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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Baron Kelvin William Thomson
1824년 6월 26일 ~ 1907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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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의 물리학자이자 공학자. 본명은 윌리엄 톰슨(William Thomson)이나 1892년 열역학에서의 업적으로 켈빈 남작(Baron Kelvin)이라는 작위를 얻은 뒤로는 거의 켈빈으로 통한다.[1] 1대 켈빈 남작에 해당하며, 켈빈 남작에게 후손이나 가까운 친척이 없어서 그가 죽은 후에는 작위가 단절되었다. 따라서 세계적으로도 켈빈 남작보다는 켈빈 경(Lord Kelvin)으로 불리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켈빈이라는 이름은 글래스고 주변을 흐르는 강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절대온도의 단위인 '켈빈'과 장주기 중력파의 일종인 '켈빈파'는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2. 생애
1845년 패러데이의 전기력선 개념을 수학적으로 분석해내어 쿨롱의 역제곱 법칙에 해당함을 보였다. 1846년 22살의 나이에 글래스고 대학교의 교수가 된다.수학자 조지 그린의 업적을 발전시켜 1850년에는 스토크스 정리를 처음 제안하는 등, 조지 스토크스[2]와 함께 벡터 미적분학을 만들었다.
1851년 열역학 제2법칙을 열기관의 관점으로 정의한다. 켈빈의 정의는 오늘날 널리 쓰이는 루돌프 클라우지우스의 정의와 동등한 정의이다.
운동 에너지와 퍼텐셜 에너지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계기도 켈빈이 이 용어들을 사용하면서 부터이다. 켈빈은 1849-51년경 운동에너지라는 단어를 만들었고 그의 동료인 랭킨은 1853년 퍼텐셜에너지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1867년 켈빈은 피터 테이트와 함께 뉴턴 역학에서 쓰이는 용어들을 운동 에너지와 퍼텐셜 에너지로 대체한 교과서 '자연철학 논고'를 저술한다. 에너지 보존의 관점으로 뉴턴역학을 새로쓴 이들의 책은 역학뿐만 아니라 전자기학을 비롯한 물리학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1867년 에테르의 소용돌이로 이루어진 원자모형을 제안했다. 에테르가 다른 매듭을 지어서 원자를 만들어냈다는 이 가설은 이후 매듭이론으로 발전한다.
1887년 빠르게 진동하는 함수를 다루기 위해 정지위상근사(stationary phase approximation)라는 기법을 개발해내어 광학과 유체역학의 문제를 푸는데 사용하였다. 이 기법은 WKB 근사와 유사하며, 고전적인 파동방정식과 슈뢰딩거 방정식 등을 푸는 데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3. 흑역사
그 역시 인간이었기 때문에 과학자로서 흑역사를 남기기도 했다. 바로 지구의 나이를 잘못 계산한 것. 그는 지구 내부의 온도와 크기를 토대로 지구가 탄생 이후 냉각되는 시간을 계산해서 지구의 나이를 추정했는데, 그는 지구의 나이가 많아도 1억년을 넘지 않으며 약 2천만년 남짓이라는 계산 결과를 얻었다. 이는 당시에는 지구 내에 있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로 열이 계속해서 발생해서 지구가 빨리 식지 않는다는 사실이 증명되기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실수였다.여기까지라면 다른 과학자들도 가끔 저지르는 단순한 착오였을텐데, 켈빈은 이 계산을 토대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사실 켈빈이 지구의 나이를 계산한 이유도, 이 진화론을 반박하면서 그 근거로 '지구의 나이는 그다지 길지 않으며, 이 시간으로는 진화가 일어나기에 필요한 시간이 부족하다'라는 논거를 내세웠고 이를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켈빈으로선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것이지만 그도 미처 알지 못한 다른 요소 때문에 잘못된 결론을 내려버린 것.
또한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 기계는 불가능하다고 공공연히 말했는데 우습게도 라이트 형제가 1903년 비행기 발명이 성공을 하는걸 보고 4년 뒤에 죽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새나 곤충 역시 공기보다 무겁다는 사실을 알게 될텐데 이는 아무리 쉴드를 처줘도 식견이 짧았다고 밖에 볼 수없다.
4. 여담
이 사람이 만든 파동분석기가 아날로그 컴퓨터의 기반이되었다고한다#켈빈이 하지 않았음에도 켈빈이 남긴 말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 어록이 있다.
"An eminent physicist remarked that the future truths of physical science are to be looked for in the sixth place of decimals."
의역: “이제 물리학에 남은 과제라고는 그저 ‘소수점 여섯자리’를 채우는 정도의 일 뿐이다.”
해당 발언을 남긴 건 앨버트 마이컬슨(Albert A. Michelson)이다. 마이컬슨은 물리학의 발전이 사실상 끝이 났다고 단정을 내리고 1894년 라이어슨 물리학 연구소(Ryerson Physics Lab)에서 연설하면서 위와 같은 말을 남겼다. 하지만 솔베이 회의가 열리게 되면서 해당 발언은 완전히 박살나게 된다.의역: “이제 물리학에 남은 과제라고는 그저 ‘소수점 여섯자리’를 채우는 정도의 일 뿐이다.”
다음의 발언도 켈빈이 남긴 적 없는 발언이다.
There is nothing new to be discovered in physics now. All that remains is more and more precise measurement.
이제 물리학에서 새롭게 발견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측정을 더욱 정밀하게 하면 될 뿐이다.
켈빈의 저작 중에선 이러한 발언이 발견된 적이 없다. 스티븐 와인버그의 책 "최종이론의 꿈"이나 월터 아이작슨의 책 "아인슈타인" 에서도 켈빈이 해당 발언을 한 적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 발언은 1900년 4월 27일 왕립 협회에서의 강연 Nineteenth-Century Clouds Over the Dynamical Theory of Heat and Light 에서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해당 강연에선 맥스웰-볼츠만의 에너지 등분배법칙과 에테르 이론이라는 당시 물리학의 의문과 한계점들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이제 물리학에서 새롭게 발견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측정을 더욱 정밀하게 하면 될 뿐이다.
[1] 다만, 현재 과학계에서도 극히 일부에서 톰슨이라는 이름이 남아 쓰이기는 한다. 스프레이를 뿌릴 때 스프레이 통이 차가와지는 현상 같이 단열 상태에서 기체가 노즐을 빠르게 빠져나갈 때 기체의 압력이 떨어지면서 온도가 낮아지는 현상을 줄-톰슨 효과라고 부르는 것이 그 예이다.[2] 밀레니엄 문제 중 하나인 나비에-스토크스 방정식으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