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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차관 (1948~현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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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대 박재민 | 제44대 신범철 | 제45대 김선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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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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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080><colcolor=#fff> | |
출생 | 1964년 ([age(1964-01-01)]세) |
서울특별시 | |
학력 | 숭실고등학교 (66회 / 졸업)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정경대학원 (정치학 / 석사)[1] |
현직 | 국방부차관 |
재임기간 | 제45대 국방부차관 |
2023년 10월 20일 ~ 현직 | |
군사 경력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1987년 3월 1일 ~ 2020년 8월 12일 | |
임관 | 육군사관학교 (43기) |
최종 계급 | 중장 (대한민국 육군) |
최종 보직 | 수도방위사령관 |
주요 보직 | 합동참모본부 전력기획부장 수도기계화보병사단장 육군본부 기획관리2차장 육군본부 군구조개편차장 육군본부 전략기획과장 제23보병사단 포병연대장 제1포병여단 작전참모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제60포병대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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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전직 군인. 최종 계급은 중장이며, 제45대 국방부차관으로 재직 중이다.2. 생애
1983년 숭실고등학교(66회)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43기)[2]에 입학하여 1987년 3월 1일 졸업과 함께 육군 포병 소위로 임관하였다.2004년 8월 영관장교 시절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소재 정경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수도방위사령관을 거쳐 육군인사사령부에서 전역 대기를 하던 중 2020년 8월 12일 중장으로 명예전역하였다.
3. 경력
- 소위
- 제1포병여단 관측장교 (1987.)
- 중위
- 참모 (1988.)
- 대위 (1991.)
- 수도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 제60포병대대 포대장 (1991. ~ 1993.)
- 수도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 작전과 작전장교 (1993. ~ 1994.)
- 수도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 제808포병대대 인사/군수장교 (1994. ~ 1995.)
- 소령 (2000. ~ 2003.)
- 수도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 제808포병대대 작전과장 (2000. ~ 2001.)
- 제1야전군사령부 화력처 포병과 작전장교 (2001. ~ 2002.)
-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 작전처 무기체계/운용장교 (2002. ~ 2003.)
- 중령
- 수도기계화보병사단 포병여단 제60포병대대장 (2004. ~ 2006.)
- 제1포병여단 작전참모 (2006. ~ 2007.)
3.1. 국방부차관 임명
- 2023년 10월 17일 제45대 국방부차관 내정자임이 알려졌다. 국방차관으로는 황인무 이후 8년 만의 군 출신이며, 공교롭게도 신원식 장관과 동일하게 수방사령관에 중장 전역자 출신이다. 신 장관보다는 6기수 후임. 작전 부문에 밝은 신 장관을 보좌하기 위해 전략/정책 부문에서의 근무 경험이 풍부한 김 차관을 임명했다는 분석이 있다. # 실제로는 신원식 장관이 차관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 이로써 군문을 나온 지 3년 만에 민간인으로서 국방부로 돌아오게 되었다.
4. 저서
- 잠시 멈추고 싶다 가슴이 따뜻해질 때까지, 광창문화사, 2020.
5. 여담
- 동기로는 안준석 예) 대장, 윤의철, 황대일 예) 중장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동기 윤의철은 본인과 마찬가지로 병과도 포병이다. 즉, 육사 43기는 포병 중장을 2명이나 배출한 기수이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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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련 문서
[1] 석사 학위 논문: 동맹의 비대칭성과 韓(한)·美(미)관계 (2004. 08.)[2] 동기로 윤의철, 김정수, 황대일, 안준석 등이 있다. 양기봉 중령과는 숭실고-육사 동기다.[3] 2020년 5월 8일 장성급 인사에서 1기수 후배인 김도균 국방부 대북정책관(육사 44기)에게 1년만에 사령관직을 이임하고 3개월 후 전역하였다. 인사 발표 전 전역을 희망한 것으로, 소장급이 임명되던 청와대 국방개혁비서관으로 추천받은 김선호 수방사령관이 청와대 비서관에 군단장을 마친 중장급이 보직되어 군 위상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임명을 고사하다가 자진 전역했다. 결국 해당 보직은 육사 동기 안준석 5군단장이 배치되었고, 4개월만에 대장 진급에 성공했으나 정권 교체로 인해 전 정부 수혜 인사로 분류되어 영전에 실패하고 전역했다. 즉 김선호 중장이 비서관 보직을 고사하지 않았다면 대장으로 진급했을 확률이 매우 높았으나, 군 위상 저하를 염려해 사양했고 군 통수권자의 요청을 거부한 것이니만큼 그에 책임을 지기 위해 전역한 것으로 보인다.[4] 미래 국방 건설을 위한 연구 및 교육, 자문 활동을 수행하며 정기적으로 칼럼을 군 관련 매체들에 기고하였다.[5] 전임자 신범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