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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明夫
1941년 ~ 2004년 1월 3일
1. 개요
최명부는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과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지낸 법조인이다. 1941년에 경기도 파주시에서 태어나서 서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1963년에 실시한 제16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였다.2. 활동 내역
이후 박정희 정부 때인 1968년에 춘천지방검찰청 검사가 되면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는데 이후 1971년, 서울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 검사를 거쳐서 유신정권 시절인 1973년에 서울지방검찰청 검사가 되었다.서울지검 검사가 된 이후부터는 공안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여러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사건과 긴급조치 위반 사건 등을 수사하였으며 군 검찰관으로도 파견된 적이 있다. 이후 1977년에는 서울지검 공안부를 보강시키는데도 기여를 했다. 1979년에는 수원지방검찰청 검사로 발령났고 수원지검 검사로 있던 1980년에 성남시청 공무원을 비밀누설혐의로 구속했다. 전두환 정부 출범 이후 1981년에는 대검찰청 공안사무과장으로 승진했고 1982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형사2부장으로 영전했다. 1983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형사1부장으로 옮겼고 1985년에는 대구지방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했고 1986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로 영전하였다.
이후 1987년에는 검사장으로 승진해서 서울고등검찰청 차장검사가 되었으며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1988년에는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영전하였다. 1989년에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영전하였고, 이후 5공 비리 사건, 입시부정 비리 사건, 수협회장 금품수수 사건, 이문옥 감사관 구속 사건, 1기신도시 투기 의혹,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 등을 연달아 수사하였다. 이후 1991년에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영전하였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3년에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승진하였으나 이후 신임 검찰총장으로 김도언이 지명된 뒤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으로 발령났다가 사표를 제출하였다.
이후 2004년 1월 3일에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