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00:23:36

장 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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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est Frenchman
※ 2005년 프랑스의 공영방송인 프랑스 2가 발표한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 명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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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colbgcolor=#000><colcolor=#fff> 장 콕토
Jean Cocteau
파일:ELYFmDyXUAASh9J.jfif.jpg
본명 장 모리스 외젠 클레망 콕토
Jean Maurice Eugène Clément Cocteau
예명 프리벌러스 프린스
The Frivolous Prince
출생 1889년 7월 5일
프랑스 메종라피트
사망 1963년 10월 11일 (향년 74세)
프랑스 밀리라포레
직업 작가, 영화감독, 시각예술가, 디자이너
분야 , 소설, 희극
활동 1908년 ~ 1963년
링크 공식 사이트
서명 파일:Jean_Cocteau_signature.svg

1. 개요2. 생애3. 작품
3.1. 소설3.2. 연극3.3. 영화
4. 기타

[clearfix]

1. 개요

프랑스시인, 소설가, 극작가, 영화감독. 전문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1]다재다능하여 여러 예술 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2. 생애

1889년 파리에서 약 20km 떨어진 메종-라피트라는 소도시에서 사회적 명성이 있는 조르주 콕토(Georges Cocteau)와 외제니 르콩트(Eugénie Lecomte)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콕토는 어릴 적부터 사교계와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아버지 조르주는 변호사였는데, 장이 9세일 때 자살했다. 19세 때 "알라딘의 램프(La Lampe d'Aladin)"라는 시집을 발간한 콕토는 이후 여러 시를 발표하면서 조금씩 문학계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장 콕토는 1932년 "시인의 피(Le sang d'un poète)"를 감독하면서 영화 경력을 시작했다. 초현실주의적인 접근법을 취한 일종의 아방가르드 실험영화였는데, 시와 영화 예술을 결합한 시도였다는 평을 받는다. 이후 1950년작 "오르페(Orphée)", 1960년작 "오르페의 유언(Le testament d'Orphée ou ne me demandez pas pourquoi)"을 만들었는데, 이 작품들을 묶어서 "시인 삼부작"으로 부르곤 한다.

3. 작품

3.1. 소설

  • 무서운 아이들 (Les Enfants Terribles) : 앙팡 테리블이라는 제목으로도 유명하다. 앙팡 테리블이라는 단어는 조숙하거나 장난기가 심한 아이를 말하는 단어이기도 하며, 이 단어가 국내에 퍼진 것은 콕토의 이 작품 때문이다. 콕토는 이 작품에서 아이들만의 비밀스럽고 대담한 세계를 그려냈다.

3.2. 연극

  • 지옥의 기계(La Machine infernale) : 희곡 작품. 그리스 신화오이디푸스 신화를 바탕으로 구성된 희곡이다. 원래 잘 알려진 소포클레스의 극과 구조는 비슷하나 새로운 등장인물이 추가되는 등의 차이점이 있다.
  • 지붕 위의 소(Le bœuf sur le toit) : 장 콕토가 대본을 쓴 발레극으로, 초현실주의에 바탕을 둔다.

3.3. 영화

  • 시인의 피(Le sang d'un poète) (1932)
  • 볼로뉴 숲의 여인들(Les dames du Bois de Boulogne) (1945) -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작품으로, 장 콕토는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 미녀와 야수(La belle et la bête) (1946)
  • 무서운 부모들(Les Parents Terribles) (1948)
  • 오르페(Orphée) (1950)
  • 무서운 아이들(Les enfants terribles) (1950) - 장 콕토 자신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장 피에르 멜빌이 감독했다. 장 콕토는 감독을 맡는 대신 자신의 원작을 시나리오화했다.
  • 오르페의 유언(Le testament d'Orphée ou ne me demandez pas pourquoi) (1960)

4. 기타

  • 프랑스의 소설가 레몽 라디게(Raymond Radiguet)와 연인관계였다.[2] 라디게는 "나는 사흘 후면 신의 병사에게 총살을 당할 것"이라는 말을 콕토에게 남기고 얼마 후 장티푸스로 사망했다고 한다. # 장 콕토는 30살 때 16살였던 연인 레몽 라디게에게 삼환반지를 선사한다. 밑에 나오는 까르띠에의 트리니티링은 이 삼환반지의 복제본이다.
  • 이런 파격적인 사생활과는 달리, 과거에는 의외로 어린이들에게도 인지도가 있던 시인이었다. 내 귀는 소라 껍질(껍데기)라는 시는 수십년 전 한국인들이 애송하던 시다. 내 귀는 소라 껍질/바다 소리를 그리워 하나니라는 짤막한 시인데, 외우기도 좋고, 동심을 담은 내용이라 어린이용 도서에까지 자주 인용된 덕분이다. 링크
  • 일본의 장편만화 꼭두각시 서커스에서 페이스리스 사령관이 자기가 좋아하는 말인 '운명이란 지옥의 기계로다'라는 구절의 저자로 언급한다.
파일:황금종려상 트로피.jpg}}} ||
  • 1924년 루이 까르띠에는 친구인 장 콕토를 위해 트리니티 컬렉션을 제작했다. 트리니티 컬렉션은 장 콕토가 30살 때 16살였던 연인 레몽 라디게에게 선물한 삼환반지의 복제본이다. 까르띠에의 트리니티(Trinity de Cartier)링은 화이트골드, 핑크골드, 옐로우 골드의 세가지 색의 링이 하나로 엮인 모양이며 핑크 골드는 사랑(LOVE), 옐로우 골드는 충실함(Fidelity), 화이트 골드는 우정(Friendship)을 상징한다. 트리니티 컬렉션은 장 콕토에 의해 파리 상류층에게 널리 알려져 아직까지도 까르띠에의 대표 디자인으로 사랑받고 있다. 장 콕토는 트리니티 반지를 너무나 사랑하여 항상 왼쪽 새끼손가락에 끼고 다녔다. 심지어 두 개를 동시에 착용하여 6개의 링이 그의 왼손에 늘 함께했다고 한다. 보헤미안적인 예술가의 삶을 산 장 콕토는 파리에서 활동을 하다가 60세가 되던 해에 파리 근교 Milly-la-Forêt의 작은 마을에 있는 집으로 옮겨 지낸다. 후에 이 집은 까르띠에사의 지원으로 리모델링을 거쳐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공개 당시 까르띠에사는 장 콕토를 기념하기 위해 특별한 트리니티 컬렉션을 발표하는데, ‘Trinity la belle’는 장 콕토의 왼손 새끼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두 개의 트리니티 링에서 영감을 받아 여섯 개의 링의 조합으로 재탄생했다. 이 한정판 까르띠에 로고 옆에는 다이아몬드 별이 새겨져 있는데, 이 "Star"는 시인인 장 콕토의 signature에 항상 등장하던 별을 상징한다고 한다.


[1] 전문적이진 않으나 재능이 뛰어난지라 아마추어같지 않고 특유의 예술성을 가미한 드로잉이 많다.[2] 레몽이 당시 미성년자였음으로 미루어보아 장 콕토는 동성애 뿐만 아니라 미성년자와 연인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