와 형조참판이 되었다. 1619년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다시 진주사(陳奏使)가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

이 해 병조참판이 되었으며, 1621년 함경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예조참판에 이어 1624년(인조 2) 도승지가 되었다. 이 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 장만(張晩)을 도와 큰 공을 세웠고, 이괄의 난이 진압된 후 장만의 병이 위독해지자 그의 후임으로 도원수가 되었다. 같은 해 대사헌, 1624년 우참찬이 되어 지경연사(知經筵事)를 겸임했으며, 이어 호태감접반사(胡太監接伴使)·대사헌·전주부윤·도승지·병조판서를 지냈다.

1632년 인목대비(仁穆大妃)가 죽자 애책문(哀冊文: 죽은 자를 조의하고 애도하는 글)을 짓고 숭정대부에 오른 뒤 예조·병조의 판서를 역임하였다. 1635년 이 여러 대신들에게 왜의 정세에 관해 묻자 모두들 왜인들은 침범할 힘이 없다고 대답했으나, 그는 병선과 군사를 정비해 환란에 대비하자고 청하였다.

1636년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이 되어 여러 번 사직을 청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 적들이 서문(西門) 밖까지 이르자 의 국서(國書)를 가지고 적진으로 들어가 국서를 전하고 화의 교섭을 벌였으나 항복은 끝까지 반대하였다.

1637년 영중추부사가 되어 사직을 표했으나 허락되지 않고, 이 해 영의정에 올랐다. 법도에 따르고 검소한 생활로 이름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