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련 문서
선정 위대한 캐나다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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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토미 더글라스 | 테리 폭스 | 피에르 트뤼도 | 프레더릭 벤팅 | 데이비드 스즈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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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 쿰스 | 테쿰세 | 마리오 르미외 | 브렛 하트 | 에이브릴 라빈 | |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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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레너드 코헨 | 존 디펜베이커 | 빌리 비숍 |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 | 릭 머서 | |
출처 | |||||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테쿰세 Tecumseh | |
출생 | 1768년 3월경 (추정) |
미국 오하이오 주 칠리코시 (추정) | |
사망 | 1813년 10월 5일 (향년 45세?) |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어퍼캐나다 주 모라비안타운 | |
소속 | 쇼니 족 |
친족 | 치즈카우 (1760 무렵 ~ 1792) 텐스콰타와 (1775 ~ 1836)[1] |
그는 인류 역사 속에서 가끔씩 나타나 혁명을 일으키고 기존 질서를 뒤흔들어 놓는 그런 드문 천재들 중 한 사람이었다.
- 미합중국 9대 대통령 윌리엄 해리슨
- 미합중국 9대 대통령 윌리엄 해리슨
쇼니(Shawnee)족 출신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추장 중 한 사람. 이름인 테쿰세는 '먹이를 움켜쥔 퓨마'란 뜻과 '별똥별'이라는 뜻이라는 설이 있다. 위의 사진의 붉은 옷은 영국군 장군 제복이다. 계급은 소장.
그의 아버지는 푸케신와라는 사람으로 역시 백인들과 치열하게 맞서 싸운 전사였는데 죽으면서 장남인 치수아카와 테쿰세에게 죽을 때까지 백인들과 타협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한다. 이미 전사이자 교사였던 치수아카는 아버지가 죽을 때 고작 7살이었던 테쿰세를 교육했고 그의 어머니인 메토아타스케(알 낳는 거북)가 미주리로 옮겨간 다음부터 부모의 역할을 대신 해 주었다고 한다. 용감한 전사였던 형의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테쿰세는 첫번째 전투에서 겁에 질려 달아나 버렸지만 그것을 일생의 수치로 여기고 다시는 적앞에서 물러서는 일이 없었다. 이후 여러 전투에서 명성을 떨치고 웅변으로 인기를 얻은 테쿰세는 유명한 지도자가 되었는데 크리크족, 체로키족 등을 규합하여 여러 차례 백인 침략자들을 격퇴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동생[2] '예언자'와 함께 인디애나 주에 '예언자의 마을'이란 마을을 건설하여 주민들에게 금주(禁酒)와 전통 부족 농사의 규율을 가르쳤다. 그 다음에 그는 전사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고 한다.
"포로로 잡은 얼굴 흰 사람들을 고문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자신을 다스릴 줄도 모르는 야생 동물이나 다름없는 그런 사람들인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들의 땅을 위해 싸우는 자랑스러운 사람들이다! 그러니 남자답게 싸우자! 우리를 죽이고 땅을 빼앗으러 오는 이 얼굴 흰 사람들을 물리치자! 하지만 나는 그대들에게 말한다. 포로로 잡힌 사람들을 고문하지 말라!"
하지만 미국 정부는 테쿰세가 포로들을 고문하거나 말거나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그가 잠시 마을을 떠난 틈을 놓치지 않고 '예언자의 마을'을 공격해서 초토화시켰다. 일설에 따르면 테쿰세의 동생인 예언자가 욕심을 품고 무리하게 백인을 공격하여 미국을 도발하였다고도 한다. 어쨌거나 기껏 가꾼 기반을 모두 잃은 테쿰세는 생존자들을 모아놓고 눈물을 흘리며 연설했다.
"내 어머니의 나라를 지키려는 나의 사명은 실패로 끝이 났다. 물이 단단한 얼음으로 바뀌고 비가 흰 솜이 되어 구름에서 내려 시야를 가리는 이곳으로 다른 인디언 부족들을 데려오지 못했다. 이곳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나는 눈을 감고 있어야만 했다. 이 아름다운 대지가 머지않아 얼굴 흰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힐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 차마 풍경들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나는 햇빛 비치는 남쪽 지방에서 눈과 얼음이 있는 북쪽 지대로 올라오고 있었다. 내 마을의 천막 위에도 깊은 눈이 쌓였겠지만 그 안에서 타오르고 있을 모닥불을 떠올렸다. 그 따뜻한 불을 상상하면서 긴 여행의 추운 밤을 이겨낼 수 있었다. 배가 고파도 마을에 가면 옥수수가 많다는 것을 생각하고 배고픔을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폐허로 변한 내 집의 잿더미 위에 서 있다. 위대한 정령에게 성스런 모닥불을 피워 올리던 내 천막이 서 있던 이곳에. 몰려드는 침입자들로부터 자신의 집과 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숨져 간 전사들의 영혼을 부르면서, 대지를 적신 그들의 선혈을 보면서 나는 맹세한다. 반드시 복수하리라고!"
하지만 나는 지금 폐허로 변한 내 집의 잿더미 위에 서 있다. 위대한 정령에게 성스런 모닥불을 피워 올리던 내 천막이 서 있던 이곳에. 몰려드는 침입자들로부터 자신의 집과 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숨져 간 전사들의 영혼을 부르면서, 대지를 적신 그들의 선혈을 보면서 나는 맹세한다. 반드시 복수하리라고!"
테쿰세는 미국 건국 초기부터 영토 확장과 개척을 목적으로 서쪽으로 점점 잠식해 들어오는 미국 정부에 반대하여 "땅은 모든 부족의 공동 소유이며, 어느 특정 부족으로부터 땅을 사들이거나 뺏을 수는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이를 널리 알리고 공감을 얻을 목적으로 미국 남부와 서부를 오가는 한편 캐나다에도 서너 차례 왕래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모든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연합하여 인디언 합중국을 건설하여 미국에 대항할 것을 촉구했는데 이 때문에 미국 전체의 공포와 분노를 사는 몸이 되었다.
1811년 봄에 테쿰세는 남부 지역 부족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어 백인들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을 만들 것을 촉구했으나 백인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촉토족 추장 '푸슈마하타'[3]의 영향력과 반박 연설로 좌초되었다. 1812년에 미국에 대항하여 봉기하였고 이를 위해 캐나다로 넘어가 당시 캐나다를 지배하던 영국인들의 지원을 받으며 싸우다가 1813년 10월 5일에 온타리오 주 채텀 근처의 '템스 강 전투'에서 전사했다.
'테쿰세의 저주'라는 도시전설로도 알려져 있다. 미국 대통령 중 첫 사망자가 공교롭게도 그와 평생을 싸운 해리슨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당대에는 미국의 적이었지만 현대에는 미국, 캐나다 모두 자국민으로 간주하며 미국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자결권을 지키려 노력한 운동가로, 캐나다에서는 미국의 확장 야욕에 맞서 캐나다를 수호한 애국자로 각각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의 적이자 그를 죽인 장본인인 윌리엄 해리슨은 그를 천년에 한번쯤 나타나 혁명을 일으키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평했다.
1. 관련 문서
- 윌리엄 테쿰세 셔먼: 윌리엄의 친부인 찰스 로버트 셔먼은 아들의 이름을 지어 줄 때 테쿰세처럼 강인한 사람이 되길 기원하며 이름에 테쿰세를 넣었다고 한다. 정작 윌리엄 셔먼 본인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던 데다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더 심한 차별을 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런데 본인은 정작 토벌한 원주민의 정착을 도왔고, 해방 된 노예에게 땅과 가축을 주는 법을 찬성하는 등 굉장히 모순적인 인간이었다.[4]
- 윌리엄 헨리 해리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