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2 08:28:09

클라라 페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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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클라라 페타치
Clara Petacci
파일:Ritratto-Claretta-Petacci-ISTIMEWA_ratio-16x9.jpg
출생 1912년 2월 28일
이탈리아 왕국 로마
사망 1945년 4월 28일 (향년 33세)
국적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60cm
가족 아버지 프란치스코 페타치(1883~1970)
어머니 쥬세피나 페르시체티(1888~1962)
배우자 베니토 무솔리니

1. 개요2. 생애
2.1. 사망

[clearfix]

1. 개요

베니토 무솔리니정부(情婦).

2. 생애

1912년 2월 28일 로마에서 당시의 교황 비오 11세의 주치의 프란치스코 페타치의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오빠 마르첼로(1910~1945)와 여동생 배우 미리암 디 산 세르볼로(1923년 ~ 1991년)가 있었다. 어린 시절 무솔리니의 득세에 파시스트가 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무솔리니를 동경하게 됐는데 14세 때 무솔리니 암살 미수 사건이 일어나자 그에게 손편지를 써 위로했을 정도다.

1934년에 리카르도 페데리치와 결혼한 뒤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냈으나 1942년에 이혼한 후 무솔리니를 만났다. 당시 무솔리니는 그녀보다 29살이나 연상이었고[1] 이미 결혼한 유부남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솔리니가 아내를 내팽개치면서 두 사람은 결국 연인 관계가 되었다. 사실상 무솔리니의 애첩에 가까웠는데 무솔리니는 아내가 있음에도 공식석상에 그녀를 데리고 나오는 등 진짜 아내는 내팽개쳐 버리고 그녀를 아내처럼 대우했다.

2.1. 사망

무솔리니의 몰락이 임박해지자 무솔리니를 따라 국외 탈출을 꾀했지만 도망가던 그들은 변장을 알아챈 이탈리아 좌익 게릴라[2]들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베니토 무솔리니 일행은 독일군으로 위장했지만 공교롭게도 빨치산 그룹 중에 예전에 해군 수병 시절 베니토 무솔리니한테 수훈한 사람이 있어서 들통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빨치산이 베니토 무솔리니의 정부 클라라 페타치를 알아보고 베니토 무솔리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거나 베니토 무솔리니가 신던 값비싼 장화 때문에 위장이 들통났다는 다른 이야기도 있다.

파일:Mussolini_e_Petacci_a_Piazzale_Loreto,_1945.jpg

베니토 무솔리니가 1945년 4월 28일 게릴라에게 사로잡히자 그녀도 마르첼로를 포함한 다른 측근들과 함께 잡혀서 즉시 총살당했다. 총살형을 집행하기 전엔 골치 아픈 일이 생겼는데 집행용으로 쓸 총들이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제조된 총기라서 총알이 나오지 않거나 계속된 작동불량, 너무 약한 화력 때문에 총알들을 맞고도 거의 대부분 잘 죽지를 않아서 다들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했고 비명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3] 그나마 성능 좋은 베레타 M1934 자동권총 2정과 베레타 M1938 기관단총 1정으로 겨우겨우 총살형 집행이 끝났다.

총살당한 후 그녀의 시체는 애인이었던 베니토 무솔리니와 그의 측근들의 시체 3구[4]와 함께 밀라노로 인도된 뒤 시신이 부패할 때까지 피아잘레 로레토 광장에 있는 어떤 스탠더드 오일 주유소 기둥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이후 마르첼로를 포함한 다른 10명의 시신도 함께 공개됐다고 한다. 그들의 시체에는 원한을 품던 시민의 침과 욕설 세례가 이어졌으며 심지어 어떤 시민들은 몽둥이로 아주 신나게 두들겨 패거나 권총으로 쏘기도 했다. 이후 사람들은 죽은 그녀의 생식기에 이물질이나 막대기 등을 쑤셔넣기도 했다.

원래 그녀의 치마는 뒤집혀서 하반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는데 그 참상을 보다 못한 어느 노파가 치마를 여며서 가랑이 사이로 끼워넣어 줬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에선 "클라라의 치마를 여며주다."는 말이 "자신의 소신을 위해 과감하게 행동하다."라는 관용어로 쓰인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아돌프 히틀러도조 히데키도 큰 충격에 빠졌다. 히틀러는 베니토 무솔리니가 총살당하고 이틀 후에 히틀러는 자살할 때 내 시체를 불태워 달라는 유서를 남겼는데 자신도 베니토 무솔리니처럼 죽어서 시체가 저런 꼴을 당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도조 역시 끔찍한 시체가 되고 싶지 않다며 전진훈에 따라 죽겠다고 떠들고 다녔는데 이후 실제로 미루고 미루다가 겨우 자살을 기도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처형당했다.


[1] 심지어 본인의 아버지와 나이가 같았다.[2] 빨치산/이탈리아어로는 파르티지아노.[3] 지금과 달리 당시 이탈리아제 총기들은 대부분 저질 중 저질이었다.[4] 니콜라 봄바치, 알레산드로 파볼리니, 아킬레 스타라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