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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ito Fascista Repubblicano (PFR) | |
<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000000> 영문 명칭 | Republican Fascist Party |
한글 명칭 | 공화 파시스트당 |
창당일 | 1943년 9월 13일 |
해산일 | 1945년 5월 2일[1] |
전신 | 국가 파시스트당 |
후신 | 민주 파시스트당 |
중앙당사 |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밀라노 Piazza San Sepolcro |
두체 | 베니토 무솔리니 |
비서 | 알레산드로 파볼리니 |
이념 | 이탈리아 파시즘 공화주의 |
정치적 스펙트럼 | 극우 |
당 색 | 흑색(#000000) |
당원 수 | 900,000명 |
당가 | 조비네차 (Giovinnezza) |
준군사조직 | 검은 여단 (Brigate Nere)[2] |
당기 |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의 유일 합법 정당으로, 국가 파시스트당의 후신이다.2. 역사
1943년 9월 13일 창당됐으며 당수는 베니토 무솔리니였다.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집권당이자 유일 합법 정당 지위를 획득했다.공화 파시스트당은 1870년 이탈리아 통일 당시 이루지 못했던 공화정 수립이라는 미완의 과제를 완수한 정당으로 스스로를 자처했다. 물론 기존 파시즘 사상도 여전히 당의 핵심 이념이었다. 그렇지만 거기에 무능하고 배신적인 왕가에 대한 비난이 추가되었다.[3]
또한 공화 파시스트당은 1922년 이전의 보수파와 타협하기 이전의 미래주의적인 초기 파시즘의 담론을 일부 되살리려 시도했고 무솔리니의 권력장악 이후로 소외된 일부 초창기 파시스트들을 끌여들였다.
연합군 이탈리아 본토 진공 직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와 피에트로 바돌리오 내각에 의해서 무솔리니가 구속됐었기 때문에 독일군 도움으로 무솔리니가 석방된 뒤에도 안전을 위해서 본부 당사는 밀라노에 설치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정부는 살로(salo)에 주재했다.
독일군 도움으로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은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했고, 미처 연합군 해방 지역으로 피신하지 못한 파시스트당 내 '배신자들'을 체포하여 재판 후 사형시켰다. 최남단으로 피신한 이탈리아 왕국 정부 또한 반역자로 규정했다. 당은 열성 당원을 골간으로 당군 민병대를 조직하여 독일군과 같이 연합군에 맞서 싸웠다.
1945년 4월 28일 당수 무솔리니가 밀라노, 토리노, 베네치아에서 일어난 반(反) 파시즘 봉기로부터 피신하던 중 좌익 파르티잔에 생포되어 총살당했고, 5월 2일 당원이자 공화국 국방장관인 로돌포 그라치아니가 항복하면서 공화국과 함께 와해되었다.
전후 잔당 일부가 민주 파시스트당 창당에 참여했다.
[1] 이후 1947년 12월 22일에 불법화.[2] 정식 명칭: 검은 셔츠단 행동 원조 분대(Corpo Ausiliario delle Squadre d'azione di Camicie Nere)[3] 왕가 자체는 연합군의 이탈리아 전선 개막 이후 전향하여 전범취급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무솔리니에 대한 지지여부가 어떻든 북서부와 북동부의 고토를 회복하려 애쓰고 아프리카에서도 크게 나쁘지는 않은 활약을 펼치던 정부에 꽤나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니 국민들은 연합군이 상륙하고 독일군이 동부전선에서 패퇴하기 시작하자 즉시 자신이 임명한 총리를 배신하고 국민들을 버린채 점령지로 망명해버린 국왕에 그리 좋은 시선을 가질 수 없었다. 왕가는 20년전 파시스트의 쿠데타 당시 이들을 지지하며 총리직을 내어줬고, 팽창정책에 따라 에티오피아 제국 황제의 지위까지 손에 넣으며 희희낙락했던 과거가 있었으니... 이에 2차대전 종전 이후 치른 입헌군주제 폐지와 완전공화정 수립에 대한 투표에서 간발의 차로 공화정을 수립하게 된다. 대부분의 여론은 '마음에는 안들어도 일단 이탈리아를 통일했고, 항복 이외에 별 탈은 없던 왕정을 무엄하게 굳이 폐지해야할까?' 였음에도 절반 이상이 '그럼에도 왕정제를 폐지하자'고 생각했다는 것이었으니 국민들의 배신감은 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