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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대 국가보훈부차관 이희완 李熙玩 | Lee Hee-wan | |
<colbgcolor=#003764><colcolor=#fff> 출생 | 1976년 3월 7일 ([age(1976-03-07)]세) |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1] | |
본관 | 연안 이씨[2] |
현직 | 국가보훈부차관 |
재임기간 | 제2대 국가보훈부차관 |
2023년 12월 11일 ~ 현직 | |
학력 | 김천 구성초등학교 (졸업) 김천 구성중학교 (전학) 울산중학교 (졸업) 울산 성신고등학교 (졸업) 해군사관학교 (54기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심리학[3] / 석사[4]) |
가족 | 할아버지 이보영, 할머니 이필순[5] 배우자 서하라, 슬하 1남 1녀 |
링크 | |
군사 경력 | |
복무 | 대한민국 해군 |
2000년 3월 1일 ~ 2023년 12월 7일 | |
임관 | 해군사관학교 (54기) |
병과 | 함정(항해) |
최종 계급 | 대령 (대한민국 해군) |
최종 보직 | 해군본부 인사참모부 교육정책과 교육정책담당 |
주요 보직 | 합동군사대학교 교관 해군사관학교 교관 참수리 357정 부장 |
참전 | 제2연평해전 |
상훈 | 충무무공훈장 |
[clearfix]
1. 개요
이제 곧 연평해전이 있었던 6월이 다가온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나는 악몽을 자주 꾼다.
꿈에서 나는 잃어버린 다리를 다시 찾았다.
참수리 357호가 거친 물보라를 일으키며 전속기동을 하고 나는 갑판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그리고는 소리친다. 다급하게 탄약수를 부른다. 의무병을 부른다.
쏴라-. 쏴.
싯뻘건 불덩이가 내 쪽으로 날아온다.
그러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 어느새 아내가 눈물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의 인터뷰에서.
출처 - 해군지 2010년 05·06월호.
꿈에서 나는 잃어버린 다리를 다시 찾았다.
참수리 357호가 거친 물보라를 일으키며 전속기동을 하고 나는 갑판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그리고는 소리친다. 다급하게 탄약수를 부른다. 의무병을 부른다.
쏴라-. 쏴.
싯뻘건 불덩이가 내 쪽으로 날아온다.
그러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 어느새 아내가 눈물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의 인터뷰에서.
출처 - 해군지 2010년 05·06월호.
대한민국 해군의 前 군인 이자 국가보훈부차관이다. 최종 계급은 대령이며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였다.
2. 생애
1976년 3월 7일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에서 태어났다. 김천 구성초등학교, 김천 구성중학교(전학), 울산중학교, 울산 성신고등학교 졸업 후 1996년 해군사관학교(54기)에 입교하여 2000년 3월 1일 졸업과 동시에 해군 항해 소위로 임관하였다.2.1. 군사 경력
구축함에서 근무하다 중위로 진급하였다. 중위로 진급한 이후에 참수리 357정의 부장이 되어 제2연평해전에 참전했다. 당시 정장은 윤영하 대위(전사 후 소령으로 추서)였다.2002년 6월 29일 북한 해군 서해함대사령부 산하 8전대 예하 7편대 소속 경비정 등산곶 684호정의 85mm 전차포 선제 발포 및 함교를 저격한 집중포화 도중 정장 윤영하 대위가 그 자리에서 저격수에게 등을 피격당해 전사[6]하고, 부장이였던 이희완 중위는 684정의 갑판과 조타실 뒷편 포대에서 발사된 4연장 고사총의 14.5mm 탄환과 37mm 포탄에 다리를 맞아 한쪽다리에 중상을 입었다. 이런 와중에도 불구하고 참수리 357호정의 정장 대리를 맡아 진두지휘하여 북한군을 무찔렀다. 그러나 정장을 비롯하여 6명의 승조원들을 이 전투에서 잃었으며 그 자신 역시 끝내 오른쪽 다리를 절단하고 의족을 달게 되었다.
이후 부상이 부상인 관계로 현역 부적합 심사에 회부되었으나 1997년에 신설된 군인사법 제37조의 ③ ‘본보기가 될 만한 행위로 인해 신체장애인이 된 군인의 현역복무’에 의한 규정 덕분에 현역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두 번 다시는 배를 타기가 어렵게 되었고 해군사관학교 교관직으로 보직이 변경되었다.[7]
2002년말에 제2연평해전 당시 다리를 잃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를 위해 진두지휘해서 방어를 성공한 점을 높이 사서 충무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
2004년 서하라와 결혼했다.
2007년 2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심리학 전공으로 심리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8]
2010년 10월 1일에 국군의 날을 기념하여 제1회 위국헌신상에서 하종식 중령(육사 44기)과 같이 '충성' 부문에서 선발되었다. 위국헌신상에 수상되면 대령 이상의 계급까지 최단기간으로 진급하게 된다. 일선에서 복무하지 못해 현행법상 진급하기 어려운 현실도 감안된 듯 하다. 대령은 만 56세가 정년으로 안정적인 복무가 가능하다. 해군은 전투병과도 대령 달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 배를 타지 못 하는 교관 직으로 대령에 진급하는 것은 대단히 힘들기에 군의 배려를 받은 듯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다친 게 자기 잘못도 아니고 나라 지키러 싸우다가 그렇게 된 참전용사가 참전 후유증으로 인해 배를 탈래야 타기 어려워졌는데 그 이유로 진급누락을 당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2015년에는 합동군사대학 해군 작전교관으로 근무하였다
2017년경 중령으로 진급하였다. 이후 해군본부에서 근무했다.
2023년 12월 1일 대령으로 진급하였고, 제2대 국가보훈부차관에 임명됨에 따라 진급 7일째인 2023년 12월 7일 명예 전역하였다.
군 시절 발자취 관련 기사
2.2. 국가보훈부차관
2023년 12월 6일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국가보훈부차관으로 임명되었다. 대령 진급 6일만의 일로, 자연히 군에서는 전역하게 되었다. 보통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차관들이 바로 취임하는 것과 달리 현역 군인이기에 즉시 취임할 순 없었고, 2023년 12월 10일 해군본부에서 양용모 총장 주관으로 전역식을 가진 후 11일 취임했다.
이는 군의 위계서열을 상당히 뛰어넘은 파격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정부부처(국방부, 방위사업청 등)나 최상급 부대(합참, 각군본부)에서 보통 대령(진)~초임 대령까지는 과장도 아니고 그 밑 과원으로 담당 보직을 맡는다.[9] 이희완 대령도 마찬가지로 직전까지는 해군본부 인사참모부 교육정책과 과원으로 교육정책담당 보직을 맡고 있었다. 국방부에서는 국장을 준장 또는 소장[10], 실장[11]을 중장이 맡고, 국방부차관은 중장보다 높은 서열이다.[12] 부처는 다르지만 같은 장관급 부처의 2인자인 만큼, 현역 대령을 보훈부 차관으로 발탁한 것은 대령을 대장으로, 무보직 서기관을 차관으로 직통 진급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의 파격이다. 부하직원인 보훈부 기조실장 이남일이 행시 37회(1993년 합격)로 30년 이상 경력자다.
물론, 부처 성격과 이희완 대령의 공훈을 감안하면 납득의 범주 안에는 든다. 미국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라크 전쟁 때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두 다리를 잃은 미합중국 육군 중령 출신의 태미 더크워스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제대군인부 차관보에 임명한 바 있다. # 더크워스는 당시 나이 40세에 계급은 중령으로 연령, 계급 모두 이희완 대령보다 낮았는데도 발탁되었다. 그만큼 보훈 분야에 있어 참전용사 경력은 일반적 공직 사회의 위계서열 파괴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정도의 무게감이 있는 타이틀임이 보여진다.[13] 더크워스는 이후 아시아계 여성으로선 2번째로 연방 상원의원까지 된다.
검사 출신 김홍일의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임명과 함께 발표된 인사라서 주목은 대개 그쪽으로 쏠리고 있다. 게다가, 이희완 차관은 이력에 별다른 흠집도 없는데다 상이군인이자 참전용사라, 야당이 태클 걸어봐야 욕만 먹기 딱 좋기 때문에 아무런 견제도 없다. 현 정부 인사 중에는 46년만에 최연소 차관에 오른 장미란 문체부 2차관과 비슷한 케이스의 발탁 인사로 볼 수 있다.
3. 여담
- 충무무공훈장 수훈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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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안 이씨 집성촌이다.[2] #[3] 사회심리학 전공[4] 석사 학위 논문 : 명예심이 리더십 발휘동기에 미치는 영향(2007. 2)[5] #[6] 등쪽에서 피가 흘렀다는 이희완 대령의 증언으로 보아 등을 돌리고 지시를 내리는 순간 저격수가 그 짧은 순간을 캐치하여 등을 쏘아 맞추었을 가능성이 크다. 2002년 당시 지퍼식의 앞부위에 4개의 파우치가 존재하는 부력방탄복이 어느 정도 튀는 파편은 막았을지 모르지만, 총탄 관련해서는 방어력이 좋지 못했다.[7] 규정과 상관없이, 한쪽 다리를 잃은 이상 선상생활은 어려울 것이다.[8] 석사 학위 논문: 명예심이 리더십 발휘동기에 미치는 영향 (2007. 2)[9] 과장은 준장 진급을 앞둔 대령이다. 예를 들어 이종섭 전 국방장관은 중령부터 대령 초반까지 국방부 정책실 담당급 실무자로 근무했다가 연대장을 지낸 뒤 청와대 행정관 자리에서 준장이 되었다.[10] 국방정책실 소속 주요 국장인 정책기획관, 방위정책관에는 고정적으로 소장이 오고, 국방개혁실 소속 비주요 국장에는 준장이 온다.[11] 국방정책실장[12] 보통 군 출신이 올 때는 현역보다 짬이 한참 높은 예비역 중장이 임명된다. 현 김선호 차관(육사 43기)도 마찬가지 경우로 현역 대장(육사 46-7기)보다 선배다.[13] 다만 상징성과는 별개로 타부처에 대한 보훈부의 발언권은 약해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강정애 장관도 보훈가족 출신이긴 하나 본인은 보훈 관련 업무 경험이나 군 경력이 없는 순수 민간 교수 출신이고, 그렇다면 이를 보완할 차관이라도 말발이 서야 하는데 이희완 차관은 상술했듯 연공서열/군내 위계서열 면에서 상대적으로 위치가 낮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