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4 22:20:46

초인목후이관

고사성어
초나라 초 사람 인 머리감을 목 원숭이 후 말이을 이 갓 관

1. 개요2. 해당 단어의 배경3. 라이벌 유방과의 대조4. 기타5. 관련 문서

1. 개요

초나라 사람은 갓을 쓴 원숭이에 불과하다는 뜻의 고사성어. 목후(沐猴)는 원숭이가 머리를 감는다는 뜻이 아니라 중국 남부에 많이 사는 레서스 원숭이를 가리키는 말로, 당시 중원 동남쪽 끝 변방에 살았던 이민족을 부르는 멸칭이다. 즉 초나라 놈들이 아무리 문명인 흉내를 내고 다녀봤자 본질은 천박한 야만인에 불과하다는 인종차별 발언으로, 풀어서 말하면 '초나라 원숭이놈'이라는 욕.

사실 이 고사성어가 나온 당시에는 중국이 막 통일된 시기여서 같은 국가 사람이라는 의식조차 없었으므로[1] 지역감정이 아니라 적대국에 대한 비하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을 겁도 없이 서초패왕 항우에게 하다 팽형 당한 사람이 있었는데, 사연은 다음과 같다. 초한전쟁 시기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 군대가 진나라를 멸망시킨 다음 자영을 죽이고 함양을 불살라 버렸다. 함양은 허허벌판이 돼 아무런 가치가 없어졌고, 항우와 부하들은 진나라를 정복했다는 명예를 고향에 돌아가 자랑하고 싶기도 해서 금의야행 논리로 초나라 땅 팽성에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이때 간의대부인 한생[2]이 나서서 관중 땅이 산과 강이 험하고 토지가 비옥하여 천하를 다스리기에 적합하다고 간했다. 항우는 황량해진 함양이 싫어서 무시했다. 한생은 지가 생각없이 다 때려부숴놓고 그게 싫어서 돌아간다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생각에 어이없음과 분노로 이성이 마비되어 급기야 "인언 초인목후이관, 과연(人言 楚人沐猴而冠, 果然)"[3]하고 지역드립을 했다.

항우는 이 말을 처음엔 알아듣지 못하고 진평에게 물어본 뒤, 뒤늦게 뜻을 알고 격분해서 한생을 튀김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멍청하게도 정말 팽성으로 돌아가 도읍을 삼았고, 자신이 몰락할 밑거름을 뿌렸다.

야사에서는 죽으면서 "나는 간언하다 죽지만 두고 봐라, 백일 이내에 한왕이 와 널 멸할 것이다."라고 일갈했다고도 한다.[4]

이 사건은 항우신안대학살 문서에도 많이 서술되었다.

항우의 졸렬한 대응 때문에 훗날 목후이관(갓 쓴 원숭이)이라는 말은 못난 소인배를 비꼬는 말로 확장돼 쓰였다. 조선의 대표적 권신 한명회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짓자 선비들이 이 말로 비꼬았다.

2. 해당 단어의 배경

제일 유명한 사례는 항우에게 지역드립을 시전한 유생이긴 하지만, 그 이전부터 중원의 화하족들은 형초(荊楚)지방 사람을 야만족이라 하여 깔봐서 같은 말이 계속 회자되었다.[5]

다소 신화적인 하나라, 그리고 겨우 역사적 실체가 실증적으로 밝혀진 상나라, 여전히 부족 연합 수준이긴 해도 역사적 실체가 뚜렷한 주나라로 이어지는 중원 황하 문명화하족은 기원전 2천여 년 전부터 춘추시대까지 지속적으로 교류했고, 춘추시대에도 주나라 왕을 천자로 모시는 봉건제 질서가 확립되어 있었다.

하지만 황하 문명과 별개로 장강 부근에서 성장한 문명이 별도로 존재하며, 현대에는 황하문명과 별도로 장강문명이라고 분류된다. 장강문명권에 속했던 나라들로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가 있었는데, 이들은 황하 문명의 주나라 중심의 국제 질서를 따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춘추시대부터는 양 문명이 확장을 거듭한 끝에 서로 충돌했는데, 이 과정에서 황하 문명 측은 자신들과 습속과 질서가 전혀 다른 장강 문명 국가들을 야만족이라 멸시했다.[6]

장강에서 문명을 세운 , , 춘추전국시대에 풍습이 전혀 달랐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은 많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소수민족인 묘족이 그들과 같은 계통이었다고 추정한다. 현대 사학에서도 이 당시에 중국 남부에서 널리 쓰이던 언어들은 중국티베트어족 계통이 아닌 크라다이어족이나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오스트로아시아어족, 몽몐어족에 속한 언어들이라고 추정한다. 항우가 유생의 지역드립을 못 알아들은 이유도, 항우 입장에서는 외국어였기 때문인 듯하다. 한나라 시대에는 초, 오, 월도 어떻게든 중화 문명의 일종이었다고 주장하고 싶어해서[7], 사서 상으로는 주나라의 책봉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초나라는 주를 무시하고 왕을 자칭했고, 오월이 책봉받은 기록도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주나라 중심의 국제 질서를 생깠을 가능성이 더 높다. 초와 오월은 단발머리에 문신을 일상적으로 새겼다고 하므로 복식에서도 풍습이 많이 상이했던 것 같다.

시경과 서경으로 대표되는 노래와 예술부분도 달라서 사면초가라거나, 전한 궁궐에 초나라 노래가 불렸다는 등[8] 일화가 전한다.

하여간 춘추시대부터 쌓인 국가 간 감정이, 진시황이 무력으로 갑자기 통일했어도 당장에 사라질 리가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이런 말이 유생의 입에서 터져나왔던 것이다. 또한 관중 지역의 막대한 잠재력을 포기하고 고작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읍을 옮기려는 결정을 비판하는 의도도 있다. 실제로 이 관중 포기는 후술하겠지만 초한전에서 항우가 파멸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의외로 항우는 이 말을 처음 듣고 그 뜻을 몰라서 옆에 있던 신하에게 그 뜻을 물어봤다고 한다. 묻는 대로 알려준 것으로 전해지는 인물은 진평. 이 욕설의 뜻을 세 가지나 들려줬다고 한다. 원숭이처럼 무식한 놈이 관을 써봤자라는 뜻, 원숭이처럼 조급하다는 뜻, 그리고 원숭이는 사람이 아니므로 만지작거리다 의관을 찢어버리고 만다는 뜻. 셋 모두 항우의 상태를 매우 정확하게 까고 있는데, 실제로 항우는 원숭이처럼 판단력이 낮았고, 앞뒤 안 보고 살육과 파괴부터 해대는 근시안이었으며, 이런 짓만 계속한 끝에 5년 만에 저승으로 황급히 떠났다. 진평이 은근슬쩍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진평이면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기도 하고

3. 라이벌 유방과의 대조

유방은 이와 정반대 모습을 보였는데, 중국 통일 후 주나라를 따라 수도를 낙양으로 하려고 했다. 그러다 징집 영장 나와서 농서로 가던 누경이라는 사람이 동향 사람인 우장군을 통해 면회를 청했는데, 유방은 듣도 보도 못하고 의관도 갖추지 못한 평민 병졸이 뜬금없이 면회를 청하는 걸 쿨하게 들어주었다. 수도를 낙양으로 한다는 유방의 말에 누경이 조언을 해 줬는데, 그 내용은 대충
주나라는 원래부터 뼈대있는 가문이 누대에 걸쳐 널리 덕을 베풀어 제위에 오른 거라, 소통에 편리하도록 교통의 요지인 낙양에 도읍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몇 대 지나서 상황이 안 좋아지니 낙양에서는 통제가 불가능했는데, 폐하께선 밑바닥에서 전쟁으로 이 자리에 올라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게 쌈박질만 하는 통에 아직도 산과 들판에 간과 해골이 가득히 방치되어 있는데 낙양이 좋을까요? 반란이 일어나도 방어하기도 쉽고, 경제력도 좋은 진나라 땅을 챙길 수 있는 관중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요약하자면 낙양은 방어하기 힘들어서 성군이 아니면 못써먹음. 근본도 없으면서 쌈박질로 정권 잡은 님은 쌈박질하기 좋은 동네나 가는 게 낫겠음[9] 밑바닥에서 전쟁으로 올라왔다, 주나라에 비하면 덕이 부족하다와 같은 부분은 황제한테 하는 발언치고는 무례하지만 결국 누경의 발언의 요점은 유방을 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허울 좋은 낙양보다는 관중으로 들어가 실속을 챙기라는 것이었다. 유방도 분노하기는 커녕 곧바로 신하들과 논의했고, 다른 이들은 모두 반대했지만 장량이 누경의 의견을 지지하자 즉시 관중을 수도로 삼고 누경에게도 포상과 직위와 유씨 성 등을 하사해 보답했다. 이 일회를 두고 고우영은 '유방의 가장 큰 장점은 쓴소리를 들어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이라고 서술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자신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의견을 내는 자를 잡아다 죽이는 인물치고 명군인 사람이 드물었다. 항우는 특히 곱게 죽인 것도 아니고 끓는 물에 내던져서 죽였으니 더욱 항우의 옹졸함이 빛나는 고사로 평가되는 견해가 많다.

물론 전제군주제 국가에서 항우 말고 어떤 군주에게라도 '너는 사람이 아니라 원숭이 수준이다!'는 드립을 쳤으면 죽어 마땅하다는 의견도 많다. 만에 하나 군주가 착해서 화가 안 났어도 자신의 위엄을 위해 죽여야 할만한 발언인 것이다. 게다가 군주의 고향인 초나라 사람들도 다 까내렸으니 살려두면 항우의 정치적, 군사적 기반인 옛 초나라 지역에서도 반발이 있었을 것이다. 즉 한생이 한 초인목후이관 드립 자체는 죽어 마땅하다는 것. 하지만 저런 미친놈도 하는 말만 맞으면 들어줄 수 있는 대인배여야 황제의 그릇이다. 유방은 누경의 근본없다는 투의 발언이나 신하들의 ‘걸주 같은 놈‘ 같은 드립을 듣고도 쿨하게 넘어갔고, 후대의 조조도 지 말 안들어주면 삐져서 바닥에 침 뱉고 패악질을 부렸다는 곽가를 잘 써먹었다. 조조도 예형은 못 버텼지만 그래도 죽이고 나서도 기어코 초나라 땅을 도읍으로 삼았기에 항우의 행동은 매우 어리석고 감정에 치우쳤다고 평가받는다. 애초에 항우가 갓 쓴 원숭이 수준이 아니라서 한생의 지극히 합리적인 발언을 받아들였다면 이런 말이 튀어나올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기도 하고.

그 외 유방은 수도 천도 일화 말고도 소탈하고 대범한 면모를 많이 보여줬다. 승상격인 소하도 유방에게 "주공께선 평소에 오만무례하십니다"라는 말을 했지만 순순히 인정하고 소하의 무례를 탓하지 않았다. 이외에도 한신, 왕릉, 진평, 주창[10] 등도 "폐하가 항우보다 나은 건 하나도 없습니다", "폐하는 괴팍하고 욕을 일삼으시지만 항우는 다정했습니다. 항우가 통만 컸으면 우리가 절대 못이겼을 걸요" "폐하가 도무지 교양이란 게 없으시니 우리 쪽에 붙는 선비들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절개 없이 재물만 탐하는 놈들뿐[11]입니다." "폐하가 어떤 임금이냐고 물어보셨습니까? 걸주 같은 폭군입니다" 같은 말을 서슴없이 하고 다녔다. 그런데도 유방은 그냥 전부 인정하고 넘어갔다.(...)[12]

그러니까 현대적으로 한나라 진영의 분위기를 풀이하자면, 신하들이 '야 이 정신 나간 어르신아'라고 운을 떼며 유방을 비판하면 유방도 화가 나서 '그래, 나 정신 나갔다! 그럼 어디 잘 난 네놈들이 계책을 세워 보거라!'라며 욕하면서도 신하들이 간언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었다. 시정잡배 난장판에 가까운 분위기였으나, 이 사이에서 주군과 신하 사이에 무람없고 직접적인 피드백이 가능했고, 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한나라 진영이 크게 뭉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반면 초나라 분위기는 말로는 화기애애하나 목후이관 일화처럼 항우의 잘못을 강하게 비판하려면 정말로 목숨을 걸어야 했다. '아보'라며 명목상으로나마 항우의 윗사람으로 대접받었던 책사 범증도 옛정 때문에 처형당하지만 않았을 뿐, 모든 관직을 삭탈당하고 빈털털이가 되어 낙향하다가 도중에 객사했다. 양부로 모시던 책사에게까지 이랬으니, 듣기엔 쓰나 꼭 필요한 간언을 하려 했다간 분노한 항우의 칼에 협박당했을 것이다. 정말 누가 칼들고 협박을 해대니 꼭 필요한 간언도 저절로 들어가기 마련이었다.

유생들이 결사반대한 초나라 귀향을, 사람을 끓는 물에 내던져가면서까지 끝내 시행한 항우에게 돌아온 것은 초나라 대의의 파멸과 항씨 가문의 몰락, 그리고 초나라 장병들과 자신의 비참한 죽음이었다. 농담이 아니라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버린 관중 지역이 훗날 유방의 근거지가 되어 한나라 대업에 끼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생각하면 이 선택이 항우의 파멸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 기타

이 말을 듣기 이전, 항우는 자신의 유방 암살 계획을 따라주지 않은 것에 격분한 범증에게 면전에서 "이래서 애송이와는 큰일을 논할 수가 없다. 우리는 전부 유방에게 잡혀 죽고 말 것"이라는 욕설을 들었다. 그러나 뒤에서 욕한 것으로도 팽형까지 당한 한생과 달리 이에 대해선 별다른 처벌 없이 넘어갔으니 지인과 그 외 인간을 차별하던 항우의 면모를 알아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비슷한 소리를 해도 나랑 친하면 봐주지만 안 친하면 너 사형' 아니냐는 것.

하지만 범증은 일단 항우의 숙부인 항량이 군사를 일으킬 시기부터 그를 섬겨왔던 항우 세력의 최대 공신으로 항우 시기에는 서열로도 항우 바로 다음이었다. 항우에게 아부(亞父)라는 호칭으로 불린 것으로도 알 수 있듯, 군주인 항우로서도 '공식적으로는 당연히 군주인 내가 윗사람이지만, 이 분은 나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우리 세력의 큰어른'이라는 입장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상대였던 것이다.

게다가 나이 차이로 보면 범증과 항우의 나이는 부모자식뻘도 넘어 당시 기준으로는 거의 조손뻘에 근접한다. 이런 점들을 보면 사실 범증은 항우가 정말 화가 났더라도 함부로 해치기 힘든, 처치했다가는 직접적인 후폭풍을 뒷감당하기 힘든 상대였을 가능성도 높다. 연공이나 연령, 항렬, 신분 등이 지위에 큰 영향을 끼치던 고대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사실 현대인의 기준으로 볼 때도 똑같이 욕을 듣더라도 그 욕을 '평소 자기가 믿고 의지해오던 아버지뻘의 웃어른이 하는 경우'와 '잘 알지도 못하는 놈이 와서 하는 경우'에 대해 같은 반응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세세한 부분까지 따지자면 욕설의 강도 역시 범증이 훨씬 약하다.

이미 범증과 항우의 연령 및 경력 차이를 생각하면 범증의 입장에서 항우를 애송이라고 말한 것은 화난 나머지 실언을 했다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한생의 경우에는 항우를 비롯해 초나라 사람을 짐승으로 비하하는 지역드립을 박은 경우이기 때문에 상황이 다르다. 설령 항우 본인이 자비로워서 이런 욕설을 듣고도 넘어가 줄 수 있었더라도 초나라 사람 전체를 싸잡아 짐승으로 비하하는 쌍욕을 초나라 사람들이 모두 들었을 상황에서 장중의 분위기를 봐서라도 그냥 넘길 수 없었을 것이다. 항우가 부하들을 편애했다는 예로 들기에는 썩 적절하지 않다.

유의어로 영서연설(郢書燕說)이라는 말도 있다. 영에 사는 사람의 글을 연나라 사람이 풀이한다는 말로, 사리에 안 맞는 말을 억지로 맞는 것처럼 끌어댄다는 뜻. 영(郢)은 초나라가 일어난 지역으로, 초나라가 진나라에게 뺏기기 이전까지 400년이 넘게 수도이기도 했다.[13] 그리고 연나라는 춘추전국시대 중국의 최북방에 있던 국가로 현대의 베이징 부근에 있었다. 현대어로 풀자면 덤 앤 더머 정도 된다.

고우영 초한지에서는 항우가 집극랑으로 있던 한신에게 한생의 사형 집행을 명한다. 여기선 한신이 한나라 왕족으로 나오기 때문에 같은 나라 사람끼리 죽고 죽이게 한 것이었다.[14] 한생은 국가를 위해 책임을 다한 대가로 죽는 것은 너무 억울한 처사라며 형장으로 끌려가는 내내 탄식하는데 한신은 그런 한생을 면박주며 왕에게 간언하는 자리에 있으며서도 자기 할 일을 하나도 못했으니 억울할 것 없고, 죽는게 당연하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발끈하는 한생에게 한신은 항우가 자영을 죽일 때 부당함을 알려 중지시키지 않았고, 진시황릉 도굴을 말리지 못했고, 아방궁을 불태울때 간하지 못했으며, 진의 항병 20만을 죽일 때도 직분을 다해 말리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 책임을 다한답시고 천도 결심이 확고한 왕 면전에서 욕설이나 했다고 나직하게, 하지만 단호하게 꾸짖는다. 즉 "이미 충언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동안 안 하고 뭐했냐?" 한신이 한 마디 할때마다 점점 대답이 궁색해지고 숨이 막힌 한생은 할 말이 없어져 종국에는 눈물만 흘리다 펄펄 끊는 기름에 던져졌다.

고우영 초한지에서 이 일은 한신과 장량이 만나는 결정적인 계기기도 하다. 항우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마음을 먹게 된 건 민중들 사이에서 금의야행의 뜻을 담은 노래가 퍼지자 이에 마음을 굳힌 것인데, 이 노래를 퍼뜨린 사람이 바로 장량이다. 항우가 천혜요지 관중을 수도 삼으면 유방에게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사면초가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 한신은 한생을 처형장으로 데려가며 '아마 그 노래를 만든 자가 지금쯤 어디선가 우리를 보고 있을 것이고, 유방이 파촉으로 갈 때 잔도를 끊은 자 역시 동일인물일 것'이라고 말하는데, 사형장의 구경꾼들 사이에서 이를 지켜보던 장량은 과연 한신이라며 놀라게 된다. 그리고 이 일로 인해 한신은 항우에게서 떠나기로 완전히 결심하고, 장량과 접촉해서 유방에게 갔다.[15]

고우영 초한지에서 상당 부분의 모티브를 따 온 문정후 초한지에서도 한신이 한생에게 꾸짖는 장면이 똑같이 나온다.

초한전기에선 항우에게 천하를 재건할 것을 권하며 관중의 강점을 논하면서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다 했으나, 진나라 자체를 싫어하던 항우는 그냥 관중이 싫다고 거절한다. 한생은 초는 변방에 불과하다 했더니 항우에게 '성공했는데 고향에 안 돌아가면 금의야행[16]이랑 뭐가 다르냐'는 말만 듣는다. 어이가 없어진 한생은 그 유명한 초인목후이관으로 항우를 디스하고, 열받은 항우가 죽고 싶냐고 협박하자 '맘대로 하시지요, 어차피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라며 빈정댔다. 항우가 끌고 가라고 하자 한생은 항우에게 '불쌍하구나!'라고 비웃으며 끌려나간다.

미야시타 아키라의 만화 열혈마계남(원제: 天より高く)에서는 일본 수상 츠루기 모모타로[17] 반대파의 소인배 국회의원과 얘기하면서 초인목후이관이라는 글씨가 쓰인 종이를 건네주는데, 이 소인배는 그 뜻도 모르고 많은 사람 앞에서 자랑질을 하였고, 이후 초인목후이관의 본 뜻을 알고는 엄청나게 분노한다.

삼한습유에선 귀마왕이 항우를 보고 초인목후이관을 중얼거리다 목이 날아가는 내용이 나온다.

5. 관련 문서


[1] 그나마 주나라 봉국 후손들은 같은 문화권이라는 인식이 강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민족인 묘족이 주를 이뤘다고 추측되는 초나라는 주나라 봉국으로 시작한 나라도 아니었고 각종 기록에서 ‘초나라 옷’, ‘초나라 노래’같은 특징적인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문화적인 괴리감도 꽤 컸다고 추정된다.[2] 한생이 이름이 아니라 한(韓)나라 출신 유생이란 뜻이다. 사기와 한서에서는 한생이라 하며 초한춘추와 법언에서는 채나라 출신이라고 하는데, 한(韓)나라가 있던 지역은 춘추시대에는 채나라가 있던 지역이다. 결국 채나라 출신이나 한나라 출신이나 다 똑같은 말.[3] 사람들 말로는 초나라 인간들은 원숭이가 갓을 쓰며 사람 행세를 하는 거나 다름없다던데, 과연 그렇군.[4] 유방이 파촉에서 뛰쳐나온 때는 쫓겨난 지 대충 3달쯤 뒤 일이다. 항우를 죽이기까진 거기서 4년이 더 걸렸지만.[5] 형초라는 말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진시황의 아버지 장양왕의 이름은 원래 영이인이었는데, 장양왕이 진나라에서 자기의 적모인 초나라 출신 화양부인의 환심을 사려고 초나라 옷을 입고 만났다. 이를 마음에 들어한 화양부인은 영이인의 이름을 영자초(子楚)라고 바꾸도록 했다. 이를 피휘하기 위해서, 진나라는 초(楚)나라를 초나라의 별명이었던 형()나라라고 불렀다. 이게 한나라 때에도 이어져서 형주라는 지명이 붙게 되었다.[6] 오나라는 약간 예외. 하북의 연나라가 주나라의 전진 기지였듯이 오나라는 주나라 개국 이전 일족이 망명(?)한 곳이었고 건국 이후 일족으로 인정받고 책봉받았다. 실제로 오나라의 왕성은 주나라와 동일한 희성(씨는 고발씨)이다.[7] 이는 한나라 황실이 초나라계 가문인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고조 유방부터가 초나라 출신이다.[8] 한고조 유방을 포함한 건국세력들은 대부분 초나라에서 일어났다. 한고조 유방은 후에 자신이 초나라 출생이 아니라 위나라에서 이주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일부러 위나라와 위나라 출신 전국사군자신릉군 위무기를 띄워준다. 다만 유방의 고향인 패 지역은 실제로 위나라와 초나라의 국경 지대였기 때문에 위나라 출신이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9] 다만 주나라도 서주 시절엔 관중에 수도가 있었다.[10] 이 사람의 종형인 주가(周苛)도 항우군에게 붙잡혀서 항우가 회유하려 들었을 때 '기껏 보여줘도 선비가 뭔지도 모르니 넌 그냥 가망이 없다. 헛고생 그만하고 빨리 우리 폐하께 항복하기나 해라.'라고 욕을 하다가 삶겨 죽었다고 한다. 덤으로 주창은 동향 사람들조차 꺼릴 정도로 지독한 독설가였다.[11] 웃기는 것은 이 말을 한 진평이 자신이 바로 그런 인물이라 한때 장수들에게 밉보였다는 점이다. 자기 딴에는 유우머라고 한 말 같다만(...)[12] 다만 부하들은 유방을 강하고 직설적으로 비판한 것뿐, 정말 항우가 유방보다 낫다고 생각했을 리는 없다. 교양 없고 괴팍하게 굴지만 백성들을 괴롭히지 않는 사람이랑, 교양 있고 다정하지만 뻑하면 민간인 수만 수십만을 잡아죽이는 인간 중 누가 더 인간성이 좋은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애초에 진짜로 항우가 더 낫다고 생각했으면, 그냥 유방을 버리고 항우를 섬기면 될 일이었다.[13] 중간에 손무와 오자서를 앞세운 오나라 왕합려에게 털리고 잠시 약 땅으로 천도했다. 그리고 진나라 장수 백기가 영을 함락시키고 초나라 왕릉을 불태운 뒤 진나라 남군을 설치했다.[14] 근데 진짜로 동시대에 한나라 왕족인 동명이인이 있긴 했다. 물론 집극랑으로 항우 밑에 있던 건 우리가 익히 아는 그 한신이지만, 아무래도 고우영 작가가 헷갈린 듯.[15] 한신을 왕족으로 혼동한 걸 빼면 이 모든 에피소드는 서한연의 원전에 다 있다. 사실 고우영 초한지 자체가 대놓고 오리지널 설정인 부분을 빼면 의외로 원전에 충실하기도 하고.[16]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다.'는 뜻. 즉, 아무도 봐주지 않는데 혼자 폼내는 꼴을 비꼬는 말이다.[17] 돌격 남자훈련소의 그 주인공 맞다. 이 작품은 돌격 남자훈련소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며, 남자훈련소 학생들은 일본 각계의 톱으로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