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퍼펙트 게임 (2011) Perfect Game | |
감독 | 박희곤 |
각본 | 박희곤 |
제작 | 이보라, 김우상 |
기획 | 이호성, 김성태, 장원석, 최낙권 |
조감독 | 정세교, 박호찬 |
촬영 | 최상호 |
조명 | 이만규 |
편집 | 김창주 |
동시녹음 | 오성진 |
음향 | 공태원 |
미술 | 이후경 |
음악 | 김태성 |
출연 | 조승우, 양동근, 최정원 등 |
장르 | 스포츠, 드라마 |
제작사 | ㈜동아수출공사, ㈜다세포클럽, ㈜밀리언스토리 |
배급사 | 롯데엔터테인먼트 |
제작 기간 | 2011년 6월 10일 ~ 2011년 10월 10일 |
개봉일 | 2011년 12월 21일 |
상영 시간 | 127분 |
총 관객수 | 1,507,084명 (최종) |
상영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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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프로야구 사상 가장 처절했던 투수전, 1987년 5월 16일 사직 야구장에서 있었던 최동원과 선동열의 3번째 선발 맞대결을 영화화한 작품이다.기본적으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빛낸 선동열, 최동원이라는 두 전설적 투수들이 공동 주연인 작품이다. 하지만 개봉 시기가 최동원이 타계한 지 수개월 후였고, 결과적으로 최동원이 상대적으로 더 부각되어 최동원에 대한 추모, 헌정 영화가 되었다.[1]
2. 개봉 전 정보
- 스틸 컷 두 개만 있었던 작품 소개 페이지에 드디어 티저 예고편이 공개됐다. 또 현장의 메이킹 필름이 풀리면서 스틸컷이 다량으로 업데이트 되었다. 특히 최동원 역 조승우의 재연도가 높아 주목받았다.
- 최동원이 "내 투구폼은 따라하기 힘드니 무리하지 마라"라고 했다고 한다. 감독이 어릴 때부터 리틀야구단을 하던 야구팬이라고. 최동원 생전에 딱 한번 캐치볼을 한 적이 있는데 "네가 투수냐? 한번 던져봐라"라고 했다고… 2011년 11월 22일. 본 예고편이 공개 됐다.
- 영화 제작 중, 실제 주인공인 최동원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영화의 재연도에 대해 많은 팬들이 기대하고 걱정하였다. 실제 최동원으로 분한 조승우는 고인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장례식장에서 의지를 다지는 인터뷰를 남겼다.
- 개봉을 1주일 앞두고 12월 17일 박동희 기자가 주재한 선동열, 조승우 인터뷰가 올라왔다.선동열&조승우 인터뷰 박동희 기자 외에도 일간 스포츠에서도 다른 주연인 양동근과 한 인터뷰가 같은 날 올라왔다.선동열&양동근 인터뷰 #1 #2
3. 예고편
4. 시놉시스
세상은 우리를 라이벌이라 부릅니다 대결을 원한 세상 속으로 꿈을 던진 두 남자, 최동원 선동열의 고독하고도 치열한 맞대결!! 불안과 격동의 1980년대, 프로야구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전국민을 사로잡고 있었다! 노력과 끈기로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로 자리잡은 롯데의 최동원! 그리고 최동원의 뒤를 이어 떠오르는 해태의 천재 투수 선동열! 세상은 우정을 나누던 선후배였던 두 사람을 라이벌로 몰아세우는데... 전적 1승 1패, 그리고 1987년 5월 16일, 자신들의 꿈을 걸어야 했던 최동원과 선동열의 마지막 맞대결이 펼쳐진다! 선동열 앞에서만은 큰 산이고 싶었던 최동원. 그 산을 뛰어 넘고 싶었던 선동열 2011년 12월, 이제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경기가 시작된다! |
5. 등장인물
5.1. 주연
자세한 내용은 최동원(퍼펙트 게임(2011))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선동열(퍼펙트 게임(2011)) 문서 참고하십시오.
김서형 (최정원 扮) |
5.2. 롯데 자이언츠
박희찬, 이문한, 노상수, 안창완은 성이 바뀐 가명으로 나온다.자세한 내용은 김용철(퍼펙트 게임(2011)) 문서 참고하십시오.
- 한영준 (주우영 扮)
- 유두열 (공정환 扮)
- 홍문종 (허정남 扮)
- 조성옥 (김경업 扮)
- 채희찬 (나윤성 扮)
- 박태호 (한준혁 扮)
- 박동수 (곽진 扮)
- 김창완 (박대규 扮)
- 정문한 (백준길 扮)
- 강상수 (민정기 扮)
그 강상수가 아니다.[2] - 김용희 (황순혁 扮)
- 김민호 (전슬기 扮)
- 박영태 (이재희 扮)
5.3. 해태 타이거즈
등장한 해태 선수 중에서는 유일한 가공의 인물. 초반에 별 비중 없고, 20년 동안 대회 한 번 나가본 적도 없는 무명 선수였으나 힘 하나는 진짜인듯.[3] 그리고 후반에 교체 출전하여 선동열과 환상의 콜라보를 보이면서 무명 선수 이미지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하고, 2:1로 지고 있는 9회 초 첫 출전해 동점홈런을 치면서 2:2 동점을 만들어낸다. 따지고보면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볼 수도 있다. 기타 내용은 항목 참고.자세한 내용은 김일권(퍼펙트 게임(2011)) 문서 참고하십시오.
- 한대화 (박수환 扮)
- 김성한 (변정현 扮)
- 서정환 (박정식 扮)
- 백인호 (박현용 扮)
- 이순철 (이영진 扮)
- 송일섭 (한상준 扮)
- 김상길 (박시형 扮)
- 김정수 (최지훈 扮)
- 차동철 (박성하 扮)
- 문희수 (이성수 扮)
- 박철우 (김성훈 扮)
- 김준환 (이규섭 扮)
- 김봉연 (김지만 扮)
- 차영화 (최용규 扮)
- 이건열 (신우민 扮)
- 신동수 (김중돈 扮)
5.4. 그 외
- 민경 (현쥬니 扮)
김서형의 친구이자 롯데의 열성팬.
- 강성태 (김영민 扮)
김서형의 선배 기자.
- 현수 부(강 감독) (최일화 扮) (특별출연)
최동원과 김용철의 경남고 야구부 시절 은사. 동원과 동열의 맞대결을 앞두고 지병으로 사망한다.
다만 특별출연 여부와는 별개로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에게 있어서는 정신적으로 절대적인 지주로 평가받는다. 강 감독 사후 '최동원이는 감독님이 돌아가셨는데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며 단원들이 입을 모아 비난하기도 했고[4] 이후 어깨 상태가 안좋아진 최동원이 김용철을 불러 '놀 시간에 공 하나라도 더 던지고 운동장 한 바퀴라도 더 뛰어야 한다고 하더라' 라고 하자 김용철이 '누가 그따위 엿 같은 소리를 지껄이더냐' 며 쌍욕을 퍼붓는데 돌아가신 강 감독님이(그러시더라) 라고 하여 순식간에 데꿀멍해버린 것은 덤이다.
- 최 부장 (이병준 扮) (특별출연)
스포츠지 편집장. 서형, 성태에게 특종을 독촉하며 성질을 부린다.
- 해설자 (오정세 扮) (우정출연)
- 캐스터 (최원영 扮) (우정출연)
- 칠구 (박서준 扮)
사우나에서 광주 사람임에도 최동원의 우세를 점친다. 이후 홈런 장면 등에서 관중으로 얼굴을 내비친다. 출연분량 1분 내외의 단역. 엔딩크레딧에는 본명인 박용규로 기재되어 있다.
- 의사(고세원 扮)
최동원의 죽마고우이자 주치의.
- 만수 처(이선진 扮)
6. 사실과 비교
일각에서 '이 영화에서 제대로 된 사실성은 해태와 롯데가 연장 15회 끝에 무승부 했다라는 경기 결과 뿐이다'라는 평도 할 정도로 실제와는 다르게 각색된 부분이 꽤나 많은 편이다.
- 오프닝에서 최동원의
김용철, 선동열의 응원 버프를 받은캐나다전 호투로 한국이 1981년 인터컨티넨탈컵을 우승했다고 나오는데, 한국은 대회 4강전에서 천적 쿠바의 벽을 넘지 못하고 4위에 그쳤으며, 당시 김용철은 같은 포지션인 김용희에게 밀려 대회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 작중 최동원과 김용철이 사이가 나빠 티격태격하다가 후반부 가서 뭉치는걸로 묘사되는데, 실제론 사이 좋았다고 한다.[6] 김용철 본인도 영화를 본 후 최동원, 선동열이 주연인 영화니 어느정도의 각색은 이해한다면서도 자긴 실제 성격은 얌전한 편인데 영화에선 너무 다혈질로 묘사되었다고 웃기도 했다. 또 영화에선 둘이 고등학교 동창생으로 나오는데 실제와 다르다. 김용철은 1957년, 최동원은 1958년 생으로 김용철이 1살 더 많다. 그리고 최동원은 경남고-연세대 출신으로 졸업 후 실업 야구 팀인 롯데 자이언트를 거쳐 198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고, 김용철은 부산상고 졸업 후 한일은행에 입단해 1982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원년 멤버이다.
- 예고편에서 "최동원이는 한물 갔지" 라는 말이 나오는데 실제 최동원은 1987년에 이닝 2위, 다승 4위, 탈삼진 1위를 기록하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최전성기보다는 못하지만 하락세로 불릴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
- 영화에서는 5회 초 해태가 1점, 6회 말 롯데가 2점을 낸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롯데가 2회 말 먼저 2점을 내고, 해태가 3회 초 1점을 내고 9회까지 이어졌다. 또한 영화에서는 홈런이 나오지만 실제 경기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두 팀간에 벤치 클리어링도 없었다.
- 당시 해태의 선발 포수로 장채근이 나오는데, 실제로는 김무종이 선발출장했다가 대주자 이순철로 교체됐고, 장채근이 대수비로 나왔다가 9회 공격에서 다시 대타 김일환으로 교체되었다. 이후 2루수 백인호가 포수로 포지션을 변경해 15회까지 간다.
- 극중에서 롯데의 정영기, 홍문종 선수가 부산 방언을 구사하는데, 정영기는 대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고, 홍문종은 한국어가 서투른 재일동포 2세여서 부산 방언을 구사하지 않았다.
- 선동열은 180cm대 중반의 당시 프로야구에선 큰 키에 어깨도 떡 벌어진 선수였다. 그에 비해서 선동열 배역을 맡은 양동근은 체구가 큰 편은 아니다. 또한 김응용 감독은 별명이
킬끼리코끼리였을 정도로 190cm에 육박하는 거구의 소유자였으나, 김 감독 역의 손병호는 작은 체구의 소유자이다. 또한 김응용 감독 캐릭터가 상당히 젠틀하게 묘사되는데 실제 야구팬들이 생각하는 김응용 감독의 이미지는 좀 더 저돌적인 편이라 재현이 아쉽다는 평가도 있었다.
- 극중에서 롯데 팬들이 저지른 것으로 묘사되는 해태 타이거즈 버스 방화 사건은 사실 1986년 10월 22일 한국시리즈 3차전 대구경기에서 삼성 팬들이 불태운 것이다. 이 영화 때문에 해태 버스를 롯데팬들이 방화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 1987년의 3번째 맞대결에서 9회 동점 홈런의 주인공으로 나온 해태의 후보포수 박만수는 영화 속의 가공인물이다. 실제 경기에서 최동원이 9회에 동점을 허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김일환이라는 좌타자에게 2루타를 맞은 것이었다. 이 가공인물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두 주인공에 대한 주목도가 옅어졌다는 평가가 있다.
- 선동열과 최동원이 경기 후반 터진 손가락에 접착제를 발라 붙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몹시 무리인 장면이다. 영화 개봉 당시 삼성 정현욱은 "말이 안 된다. 투수는 손가락에 물집만 잡혀도 엄청나게 쓰라려서 던지는 게 쉽지 않다. 그 정도로 살이 들렸는데 본드로 붙이고 던진다는 건 비현실적이다."라고 지적하였다.
- 실제 3번째 두 사람의 대결 경기는 낮 경기였다. 경기 종료시에도 아직 해가 쨍쨍한 걸 볼 수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스탠드가 환한 밤에 경기가 끝난 것으로 묘사가 되어 있다. 낮 경기보다는 밤 경기가 극적인 표현을 위해 유리하기 때문에 이렇게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 미즈노의 과도한 PPL로 인해 유니폼은 물론이고, 야구공, 글러브와 배트, 광고판에 이르기까지 미즈노 로고가 지나치게 많이 노출되어 불쾌했다는 평가가 있다. 당시 유니폼 상의에는 제조사의 로고가 붙어있지 않았고, 바지에 리뉴얼 이전의 '빅엠 마크'가 붙어 있을 뿐이었다.
- 실존 선수들에 대한 섬세하지 못한 재현도 야구팬들에게 아쉬움을 자아냈다. 롯데의 홍문종과 김민호는 왼손잡이인데 극중에서는 왼손에 글러브를 낀 채 공을 잡고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해태의 한대화는 당시에도 안경잡이로 유명했는데 안경을 안 쓰고 타격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 영화 속 상당수 선수들의 바지 밑단이 스파이크 위까지 내려와 있는데 실제 그 시절 선수들은 모두 양말을 종아리까지 올려 신은 하이 삭스(농군 패션)를 하고 있었다.
- 영화 속 롯데 유니폼 상의 우측 팔에는 GIANTS, 좌측 팔에 BUSAN이라는 패치가 보인다. 그러나 유니폼의 연고지역 패치는 지역 감정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1986년에 사라졌기 때문에 1987년 경기 당시 우측 팔에는 LOTTE 좌측 팔에는 GIANTS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또한 86년 이전에는 당시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라 PUSAN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 영화 속 해태 유니폼 디자인은 1985년까지 쓰이던 디자인이다. 1986년부터 해태 글자의 모양이 바뀐 유니폼이 사용되었다.
- 영화 초반 1981년 시점, 캐나다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이긴 뒤 한국 대표팀이 귀국하는 비행기가 대한항공의 푸른색 도장을 하고 있는데, 1981년 당시 대한항공의 비행기는 푸른색 도장이 아니라 하얀색 도장을 하고 있었다. 푸른색 도장으로 바뀐 건 한참 후인 1984년이다.
- 작중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일부러 영호남 갈등을 위해 선동열과 최동원의 매치업을 부추기는 역할의 비서실장은 당시 박영수 비서실장을 모티브로 한 것 같은데, 박영수는 실제 88 서울올림픽 조직위 부위원장에 아시안게임 집행위원, 근대 5종 협회 회장 역임 등 오히려 스포츠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고, 당시에는 언플 같은걸 할 필요도 없이 그냥 야구 열기가 알아서 불타던 시절이었다. 두 영웅의 대결이 정치권의 농간이라는 장치로 만든 감독의 연출인데, 영화적 각색으로 보는게 맞을 듯 싶다. 헌데 이 경기 1달 후 6월 항쟁이 터진걸 생각하면 시기가 묘하긴 하다.
- 최정원이 연기한 여기자 캐릭터는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다. 프로야구 현장에 여기자가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이후였다. 더구나 여기자가 수시로 탈의하는 라커룸 등 선수 전용 공간에 출입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금기 사항이다.
7. 평가
IMDb |
평점 7.0/10 |
레터박스 |
사용자 평균 별점 없음 / 5.0 |
Mtime |
네티즌 평균 별점 6.9/10.0 |
왓챠 |
사용자 평균 별점 3.4 / 5.0 |
네이버 영화 | ||
기자, 평론가 평점 6.78/10 | 관람객 평점 없음/10 | 네티즌 평점 8.93/10 |
다음 영화 | |
기자/평론가 평점 6.7 / 10 | 네티즌 평점 8.8 / 10 |
★★★☆ 조승우는 이렇게 메이저리그로 올라서고 -김도훈- ★★★ 나도 조승우의 공을 한번 받아보고 싶다 -김성훈- ★★★ 스포츠 영웅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안다 -이동진- ★★★☆ 모든 걸로 시작해 조승우로 귀결 -이화정- ★★★☆ 조승우의 퍼펙트 게임 -장영엽- ★★★☆ <나는 갈매기> <투혼>에 이어 롯데의 ‘롯데 3부작’ 완결판 -주성철- |
특히 조승우는 지금 한국에서 그를 따라잡을 만한 30대 배우는 없다는 걸 결연하게 증명한다.
-김도훈 | <씨네21> 기자-
-김도훈 | <씨네21> 기자-
최동원 역할을 맡은 조승우는, 이 영화가 레전드를 부활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 선동열 역의 양동근이 지닌 든든한 존재감도 훈훈하다.
-김형석 | 영화 저널리스트-
-김형석 | 영화 저널리스트-
특히 빙의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최동원 역의 조승우 연기는 후반으로 갈 수록 정점에 달한다.
-이화정 | <씨네21> 기자-
-이화정 | <씨네21> 기자-
7.1. 관람객 평
▲ 최동원과 조승우의 비교 | ▲ 조승우의 투구폼 |
김용철을 개그 캐릭터로 잡은 나머지 실제 인물과는 지나치게 거리가 멀어졌다는 의견도 있다. 심지어 작중 중후반부 가선 최동원과 화해하고 멋진 사나이가 되지만, 초반부 최동원의 인기를 질투하고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김용철의 찌질한 연출은 김용철이 감독 고소해도 된다는 농반진반 소리가 나올 정도. 김용철 본인은 좋은 의미에서 기꺼이 이름을 빌려줬는데 그런 식으로 묘사되었으니 당혹스럽기도 했을 듯. 다만 항목에도 있듯 김용철 위원은 영화니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실제 자기 성격은 얌전한 편인데 너무 다혈질로 묘사한건 좀 씁쓸했다는 표현도 했다.
야구 경기의 묘사에서 투구나 템포, 수비모션 등이 상당히 과장되어 있어 마치 만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는 평도 있다. 혹자는 80년대 프로야구가 아니라 무슨 2020 로봇야구를 보는 느낌이라고 했을 정도. 클라이막스 연출이 촌스럽고 대사가 너무 열혈 스포츠물 같다는 평가도 있었다. 모션은 다소 어설펐을지언정 80년대 프로야구를 보는 느낌을 잘 살려냈던 슈퍼스타 감사용과 비교되는 지점이었다는 것.
최동원과 선동열이란 당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들이 벌였던 명승부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소재였는데, 스포츠 영화에 굳이 영호남 지역감정 대결로 확대 해석하는 시각을 대놓고 집어넣는건 부자연스러웠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영화 중 청와대 비서실이 1987년 6월 항쟁 직전 시기의 민주화 열기로부터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고 지역감정을 유발하여 전라도와 경상도의 민주화세력을 분열시키기 위해 두 선수의 맞대결이 성사되도록 조종하려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8]
8. 흥행
손익분기점이 240만이지만 한참 못 미치는 전국 150만 3,553명이라는 기대 이하 성적을 기록해 야구영화는 안 된다라는 한국 영화계의 속설을 또다시 입증했다.[9] 슈퍼스타 감사용(전국 84만 관객), 스카우트(전국 31만 관객)같은 종전 한국 야구영화보단 그나마 선전했다는 소리가 나오긴 하지만, 2011년작 영화 글러브의 188만 관객도 넘어서지 못했다.흥행실패에 관해, 소재가 나빴던 것은 아니나 문제는 배급사의 판단 착오라는 평이 있다. 한국 영화 시장의 흐름상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의 영화티켓 주도권은 여성관객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 게다가 마이웨이와 대놓고 같은 시기에 붙여버린 것도 자폭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개봉 시기를 앞당겨서 야구 열기가 살아 있는 11월이나, 그것도 아니라면 다음 시즌이 시작되는 4월에 개봉했다면 성적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개봉 2주차인 2011년 12월 28일, 제작사에서 보도자료를 통해 CGV가 계열사인 CJ E&M이 배급하는 마이웨이와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상영관을 확대하기 위해 퐁당퐁당 상영으로 퍼펙트게임을 홀대하고 있다고 CGV를 비판하고 나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관련기사1 관련기사2
9. 기타
- 최동원의 은사인 강 감독의 유품으로 [ruby(일구일생 일구일사, ruby=一球一生 一球一死)] 이 적혀진 족자가 등장한다. 공 하나에 살고, 공 하나에 죽는다는 뜻.
영화의 배경이 부산광역시인 만큼 촬영하다 보니 부산에 있는 서예가에게 소품을 부탁하였는데 소품비에 관해서 물어보자 "마, 내도 부산사람인데 최동원이 팬 아닙니꺼, 영화표나 넉넉히 보내주소" 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서예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一 자가 4번 반복되고 球자도 2번 반복되어 단조롭게 보이기 쉬운 글귀이나 一자를 매번 다르게 변화를 주고 球자도 변화를 주어 단조로움을 최대한 없애려 노력했고 매 글자마다 먹물을 묻혀 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갈필(마른 붓으로 쓴듯한 글씨)을 내면서 쓴 수준 높은 작품이다.
- 영화의 크레딧에 배우 김윤석이 '조승우 사투리 감수' 역할로 기재되어 있다. 최동원 연기를 준비하던 조승우가 타짜를 통해 친분이 있던 김윤석을 찾아가 부산 사투리 지도를 받고 읽어주는 대본을 그대로 녹음해 연습했다고 한다.
- 대선배들의 경기를 다룬 영화이다 보니 야구선수들도 이 영화를 많이 봤는데, 무명 야구선수로 등장하는 마동석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도 많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유명선수보단 무명선수들이 더 많은데다 현실 동료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 감정이입되는 것도 있었을듯.
[1] 상영 후의 엔딩 크레딧에서도 최동원을 추모하는 문구가 나왔다.[2] 참고로 강상수는 1987년 당시 고등학교 1학년으로 입단하기 전이었다.[3] 선동열이 만수의 타격 연습을 보며 파워풀하다고 감탄하는 장면이 있다.[4] 이때 최동원은 다른 선수들보다 먼저 장례식에 참석했고 강 감독의 영안실을 제일 좋은 장소로 옮겨준 것은 물론 장례 음식도 최고 수준으로 바꿔주고 돌아갔다.[5] 실제로 최동원에게 패배를 이유로 빠따질을 했던 사람이 있다. 다름 아닌 박철순. 다만 국가대표가 아닌 대학 경기였고, 이 일로 최동원은 허리가 망가져 긴 시간 요양했으며 박철순 역시 국가대표 에이스의 선수인생을 끝장낼뻔한 책임을 지고 미국으로 건너간다.[6] 심지어 김용철은 최동원이 1980년대 말 선수회 관련으로 구단에 탄압받는 와중에도 끝까지 구단의 탈퇴 각서를 거부하며 싸웠고, 둘 다 보복 성격이 강한 트레이드에 의해 이듬해 삼성으로 이적했을 정도로 의리가 있는 사나이였다. 물론 작중에서도 후반부 이후부턴 사이가 좋아지긴 한다만.[7] 참고로 양동근 또한 만반의 준비를 거쳐 선동열의 투구폼까지 완벽하게 재현해내려 했으나 이를 최동원과 조승우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선동열 본인이 막았다고 한다. 보통 유연한 신체나 운동을 해온 사람이 아니라면 몸이 상한다는 이유였다. 다만 그럼에도 누구 하나 그것을 옥에 티로 잡지는 않았다. 배우의 연기력으로 커버한 셈.[8] 프로야구 출범 당시 5공 정권은 지역감정 유발을 우려하여 지역연고제에 난색을 표했고, 흥행을 위해 지역연고제 도입을 주장한 것은 야구계였다는 의견이 있다. 프로야구를 출범시킨 이유가 '건전한 여가'를 통해 정치에 대한 관심을 줄여보려던 정책의 일환이기도 했고, 광주시민들의 집단행동을 우려해 아예 5월에는 광주에서 홈경기를 못하게까지 강제했던 것이 5공 정권이며, 심지어 프로축구의 경우 지역감정을 부추긴다며 1986시즌까지도 연고지 홈&어웨이 경기를 막을 정도였다는 것. 다만 정권의 속내와 무관하게 지역연고제는 그대로 진행되었고, 실제 6월 항쟁 직전 그런 양상이 있었던건 사실이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시위진압대조차 이 날만큼은 안테나 설치해 최동원, 선동열 경기를 보는 장면은 나름 인상적.[9]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화한 이장호의 외인구단이 서울관객 30만의 흥행을 했던 것이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