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貞端公主명군이 되어보세! 4부의 등장인물.
재석의 4번째 빙의체인 흥선제와 황귀비 최씨의 차녀. 휘는 이윤지이다. 서녀라서 원래 봉작은 정단옹주(貞端翁主)였지만 남월왕비가 되면서 화번공주의 관례상 공주로 승작되었다.
2. 작중 행적
재석과 황귀비 최씨의 차녀. 1835년생.무리의 중심이 되고 추앙받길 즐기는 성격으로, 이화학당에 다니면서 유일하게 재학 중인 태황의 친딸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학교의 여왕님으로 군림하는 화려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정현공주처럼 까칠하지 않아 자기 사람들에게는 잘하는 성격이라 대하기 어려운 사람은 아니기도 하고.
그런데 졸업하고 의사가 되겠다며 의학당에 진학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역사상 최초의 황녀 출신 의학도가 된다. 황자라면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니며 민심을 얻었을 때 다소 문제가 생길 수도 있지만, 애초에 계승권이 없는 여자라 그럴 우려도 없으니 재석도 허락했다.
의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혼기가 늦어지게 되었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애초에 결혼을 하기 싫어서 최대한 미루려고 의학교에 들어간 것이었다. 주목받기 좋아하는 성격상 다른 학생들에게 옹주 자가라고 떠받들리는 여왕님 놀이를 계속 즐기고 싶기도 하고,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남자와 강혼해야 한다는 걸 내심 견딜 수가 없었던 것.
원래 황녀들의 결혼은 다 강혼이기 마련이었지만, 본인 세대부터는 전례가 없던 국제결혼이 이루어져 이복 언니들이 일국의 군주가 될 사람을 남편으로 맞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달라졌다. 청 황태자와 결혼한 정현공주야 황후가 낳은 적녀이니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다 쳐도 같은 후궁 소생인 동비의 딸 정민공주도 공주 책봉을 받고 유구국 왕세자랑 결혼해 유구왕비가 되었고, 심지어 사촌인 효왕의 딸 길성현주도 실위국 왕세자와 결혼해 세자빈이 되었다. 이후에는 국제결혼 이야기가 나오지도 않고, 별수 없이 강혼할 처지가 되어야 할 것 같으니 배아파했다.
친모 최씨는 말렸지만, 황후 권씨가 그 뜻을 대견하게 여겨 적극적으로 과외 선생을 붙여주며 후원하고 본인도 죽도록 공부한 끝에 결국 숙명의숙 의원반을 거쳐 오덕의학당에 입학해 진도를 무사히 따라잡았고, 3학년까지 여왕님 놀이를 즐기던 와중 임자남정에 파견되어 민심잡기 용도로 현지인을 진료할 의사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기도 자신을 따르는 여학생들과 함께 안남에 파견되겠다고 나서며 부모님이 뒷목을 잡게 만든다. 조정에서도 '여의단 파견은 동의하나 옹주를 보낼 수는 없다'란 의견이 중론이었지만, 이 소식이 기자 귀에 들어가 언론을 대문짝만하게 타면서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이토록 천방지축이지만 황족으로서의 책임감과 의료인으로서의 소신 또한 분명히 있어서 자신을 태우고 안남으로 향할 어승선이 귀국하는 길에 현지에서 조치가 불가한 부상자들을 실어 보내자는 기특한 제안을 해 재석을 기쁘게 했고, 재석은 여기에 더해 전사자들의 관까지 운구하고 돌아오는 19세기로선 무척 파격적인 조치를 단행하는데 이것까지 윤지의 제안이었다며 공을 돌려 딸의 위상을 세워주었다.
안남 현지에선 남녀 유별로 군인들은 돌보지 못하는 대신 현지 여인들 치료와 위무에 전념하며, 황녀 신분을 내세우며 갑질하는 일은 전혀 없이 진심으로 성심성의껏 의료봉사에 임해 대한과 안남 양쪽에서 엄청난 칭송을 받았다. 이때 남월왕으로 책봉된 완복승이 그녀의 미모에 반한 데다 남월의 생존이라는 정치적 목표까지 곁들여져 그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하는데, 정작 재석은 완복승이 딸을 연모하고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못하고 여의단에 포함된 중인 출신 의녀들을 중 누군가를 눈독 들이고 있다 여겨 윤지에게 태황의 친딸이 가진 위상으로 여의단을 잘 단도리하라 이를 생각이었다.
이후 완복승은 정식으로 정단옹주에게 청혼하는데, 태황에게 구혼부터 하기보다는 그녀 본인의 의사부터 존중하고 싶다고 배려하고 심지어 왕실의 대를 잇기 위해 필요한 후궁을 평생 한 명도 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하자 이에 감동해 청혼을 받아들인다. 재석도 처음엔 당황했으나 황후의 조언을 받아들여 이 혼인을 허락하여 남월왕비가 된다.
혼인 이후 단 2달만에 임신이 확인되었다고 하여 사실상 첫날 밤에 허니문 베이비가 생긴 듯하다.
3. 기타
3부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남은 사람들을 돌아보게 된 재석은 올렝카 소생이 아닌 서자녀(활, 계, 희주)들에게 잘 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적자녀와 동등하게 대해줄 수 없다면 하고 싶은 거라도 맘껏 하게 해줄 걸 그랬다며 후회와 미안함을 드러냈는데, 정단공주는 그 덕을 제대로 본 인물이다.정단옹주가 완복승에게 시집간 것은 정치적 의미도 있다.
안남 완씨 왕조가 번국임에도 옛 고려와 조선보다 노골적으로 외왕내제를 하는 건 그렇다 쳐도 혐한 성향과 암군 행각 때문에 쓸데없는 어그로를 3대 연속으로 끈 끝에 분노가 폭발한 대한이 안남을 침공해 전국을 초토화시킨 뒤 3분할시켜 북월은 후송에게, 중월은 대한이 화산 이씨를 번왕으로 앉혀 사실상 직접 통치, 남월만 완씨 왕조에게 던져 주고 그나마도 산번 직할령과 점파(참파)공부 등으로 더 분할시켜 버렸다.
완씨 왕조의 모든 국체를 원 간섭기 당시의 고려 왕조에 맞추도록 했는데, 아무리 완씨 왕조가 근거지인 중월 일대를 상실하고 민족말살정책으로 인한 적대감이 남아 있는 남월로 추방되었다고 해도 한때나마 베트남을 통일시킨 완씨 왕조의 위상이 있으니[1] 완씨 왕조를 완전히 통제하기 위해서는 옛 원나라에서 그랬듯이 남월에도 황족을 화번공주로 보내는 것이 유리했다. 특히 흥선제는 화번공주를 적극적으로 보내는 편이었던 만큼 더욱 그랬고, 그런 상황에서 완복승과 정단옹주의 혼인은 정치적으로 나쁠 게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베트남은 특유의 반골 기질 때문에 완씨 왕조가 대한에게 먼저 잘못해서 자업자득인 건 알았지만 자국을 침공하면서 큰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입힌 대한에게 큰 반감을 가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의료 봉사로 이미지가 좋은 정단옹주를 시집 보내는 것은 이미지 문제로도 도움이 된다. 다만 전근대인이 다 된 재석은 정단옹주와 완복승이 먼저 합의하고 자신에게 말한 것을 은근히 못마땅하게 여기기는 했다.
[1] 물론 그 통일은 대한이 가륭제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줘서 가능했다. 작중에서 '재조지은'이라는 서술까지 나올 정도. 원 역사에서도 프랑스 선교사 도움 받아서 한 거라 본인들 힘으로 한 게 아니었으며, 이는 완씨 왕조가 빠르게 베트남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