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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개신교계는 조직신학(교의학)에 민감하기에 대체로 이단으로 받아들인다.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한국연합회) 第七日安息日耶穌再臨敎會(韓國聯合會) Seventh-Day Adventist Church(Korean Union Conference) | |
| |
<colbgcolor=#d29b09><colcolor=#fff> 표어 |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사야 60:1) |
약칭 | 재림교회 |
설립연도 | 1904년 |
소속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연합회장 | 강순기 목사 |
부회장 | 엄덕현 목사 |
교인 수 | 266,582 명 |
교단기관지 | 재림신문 |
교단출판사 | 시조사 |
위치 |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로1길 11 (청량리동) | |
링크 |
[clearfix]
1. 개요
1904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선교사 윌리엄 스미스(W.R. Smith) 목사에 의해 예수재강림제칠일안식회 조선합회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한국 본부이다. 전세계 재림교회 교단 내에서는 대총회 - 북아시아태평양지회 - 한국연합회에 속한다.우리나라에서는 짧게 안식교(安息敎)[1]나 안식일교회[2]로 알려져 있으나 본 교인들은 그렇게 부르지 않고 재림교회(再臨敎會, Adventist Church), 교인을 재림교인(再臨敎人, Adventist)이라고 부른다. SDA(Seventh-day Adventist) 혹은 삼육(三育)[3] 등의 단어는 본 교단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2. 역사
국내에는 처음에 예수재강림제칠일안식회라는 이름으로 1904년에 들어왔다.[4]일본 고베에서 이민하려고 하와이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이응현과 손흥조가 일본인 목사 쿠니야 히데(国谷 秀)를 만나 기독교 성경을 배우고 누노비키 폭포[5]에서 침례받았다. 손흥조는 조선반도로 되돌아가 임기반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임기반은 쿠니야 전도사와 필드 목사를 초창하였고, 이들은 한국 최초의 재림교회를 세웠다. 이때 초기 교인 중에서는 독립운동가도 일부 포함돼서 미미하지만 조선 독립에 기여했다.
1905년에 조선반도 첫 번째 선교사로 스미스 목사가 내한하였고, 평안남도 순안군[현]을 선교 본부로 샤펜버그 선교사와 함께 의명학교와 순안병원을 설립했다. 1915년도에는 의명학교 출신의 정문국과 이근억에게 첫 목사 안수가 이루어졌다. 이후 동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미션필드가 되었고 1917년에 조선대회(The Chosen Conference)로 승격되었고 곧이어 1919년 조선합회(The Korean Union Mission)로 승격되었다.
일제의 조선 침탈이 시작되면서 일제의 포교 규칙에 따라 재단법인으로 등록하였다. 1931년에는 경성대전도회를 통해 매일 400~600명의 청중이 참여하는 부흥도 일어났다. 하지만 1936년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가 강경해지자 교단 소속 순안 의명학교(현 삼육대학교)는 평양지역 개신교단 중 처음으로 신사참배 요구에 굴복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조선중앙일보] 미국에 위치한 교단 지도부의 한국 역사에 대한 무지, 신사참배의 신학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결과였다.
그럼에도 개별적 신자들은 그러한 교단의 결정을 모두 지지하거나 따르지는 않았다. 개신교 여타 교단도 공식으로만 참배를 허용했을 뿐이지 개개인 차원에서 오히려 저항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조선의 개신교회 목사 중 신사참배를 거부한 첫 순교자가 재림교회 소속의 최태현 목사이다. 이후 재림교회는 일제에 의해 교리상의 이유로 조선 기독교 중 최초로 성결교회 및 동아기독교(현 한국침례회)와 함께 강제로 해산당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재림교회는 한미민간구호협정에 따라 구호단체로 등록하였고 적극적 구호봉사를 실천하였다. 또한 지금의 합회 조직의 기반이 되는 대회 체제를 시작하였다. 1970년대에는 전국에 삼육중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신학과만 존재하던 삼육대학에도 영양학과, 화학과, 음악교육과 등의 학과가 신설되며 교육사업에도 힘쓰게 된다. 1992년에는 처음으로 필리핀에 천명선교사를 파송한다.
현재는 260,491명의 교인과 841명의 목회자를 가진 연합회로 성장하였다.
3. 조직
2022년도 한국연합회 교세 현황 | ||
<rowcolor=#000> 구분 | 내용 | |
<colbgcolor=#fff,#191919> 합회 | 5개 | |
대회 | 1개 | |
교회 | 교회 | 696개 |
총 집회소 | 833개 | |
교인 | 교인 | 260,491명 |
목회자 | 841명 | |
문서전도자 | 70,497명 | |
교역자 | 3,678명 |
한국연합회 조직 현황 | |||
부서 | |||
총무부 | 재무부 | 목회부 | 안교선교부 |
보건구호부 | 여성전도부 | 가정봉사부 | 종교자유부 |
군봉사부 | 청소년부 | 어린이부 | 청지기신탁부 |
출판전도부 | 예언의신부 | 호프채널코리아 | 성경연구소 |
위원회 | |||
안식일학교 | 디지털선교 | 성경통신학교 | 북한선교 |
기타조직 | |||
기금운용본부 | 감찰담당 | ACT협회 | 홍보부 |
3.1. 합회
한국연합회 합회 현황 | ||
합회 | ||
동중한합회 | 서중한합회 | 영남합회 |
충청합회 | 호남합회 | |
대회 | ||
제주대회 |
- 동중한합회
- 강남지역
- 경기지역
- 서울동부지역
- 서울본부지역
- 영동남부지역
- 영동북부지역
- 영서북부지역
- 영서남부지역
- 서중한합회
- 강남지역
- 경기동부지역
- 경기북부지역
- 경기서부지역
- 경기중부지역
- 남양주지역
- 노원지역
- 대학지역
- 서부지역
- 시내지역
- 의양지역
- 인천지역
- 영남합회
- 경남지역
- 경북지역
- 대구경산지역
- 부산지역
- 충청합회
- 대전지역
- 충남남부지역
- 충남북부지역
- 충남서부지역
- 충남중부지역
- 충북남부지역
- 충북북부지역
- 호남합회
- 광주동북부지역
- 광주서남부지역
- 전남동부지역
- 전남서부지역
- 전남중부지역
- 전북서부지역
- 전북동부지역
- 제주대회
4. 특징
-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갖추고 있어 목사는 4-5년 주기로 합회 내에서 인사발령을 통해 이동하며, 헌금 또한 일부 특별 헌금을 제외하면 대부분 중앙에서 투명하게 처리하고 모든 목사는 연차에 따라 월급을 받는다.
- 침례교와 같이 세례가 아닌 침례를 하며, 유아세례를 부정한다.
- 한국 재림교회의 성경은 대한성서공회가 발행한 개역개정판과 개역한글판이 병용된다. 세례라는 단어만 침례로 대체되었다. (예 : 세례 요한 → 침례 요한)
- 찬송가의 경우 여타 개신교회의 찬송가에 재림과 관련된 곡을 추가한 찬미가를 사용한다.
- 교회 일치 운동에 반대하기 때문에 어느 개신교 기구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 신학적으로는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을 띈다.
- 정치적으로는 철저한 중립을 원칙으로 하며 사회운동 참여에도 매우 신중한 편이다.
- 성서무오설을 부분적으로 수용한다.
- 예배의 경건함을 중요시하여 대체로 예배에서는 타악기와 전자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피아노와 오르간, 현악기 및 관악기를 위주로 사용한다.
- 위 예배 문화의 영향으로 오케스트라와 합창이나 중창 문화가 매우 발달하였다.
- 마태복음 22장 21절에 따라 한국 개신교 교단 최초로 종교인 과세를 실천하고 있다.
- 구세군의 영향을 받아 구호 사업을 중요하게 여기며, 교단 차원에서 ADRA라는 구호단체를 운영한다.
- 크리스마스, 부활절, 송구영신의 상징성은 인정하지만 교단 차원에서 기념하지는 않는다.
-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을 우려하여 교회 건물에 첨탑이나 십자가 등의 상징물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돼지고기나 갑각류와 같이 레위기에 기록된 부정한 동물을 먹지 않으며, 마약은 물론 술과 담배를 철저히 금기시한다.
-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의 기별을 핵심 교리로 삼는다.
- 창조론과 젊은 지구설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진화론은 따르지 않는다.
- 여타 교단의 주일학교와 같은 개념인 안식일학교를 운영한다.
- 성만찬예식이 있는 날 세족 예식을 함께 진행한다.
- 마태복음 6:7-8을 근거로 방언이나 통성기도를 하지 않는다.
4.1.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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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 삼육대학교 | |||
대학원 | 삼육대학교 일반대학원 ・ 임상간호대학원 ・ 신학대학원 ・ 경영대학원 | |||
전문대학 | 삼육보건대학교 ・ | |||
초・중・고등학교 | ||||
초등학교 | 광주삼육초등학교 ・ 대구삼육초등학교 ・ 대전삼육초등학교 ・ 동해삼육초등학교 ・ 부산삼육초등학교 ・ 서울삼육초등학교 ・ 서해삼육초등학교 ・ 원주삼육초등학교 ・ 춘천삼육초등학교 ・ 태강삼육초등학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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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 동해삼육고등학교 ・ 서울삼육고등학교 ・ 서해삼육고등학교 ・ 영남삼육고등학교 ・ 원주삼육고등학교 ・ 한국삼육고등학교 ・ 호남삼육고등학교 | |||
기타 교육기관 | ||||
유치원 | 삼육대학교 부속유치원 | |||
어린이집 | 삼육대학교 부설어린이집 ・ 삼육서울병원 직장어린이집 | |||
특수학교 | 서울새롬학교 ・ 광주새롬학교 ・ | |||
재단 사업체 | ||||
삼육서울병원 | 삼육부산병원 | 삼육치과병원 | 유자원 | |
에덴요양병원 | 여수요양병원 | SDA 삼육어학원 | 킨더레스트 영어유치원 | |
삼육식품 | 삼육네이처세븐 | 삼육유기농 | 시조사 | |
법인 기관 | ||||
삼육대학교 인성교육수련원 | 삼육대학교 박물관 | 별새꽃돌 자연탐사과학관 | 새힘아트홀 | |
마달피 청소년수련원 | 삼육재림연수원 | 사슴의동산 수련원 |
학교법인 삼육학원 외 재림교회 계열 교육기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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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어린이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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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고등공민학교(중학교 학력인정), 대: 대안학교 | }}}}}}}}} |
교육을 중요시하며 한국연합회 역시 교육선교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만큼 산하 학교법인인 삼육학원에서는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전부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학교법인이며, 삼육대학교에서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 과정을 운영한다.
재림교회는 워런 G. 하딩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라일리 러셀, 이승만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조지 헨리 루 등의 의료선교사들을 한국으로 파송되면서 한국에서 근대적 의술이 보급되는 데 앞장섰다. 그래서 특히 한국은 의료선교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서울위생병원은 1933년 경성요양병원이라는 이름으로 휘경동에 정착한 이후 일제강점기와 해방전후에 손꼽히는 근대적 의료시설이었다. 피천득 시인은 자신의 시 '나의 사랑하는 생활'에서 청량리 위생병원에 입원하고 싶다는 선망을 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삼육부산병원과 삼육치과병원, 에덴요양병원, 여수요양병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삼육두유로 유명한 삼육식품을 운영하고 있으며, 삼육학원의 수익사업체로서 수익은 삼육대학교를 비롯한 재단 산하의 교육기관을 운영하는 데 사용된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교인들을 위해 콩으로 만든 햄을 판매하고 있고, 채식주의를 권장하는 만큼 콩고기나 채식 요리를 생산하기도 한다.
교단 한국본부가 있는 청량리동에 교단 출판사인 시조사(時兆社)를 운영하고 있다. 청량리동 1번지외 회기동 일대의 시조사삼거리라는 지명과 버스 정류소 명칭은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 현 위치인 청량리동 1번지에 위치한 것은 1912년부터이고 1920년 한국 최초로 고속인쇄기를 미국에서부터 도입하여 운용한 기록이 있다. 일제의 종교탄압 정책으로 강제 폐간과 몰수를 당한 적도 있었다. 현재는 교단 내 인쇄물과 SDA삼육영어학원 등의 교재까지 이곳에서 출판을 한다. 시조사의 명칭 유래는 이 교단에서 발행하는 대표 잡지가 시조(時兆 = 시대의 조짐)라는 이름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 이야기가 나올 때 재림교회도 언급이 되곤 한다. 비록 숫자가 매우 적긴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 다음으로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8] 다만 교단 차원에서 병역 거부를 주도하거나 신도들에게 병역을 거부할 것을 설파하는 것은 아니다. 재림교회 신도들 중에 군복무를 마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다만 그동안 문제가 되어왔던 것은 교리상 토요일에는 노동을 쉬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때문에 주5일제가 시행되기 전인 2000년대 초반까지는 영창의 단골 손님이었고 징계 사유는 지시 불이행[9]이었다. 다만 2010년부터는 국방부와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논산훈련소 내에 교회를 세우고 자대에서 토요일에 교회에 가는 것도 간부들이 허락해 주도록 약속을 받아냈다고 한다. 참고로 미국의 재림교회 신도들 중에도 집총거부를 한 신도가 있었다. 2차대전 참전용사인 데스몬드 도스. 이를 소재로 한 핵소 고지라는 영화도 있다.
5. 사건사고
1925년 평안남도 순안 위생병원(현 서울삼육병원의 전신)의 의사였던 허시모(許時模, Clyde Albert Haysmer)가 과수원에 들어와 사과를 서리하던 김명섭이라는 12살 동네 아이의 양 볼에 초산은(염산이라는 설도 있음)으로 "됴뎍(도적)"이라고 각자(刻字)하는 엽기스러운 일도 있었다.[8] 일이 1년 후 세상에 알려지자 상애회(相愛會)나 여러 애국청년단체가 안식교 반대 운동과 함께 선교사 추방 운동을 벌였다. 결국 안식교에서 허시모를 해임하고 그 해 12월에 본국으로 추방했다. 그러나 실제 내막은 알려진 바와 다르다는 설도 있다. 본래는 선교사 허시모가 한 일이 아닌, 조선인 과수원지기가 감정에 치우쳐 저지른 일인데 사실 그대로 경찰에 알려지면 당시 사회 분위기상 과수원지기가 사법상으로나 사회상으로나 무거운 처벌을 면할 수 없었던 탓에 그 과수원지기를 보호하려고 미국 국적의 선교사 허시모가 자기가 한 것으로 하고 조선에서 추방당하는 것으로 결론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조선에 반기독교 운동까지 일어날만큼 후폭풍이 거대했던걸 볼때 선교하는 종교 이미지를 파괴해가며 누명을 썼다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1] 안식교라는 짧은 이름은 한국에 본 교단이 들어올 당시에 예수재강림제7일안식회라는 이름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제7일안식교(第七日安息敎)로도 불리기도 하고 실제로 과거에도 안식교라는 이름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재 교단에서는 이러한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정식 명칭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로 변경하기도 했고 원어 명칭에도 안식일이라는 들어가지 않으며 안식교라는 이름에 이단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2] 대한민국 국군에서 이 명칭을 사용한다.[3] '체육'(體育), '지육'(智育), '덕육'(德育)이라는 세 가지가 합쳐져 지어졌다. 신체적, 정신적, 영적 성숙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主形)을 회복한다는 의미를 갖는다.[4] 대한예수교장로회 등의 칼빈주의 성격의 교단들이 장로회로 통칭되듯이 이 명칭(예수재강림제칠일안식회)에서 한국 개신교계 사이에서 안식교 또는 제칠일안식교로 통칭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명칭이 과거와 다른 요즘, 재림교회에서는 약칭을 부를 때 안식교라고 부르지 않고 안식일교나 재림교 등으로 불리기를 바란다. 안식은 휴식을 뜻하지 안식일을 완전히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5] 현재 이 폭포 앞에 신칸센 신코베역이 들어서 있고 폭포 밑으로 한신고속도로 제32 호 신코베 터널이 있다.[현] 평양직할시 순안구역[조선중앙일보] 기사 1936년 1월 18일자 제목 “신안 의명학교 신사참배를 표명. https://www.nl.go.kr/newspaper/detail.do?content_id=CNTS-00093624805&from=%EC%8B%A0%EB%AC%B8%2520%EA%B2%80%EC%83%89“[8] 또한 한국 역사상 최초의 집총거부자 또한 재림교회 신자였다. 41페이지1970년대 중반부터 교단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양심적 집총거부에 대한 입장이 포기되었다고 한다.[9] 그래도 부대별 간부들의 재량에 따라서 이런 상황은 달라지기도 했다. 그냥 근무를 일요일로 밀어줘서 지시불이행을 면하게 해주는 부대도 있었다. 간부가 하급자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관용인데도 영창에 보낸 부대는 그냥 병사들을 노비취급하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