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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IMPERIAL 임페리얼 | |
정식 명칭 | Imperial |
한국어 명칭 | 임페리얼 |
설립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디트로이트 1955년 |
해체 | 1983년 |
설립 기업 |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 |
본사 소재지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디트로이트 |
업종 | 자동차 제조업 |
모기업 | 크라이슬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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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America's most carefully built car. 1960년대 초반 브랜드 슬로건[1] |
2. 설립 배경
임페리얼의 기원이 된 "크라이슬러 임페리얼"의 역사는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창업주 월터 크라이슬러가 고급자동차 시장에 진출할 것을 원하면서 1926년 시작되었다. "크라이슬러 임페리얼"은 크라이슬러의 확장된 길이의 대형 차량 플랫폼을 기반으로 설계되었으며 주로 북미시장에서 어번, 코드, 듀센버그, 캐딜락, 컨티넨탈, 링컨, 팩커드, 프랭클린, 피어스-애로우, 스터츠, 마몬 등의 고급 차량 제조사들과 경쟁하였다. 이후 1955년 부터 캐딜락과 링컨 모터 컴퍼니와의 더 나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임페리얼을 자체 브랜드와 부서로 분리하였다. 당시 임페리얼은 2~3년마다 V8 엔진과 변속기등을 포함한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의 다른 품류(品類)에 적용되는 최신기술과 새롭게 바뀌는 차체 양식을 선보일 예정이었다.3. 제1기[1955-1975]
Final Full-Size[4]
마지막 미국식 대형차[5]
The Fuselage Era[6]
기체 시대[7]
Newest Prestige Car in a Decade[8]
10년만의 최신 고급 자동차
The Incomparable Imperial[9]
비교할 수 없는 제국
America's most carefully built car[10]
미국에서 가장 세심하게 제작된 자동차
Finest of the Forward Look[11]
최고의 미래 양식[12]
임페리얼의 슬로건 (제1기)
마지막 미국식 대형차[5]
The Fuselage Era[6]
기체 시대[7]
Newest Prestige Car in a Decade[8]
10년만의 최신 고급 자동차
The Incomparable Imperial[9]
비교할 수 없는 제국
America's most carefully built car[10]
미국에서 가장 세심하게 제작된 자동차
Finest of the Forward Look[11]
최고의 미래 양식[12]
임페리얼의 슬로건 (제1기)
3.1. 연도별 역사
3.1.1. [1955년-1956년]
1955년형 임페리얼 뉴포트 쿠페 |
1955년형 임페리얼 "원 헌드레드 밀리언 달러 룩" |
1952년형 크라이슬러 임페리얼 퍼레이드 페이톤 |
<rowcolor=#fff> 1955년 임페리얼 헤미 V8 엔진 | 2단 파워플라이트 자동변속기 |
파워플라이트 자동변속기의 푸시 버튼 |
3.1.2. [1957년-1958년]
1957년형 임페리얼 크라운 사우샘프턴 쿠페 광고 |
<rowcolor=#fff> 1957년 임페리얼 헤미 V8 엔진 | 3단 토크플라이트 자동변속기[23] |
1957년형 임페리얼의 차대 |
1957년형 임페리얼의 곡면형 측면 유리 |
1957년형 임페리얼 크라운의 테일 핀과 후미등 |
1957년형 임페리얼의 "플라이트 스윕" 지붕 |
1957년형 임페리얼 "르 바론" 하드 탑 세단 광고 |
1958년 임페리얼 홍보책자 |
1958년형 임페리얼의 전면부 |
1958년 임페리얼의 "오토-파일럿" 광고 |
1958년 임페리얼의 "오토-파일럿" 안내문 |
<rowcolor=#fff> 1958년형 임페리얼 크라운 사우샘프턴 2도어 쿠페/세단 | 1958년형 임페리얼 르 바론 4도어 세단/사우샘프턴 세단 |
3.1.3. [1959년-1960년]
1959년에 주목할만한 기술 발전으로는 회전식 앞좌석이 있었다. 이 좌석은 쉽게 승•하차할 수 있도록 바깥쪽을 향해 회전할 수 있었다. 1959년에는 좌석이 레버 조작을 통해 작동했지만 1960년에는 문이 열리면 자동으로 회전했다. 하지만 이 기능은 수명이 짧았는데 문이 열리자마자 좌석이 회전하여 탑승자가 자동으로 문쪽으로 밀려나는 점이 안전상 문제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임페리얼은 이 기능을 매우 신속하게 다시 수동으로 만들었으며 수동 회전 죄석 기능은 1961년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구동계의 경우 1959년에는 기존의 6.4L 엔진이 6.8L 웨지[51] V8 엔진으로 대체됨에 따라 임페리얼의 차량에는 더 이상 헤미 엔진 사양이 없게 되었다. 웨지 엔진은 제작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기존의 헤미 엔진보다 가볍고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임페리얼의 고객들은 더 저렴한 엔진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고, 임페리얼은 1959년에 17,710대의 차량을 판매하였으며 이는 링컨보다 더 많은 판매량이었다.
1960년 임페리얼 홍보책자 |
차량의 전체 길이는 그동안 임페리얼이 독립 브랜드로서 포워드 룩을 처음 선보인 이래 1957년 5,699.76mm[52]에서 1958년 5,737.86mm[53], 1959년과 1960년에 5,748.02mm[54]로 변경되어 부분변경을 할때마다 연도가 지날수록 그 길이가 늘어났다. 그리고 1960년형 임페리얼 차량의 차체는 재설계를 통해 후면 오버행은 2.1인치 감소했지만 대신 전년도 대비 전면 오버행이 후면 오버행의 감소한 길이만큼 늘어나게 되었다. 또한 재설계를 통해 상위 사양인 임페리얼 르바론은 뒷좌석 승객의 탑승시 사생활 보호를 향상시키기 위해 더 작은 후면 창과 전년보다 늘어난 두께의 C필러를 가지게 되었다.
이럿듯 새로워진 임페리얼의 외관에 맞춰 실내의 대시보드 역시 전자발광 게이지가 포함된 새로운 디자인을 사용했다. 대시보드에는 백열전구가 없었고 대신 5겹의 라미네이트 표면을 통해 전압이 흐르고 있었다. 이로 인해 내부의 인광 세라믹층이 빛을 발하게 되었다. 최종 모습은 매우 뚜렷한 빨간색 바늘이 있는 청록색의 페시아였다. "패널센트"[55]로 판매된 이 기능은 그해 변경된 크라이슬러의 일부 고급 차량들에도 적용되었다. 또 다른 편의 사양으로 [56]라고 불리는 운전자를 위한 새로운 시트 디자인도 있었다. 시트의 형상은 운전석 등받이가 벤치형 시트의 나머지 부분보다 키가 높고 운전자의 어깨에 꼭 맞도록 윤곽이 잡혀 있어서 운전시 조금 더 운전자의 몸을 잘 받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여러 편의사양의 탑재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바뀐 기이한 모습으로 인해 1960년형 임페리얼의 판매량은 17,719대로 전년 대비 간신히 증가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버질 엑스너는 판매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높은 대중성을 유지하는데 있어 여러 어려움이 있음에도 엑스너 스스로의 개인적인 취향에 가까운 스타일을 추가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며 1961년에는 "그것(60년형)보다 더 많은 것들(디자인 요소)들이 추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3.1.4. [1961년-1962년]
1961년에는 전년도인 1960년형 임페리얼의 전면부가 일회성 디자인이었음이 입증되었으며, 1961년에는 새로운 연작인 RY1(L, M, H 트림 명칭 포함)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선보였다. 전년도의 웃기만 하는듯 했던 아랫부분이 V자형으로 전면부를 감싸는 그릴과 범퍼, 그리고 반쯤 덮개가 달린 전조등은 사라졌고, 대신 그 자리에는 훨씬 더 수평적인 디자인의 전면부가 자리잡게 되었다. 그릴은 직사각형으로 4등식 전조등 사이에 있었다. 해당 전조등은 독특하게도 독립형으로 차체와 분리되어 막대사탕처럼 얇은 지지대 위에 놓여 있어서 마치 20세기 초반 고전시대 자동차들의 전조등을 연상케 했다. 또한 범퍼는 1960년형보다 훨씬 얇아 거의 완전히 수평에 가까워졌고, 최소한의 장식이 특징이었으며 전면 펜더는 전조등 뒤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가 깊이 파였고, 앞바퀴를 감싸는 벽은 마치 1930년대 자동차처럼 컷어웨이 효과를 구현했다. 그리고 임페리얼의 알파벳 상징은 더 크고 훨씬 더 드라마틱한 효과를 주는 글꼴로 묘사되었다. 차체 측면의 크롬 트림은 전년도처럼 전면부 전조등의 위쪽에서부터 시작되어 후미 부분까지 이어졌으며 역대 임페리얼 차량에 장착된 테일 핀 중 가장 거대한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이는 1960년대 미국 자동차 전반에 걸쳐 가장 큰 크기의 테일 핀이기도 했다. 후미등의 배치는 전면부의 전조등과 유사한 느낌을 주도록 차체 안쪽 방향을 향해 파여진 테일 핀에 위쪽으로 연결된 얇은 지지대를 통해 더 안쪽으로 삽입된 형상이었으며 이로 인해 전년도보다 후미등의 위치가 더 낮아지게 되었다. 후면 범퍼는 1960년형부터 이어졌지만 트렁크의 인기 있는 컨티넨탈 키트 옵션은 더 많은 세부 장식과 트림을 얻게 되었다.1961년형 차량들에 적용된 이러한 일련의 모든 요소들은 사실 1920-1930년대 사이 독립 브랜드로 분리되기 전 1세대와 2세대 크라이슬러 임페리얼의 고전적인 디자인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당시 버질 엑스너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며 추진하고 있던 복고 지향적 스타일링의 일환이었다. 버질 엑스너는 이를 두고 "기분 좋은 고전적인 후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내의 변경된 부분으로는 전자 발광 계기판이 더 이상 별도의 원형 테두리 안에 있지 않고 자동차의 새로운 전면부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수평적인 역사다리꼴 모양의 직사각형 안에 여러 계기반들과 함께 집단화된 부분이 있었다.
3.1.5. [1963년-1964년]
3.1.6. [1965년-1966년]
3.1.7. [1967년-1968년]
3.1.8. [1969년-1970년]
3.1.9. [1971년-1972년]
3.1.10. [1973년-1974년]
3.1.11. [1975년]
4. 제2기[1981-1983]
5. 생산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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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이슬러의 차량 |
[1] 임페리얼 브랜드 역사 전반에 걸쳐 가장 대표적인 슬로건이다.[2] 미국에는 역사상 수많은 럭셔리 자동차 제조사들이 존재하였지만 이들 제조사는 대부분 1950년대를 마지막으로 폐업하거나 타 회사에 인수•합병되는 방식으로 사라졌다.[3] 주로 1기 초반기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캐딜락의 1959년형 차량들이 해당된다.[4] 1974-1975년 슬로건[5] 의역[6] 1969-1973년 슬로건[7] 機體. 항공기의 몸통을 의미한다.[8] 1967-1968년 슬로건[9] 1964-1966년 슬로건[10] 1960-1963년 슬로건[11] 1957-1959년 슬로건[12] 樣式. 시대에 따라 각기 달라지는 스타일 형식을 의미한다.[13] 다만 팩커드의 경우 1956년까지 자체 개발한 "패트리션"과 같은 고급 자동차를 선보이긴 했지만 전성기가 이미 지난 상황이었다.[14] 이들 3대의 차량은 당시 디트로이트로 돌아와 크라이슬러의 공장에서 1956년형 임페리얼의 외장으로 개조되었다. 세대의 차량 모두 현재까지 존재하며 미국의 박물관등지에 보존되고 있다.[15] Southampton. 영국 잉글랜드 햄프셔주의 남부에 위치한 도시 이름에서 따왔다.[16] 현대 자동차들에 적용되는 버튼형 변속기와 유사한 형태[17] Philco.[18] Mopar. 크라이슬러의 자동차 부품, 서비스 및 고객 관리 부서[19] Highway Hi-Fi.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이 "콜럼비아 스페셜 프로덕트"사와 합작하여 개발한 자동차용 LP 재생기. (현대에 생산되는 자동차 오디오의 시초이다.)[20] 바디 온 프레임 방식[21] 이전 세대: 2,001.52mm[22] 실내 공간 폭: 전면 1,625.6mm 후면 1,574.8mm[23] 푸시 버튼 방식으로 조작할 수 있었다.[24] TorqueFlite A466. 크라이슬러 코퍼레이션이 1956년 후반에 도입한 3단 자동변속기의 명칭[25] 현재는 대부분의 자동차들이 측면 유리에 곡면을 적용하고 있지만, 당시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대부분의 자동차들은 측면 유리가 모두 평면이었다. 미국 자동차에서 곡면형 측면 유리가 전면적으로 도입된 것은 1960년대 중반 이후였다.[26] 미국의 자동차 디자이너 버질 엑스너가 1957년 도입한 그룹 계열사 전반을 아우르는 디자인 양식으로 낮으면서도 넓은, 전장을 강조하는 긴 차체와 테일 핀을 극대화해 공력적 특성을 개선하고 시각적인 인상을 극대화 하고자 한 양식[27] 1959년형 캐딜락 차량들 전반에 해당[28] 2등식 전조등의 모습. 여담으로 당시 4등식 전조등이 아직 모든 주에서 합법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임페리얼은 4등식과 2등식 두가지 유형의 전조등을 광고하였고 그중 1957년형을 구입한 소수의 구매자들만이 2등식 전조등을 장착한 차량을 받았다고 하며 이 때문에 2등식 전조등을 장착한 1957년형 임페리얼은 가치가 조금 더 높다고 한다.[29] 상단의 붉은색 사진의 필기체로 된 문자[30] 엘도라도로 대표되는 1959년형 캐딜락의 유명한 테일 핀과 후미등의 디자인은 1957년형 임페리얼의 테일 핀과 후미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31] FliteSweep.[32] Jefferson Avenue Assembly[33] Imperial Le Baron.[34] 공장에서 제작한 임페리얼 차량으로서는 최초의 컨버터블[35] Southampton. 영국 잉글랜드 햄프셔주의 남부에 위치한 도시 이름에서 따왔다.[36]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37] 한화 1억 5,918만원(당시 경제 상황등을 고려해본다면 당대 미국이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다고 해도 상당한 가격임에는 틀림없다.)[38] 외장에 있어서 차체는 전년도와 동일하며 전면 그릴과 전면 범퍼, 전면 방향지시등의 형상만 변경되었다.[39] "달걀상자"형 이라고도 한다.[40] 라디에이터의 형상과 유사한 모습[41] Auto-Pilot.[42] 1958년형 임페리얼 및 크라이슬러 뉴요커, 300, 사라토가, 윈저에 도입되었다.[43] Ralph Teetor. 미국의 시각 장애인 기술 개발자로 세계 최초의 크루즈 컨트롤 체계를 발명하였다.[44] 그후 1950년에 특허를 받은 티터의 스피도스타트(Speedostat) 체계는 회전하는 속도계와 연결된 선을 통해 속도를 계산하는 대시보드의 제어 다이얼을 사용했다.[45] 당시 임페리얼은 독립 부서로서 분명 크라이슬러 브랜드와 분리된 별도의 브랜드였지만 일부 소비자에게는 여전히 크라이슬러의 값비싼 "특별판"으로 인식이 되었다.[46] Jefferson Avenue.[47] Warren Avenue.[48] Silvercrest.[49] Coupé de ville. 마차시대부터 유래한 고전 자동차의 차체 양식중 하나이다.[50] Landau.[51] Wedge.[52] 224.4인치[53] 225.9인치[54] 226.3인치[55] Panelescent.[56] High-Tow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