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0 16:32:15

창공으로

창공으로 (2006)
Blue Sky
파일:attachment/창공으로/bluesky.jpg
감독 이인수
출연 정준, 김보경, 김정학
장르 드라마
개봉일 2006년 4월 21일
누적관객 25명
상영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1. 개요2. 상세3. 시놉시스4. 무엇이 문제인가?5. 평가6. 기타

[clearfix]

1. 개요

2006년 개봉한 이인수 각본, 기획, 감독의 항일투사 3부작 중 2번째 작품.

2. 상세

이인수 감독은 KBS에서 여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낸 PD 출신으로, 항일투사 3부작 기획 중 60억을 투자한 안재모 주역의 《한길수》를 2005년 개봉하였지만 흥행에서 아주 상큼하게 망한 뒤(전국관객 2,534명), 1여 년의 준비와 9억 5,500만 원이라는 제작비를 투입하여 한인 조종 비행사들에 관한 영화를 만들었다. 당초 이인수 감독은 이를 3·1절에 맞춰 개봉할 작정이었지만, 여타 사정으로 4월 21일로 개봉일자가 밀렸다.

그리고 이 영화는 《따라지: 비열한 거리》가 개봉하기 전까지 '역대 최소 유료관객 동원'이라는 전설을 만들어 낸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 결과 최종 관객 25명, 총 매출액 16만 6,500원. 비록 상영관은 2개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무려 6일을 버텼는데도 저렇다.[1] 감독의 전작인 《한길수》조차도 상술하듯이 전국 2,500명이 넘었다. 돈을 이렇게 들였는데 수익은 당시 기준으로 고작 보조출연자의 3일치 급여에 불과했다.

이게 어느 정도의 수치냐면, 이 영화의 제작진이 모두 합쳐서 40명이다. 아무리 망한 영화나 예술영화라 해도 관객이 세 자리는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좀 심각한 수치. 제작진보다 관객수가 적은 영화라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기록인 것이다. 물론 전혀 알려지지 않는 영화도 있지만, 이 영화는 역대 최저 관객 동원이라는 짤방을 통해 컬트적인 인기를 끌어서 알려졌다. 평점은 포탈사이트 등지에서 고득점을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클레멘타인식 낚시이므로 혹여나 낚이지 말 것.

여담으로 UBD/UBD²의 수치가 약 0.079183 이다.

3. 시놉시스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 이곳에 세계 최초의 전투비행학교 '윌로우스 한인 전투비행학교'가 세워진다. 조국을 잃고 세계 각국에 흩어져 독립운동을 하던 조선의 민족 지도자들은 당대 미국에서 최고의 부를 누리며 '쌀의 왕'으로 군림하던 김종림 선생의 도움을 얻어 전투비행학교를 설립한다. 이들의 목표는 일본 천황궁의 폭파.

윌로우스에는 조국을 배신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안고 윌로우스를 찾은 김자중, 한국 최초의 비행사로 조국을 위해 전투 비행사가 되기로 결심한 한장호, 중국인 여자친구의 도움으로 비행사의 길을 선택한 임현, 미국에서 자라 모국어조차 서툴지만 조국의 하늘을 지키고 싶다는 이초, 한국에 부모와 처자식을 남기고 온 이용근과 박희중, 한국에 대한 애증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인물 강석진 등, 한인 최초의 전투 비행사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비행기는 쉽게 구할 수 없었고, 이들은 할 수 없이 체력 훈련과 이론 수업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어렵게 쌍발 복엽기 1대를 구하였고, 윌로우스에는 이 비행기를 '조선 1호'라는 이름을 붙여 일본 천황궁 폭격을 위한 본격적인 비행 훈련을 개시하게 된다.

그러나 윌로우스에는 일본의 스파이가 잠입해있었고, 이 스파이의 공작 때문에 김자중을 비롯한 한인 조종사 후보생들은 분열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던 중 일본의 스파이는 밤 중에 인근의 댐의 수문을 열어서 윌로우스에 수공을 감행, 더 이상 비행학교를 쓸 수 없게 만든다.

할 수 없이 1922년 김자중과 한장호, 임현은 중국으로 건너가 중화민국 제52항공단에 입대하게 되고, 다른 조종사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비행교관이 되는 길을 택한다. 이 중 김자중 만이 어렵게 공중전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고, 김자중은 천황궁 폭격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중국인 전방석 조종사인 왕대위에게 프래깅을 감행한다. 설득당한 왕대위와 함께 김자중은 일본 영공으로 날아가지만, 달려드는 일본 전투기들에게 격추당해 장렬하게 순국한다.

4. 무엇이 문제인가?


외국인 배우들의 발연기가 돋보이는 장면. 역시 외국인 배우들이 발연기를 하기로 유명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가 제대로 만든 미드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게다가 CG는 1990년대 말 게임에서나 볼 법한 FMV 수준인데, 다시 말하지만 이건 2006년에 개봉한 영화다. 참고로 같은 년도에 한국에서는 수준급의 CG를 자랑하는 영화가 개봉했다.

이 영화의 문제점은 그냥 한 마디로 요약해서 총체적 난국이라고 밖에 표현이 불가능하다.
  • 예산을 도대체 어디다 썼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조악한 세트와 어색한 배우의 연기. 특히 외국인을 동원한 신을 보면 마치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에피소드를 90분짜리 영화로 만들었다고 느끼게 만든다. 김치워리어
  • 감독의 연출력 부족. 거의 모든 신이 인과관계를 생략하고 후딱후딱 넘어가며, 갈등 구조는 1분을 넘기지 못한다. 심지어 이건 전작인 《한길수》에서도 지적된 문제다. 게다가 작중 인물들의 대사와 연출로 처리해야 할 상황 설명을 무미건조한 나레이션으로 때워서 이것이 영화인지 다큐멘터리인지 구분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사실 배우만 보면 썩 나쁜 캐스팅이라고 보기도 어려운데, 발연기를 한다는 것은 감독의 연기 지도가 문제라는 뜻이다.
  • 엉망이다 못해 개판 5분전인 고증. 황거 폭격이라는 목적 때문에 중국에서 복엽기 1대로 일본까지 날아간다는 괴악한 발상을 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실제 윌로우즈 비행학교에 관한 사실 관계도 전혀 맞지 않는다.[2] 각색이라고 보기에도 영 개운치 않다. 시대상의 복식 고증 등도 엉망인데, 위 영상의 배경에 앉아있는 미국인 여직원의 패션을 보자. 작중 배경은 1920년대다.
  • 위의 영상에서도 느껴지는 캠코더로 찍은 수준의 화질과 음질.
  • 뱅크샷 투성이에다 1990년대 말 게임 수준의 발 CG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감독의 역량 부족으로 순국선열에 대한 고인모독급 영화가 되어버렸다. 일부 감상자들은 차라리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평할 정도. 실제로 감독이 다큐멘터리 PD 출신이니 아예 논픽션으로 갔으면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감독 본인은 저예산 영화의 한계라는 식으로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미 60억 급의 《한길수》를 망친 시점에서 변명이 되지 않으며, 10억 원도 결코 적은 제작비는 아니다. 오히려 몇몇 블록버스터를 제외하고서는 평균에 가까운 수치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 기준으로 저예산 영화는 8억 원 미만의 제작비를 사용한 영화를 말한다. 게다가 이 영화는 독립영화도 아니라 상업영화다.

5. 평가

제작비 창공으로
seo7**** ★★☆[3]

연출, 연기, 스토리, 영상미, OST 무엇 하나 봐줄만 한게 없다. 같은 해에 개봉한 영화 괴물을 생각해보면 얼마나 괴작인지 새삼 느낄 수 있다.

6. 기타

실제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1920년 7월 7일 노백린과 한인 쌀 부호 김종림을 중심으로 세워졌으며, 임시정부는 이 학교를 시발점으로 제2, 제3의 비행학교를 세워 한인 조종사를 양성할 계획이었다. 윌로우스 비행학교는 3대의 커티스 JN 제니 훈련기를 보유하였으며 안창호흥사단, 북미한국국민총회 등의 지원을 받았지만 1920년 11월 대홍수로 흉년을 맞게 되고,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 여파로 쌀값이 폭락하여 사실상 유일한 후원자였던 김종림이 막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게다가 노백린은 상하이 임시정부로 돌아가게 되고, 1921년 4월에는 비행기 추락사고까지 겪으면서 결국 폐쇄된다.

그래도 이 학교를 졸업한 박희성, 이용근은 1921년 7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육군 항공대 소위로 임명받아 비행교관으로 활동하고, 이초의 경우 OSS의 한국 진공작전에 참여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임시정부부터 내려오는 한국 공군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학교이며, 실제로 공군사관학교의 개교일을 1920년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사항은 KBS에서 2003년 광복절 특집으로 방영한 다큐멘터리 '도쿄 공습 프로젝트 - 윌로우스 비행학교'를 참조하는 게 이 영화를 보는 것보다 백 배 천 배 나을 것이다.

덤으로 이인수 감독의 항일투사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은 결국 엎어진 듯. 이 영화 역시 '독립운동 기념 영화제'와 같이 국정홍보처에서 간혹 상영하는 정도로 명맥을 잇고 있는 모양이다. 아예 누가 틀어줄 기회도 못 얻는 망작도 많으니 이 정도도 복 받은 거다. DVD도 발매했지만 DVD를 재생하면 타이틀이나 다른 서플먼트 없이 바로 영화가 시작되는 것이 괴작이라면 또 괴작이다.

항일비행단을 영화의 소재로 삼았다는 점과 엉망인 고증, 무엇보다 쫄딱 망했다는 점에서 영화 청연과 비슷한 느낌이다.[4] 다만 이쪽은 10억짜리 영화고 청연은 120억이라는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는 차이가 있다. 관객수는 당연히(?) 비교할 바가 못된다.

윌로우스 비행학교라는 공군 역사상 중요한 마일스톤이 언급되었는데도, 퀄리티 때문인지 공군기본군사훈련단에서도 이 영화는 절대로 공군사 시간에 정훈교육용으로 틀어주지 않는다.존재자체도 잘 모를 가능성이 높다 사기폭망 대신에 공군 자체 아카이브에 있는 기록영화를 쓴다.

총 관객수는 0.000147UBD이다. '역대 최저 관객 동원 영화'로 알려져 있기는 하나, 극장 개봉 없이 비디오나 IPTV로 직행하는 수많은 영화들이 한 자릿수의 관객을 동원하는 것을 생각하면 엄밀히 말해 최저는 아니다. 그나마 극장 개봉용으로 영화의 구색을 갖춘 작품들 중에서는 최저라고 할 수 있으나, 따라지: 비열한 거리(11명)[5]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조상구 주연의 《애비》(6명)가 나오면서 다시 깨졌다.

물론 저 영화들과 더불어 출연 배우 숫자보다 더 적은 관객 동원 영화라는 치욕스러운 기록이 존재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1] 철권: Blood Vengeance가 국내 유료관객 4명을 찍었지만, 그래도 이 영화는 원작의 이름값이 있고 상업성은 더 높아서 다른 나라에서 돈을 조금 더 벌었다. 줄거리가 너무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긴 해도 완성도 면에서도 비교하기 미안한 수준. 거기다 상영관하고 상영일도 절반인걸 감안하면..[2] 굳이 광복군이 아니더라도 그냥 복엽기 따위로 도쿄에 처들어가서 일본 황거를 폭격으로 날려버리겠다는 설정은 가히 중학생이 짠 각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당시 항공 기술로는 중국서 일본까지 날아가서 폭격하고 돌아올 항속거리를 확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군이 일본 근해 섬들을 장악하고 비행장으로 쓰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감수한 것이다. 하술할 둘리틀 특공대 또한 그 항속거리를 극복하려고 배에 폭격기를 싣고 가서 일본의 허를 찌른 것이고. 폭격 타격 자체는 크게 주지 못했고 당장 도쿄 대공습 당시 미군이 동원한 폭격기가 몇 대인지 생각해 보자. 하다 못해 둘리틀 특공대도 이 정도는 아니었으며 무모함이 극에 달하는 작전인데도 둘리틀 특공대의 대장 제임스 둘리틀의 비행대회 우승 경력을 믿고, 막말로 얘기하자면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라는 심정으로 도전한 건데 미국 국방부는 이거 성공했다고 중령이던 제임스 둘리틀을 바로 장성급 장교로 진급시켰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냥 복엽기 따위로 도쿄에 처들어가서 일본 황거를 폭격으로 날려버리겠다는 설정은 둘리틀 작전보다 넘사벽으로 무모한 짓이며 만에 하나 이걸 성공(...)하면 공군참모총장으로 바로 임명해도 될 정도이다.[3] 네이버 영화 평점 공감순 1위[4] 하지만 청연의 주인공 박경원은 그냥 친일파 그 자체였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는 권기옥이다. 게다가 권기옥은 박경원과는 달리 항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가유공자이다.[5] 뮤지컬배우 고세원, 탤런트 유재명, 반민정 주연. 무삭제판도 개봉했는데 관객수가 단 1명이었다. 이 때문인지 네이버에 '따라지 비열한 거리'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창공으로가 뜬다. ':'를 포함해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가 뜨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