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0 17:57:36

자크 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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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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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프랑스 인민당 초대 당수
자크 도리오
Jacques Doriot
파일:자크 도리오.jpg
[1941년의 모습]
파일:자크_도리오_인민당.jpg
출생 1898년 9월 26일
프랑스 우아즈 브렐
사망 1945년 2월 22일 (향년 48세)
나치 독일 비텐베르크 멩겐
국적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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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비시 프랑스
직업 정치인
계급 독일 국방군 중위
슈츠슈타펠 무장친위대 소령 (돌격대지도자)
정당

(1928년 ~ 1934년)
(1934년 ~ 1936년)
프랑스 인민당 (1936년 ~ 1945년)
1. 생애
1.1. 공산주의자에서 파시스트로1.2. 매국노의 길
2. 매체에서

[clearfix]

1. 생애

프랑스 제3공화국의 정치가이자 나치즘 정당인 프랑스 인민당의 당수.

1.1. 공산주의자에서 파시스트로

노동자 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생애의 초년기에는 사회주의자였다. 1차대전에 징집되어 포로가 되었다가 전후 석방되어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다. 공산당에서는 공산당 청년단장의 지위로 당의 볼셰비키화를 주도했다. 1923년 리프 전쟁에 반대해 병사들에게 불복종을 선동하는 기사를 내서 수감되었고 이듬해 26세의 나이로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며 면책특권을 얻어 풀려났다.

1925년 프랑스가 리프 전쟁에 전면적으로 참전하자 프랑스 공산당은 리프 공화국에 지지를 표하며 전쟁에 반대했고 도리오는 리프 공화국으로 파견된 대표단의 일원이 되었다. 도리오는 아랍인으로 위장해 프랑스 군인과 경찰들의 감시를 따돌리고 알제리-모로코 국경을 돌파해서 아브드 엘 크림에게 친서를 전달하는데 성공한다. 도리오는 당내에서 일약 스타가 되었고 서기장 자리를 놓고 모리스 토레즈와도 경쟁할 정도의 거두가 되었다.

그러나 1928년부터 공산당의 젊은 스타 정치인은 당과 엇박자를 내기 시작했다. 서기장 모리스 토레즈가 소련의 지침을 충실하게 따라 SFIO와 같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적대하는 소위 사회파시즘론을 펼치는 동안 반대로 자크 도리오는 파시즘을 몰아내기 위해 SFIO와의 연합전선을 주장했다. 1934년 6월 결국 지도부와의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도리오는 공산당에서 출당당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로부터 1달 후 그토록 으르렁거리던 사이였던 프랑스 공산당과 SFIO사이에 서로의 적대행위를 중단하는 협정이 맺어졌고 이는 훗날 인민전선의 결성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1934년 2월 6일 있었던 파시스트들의 집단 행동에 좌파가 반격하기 위해 힘을 모은 것이다. 이는 도리오가 이전까지 주장하던 내용이었지만 정작 도리오 자신은 이 과정에서 아무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소외되었다. 공산당이야 당연히 도리오와의 사이가 최악이었고 다른 좌파 정당들은 도리오와 공산당의 싸움을 공산주의자들 내부 문제로 생각하고 외면했다.

1936년, 도리오는 프랑스 인민당을 창당했다. 인민당은 공산주의를 배격하고 프랑스의 민족주의와 식민지 경제를 옹호했으며 계급 투쟁이 아닌 계급 협조를 주장했다. 이 시점에서 도리오는 완전히 좌파 사상을 버렸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완전히 우파라기보다는 우파와 좌파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 서서 양쪽 모두를 비판하며 여론을 얻고자했다. 비슷한 전략을 꾀한 프랑수아 드 라 로크의 프랑스 사회당과는 경쟁자 포지션이 되었다.

이 시기 즈음, 레옹 블룸을 중심으로 하는 인민전선이 집권에 성공하고 기존 우파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드 라 로크가 세를 불리자 기존의 우파들은 초조해졌다. 이 분위기를 읽은 도리오는 1937년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모든 정당들의 연합인 자유전선을 주창했다. 인민전선에 반대하는 동시에 프랑스 사회당을 자유전선의 일부로 만들어 그 인기를 흡수하는 계획이었다. 인민전선에까지 참여한 중도 좌파 정당인 급진당과 공화민주연맹부터 우파 정당들, 프랑스 사회당에게까지 초대장이 갔다. 그러나 중도 좌파 정당은 이를 바로 거절했고 중도 우파 정당들도 간만보다가 떨어져나갔다. 통합의 규모가 작아지자 드 라 로크도 자유전선을 탈퇴할 명분이 생겼다. 레옹 블룸이 총리에서 물러나고 급진당인 카미유 쇼탕이 새 총리가 되면서 반공, 반인민전선 분위기까지 한풀 꺾였고 결국 자유전선 계획은 완전히 백지화되었다.

야심찬 계획이 실패하고 전향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세력이 줄어들던 도리오가 선택한 마지막 길은 파시즘이었다. 생드니 시장 보궐선거에서 공산당 후보에게 패배한 도리오는 국가 파시스트당에서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며 하원의원까지 사퇴했다. 1938년에는 인민당의 강령에 반유대주의가 추가되었다. 당 기관지에서 유대-볼셰비키-프리메이슨 등의 음모론이 나오는 일은 예삿일이 되었다. 도리오는 소련의 위협을 막기 위해 프랑스와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의 동맹을 주장했고 뮌헨 협정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1.2. 매국노의 길

1940년 6월,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게 무너졌다. 필리프 페탱 원수는 새 총리가 되어 독일과 콩피에뉴에서 정전 협정을 맺고 프랑스국의 수반이 되었다. 자크 도리오는 처음에는 새로운 프랑스가 독일과 같은 파시즘 국가가 되고 그 과정에서 본인이 득세하게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의외로 히틀러는 파시즘의 사상적 전파에는 관심이 없었고 점령지의 안정만을 원할 뿐이었다.[1] 그 덕에 피에르 라발로 대표되는 기존 우파 관료들의 조직은 전쟁 전과 다름없이 유지되었고 도리오와 같은 파시스트들은 곧 프랑스국에 실망한다.

도리오는 프랑스국을 떠나 독일군이 점령한 파리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이전보다 더욱 열심히 독일 부역자 짓을 시작한다. 1941년 독소전쟁이 시작되자 프랑스인 의용병을 모아 '볼셰비즘에 저항하는 프랑스 의용군단'(LVF, Légion des Volontaires Français)을 조직해 독일군에 가세했다. LVF는 전원이 프랑스인으로 구성된 부대였지만 비시 프랑스군 소속이 아니라 독일 국방군의 지시를 받았다. 이들은 모스크바 전투, 벨라루스의 대학살 등에 투입되었다.

한편 독일의 위세가 점점 꺾이자 레지스탕스가 증가하는 한편 지금까지 독일이 점령지를 통치하는데 사용했던 현지 관료들이 연합군 쪽으로의 줄타기를 시작했다. 관료들은 자신의 개인적인 영달만을 추구하는 인물이었고 독일이 승승장구 할때는 그들의 편을 들어 지위를 보전받았지만 독일이 패전하게 되면 자신들의 지위가 다시 위협받을테니 손절을 준비한 것이다. 이에 독일은 지금까지 제쳐놨던 현지의 이념적 파시스트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념적 파시스트들은 독일을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고 동시에 관료들에게는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경쟁자들을 등장시켜 독일에 더욱 충성하게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도리오도 이 과정에서 나치에게서 점차 환대를 받았고 1943년에는 많은 프랑스의 젊은이들을 동부전선으로 보낸 공로를 인정받아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는다.

도리오가 얼마나 매국노 짓을 열심히 하건 상관없이 독일의 패전은 성큼 다가왔다. 1944년 9월 비시 프랑스가 해산되고[2] 튀빙겐의 지크마링겐에 비시 프랑스 망명 정부가 세워졌다. 도리오도 보덴 호수의 마이나우 섬으로 망명했다. 이 때는 그 누구라도 독일의 패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알 법한 시점이었지만 도리오는 자유 프랑스에 인원을 침투하고 친독 라디오 방송을 송출하는 등 부역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1945년 2월 22일, 마이나우에서 지크마링겐으로 향하던 그의 차량이 연합군의 폭격을 맞았다. 자크 도리오는 그대로 사망했다.

2. 매체에서

Hearts of Iron IV에서 프랑스 파시스트 중 친독 루트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성능은 프랑스가 갈수있는 모든 루트 중 최악이다. 반독 루트로 가면 프랑수아 드 라 로크가 지도자가 된다.

Hearts of Iron 시리즈MOD 카이저라이히: 대전의 유산에서는 생디칼리슴 혁명이 일어난 프랑스 코뮌의 정치인으로 등장한다. 소렐리안파 경제 전문가로 있는데 소렐리안 전시경제가 프코뮌 산업 트리 중 군수공장을 빨리 많이 줘서 유저들이 많이 선택한다.[3]

Hearts of Iron IV 의 모드 팍스 브리타니카에서 프랑스의 지도자로 나오며 1차대전에서 부르봉 프랑스를[4] 무너뜨린 영국과 독일에 복수를 꿈꾸고 있다. 현실의 아돌프 히틀러 포지션.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서는 프랑수아 드 라 로크 정권 아래에 재무부장관으로 등장한다.

[1] 예를 들어 헝가리에서 호르티 정권이 화살십자당을 얼마나 탄압하건 신경쓰지 않았고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자생적 파시스트들이 얼마나 친독적 행보를 보이건 실권은 거의 쥐어주지 않았다. 다만 전쟁 후반에는 상황이 바뀐다.[2] 이미 1942년 안톤 작전 이래로 비시 정부의 영토까지 독일 관할하에 있었기에 요식 행위에 불과한 일이었다.[3] 다만 자코뱅 산업화도 나쁘지 않고 궁극적으로는 소비재 5% 감소를 주는 아나키스트 협동조합이 가장 좋다고 평가된다.[4] 이 세계관의 1차대전은 영국과 독일이 부르봉 프랑스를 줘패는 식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