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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8년 ([age(1968-12-31)] ~ [age(1968-01-01)]세) |
대전광역시 대덕구 신탄진동 | |
<colbgcolor=#2A5034><colcolor=#fff>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1991년 ~ | |
학력 | 충남고등학교 (졸업) 육군사관학교 (47기 / 학사) 조선대학교 대학원 (국방정책학 / 석사) |
현재 계급 | 중장 (대한민국 육군) |
현재 보직 | 수도군단[대기조치] |
주요 보직 | 육군특수전사령관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처장 지상작전사령부 작전처장 제17보병사단장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 합동참모본부 작전기획부장 합동참모본부 전작권추진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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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현재 계급은 중장이며, 제32대 육군특수전사령관을 역임했으며,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에 가담한 혐의로 직무정지 후 수도군단으로 대기조치됐다.2. 생애
1987년 충남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육군사관학교 47기[2]로 입교하여 1991년 졸업과 함께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직능은 작전.3. 논란
3.1.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가담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선포한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의 주요 병력 지휘관이었다.불법 비상계엄 당시 테이저건과 공포탄 사용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에 대해 본인은 당초 테이저건 사용을 금지하려 했고, 참모의 조언에 따라 박안수 계엄사령관에게 이를 재확인하고자 했다고 주장했다.
계엄 해제 직후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3]이 항의 방문을 하자, 생방송으로 공익제보 내부고발 형식의 인터뷰 및 사과방송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상현 제1공수특전여단장은 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사령관님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을 끄집어내라. 안 되면 전기라도 끊으라는 말씀을 하시긴 했다”고 말했다. # 이에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한 상황.
본인 인터뷰에 따르면 제1공수특전여단, 제3공수특전여단과 제707특수임무단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과 김어준의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통제 임무를 받았으며[4] 예비대로 제9공수특전여단이 외곽에서 대기했다고 한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이 전화로 제707특수임무단 이동 상황을 물어봤으며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국회의사당 의원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국회의원 전원을 의사당에서 끌어내라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항명을 각오하고 전 부대 작전 중지를 명령했다고 주장했다.[5]
이후 비상계엄 선포 20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받았으며, 모든 책임은 사령관이 질 것이니 그저 본인의 지시를 따랐을 뿐인 현장의 작전 대원들에게는 책임이 돌아가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다.[6] 또한 제2차 계엄 명령이 오더라도 사령관 명의로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 부대의 출동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연합뉴스 인스타그램
이 비상계엄으로 인한 부대 출동의 대가로 2024년 12월 6일 부로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과 같이 직무정지되었다. 이후 수도군단에서 대기조치 중이다.
12월 9일 군사전문가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이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해 육군특수전사령부 부대원들로부터 온 제보를 밝혔다. 제보에 따르면 계엄군은 육군특수전사령부의 일부가 아닌 사실상 대다수의 부대였다고 한다. 초동단계에서의 작전 차질로 인해서 실행되지 못해 일부 부대는 되돌아갔을 뿐이지 지금까지 본 계엄군의 출동은 빙산의 일각이었다고 말했다.
김종대 전 의원에 따르면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계엄이 선포됐는데, 육군특수전사령부 병력을 대기시킨 건 저녁 7시 직전부터로 보인다며 (대기) 목적을 말하지 않아서 (부대원들은) 훈련용 대기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훈련용 대기는 기상이 나쁘면 안 뜨는데, 그날 눈발이 날려서 당연히 출동이 취소될 줄 알고 특수작전항공단에서 준비를 소홀히 했더니 육군특수전사령관이 이 사실을 알고 재차 대기를 시키면서 엄청 화를 냈다고 전했다.
김 전 의원은 또한 제1공수특전여단과 제9공수특전여단이 (명령받은 오후 11시보다) 48분 늦게 국회에 도착했다며 제3공수특전여단 등 다른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부대도 이미 출동 대기 상태라서 같이 합세하기로 돼 있었는데, 제3공수특전여단 병력은 국회로 추가 출동하다가 계엄이 해제되는 바람에 되돌아갔다고 밝혔다.
12월 4일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이나 전라남도 담양군에 있는 제7공수특전여단, 제11공수특전여단까지 서울특별시로 올라오는 것으로 출동계획이 짜여 있었다며 계엄이 선포되기 전날인 12월 2일 (특전사 행사로) 모든 여단장이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의 육군특수전사령부에 모였다고 말했다.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이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의 인터뷰에서 "언론 보도를 보고 계엄 선포를 알았다"고 주장한 것 역시 거짓말이라고 지적했다. 김 전 의원은 곽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이 헬기가 제때 안 뜬 것에 엄청나게 화를 냈다고 전했으며, 새벽 1시 (계엄해제) 표결 의결에 사령관이 몹시 괴로워했다고 하며 상심하는 이런 장면들이 참모들한테 모두 노출됐다고 말했다.
12월 6일 국방부에 의해 직무정지되었으며#, 12월 9일 오후 8시 국가수사본부에 의해 출국금지 조치되었다.#
12월 10일 그동안 자신의 해명 중 일부가 거짓이었음을 스스로 실토했다. 곽 사령관은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 출석해 지난 4일 00시30분부터 00시40분 사이 윤석열이 곽 사령관에 두 번 전화했다고 밝혔다.[7] 두 번째 통화에서는 곽 사령관에게 "의결 정족수가 아직 안 채워진 거 같다. 빨리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고 지시한 사실을 밝혔다. 또 기존에는 TV를 보고 계엄 사실을 알았다고 거짓말 했으나 최종 (계엄) 임무를 받은 것이 12월 1일 일요일이었며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화폰으로 통화하면서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전에는 김 전 장관이 반국가 세력을 척결해야 한다는 식으로 힌트를 줬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김 전 장관으로부터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3곳, 더불어민주당 당사, 여론조사꽃(방송인 김어준씨가 설립한 여론조사기관) 등 6곳을 확보하고 봉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당사가 작전지역에 포함됐다고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참고로 기존에 TV부터 시작하는 내용은 입을 맞췄기에 검찰 조사에서도 말하지 않았다고.
또한 윤석열 대통령이 전기를 끊고 공포탄을 발사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곽종근은 인명피해가 나면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해서 실행에 안 옮겼다.라고 말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임무가 어느정도 진행되었는지의 여부를 묻기 위해서 곽종근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곽종근은 이 전화를 고의로 받지 않았다.
초기 진술에는 양심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혼란이 있었으나, 12월 10일 국방위원회 질의 전후로 마음을 고쳐먹은 모양이다. 내란죄를 입증하는 데 핵심적인 진술을 하고 있어 야당 측에서도 보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죄질이 너무 안 좋아서 여기에 가담한 장성급 장교들은 전원 보직해임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며 곽종근 역시 육군특수전사령관에서 보직해임 당하겠지만 곽종근의 경우는 내란죄를 입증하는 데 핵심적인 진술을 한 데다가 부하 특전사 대원들에게 실탄을 주지 말라고 명령해서 사망자가 안 나게 한 점 등이 정상 참작될 것으로 보인다.
12월 15일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14일에는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 대한 영장이 청구됐으며, 이진우 수방사령관도 조사를 받고 있다.
12월 16일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구속영장을 발부해 구속되었다(군사법원법 제238조).
4. 여담
-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지도부 중의 한 명으로 정호용 제4대 육군특수전사령관에 이어 불법 군사 행동에 가담한 육군특수전사령관이 되었다.
- 비상계엄 회의에서 계엄군에게 테이저건과 공포탄 사용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전술되었듯 본인은 테이저건과 공포탄 사용 금지 명령을 하달 후 박안수 계엄사령관에게 재확인 받는 상황이 와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수뇌 중 한 명으로 비상계엄 회의에서 계엄군에게 테이저건과 공포탄 사용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전술되었듯 본인의 양심선언에 따르면 테이저건과 공포탄 사용 금지 명령을 하달 후 박안수 계엄사령관에게 재확인 받는 상황이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 위 인터뷰 이후 주변 참모 등의 제보와 진술로 추가로 밝혀지는 사실에 따라, 단순 연루 혹은 가담 수준이 아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계엄령 발령 이전부터 계엄령을 인식하고 부대원들을 대기시킨 점을 주목할 만하다. 다만 사령관 삼인방 중엔 그나마 정신이 제대로 박혀있는 편이라서인지 이쪽에서 계엄사태때의 정보가 생각보다 나오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개입해 지휘한 것은 곽 사령관에게서 나온 정보다.
- 여담으로 곽종근은 중장 진급 후 육군특수전사령관으로만 복무하여 프로필 사진처럼 화강암 5도색 전투복에 녹색 지휘자 견장을 찬 적이 없다.[8] 즉 저 사진은 중장 진급 초창기에 찍었거나, 이전에 촬영한 사진에서 계급장만 중장의 것으로 합성한 프로필 사진으로 보인다.[9]
- 당초 곽 사령관의 양심선언을 이끌어 낸 박범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곽 사령관을 두고 "이번 내란과 관련해 두 차례 공익신고를 했다"라며 탄원했으나, 결국 구속됐다[10].
5. 관련 문서
[대기조치] [2] 육사동기로 손식, 강호필, 김규하, 김봉수, 임기훈 등이 있다. 소장진급까진 강호필보다 훨씬 빨랐으나 중장부터 오히려 밀렸고 대장진급도 12.3 사태이전부터 이미 가능성이 막혀버린 상태에 가까웠다. 이때문인지 비상계엄때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것도 있다. 실제로 성공했다면 내년에 육참총장 영전예정이었을 것이고 대장진급 먼저한 강호필도 예편할 예정이었다. 강호필도 사실 대령시절 김용현과 같이 근무한 인연이 있으나 신원식 장관때 대장진급을 해서 그런지 전동진과 함께 신원식 파벌로 분류되어인지 12.3 사태때 김명수 합참의장처럼 패싱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하게 여전히 언급조차 안되는거 보면 말이다.[3] 대한민국 육군 대장 출신 재선 국회의원으로 곽종근에게는 육군사관학교 7기수 선배이자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처장(준장) 근무 당시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대장)으로 재임한 직속 상관이었다.[4] 여기서 웃지 못할 코미디가 하나 있는 게,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이 김어준이 누구인지, 왜 언론 통제의 대상인지 이해를 못해 김어준의 사무실로 병력이 배치되는 것이 한참 늦었다고 한다. 사실 당연한게, 언론 통제를 할거면 당연히 방송3사 등 지상파와 연합뉴스TV, YTN NEWS 등 뉴스보도 채널, CJ ENM 같은 케이블 채널, 각종 종합편성채널 및 신문사 등 메이저 방송사를 중심으로 통제하는 게 타당하다. 국민 개인의 통신을 침해하는 것은 헌법 제21조 제1항을 위배한 것이다.[5] 이후 1공수특전여단장의 증언과 충돌하는 점을 국회의원들이 집중 추궁했고,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졌다.[6] 다만 이 부분은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의 바람이 어떻든 간에 무혐의 처분은 불가능하고, 기소유예나 선고유예로 처분하는 것이 가장 많은 관용을 베푸는 것이다. 군형법 제5조 제3호 반란죄를 보면, 반란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사람: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7] 원래 이 두번째 통화내용은 오전에 말하기 제한된다고 말했다가 점심시간에 박범계 의원과 제707특수임무단의 김현태 단장의 설득으로 말한듯 하다.[8] 사관학교 출신이므로 최소 기본 공수휘장 자격이 있을텐데 부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9] 현재에는 저 사진보다 머리숱이 적다.[10] 전문: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저(박범계)에게 이번 내란죄와 관련하여 공익신고를 한 사람입니다. 공익신고서를 권익위에 제출하였습니다. 오늘 10시 용산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습니다. 그는 오늘 출두 전 저에게 2차 공익 신고를 하였습니다. 진술이 바뀐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으나, 했던 진술내용을 바꾼 것이 아니라 숨긴 내용을 추가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큰 죄를 범한 것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