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8 16:35:17

제2차 왕자의 난/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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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왕자의 난/대중매체 제2차 왕자의 난/대중매체

1. 개요

제1차 왕자의 난이 사극에서 주로 단골 소재로 나오는 것과는 달리 제2차 왕자의 난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편이다. 오죽하면 그냥 스킵해버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실록에선 이방원이 간단히 이방간을 제압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사극에서는 극적 재미를 위해 나름 치열하게 싸우다 이방원 측이 이기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를 위해 이방간은 일종의 보스 보정을 받아 나오며 거병에 참여하지 않은 박포는 이방간의 오른팔로 나온다.

2. 용의 눈물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기록에서처럼 허무하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초반에는 이방원 측이 수세에 몰리고 치열한 전투가 여러차례 벌이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태조가 격노하며 방간을 소같은 놈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그대로 들어 있는걸로 보아, 제작진이 몰라서 고증을 어긴 게 절대로 아니다.[1] 이방원 측의 유도 가능성도 어느 정도 반영하여 하륜과 이숙번은 방간이 움직이게 하면 왕위승계의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친형제에 대한 우애가 진심인 방원이 거절해 실제 유도까진 안 하다가 기습 당한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는 개경 시내에서 양측이 충돌한 시가전이었지만, 드라마의 해당 장면을 남한산성에서 촬영한 탓에, 산골짜기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방간이 정도전과 최종보스 조사의 사이를 잇는 중간보스 보정을 받기도 했고 뒤에 이어질(그리고 조사의의 난까지 이어지는) 이성계와의 갈등, 사병혁파를 둘러싼 공신들과의 갈등을 더욱 불꽃튀게 돋우는 과정으로 활용하기도 했기 때문.[2][3]

당일날 집에 있었다는 박포는 여기선 방간을 따라 전투에 나선다. 도성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고 압도적인 숫자로 밀어붙이는 방간측에 맞서 얼마 안 되는 선봉부대로 최대한 시간을 끄는 한편[4] 정치력을 최대한 발휘해 대신과 종친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명분의 우위를 점하고 유격전으로 도성 외곽 군사를 끌어모으는 방원측의 대결이 치열하다. 작품을 어긴만큼 방간의 세력이 1천여명에 이를 정도로 어마무시한 세력에 훈련도 전부 제대로 되어서 사병 혁파 문제로 한동안 싸움을 못했던 방원측 사병들 보다도 전투력도 높아진 상태였다. 그러나 이방간의 세력은 도성 밖 군대가 밀려오는 순간 불리해 질 수 있기에 많은 병사들이 외성으로 나가지 못하게 각 장소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이방간의 척후를 붙잡아 자세히 알게 되자,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던 이방원의 병사 중 일부를 통해 한쪽 외성 출입구가 불리하게 묘사해 병력들을 그곳으로 집중시키게 만들고 약해진 곳을 이방원의 병사가 분장해서 목숨걸고 돌파 외성 밖의 병력을 불러들이고, 반대로 뚫리기 직전이던 방원측의 본진은 성 내부에 있던 이거이의 합류로[5] 다시 버텨내며 외성 밖 군사들과 함께 양방향으로 밀어붙여 겨우 제압하게 된다.

고증을 일부러 어긴 대신 긴박감을 잘 살린 전투씬이나 숨가쁘게 진행되는 시퀸스가 매우 훌륭하며 반란 진압 이후 우리들의 세상이라며 희희낙락하던 공신들이 앗 하는 순간 사병 다 내주고 유배길에 오르는 장면도 볼 만하다.

그리고 박포가 죽기 전 처형장에 모인 대신들에게 내가 죽고나면 다음은 당신들이라고 경고하자 자리를 떠나던 이방원이 살짝 흠칫했다가 곧 죽을놈 헛소리니 그냥 떠들게 두라고 한 후 떠난다. 훗날 벌어질 일에 대한 복선을 작중에 남겼다.


여담으로, 박포의 처형은 내용상으로는 매우 진지한 장면인데 , 문제는 망나니막걸리를 입에 머금고 연신 세번이나 박포의 얼굴에다가 뿜어대는 장면이 은근히 코믹하다는 거다. 박포 역을 맡은 배우도 잘 보면 웃음을 참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3. 대왕 세종

대왕 세종에서는 회상신으로 등장하는데, 용의 눈물에서처럼 전투가 벌어졌을 뿐만 아니라 방간의 부하들이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 형제를 납치해서 인질로 삼자 이방원과 민씨 형제가 직접 구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스케일은 더 작아졌는데 고증은 훨씬 많이 비틀었다. 이 사건에 대해 세 형제가 각기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포인트.

4. 육룡이 나르샤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47~48화에 걸쳐 이루어져 약간의 여유가 있었고 방간에게 나름의 캐릭터성도 부여했기에 최종화에서 다뤄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남은 두 화는 무명과의 마지막 전투, 이도와 분이와의 만남, 분이가 훈민정음을 접하는 장면 등 가상의 시나리오 전개에만 소모되었으며, 고증은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갔다. 2차 왕자의 난은 그저 2년 후란 자막과 함께 스킵되고 개그 캐릭터 옥사에 갇힌 방간이 매우 호방한 목소리로 용이 불을 토하듯, 범이 포효하듯 방원에게 일갈하는데 그 내용인 즉슨 나좀 살려줘(...).다만 기록에선 매우 허무하게 끝난 사건인만큼 어떤 면에선 가장 고증이 잘 된 것일 수도 있다.

용의 눈물에서도 그랬지만 방간은 여기서도 디스를 당하는데 아버지에게 소같은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이방간은 형인 정종에게 무식한 놈이라는 말을 듣는다.

5. 나의 나라

14회와 15회에 걸쳐 묘사된다. 무인정사에서 승리한 이방원을 위협적으로 여긴 이방간은 은밀히 사병을 모으고 이성계는 그런 방간을 이용해 다시 이방원을 치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눈치챈 서휘와 이방원은 이방간을 방심시켜 2차 왕자의 난의 씨앗을 뿌려놓았다.

치열한 싸움끝에 결국 2차 왕자의 난은 이방원의 승리로 끝났고, 이방간은 이방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후 이방원은 옥사에 갇힌 이방간을 찾아 "형님께선 난을 일으킨 중죄인이다. 말을 놔도 용서하시라"라며 "니가 살 길은 오직 하나다. 허니 답하라. 배후가 누구냐"고 추궁했다.

이방간은 기분나쁜 웃음을 지으며 비아냥거렸고 이방원은 "누구의 명으로 이리 행하였냐"며 다시 한번 물었다. 이에 이방간은 "상왕 전하. 너와 나의 아버지"라며 이성계를 지목했다.

이를 들은 이방원은 눈물 한줄기를 흘리며 "사헌부 장령은 적었느냐. 이로써 형님은 사셨소"라고 말했다.

6. 태종 이방원



이 드라마에서는 이방간이 이방원에게 태클을 건다거나 불만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유난히 더 자주 보여줌으로 인해 앞으로 있을 2차 왕자의 난의 포석을 1차 왕자의 난 이전부터 깔아놓는다.[6] 이를테면 이성계가 이방원만 칼을 잡지 않게 하는 것을 비롯한 이방원의 총애를 향한 질투심부터, 신덕왕후의 계략으로 이방원만 가별초를 받자 그 의미를 알지 못한채 이방원만 사병을 받았다고 투덜대기도 하며, 이방원에게 항상 "너는 가장 어린놈이 형에게 박박 기어오르라고 하느냐" 라는 식의 태도를 항상 내보인다.

16화에서 1차 왕자의 난이 다뤄졌다. 오래전부터 사병을 키우고 있었던 방간은, 이미 중전 강씨는 세상을 떠났고, 만약 부왕마저 돌아가시면 방석은 왕좌를 지킬 능력이 없으므로 동복형제들끼리의 경쟁이 될 것이니 자신은 바로 아래 동생 방원을 막겠다는 심보를 방의에게 밝힌다. 역시나 방원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고, 정도전, 심효생 등 세자파 대신들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하자, 17화에서 뒤늦게 방간이 자기 사병들을 동원해서 숟가락을 얹으려고 하고, 독단적으로 이방번을 살해해버린다. 이에 이방원은 자신의 정치를 망쳐놓는 방간에게 화를 내지만, 어차피 역적이고 짐승이 되었는데 무슨 가식을 떠냐면서 방간이 비웃자,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자는 이제 형이라도 베어버리는 꼴을 보고 싶냐며 급기야 상호간에 멱살잡이까지 가고, 방의가 둘을 뜯어말리면서 겨우 상황이 진정되는 등, 방원과 방간의 대립이 전개된다.

19화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방간이 방원을 경계하며 그를 칠 것을 결심한 이후 아들 맹종에게도 자신을 따를 것을 지시하며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을 암시한다.

그 전부터 이방간은 이방원을 경계하여 사병을 키우고 있었고 형인 이방의에게 지속적으로 이방원의 위협과 험담을 늘어놓으며 적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이방의를 설득하는데 성공하고 여기에 공신 책봉에 불만을 품고 삼군부에서 깽판을 벌이다가 파직된 박포까지 끌어들이려 시도한다. 허나 이 움직임은 원경왕후에게 포착되었고 이방원에게까지 이 소식이 전해진다.

거병 당일 방간은 아들인 맹종을 방원에게 보내 염탐하며,[7] 방원은 맹종에게 거병을 하지 말아달라고 방간에게 의사를 전하지만 오히려 방간은 거병을 서둘러 병사를 이끌고 시가지로 가며 방원 역시 조영무, 이숙번 등과 함께 나선다. 전투가 일어나기 직전 방원은 방간을 설득하여 싸움을 멈추려 하지만 맹종의 화살에 낙마하면서 설득할 생각을 버린다. 이어 방원의 병사들과 방간의 병사들끼리 싸움이 벌어지고 시가지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에 민간인들까지 말려들어 수십 명이 희생당한다. 본래라면 이방의가 이끄는 병사들이 방원의 배후를 치기로 되어 있었는데[8] 안 그래도 열세인 상황에 방의마저 오지 않는 통에 이방간 측은 점점 패색이 짙어진다. 결국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낀 이방간은 도주하지만, 결국은 방원이 보낸 병사들에게 포위당하여 사로잡히고 만다.

방간이 일으킨 난이었지만 방간을 주모자로 지목하면 살려줄 수 없었고 도성내 민간인 피해때문에 그냥 넘어가면 민심이 요동칠 것이기에, 박포가 방간을 대신할 희생양으로 지목되어 모든 혐의들을 홀로 다 뒤집어 쓴 채 처형당한다. 용의 눈물이나 여타 매체에서 이방간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박포는 그저 이방원 측의 정보만 넘기는 모습으로 나오는 것도 차이점. 사료에서는 박포는 부추기기만 하고 자신은 집에서 느긋하게 있었다고 하는데, 여기서도 박포가 방간을 살리기 위한 희생양이 된 것임을 강조한다.

이후 방간은 아들 맹종과 함께 귀양을 갔다.[9] 이후 이방의는 방원에게 자신 또한 방간을 도와 거병하려 했다고 고백하려 하지만, 방원은 알고 있다며 밖으로 들리지 않게만 하면 된다고 하면서 아무런 처벌 없이 넘어간다.

회차의 제한으로 전개속도를 빠르게 할 수밖에 없는 한계 때문에, 시대가 지남에 따라 발달한 그래픽이나 소품 등이 아닌, 개연성이나 디테일은 아무래도 용의 눈물에 많이 밀렸지만, 본작에서 나아진 점 중 하나가 이 2차 왕자의 난이 시가전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점이다.

별다른 희생이 없었다는 실록의 기록과는 다르게 적지 않은 수의 병사들과 심지어 무고한 백성들까지 희생된 끔찍한 참극에 가까운 사건으로 묘사된다. 작중 연출도 두 형제의 갈등을 부각시키기보다는 두 형제의 충돌로 인한 피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집중되고 있다. 이 사건이 얼마나 무의미한 항쟁이었는지에 더해 이방간이 얼마나 생각없이 일을 벌였는지를 묘사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극중에서도 이방원이 이방간의 멱살을 잡고 그 참상을 보여주며 "보십시오, 형님이 뭘했는지... 누굴 죽였는지!"라며 일갈한다.

상술했듯 이방의가 이 반란의 공모자였으나 의도적으로 기록에서 누락되었다는 참신한 설을 들고 나왔는데, 실록에서 2차 왕자의 난에서의 방간의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하고 박포에게 책임을 모두 돌린 듯한 정황이 있는 걸 고려햐면 개연성은 있다. 골육상쟁은 왕실의 권위에 큰 타격을 주니 이방원 입장에선 묵살할 수 있다면 그냥 묻어 버리려 했을 것이다. 이리 본다면 이방의가 모든 직책을 내놓은건 백기투항의 의도가 있었다 해석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방원에 대한 두려움을 여실히 드러낸 방의로 인해 방원이 형제들 사이에서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 외로워지고 있음을 묘사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 것은 덤.


[1] 여담으로, 이성계 역을 맡은 김무생의 연기 덕분에 이 드라마에서는 다른 드라마보다도 더 유난히 이방원에 대한 이성계의 적개심이 제대로 드러나는데, 그 이성계가 방원이가 이길 것이라고 이방간을 도와주지 않는 것을 보면 이방간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분량 때문에도 그렇지만 용의 눈물에서는 이성계가 정종에게 이방원을 죽이라고 밀명을 내릴 정도로 적개심이 강한데도 이방간을 돕지 않았으니....[2] 뒷날 태종을 몰아내고 정종을 옹립하려 했다는 혐의로 귀양가는 이거이는 반란이 일어난 상황에서도 간을 보는 모습으로 끝까지 반목할 것을 암시하고 기꺼이 온힘을 다해 도와준 조영무와 이천우가 느낄 배신감도 그만큼 절절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조카들 싸움을 볼 수 없어 이방원을 도운 이지란이 이성계를 떠나면서 홀로 남겨진 채 더 이상 방원을 견제할 사람도 없어졌다 생각한 이성계는 거병을 결심하게 된다.[3] 한편 사병 혁파가 연관되었기 때문에 이방간 쪽 입장에서는 더 난처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정종, 태조의 호응뿐만 아니라 불만 공신들의 호응까지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쪽까지 편을 안 들어주니... 다만 공신들은 오히려 이걸 빌미로 사병을 유지할 이유로 들먹이려고 준비하는 것도 있었기에 세력 면에서 비교로 결정한 듯 하다[4] 이 역할을 맡은 조영무와 이천우의 병력은 말 그대로 녹아내렸다. 둘의 대사를 보면 사병의 절반 이상이 소모되었다. 희생이 컸던 만큼 두 사람은 방원의 사병혁파때 엄청난 배신감을 내비친다. 제일 사병이 많은 이거이는 방원과의 불편해진 관계 때문에 막판에야 합류했다.[5] 이는 이방간쪽이 의도한 바와는 다른 예상 외의 사태였다. 다른 측근들은 몰라도 가장 대놓고 대립하던 이거이만큼은 합류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6] 방간은 형들에게도 불만을 자주 터뜨리지만 아무래도 형들이기에 한계가 있지만 방원이는 동생이기에 훨씬 딴지 걸기가 편하기도 했을 것이다.[7] 사료에서 맹종은 대담하게 당시 정안공이던 태종의 집을 염탐했다고 한다. 여차하면 민씨를 비롯한 태종의 자녀들을 납치할 수도 있었는데, 이게 빌미가 됐는지 훗날 세종대왕은 맹종에게 스스로 죽을 것을 명했다. 그나마 회안대군 이방간을 부관참시하라는 상소를 무시하고, 맹종의 유족들을 챙겨줬다.[8] 이방원 측도 이 사실을 알고 있어 이방의를 막기 위해 이화를 매복시켜 대비했다.[9] 귀양이긴 하지만 방원이 노비와 전답도 내려, 사는데 부족함이 없게 배려해준다. 이런 조치에 이방간은 그 동안 방원에게 으르렁거리던 것과는 다르게 방원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방원도 건강 잘 챙기라며 훈훈하게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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