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9 12:30:33

존 딜린저

파일:E8379242-641F-4E16-9EC4-4DDE7A61F63B.png 스미스소니언 선정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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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국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 교육재단 스미스소니언 재단의 잡지,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이 “미국사 가장 중요한 100인의 인물”을 선정했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뽑았기 때문에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도 많고 부정적인 인물들도 있다.
<colbgcolor=#000047><colcolor=#FFC224> 개척자들 <colbgcolor=#FFF,#000>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헨리 허드슨 | 아메리고 베스푸치 | 존 스미스 | 조반니 다 베라차노 | 존 뮤어 | 메리웨더 루이스 | 사카자위아 | 키트 카슨 | 존 웨슬리 파월 | 닐 암스트롱
혁명가 & 저항가들 마틴 루터 킹 | 로버트 E. 리 | 토머스 페인 | 존 브라운 | 프레드릭 더글러스 | 수전 B. 앤서니 | W. E. B. 듀보이스 | 테쿰세 | 타탕카 이요탕카 |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 | 말콤 엑스
대통령들 조지 워싱턴 | 토머스 제퍼슨 | 율리시스 S. 그랜트 | 우드로 윌슨 | 에이브러햄 링컨 | 제임스 매디슨 | 앤드루 잭슨 | 시어도어 루스벨트 | 프랭클린 D. 루스벨트 | 로널드 레이건 | 조지 W. 부시
첫 여성들 포카혼타스 | 엘리너 루스벨트 | 힐러리 클린턴 | 마사 워싱턴 | 오프라 윈프리 | 헬렌 켈러 | 소저너 트루스 | 제인 애덤스 | 이디스 워튼 | 베티 데이비스 | 세라 페일린
범법자들 베네딕트 아놀드 | 제시 제임스 | 존 윌크스 부스 | 알 카포네 | 빌리 더 키드 | 윌리엄 M. 트위드 | 찰스 맨슨 | 와일드 빌 히콕 | 리 하비 오즈월드 | 러키 루치아노 | 존 딜린저
예술가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 앤디 워홀 |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 |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 잭슨 폴록 | 존 제임스 오듀본 | 조지아 오키프 | 토머스 에이킨스 | 토머스 내스트 | 앨프리드 스티글리츠 | 앤설 애덤스
종교인들 조셉 스미스 | 윌리엄 펜 | 브리검 영 | 로저 윌리엄스 | 앤 허치슨 | 조너선 에드워즈 | 라파예트 로널드 허버드 | 엘런 화이트 | 코튼 매더 | 매리 베이커 에디 | 빌리 그레이엄
팝 아이콘들 마크 트웨인 | 엘비스 프레슬리 | 마돈나 | 밥 딜런 | 마이클 잭슨 | 찰리 채플린 | 지미 헨드릭스 | 마릴린 먼로 | 프랭크 시나트라 | 루이 암스트롱 | 메리 픽포드
제국-건설자들 앤드루 카네기 | 헨리 포드 | 존 D. 록펠러 | J. P. 모건 | 월트 디즈니 | 토머스 에디슨 |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 하워드 휴즈 | 빌 게이츠 |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 스티브 잡스
운동선수들 베이브 루스 | 무하마드 알리 | 재키 로빈슨 | 제임스 네이스미스 | 아널드 슈워제네거 | 타이 콥 | 마이클 조던 | 헐크 호건 | 짐 도프 | 세크리테리엇 | 빌리 진 킹
출처 }}}}}}}}}
<colbgcolor=#000><colcolor=#fff> 존 딜린저
John Dillinger
파일:존 딜린저 머그샷.jpg
본명 존 허버트 딜린저
John Herbert Dillinger
출생 1898년 6월 22일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
사망 1934년 7월 22일 (향년 36세)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사인 총상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직업 은행강도, 조직폭력배
죄목 은행강도, 모살, 폭행, 경관폭행, 차랑절도
배우자 베럴 호비어스 (1924년 ~ 1929년, 이혼)
이블린 프러쉣 (1933년 ~ 1934년)
서명 파일:John_Dillinger_signature.svg

1. 개요2. 인생
2.1. 유년2.2. 군입대와 체포2.3. 분노와 탈옥2.4. 두번째 탈옥2.5. 깡패 생활
3. 죽음4. 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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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public enemies gang.jpg[1]

미국의 갱스터.

무려 34개의 은행을 털었으며 4개의 경찰서를 공격했다. 대담한 방식으로 조직범죄를 저지르면서 언론에 대서특필되었고 미국의 로빈 후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수많은 살인을 저질렀지만 살인으로 기소된 것은 겨우 한 번에 불과했다. 이러한 행각에 공공의 적 1호로 지정되기도 했는데, 딜린저가 사망한 직후 1930년대 미국 전역에서 유사한 범죄가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주었기에 딜린저가 사망한 날을 Dillinger's Day라고 부른다. 당시 미국 정부는 그를 필두로 이루어진 조직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BOI(검찰국)를 FBI(연방 수사국)로 개편했다.

2. 인생

2.1. 유년

1898년 미국의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랑스계 미국인이었으며 어머니는 독일계였다. 아버지는 식료품점을 했고 집은 가난했다. 아버지는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라는 신념을 가진 사람으로 굉장히 거친 인간이었다. 친엄마는 그가 4살일 때 죽었으며 새엄마가 들어왔는데 그는 처음엔 새엄마를 싫어했지만 곧 그녀를 받아들였다.

10대 때 그는 동년배들과 자주 싸웠으며 좀도둑질을 했고 갈피를 잡기 어려운 성격을 갖고 있었으며 자기보다 작은 아이들을 괴롭혔다. 기계공이 되기 위해 학교를 그만뒀으며 아버지는 도시가 그를 위험하게 만든다고 생각해 당시 깡촌이던 인디애나주 무어스빌(Mooresville)로 이주했지만 그의 반항적인 성격은 고쳐지지 않았고 차량 절도로 검거됐다.

2.2. 군입대와 체포

그는 절도로 인해 감옥으로 가는 대신 미합중국 해군수병으로 입대했는데 기초훈련과 함정 생활을 하며 군생활에 회의를 느꼈고 명령불복종으로 몇 차례 징계를 받기도 하고 탈영도 했다. 1918년에는 근무 중인 전함에서 탈영해 2주 이상 복귀하지 않아 불명예 전역을 당했다. 군생활과 탈영으로 인한 독방 생활은 그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주었다. 1924년 모즈빌로 돌아온 그는 베리 호이어스라는 여자와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던 그는 에드 싱글턴(Ed Singleton)이라는 남자와 식료품점에서 권총을 갖고 50달러를 강탈했다. 이들은 천장을 향해 발포했지만 사람을 쏘진 않았고 너트로 사람의 머리를 때린 뒤 달아났다. 이내 이들의 얼굴을 본 점원이 경찰에 신고했다. 둘은 체포되었고 싱글턴은 무죄를 주장했지만 그의 아버지는 지역검사와 상의한 뒤 딜린저에게 유죄를 시인하라고 했다.

그는 아버지의 말을 따랐지만 무죄를 주장한 싱글턴은 2년형을 선고받았고 유죄를 시인한 그는 1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완력을 사용해 구속으로부터 잠시 이탈하면서까지 형의 삭감을 간청했지만 판사에 의해 기각되었다.

2.3. 분노와 탈옥

인디애나 교도소에 수감된 후 그는 미국 사회와 세상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가지게 되었으며 "나는 여기서 나가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녀석이 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당시 인디애나 교도소에는 소위 한국으로 말하자면 전국구급 은행강도들이 많았고 그는 그들과 인맥을 쌓으면서 살인기술, 강도, 인질처리방법, 경찰과의 교전법을 배워나갔으며 범죄를 계획했다.

한편 그의 아버지는 상당한 죄책감을 느꼈고 그의 석방운동을 하면서 178명의 서명을 받았다. 그는 9년 8개월만에 가석방되었는데 가석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엄마는 사망했고 얼마 안 되어 그는 바로 오하이오주에 있는 은행을 털었다가 9월 22일 체포되었다. 그는 재판에 앞서 오하이오주 라이머(Lima)에 있는 유치장으로 보내졌는데 강도 동료들은 유치장을 지키던 보안관에게 가석방 기간 중 범죄를 저지른 그를 인계받기 위해 오하이오주립 교도소에서 왔다고 속인 다음 문을 열어준 보안관을 쏴죽인 뒤 탈옥했으며 자신들을 딜린저 갱(Dillinger Gang)이라고 불렀다.

이후 딜린저 갱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는데 인디애나주의 경찰서 세 곳에서 강도질을 벌여 권총, 소총, 자동화기, 탄약, 방탄조끼를 빼앗았다. 12월 14일에는 딜린저 갱 단원인 존 해밀턴(John Hamilton, 1899 ~ 1934)[2]시카고에서 형사 한 명을 살해하였다. 1934년 1월에는 인디애나주 이스트시카고의 퍼스트 내셔널 뱅크(First National Bank)[3]를 터는 등 인디애나 주, 일리노이주, 위스콘신주에서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애리조나투손에서 묵었던 호텔에 화재가 발생하는 바람에 피어폰트, 클라크, 메이클리와 함께 경찰에게 붙잡혔다.

2.4. 두번째 탈옥

그는 인디애나 주 크라운 포인트의 교도소에 수감되어 이스트시카고에서 벌인 은행강도 도중 경찰관을 살해한 죄에 대한 재판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나무를[4] 깎아 만든 권총 모형으로 교도관을 위협해 감방에 가둔 다음 자동화기를 가지고 탈출했다.[5] 이후에는 교도관의 차를 훔쳐타고 일리노이 주 시카고까지 도망쳤다. 이로 인해 훔친 차량을 다른 주로 밀수했다는 혐의가 추가로 붙으면서 FBI가 그를 쫓기 시작한다. 한편 함께 붙잡힌 동료 세 명은 그의 탈옥을 도와주면서 보안관을 살해한 일로 재판을 받았는데 재판 결과 피어폰트와 메이클리는 사형을, 클라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클라크와 메이클리는 탈옥을 시도했으나 메이클리는 탈옥 시도 중 사살되었고 피어폰트는 부상을 입은 채로 붙잡혀 한 달 후 전기의자에서 생을 마쳤다.

탈출에 성공한 그는 애인인 메리 이블린 프러셰트(Mary Evelyn Frechette, 1907 ~ 1969)과 합류해 같은 주의 도시인 세인트폴로 가서 호머 밴 미터(Homer Van Meter, 1905 ~ 1934), 레스터 길리스(Lester Gillis, 1908 ~ 1934)[6], 해롤드 유진 "에디" 그린(Harold Eugene "Eddie" Green, 1898 ~ 1934)[7], 토미 레너드 캐롤(Tommy Leonard Carroll, 1900 ~ 1934)과 함께 새로운 갱단을 만들어 다시 은행을 털기 시작했다.

2.5. 깡패 생활

1934년 3월 30일, 세인트폴의 링컨 코트 아파트 관리인이 자신의 아파트에 거주하던 헬먼 부부를 수상하다고 신고했는데 이유는 헬먼 부부가 수상하게 행동하며 관리인을 집 안으로 들이기 거부했다는 것이었다. 헬먼 부부의 정체는 딜린저와 프러셰트였다. 다음날 FBI가 경찰을 대동하고 아파트에 나타났는데, 프러셰트가 문을 열고 이들을 확인하자마자 문을 닫고 저항하기 시작했다. 즉시 경찰 인력이 추가로 투입되어 링컨 코트 아파트를 포위했지만 밴 미터가 나타나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딜린저와 프러셰트가 뒷문으로 탈출해 그린의 은신처로 도망쳤다. 하지만 그린 역시 4월 3일 역시 FBI의 습격을 받아 저항하려다 만 36세의 나이로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딜린저와 프러셰트는 다시 무어스빌로 도망갔다. 딜린저는 링컨 코트 아파트 탈출 당시 입었던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한동안 무어스빌에 머물렀지만 이 과정에 프러셰트는 친구를 만나러 시카고에 갔다가 FBI에게 체포당했으며, 범인 은닉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한편 완치된 딜린저는 밴 미터와 함께 인디애나주 워소의 경찰서를 털어 총과 방탄조끼를 습득했다.

같은 달 22일 리틀 보헤미아(Little Bohemia)라는 산장에서 수상한 사람들이 호텔에 묵고 있다며 FBI에 신고했다. 이 수상한 사람들은 휴가를 즐기러 온 딜린저 갱단원들이었고, FBI와 경찰이 리틀 보헤미아 산장을 습격했지만 인명 피해만 내고 딜린저 갱을 놓쳤다. 다만 일당 중 토미 캐럴은 따로 행동하다가 6월 7일에 경찰에게 포위당한 상태에서 "The hell I am!"이라고 소리치며 총을 뽑아 저항하려 했으나 만 33세의 나이로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딜린저는 며칠 뒤 신원을 감추기 위해 피부를 당겨 인상을 바꾸는 성형 수술을 받고 가성소다를 이용해 손끝을 지져 지문을 지웠다.

7월 21일, 애나 세이지(Anna Sage)라고 자칭하는 여성이 경찰에 접촉했다. 이 사람은 인디애나주 게리에서 포주 일을 하던 아나 쿰파나쉬(Ana Cumpănaș, 1889 ~ 1947)였다. 이민귀화국은 아나 쿰파나쉬를 루마니아로 추방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이에 위기감을 느낀 쿰파나쉬가 보상금과 영주권을 조건으로 존 딜린저에 대한 정보를 주겠다고 경찰에 접촉한 것이다. FBI는 보상금은 약속할 수 있지만 국외추방에 관한 것은 노동부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쿰파나쉬는 이를 받아들였다.

3. 죽음

쿰파나쉬는 자신의 친구인 매춘부 폴리 해밀턴(Polly Hamilton)이 딜린저의 애인이라고 밝혔다. 이 무렵 딜린저와 그 무리들은 쿰파나쉬가 운영하던 사창가의 단골이 되어 있었는데 쿰파나쉬와도 자연스레 어울리면서 정체를 들켰다. 쿰파나쉬는 딜린저가 해밀턴과 함께 시카고에서 영화를 보러 갈 예정이라고 밀고하며 자기 집 근처의 바이오그래프 극장[8]이나 마브로 극장[9] 둘 중 한 곳에 갈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쿰파나쉬는 둘을 미행할 때 주황색 드레스를 입었지만 극장 조명 속에서 쿰파나쉬의 드레스는 목격자들에게 붉은색으로 보여 Woman in Red(빨간 옷을 입은 여성)라는 별명이 생겼다.

7월 22일 오후 딜린저, 해밀턴, 그리고 쿰파나쉬는 갱스터 영화인 <맨하탄 멜로드라마>를 보러 길을 나섰다. 딜린저는 이 영화의 주연인 머나 로이의 팬이었다. 이들이 어떤 극장에 들어갈지 아직도 몰랐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FBI와 경찰은 두 극장 모두 경찰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FBI 요원들은 세 명이 바이오그래프 극장으로 들어가는 걸 목격하지만 사람들이 몰린 극장에서 딜린저가 저항할 위험을 피해 대기했다.

밤 10시 30분 영화를 본 딜린저는 두 여자를 데리고 극장 밖으로 나섰다. 극장 문 앞에 서 있던 멜빈 호러스 퍼비스(Melvin Horace Purvis, 1903 ~ 1960) 특별 수사관이 시가에 불을 붙이는 것을 신호로 FBI 요원들과 경찰들이 딜린저에게 접근했다. 위기에 처했다는 걸 깨달은 딜린저는 바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들고 골목길로 도망갔지만 그곳에는 FBI 요원들이 매복해 있었다. 세 발의 총알을 몸에 맞은 딜린저는 그대로 쓰러졌다. 20분 후 "공공의 적" 존 딜린저가 알렉시안 브라더스 병원(Alexian Brothers Hospital)에서 사망했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딜린저에게 발포한 세 명의 FBI 요원인 찰스 배첼 윈스테드(Charles Batsell Winstead, 1891 ~ 1973), 클래런스 O. 허트, 허먼 에드워드 할리스(Herman Edward Hollis, 1903 ~ 1934)는 용기 있는 행동을 한 공로로 존 에드거 후버 FBI 국장에게 칭찬받았다. 이들 중 누군가가 딜린저에게 치명타를 입혔는지는 알 수 없었다. 27명의 사람들이 존 딜린저를 은닉하거나 지원하고 범죄를 사주한 혐의로 연방 법원에 서게 되었다. 아나 쿰파나쉬는 공로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로 추방당했다.[10] 딜린저의 시체는 인디애나폴리스의 크라운 힐 공동묘지에 매장됐다.

마지막으로 남은 넬슨은 넉 달이 넘도록 도망다녔지만 결국 1934년 11월 27일 만 36번째 생일을 열흘 남겨 두고 경찰에게 사살당해 딜린저 갱단 모두가 총에 맞아 죽었다.

4. 매체

  • 그의 인생을 다룬 1973년 작 딜린저가 있다. 딜린저 역은 워렌 오츠이며 조연들로 벤 존슨, 해리 딘 스탠튼, 리처드 드레이퓨스 등이 출연했다. 존 밀리어스가 감독과 각본을 맡았는데 그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다. 한국에서 미개봉작이며 1986년에 '데린져'라는 제목으로 출시했다. 영화는 상당한 호평을 받았지만 비디오로 보면 자막을 대충 번역 처리했다...
  • 1991년 TV 영화 <딜린저>도 있는데 마크 하먼이 딜린저를 맡았다. 1991년에 SKC에서 낸 비디오 제목은 전설의 대도 딜린저.
  • 박준형의 칼쳐맨에서 in 캘리포니아 시즌 1 Part.8의 히스패닉 로우라이더 편 말미에 그의 이름이 한 어르신의 차량 내에 있는 그림액자에서 살짝 언급되었다. 영상의 16분
  • 밴드 딜린저 이스케이프 플랜의 이름은 바로 이 인물에게서 따 온 것이다. 번역하면 '딜린저의 탈옥 작전'. 죄질이야 존 딜린저 쪽이 압도적으로 더 무겁긴 하지만 한국으로 치면 밴드 이름을 '신창원의 탈옥 작전'이라고 지은 셈이다.

[1] 해당 수배자들은 모두 유명하다 보니 영화나 온갖 매체로 만들어졌다. 맨 왼쪽부터 알 카포네, "벅시" 벤자민 시겔 1906~1947), "프리티 보이" 찰스 아서 플로이드 (1904~1934), 윗쪽 맨 오른쪽이 프랭크 코스텔로. 아래 맨 왼쪽은 Machine Gun Kelly가 그대로 그 별명을 따라 쓴 조지 프랜시스 반즈 주니어(George Francis Barnes Jr. 1895~1954. 7월 18일 생일에 심장마비로 죽어 딱 59년 살았다.) 다음이 존 딜린저, 그 옆은 딜린저 갱의 동료였던 레스터 조셉 길리스(Lester Joseph Gillis, 1908~1934), 아래 맨 오른쪽은 러키 루치아노다.[2] 캐나다 출신. 은행을 털던 중 치명적인 총상으로 사망해 딜린저가 비밀리에 매장했다고 한다.[3] 2022년 12월 기준으로는 웰스파고의 자회사로 합병되었다.[4] 혹은 비누를 이용했다고도 한다.[5] 한 과학 지식 만화에서는 이를 각색해 화학 지식에 해박한 딜린저가 감자를 깎아 권총 모형을 만든 뒤 화학 반응을 이용해 요오드 용액을 뿌려 흑철색으로 바꿨다고 나온다. 이후 교도관을 위협하고 탈옥하는 것은 동일하다.[6] 조지 넬슨, "베이비페이스 넬슨"이란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7] 당시 신문에서는 "에디 그린"으로 표기되었다.[8] Biograph[9] Marbro[10] 추방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야사에 따르면 사창가 포주란 점이 나중에 불륜 등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가능성이 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