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슈타인호프 작가의 대체역사물 명군이 되어보세!의 등장인물이자 주인공 이재석이 3부에서 빙의한 인물.1665년생으로 3부 시작인 1682년 시점에 만 17세. 선황 열조 연가제의 적차자이자 숙조 건복제의 동복동생, 충무대왕 이순신의 외현손으로 휘는 이현, 작호는 '성친왕'이며 대유주에서는 대공으로 대우받고 있다. 재석이 빙의한 3부 시작 시점에는 대한을 떠난 지 2년째로 15살 때 견서사 정사라는 명목으로 대한을 떠나서 서반아, 법왕청 등을 방문한 뒤 불랑국에 막 도착한 상태, 정확히는 도착 후 폴수국 왕 얀 3세 소비에스키의 딸 올렝카를 꼬셔서 동침한 직후였다.
2. 행적
처음에는 나잇값 못하는 철부지 황자 정도인 줄 알았으나, 3부가 진행되면서 드러난 바로는 양녕대군, 임해군의 재림이라 불릴 정도의 무개념 막장 황자였다.성친왕이 만 17년의 인생 동안 저지른 한심한 짓거리들은 아래와 같다.
- 10살 때부터 궁궐 밖으로 나가 낄 곳 안 낄 곳 구분 못하고 난동을 부려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침.
- 서자라 서열이 낮다고는 해도 엄연히 형이자 연장자인 3살, 12살 위의 이복형들에게 반말을 하며 막 대함.
- 이형준, 정호찬을 비롯해 누구에게나 거짓말을 밥 먹듯이 했음.[1]
- 공부와 어찌나 담을 쌓았는지 17살이나 되었는데 겨우 동몽선습을 떼었을 뿐 소학은 손도 대지 않았음. 오죽하면 스승들도 이형준 한 명만 빼고 모두 그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2]
- 사냥을 연습한답시고 황실 동물원인 응방에 활을 가져가서 전시 중이던 사슴과 여우들에게 화살 수십 발을 쏴서 고통스럽게 죽임[3]
- 물 길으러 온 아낙네들이 머리에 인 항아리를 활로 쏴서 깨뜨림. 그것도 한두 개도 아니고 십여 개나!(...) 성친왕의 활 솜씨가 그렇게 좋은 평을 듣지 못했던거 보면 이건 정말 천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4]
- 견서사 추방 소식을 듣고 한 달 내내 술독에 절어 사느라 다른 날도 아니고 자기 혼인하는 날 초례청 앞에서 술에 꽐라가 된 채 추태를 부려 결혼식 분위기를 아주 제대로 망치고, 아내와 동침은커녕 대화도 안하고 술만 퍼마심. 형황도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술독에 빠져 죽으라는 폭언도 했다는 모양. 성친왕이 후사도 못 남기고 출국한 것에 재석은 예왕이 수작을 부렸나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냥 성친왕이 멘탈붕괴했던 것이었다.
- 다른 일행들은 대유주에 도착한 뒤 모두 편지를 보냈는데 반년 동안이나 가족에게 소식 한 장을 안 보냄.
- 7살 때 2부에서 이항복이 바쳤던 3잔밖에 없는 베네치아 유리잔 하나를 깨버림.
- 현왕의 서자들인 조카들(이라지만 나이는 큰 차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 명천후, 은산후 등을 서자의 서자라는 이유로 심하게 구박함. 결국 세 후작들은 성친왕(사실 이재석)이 귀국하자 두려움에 지방으로 도망가서 장장 20년 가까이 상경하지 않았다.
그나마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살인, 강간은 안 했다고 한다만, 이 따위로 사는데도 모후 이씨가 오냐오냐하며 감싸고돌아서 연가제 시절에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예전부터 성친왕의 만행에 분노해 단단히 벼르고 있던 형 건복제가 재위 2년 만에 형식적으로 강씨와 혼인만 시켜서[5] 견서사라는 명목으로 대유주로 영구 추방해버린다. 추방당한 뒤엔 실의에 빠져서 배 타고 가는 동안에는 술과 노름에만 빠져 지내며 소일하고, 유럽에 상륙한 뒤엔 처음 만난 처자와 동침한 뒤 보석 한 알 던져주고 모른 척하는 난봉질까지 시작했다. 신분을 숨기고 유곽에 들르거나 숙소로 고급 창부를 들이는 것은 약과고, 귀족 딸이나 무려 일국의 왕의 딸(그나마 정식 왕녀는 아니고 사생아)을 건드리기에 이르는 판. 본인은 몰랐으나 그 과정에서 사생아 디에고가 태어났으며, 그 이상 공식적으로 인지되지 않아서 그렇지 술루국의 군 장교 조르조 벨라르디도 성친왕의 사생아임이 작중에서 암시되었으며, 그외에도 정황상 사생아는 디에고와 벨라르디 뿐만이 아닐 듯하다. 이렇게 함부로 놀고도 양매창에 걸리지 않은게 정말 천운.
외모가 볼품없었던 2부의 경성군과 달리 키 175cm, 체중 72kg의 균형잡힌 몸에 얼굴도 잘생긴 편이다. 머리카락이 검은 것만 빼면 거의 유럽인처럼 생겼다고 하며 때문에 조선인 백인설을 낳거나 폴란드가 내세운 가짜 왕자라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덕분에 올렝카를 비롯한 유주 처자들을 꼬실 수 있었고 남색가인 오를레앙 공작의 묘한 시선을 받기도 한다.
1, 2부에서 재석에게 몸을 뺏긴 싸이코 살인마 암군 연산군, 원역사의 선조를 뛰어넘는 찌질이 유교 광신자 암군 경성군과 다르게 성친왕은 군주가 되진 않았지만, 태황이 되었으면 저 둘보다 못하지 않은 막장 암군이 되었을 듯 하다. 하지만 임금이 된 다음에 몸을 뺏겨서 재석의 빙의 덕에 조선을 말아먹는 일을 피한 저 둘과 달리, 성친왕은 재석이 빙의하지 않았으면 태황은커녕 귀국조차 못하고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예왕이 심어둔 두 암살자가 성친왕을 죽이려 하고 있었으며 대유주에서 패악질을 계속 부리다가 외교적 문제를 일으켰다면[6] 참다 못한 건복제가 사약을 내릴 수도 있었다. 죽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예왕의 바람대로 양매창에 걸렸다면 거세 크리를 맞고 이후 건복제의 후계자 경쟁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3부가 시작되며 재석이 빙의해 개과천선한지 오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받거나, 성친왕의 만행에 피해를 본 이들에게 재석이 대신 사과하는 등 그 악명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친왕의 예전 성품만 생각하던 예왕 일파가 오판했다가 자멸하는 등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기도 한다. 재석이 태황에 즉위한 후에야 간신히 성친왕 시절 행적이 잊혀지는 듯 싶었으나, 성친왕이 싸질러둔 사생아 디에고가 대한 땅에 나타나며 다시 한 번 재석이 뒷목을 잡게 만든다. 그래도 디에고를 자식으로 인정한다고 선언하고 백작위를 주면서 좋게 끝나...나 했더니 유럽에 이 소식이 와전되어 디에고가 유리명왕 설화처럼 황태자가 됐다는 식의 헛소문이 퍼진 모양. 여기에 혹해서 사생아를 자칭하는 사기꾼도 찾아온다. 그나마 이 가짜를 잡아 처형한 덕분인지 대한 본토에 직접 오는 놈은 거의 없고 나타난다 해도 저 소식을 듣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내빼지만, 유럽 현지에서는 '자칭 기사왕의 사생아'들이 후원받은 뒤 잠적하는 사기 사건이 많다고 한다. 재석의 빙의로 3부가 시작하자마자 사라졌는데 잊을 만하면 과거의 만행이 튀어나와 발목을 잡는 것이 거의 3부의 메인 악당 수준이다. 때문에 독자들 사이에서는 '작품 세계관 속의 21세기 역사학계 및 정신의학계에서는 대체 이런 답이 없는 망나니가 어떻게 개과천선해서 명군이 될 수 있었는지를 두고 이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을 찾기 위해[7] 머리를 쥐어짜지 않겠냐'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독자들은 스승 이형준의 헌신+올렝카와의 사랑+루이 14세의 가르침 정도로 설명되지 않겠냐 정도로 의견이 모아진다.#
사후세계에서는 최소한 몇 달이라도 임금 노릇을 해본 이융과 달리 아예 즉위하기도 전에 재석에게 몸을 탈취당했기에 조선 임금 모임에도 끼지 못하며, 여전히 개념이 없어 아버지에게 혼만 나고 있다. 독자들은 수많은 악행을 저질렀으니 지옥으로 갔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생전에 저지른 업보가 지옥에 떨어질 정도의 중죄는 아니라는 판결을 받아 용케 지옥행은 면했다.[8]
[1] 다만 의외로 친형인 건복제에게는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때문에 건복제는 재석이 빙의한 성친왕이 개과천선했지만 자신에게도 숨기는 사실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자 통치자에 어울리는 성품이 되었다고 여기면서도 안타까워한다.[2] 다만 빙의 전에도 천방지축일 뿐이지 멍청하다는 평은 안 받았는데, 이는 예왕 측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무식한 이미지를 쌓아놓은 덕에(?) 재석이 2, 3부 사이의 74년간의 역사에 대해 잘 몰라서 헛소리를 엄청 했음에도 사람들에게 의심받지 않았다.[3] 어린 시절 잔혹한 동물 학대를 하는 것은 많은 연쇄살인범에게서 나타나는 전조 증상이다.[4] 항아리를 깰 정도면 촉이 달린 화살일 텐데 이게 빗나가 사람에게 맞았다면... 태후가 감싸고 말고 할 게 없다. 사람 상대로 이 짓을 했으니 30대가 된 뒤까지도 사람들이 진절머리 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5] 건복제는 성친왕이 늙어 죽을 때까지 귀국을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죄를 짓지도 않은 동생을 타향에서 노총각으로 늙어죽게 한다면 자신이 욕을 먹을 것이므로 명목상으로만 혼인시킨 것이다. 성친왕이 외국에서 죽는다면 적당한 아무 종친이나 하나 양자로 들여서 제사는 지낼 수 있도록. 그래서 하객도 별로 없이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치러졌다고 한다. 상술했듯 그마저도 성친왕이 술에 쩔어서 개판을 내버렸다.[6] 실제로 재석의 빙의가 단 하루만 늦었으면 일어날 뻔했다. 올렝카가 성친왕에게 먹버를 당했다면 사생아지만 올렝카를 아끼던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자기 딸의 첫 상대인데 큰 상처를 준 성친왕에게 앙심을 품고 대한에게도 악감정을 품었을 것이다. 스페인에서도 명장 빌라다리아스 후작의 딸을 건드리고 나몰라라 해서 사생아 디에고가 생겼는데 연락도 못 받는다.[7] 물론 독자들은 주인공 이재석이 도중에 빙의해서였음을 알고 있으니 어디까지나 작품 세계관 속 21세기 사람들 기준이다. 주인공 이재석이 1부와 2부 때 주인공이 각각 연산군과 경성군에 빙의된 시절과는 달리 3부의 성친왕에 빙의됐을 때는 천녀의 힘으로 성친왕이 원래 알고 있던 사람들은 주인공이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주류 학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오컬트 쪽에서 상당히 진지하게 떡밥거리로 나올 법한 2부 경성군의 무종(원 역사의 연산군에 빙의한 주인공) 빙의설과는 달리 3부 성친왕의 무종 빙의설은 우스개 수준으로나 나올 이야기라는 의견이 중론이다.[8] 당시 성친왕의 영혼을 심사한 판관이 "애가 그럴수도 있지" 하면서 극락행으로 판결을 내렸다고. 성친왕의 만행들 때문에 고생했던 재석은 천녀에게 이 사실을 듣고 저승에도 무슨 촉법소년 개념 같은 게 있냐, 재판이 그런 식이면 대다수가 극락에 쉽게 가겠다며 기가 막혀했고 저승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 혹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