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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 | 한왕(韓王) | |
성 | 희(姬) | |
씨 | 한(韓) | |
휘 | 신(信) | |
사망지 | 참합(參合) | |
생몰 기간 | 음력 | 기원전 ?년 ~ 기원전 196년 |
재위 기간 | 기원전 204년, 기원전 202년 ~ 기원전 20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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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초한전쟁때 한(韓)나라의 왕이자 한(漢)나라의 장수였다. 한(韓)나라 희성 한씨 왕족 출신으로 한양왕의 서손이었다.[2]2. 회음후 한신과 혼동
회음후 한신과 동시대에 활약했던 동명이인으로 본명이 똑같은 한신(韓信)이었다. 구분하기 위해 보통 '한왕 신'이나, '희신'(姬信)으로 쓴다. 희신이라고 쓰는 이유는 주나라 왕족의 성이 희이며, 한나라 왕실의 조상은 주나라의 동성 제후국인 진(晉)나라의 희성 진씨에서 갈라져 나온 방계 공족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은 성과 씨(족명)의 차이가 남아 있었던 시절이며 남자는 씨, 여자는 성을 따랐기 때문에 회음후 한신과의 구별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한왕 신을 굳이 씨가 아닌 성을 붙인 희신이라고 부를 이유는 없다.[3]《사기》에서 건달의 가랑이 밑을 기었다는 설화를 가진 한나라군의 대장군 한신은 <회음후 열전>에 있고, 이 한신은 <한신·노관 열전>에 있어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한고조 유방의 개국공신으로 제후왕에 올랐으나 후에 배신자가 된 노관과 합전으로 묶여 있다. 보통 레전드급 명장인 회음후 한신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한왕 한신은 관심 밖인 경우가 많은 만큼 《사기》를 처음 보는 독자들을 낚는 주요 요인이다. 참고로 두 한신 모두 기원전 196년 1월에 사망했다.
3. 생애
본래 한왕 신의 숙부였던 한왕 성(成)은 장량의 추천을 받아 무신군 항량에 의해 한왕(韓王)으로 봉해져 있었다. 하지만 책사 범증이 장량을 경계해 한왕 성을 감금시키고, 봉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했다.결국 한왕 성은 살해당했으며 대신 항우의 부하였던 정창이 한왕으로 봉해졌다. 장량은 나중에 신을 유방에게 추천하여 태위(太尉)로 삼도록 했다. 물론 한왕 신 역시 정창을 몰아내고 한나라의 성들을 점령했으며 유방으로부터 한왕(韓王)의 자리를 인정받았다.
참고로 신은 유방이 최초로 봉한 제후왕이었다. 어느 정도 한(韓)나라의 유민들을 배려한 정치적인 결정으로 보인다. 묘하게도 장량은 나중에 6국의 후예를 나눠 봉하자는 역이기의 계책에는 반대했지만 한 왕실 출신의 한신은 예외적으로 6국의 후예임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받았다. 이는 한신이 6국의 후예라는 것 이외에도 유방 휘하에서 군공을 세웠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듯 하다.
이후 유방이 형양에서 달아난 후 위표[4], 주가, 종공과 함께 형양의 수비를 맡았다. 형양이 함락된 후 항우한테 항복했지만 탈출하여 한나라로 돌아왔다.[5]
해하 전투에서의 승리로 초한전쟁이 종결된 다음에는 태원군(太原郡)을 한국(韓國)으로 바꾸고, 한왕 신에게 분봉했다. 실질적으로 강성해진 유목제국 흉노를 정면으로 막는 북방의 번국(蕃國)이 된 셈이었다. 하지만 기원전 201년에 마읍에서 흉노에게 포위되었고, 한신은 자주 사자를 보내 화해를 요청했으며, 한나라에서 이를 구원했지만 한신이 자주 사자를 보낸 것으로 인해 한고조의 의심을 받고 급기야 책망까지 받자 토사구팽을 우려해 9월 흉노로 투항했다. 나중엔 진희와 손을 잡고 흉노 기병을 이끌고 쳐들어왔는데,[6] 한왕 신을 상대한 장수였던 진무(시무)는 지금이라도 돌아오면 폐하께선 패해서 어쩔 수 없이 달아났던 것으로 여기고, 처벌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달래보려고 했지만 한신은 초한전쟁때는 항우에게 붙잡히고, 지금은 흉노에 의탁해있는 자신의 처지가 새삼 비참해졌던지 돌아가고 싶지만 이젠 불가능하다는 말로 이를 거절하고 싸우다가 죽었다.
한신이 흉노로 망명하는 도중 퇴당성(頹當城)에서 서자를 낳아 이름을 '퇴당'이라고 했으며, 동시에 한신의 세자 역시 아들을 출산하여 이름을 '영'(嬰)이라고 했다. 훗날 한문제 시절 한퇴당과 한영이 다시 귀순해 왔는데, 연좌당하기는커녕 각각 궁고후(弓高侯)와 양성후(襄城侯)에 봉해졌다. 한경제때 오초칠국의 난이 일어나자 한퇴당은 용맹을 떨쳐 반란을 평정하는데 으뜸이었으며, 작위가 그 손자에게까지 이르렀다. 한퇴당과 같이 귀순해온 한영의 서손인 한언(嫣)과 한열(說)은 한무제에게서 총애를 받아 '영행'이라 일컬어졌으며, 한열의 손자 한증(曾)은 거기장군이 되어 한선제의 공신으로 이름을 날리는 등, 희성 한(韓)씨 왕가는 한(漢)나라 시대에 명문귀족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전국칠웅의 직계 후손 중에서는 항우의 함양성 방화와 더불어 씨도 남지 않은 진나라의 영성 조씨들처럼 다들 배드엔딩으로 끝났는데 이쪽만 유일하게 압도적으로 결말이 좋다.[7]
한왕 신의 자손들 중 특이한 곳에 등장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서진의 권신이었던 가충의 아들 가밀이었다. 본래 한왕 신의 직계 후손인 한밀이었는데, 가충이 슬하에 아들없이 죽어서 외손자인 한밀을 가밀로 고쳐 양자로 삼았다. 그리고 나중에 악명높은 황후 가남풍이 주살될 때 함께 끔살되어 이 인물의 종가도 이때 망했다. 그래도 서진시대까지 종가가 버티었으니 중국사치고는 엄청 오래 갔다.
4. 대중매체에서
이미 설명했다시피 한신은 회음후 한신과 한자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이었으며, 이때문에 초한전쟁을 다룬 작품에서 많은 혼란을 야기하는 인물이다.몇몇 《초한지》에서는 한왕 신과 혼동한 탓인지, 회음후 한신을 한나라 왕족으로 만들어버리고, 나아가 한나라 귀족 출신인 장량과도 많이 얽히도록 만든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처음 《초한지》를 접하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존재가 되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고우영 십팔사략》이나 《고우영 초한지》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한신'은 한왕 신과 회음후 한신이 작가의 혼동으로 반강제 퓨전을 당한 캐릭터이다. 고우영 등의 작가들이 나름대로 자료 수집을 했다고 해도 아무래도 전문 역사학자는 아닌데다가 인터넷이 발달하기 이전 시대라 이런 사소한(?) 오류는 바로바로 고치기 어려웠기 때문에 잘못된 정보가 퍼져나가게 되었다.
회음후 한신만은 못해도 나름대로 공적을 많이 세운 장군이었는데, 소설 《초한지》에서는 회음후 한신에게 묻히는 경향이 강하다. 작가의 지식 부족으로 혼동당하는건 둘째로 쳐도, 구분을 제대로 하는 작가들이라도 한자까지 똑같은 동명이인이 누차 등장하면 독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인지 일부러 등장 자체를 안 시키고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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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음후 한신(韓信)과 본명이 똑같아 두 사람을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2] 여담으로, 한왕 신의 13대조, 곧 양왕 한창의 11대조는 시호를 한간자(韓簡子)라고 하는 한불신(韓不信)이었다. 조상과는 이름이 정반대였다.[3] 다만 영성 조씨인 진시황제의 이름을 영정이 아니라 조정이라고 정확히 짚는 사람이 무척 드물듯, 성씨에 관한 당대의 구분법이 널리 알려지기 전부터 사서나 매체에 노출된 인물들은 종종 남성임에도 씨 대신 성이 더 유명하기도 하다.[4] 배신한 전적을 경계하여 주가와 종공이 살해했다.[5] 항우가 한신의 숙부인 한성을 죽인 적도 있는 데다가 한신도 항우의 부하인 정창을 죽이는 등 서로 화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6] 공교롭게도 회음후 한신이 진희와 모의한 혐의로 처형당한 것과 똑같은 시기였다. 게다가 진희와 연루되었다는 점도 두 사람 모두 동일하다. 한신의 모반 혐의가 이쪽이 한 짓을 이름이 똑같아서(...) 뒤집어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7] 물론 나머지 왕실들도 결말이 좋지는 않아도 씨는 남아서, 송태조 조광윤은 조나라 왕실의 후손이었고, 신나라를 세운 왕망은 전제 왕실의 후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