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의 소련 해군 함선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0px -11px" | 겨울전쟁 및 제2차 세계 대전 소련군의 해군 함선 | |
상륙함 | 볼린데르급RE | |
어뢰정 | Sh-4급, G-5급, D3급, PT 보트US | |
잠수정 / 함 | 슈카급, 칼레브급노획, M급, A급, L급, P급, S급, D급, K급, 로니스급노획, 바르스급, L급UK, S급UK, U급UK, 퀘벡급C | |
호위함 | 타코마급 호위함US | |
구축함 | 노빅급(데르즈키급, 오르페이급, 이쟈슬라프급, 피도니시급)RE, | |
기뢰전함 | 마르티급RE, 프로젝트 253L형 | |
순양함 | 키로프급, 막심 고리키급, 카가노비치급, | |
모니터함 | SB-37급(제례즈냐코프급), 하산급 | |
군수지원/구난함 | 콤무나RE | |
순양전함 | ||
전함 |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급RE, 아르한겔스크UK, | |
항공모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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Эскадренные миноносцы проекта 7У |
1. 제원
전장 | 112.5m |
전폭 | 10.2m |
흘수 | 4.2m |
기준배수량 | 1850t |
만재배수량 | 2400t |
항속거리 | 1400노티컬마일 |
기관 | GTZA-24 기어드 증기 터빈 2기, 60000마력(초기형 8척), 54000마력(후기형 10척), 2샤프트 |
속력 | 20노트(순항속도), 36노트(후기형 10척), 39.5노트(초기형 8척) |
무장 | 130mm 50구경장 B-13-2 함포 4문, 76mm 55구경장 34-K 단장 대공포 2문, 12.7mm DK/DShK 기관총 8정, 533mm 1-N 3연장 어뢰발사관 2기, BMB-1 폭뢰투하기, 기뢰 |
승조원 | 250명(장교 25명) |
총 생산량 | 18척 |
2. 개요
1938년부터 1940년까지 건조되어 2차대전 기간동안 활약한 소련 해군의 구축함. 통상적으로 스따라제보이(Сторожевой)[4]급 이라고도 불린다.3. 건조
당초 1938년 소련 해군의 현대화 계획인 5개년 계획을 잡던 소련은 이전부터 프로젝트 7형, 그네브니급 구축함을 이탈리아 안살도 사의 설계 지원을 받아 건조한 바 있으나 실전배치 이후 심각할 정도의 능파성 문제가 거론되어 생존성의 강화를 명제로 잡아 기존의 설계에서 기관동력에 대한 강화 및 선체 상부구조물 확대, 대공화기의 증설 등의 개량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이것이 프로젝트 7U형 구축함의 시작이 된다.하지만 근본적인 설계 개선에 대한 논의는 진행되지 못해 7형 구축함의 설계를 사실상 그대로 답습하였고 이로 인해 생기게 된 결함은 실제 시험항해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초도함인 스따라제보이의 시험항해 결과 예상을 밑도는 최악의 능파성을 가졌다는 것이 밝혀졌는데 이는 함 자체의 불균형이 원인이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기존 설계보다 훨씬 더 선체가 커질 필요가 있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7U형 구축함의 건조는 본래 실전배치되기로 했던 것보다 근 3년의 기간이 늦추어질 수 밖에 없었던데다 독소전쟁의 발발로 예산은 더 삭감되어 총 건조수량은 18척에 그치게 되었다.[5] 왜 저렇게 능파성 및 항해 안정성이 나쁜가 하면 바로 이전에 건조한 프로젝트 7형이 이탈리아의 마에스트랄레급 구축함을 기반으로 하는데 이는 이전에 건조한 다르도급 구축함이나 폴고레급 구축함보다 크게 만들어 안정성을 늘린 형태인데 소련이 여기서 자체적 개량을 하면서 기술부족인지 안정성이 확 나빠진 것. 이걸 개량해볼려는 시도가 7U형인데, 소련은 이탈리아와 다르게 빠르게 원인을 찾는게 힘들었고(경험이 모자르니...) 배우는 입장이다보니까 자체적 개량을 한 것은 좋은데 스페인 내전 발발 이후 기술협력을 일반적으로 단절했고 이탓에 문제의 원인을 찾고 싶어도 선생은 이제 없고 혼자서 뭔가 해야하다 보니 더더욱 일이 꼬이게 된것.
초도함 스따라제보이부터 8번함까지는 신형 기관배치가 이루어져 최고속도는 39.5노트에 달할 정도로 상당한 고속이었으나 9번함인 사브라지텔늬부터는 전통 방식의 추진체계를 사용해 후기형 함선의 속력이 더 느려졌다.
1943년 이후 동부전선의 전황이 나아지며 프로젝트 7U형 구축함들에 대한 소폭 개량점이 추가되었는데, 45mm 반자동 대공포를 37mm 기관포로 교체하는 개조가 실시되었으며 1944년부터 1945년까지 레이더가 설치되며 초도함들 중 일부는 영국에서 도입한 Type 291 레이더와 Type 284 사격통제장치가 추가되었다.
4. 실전
기존의 1차대전 및 러시아 제국 시절(...)[6][7]에 건조된 구식 구축함들에 비해 어찌됐든 확실한 최신형 구축함이었으며 스펙상으로는 2차대전기 주요 해군 국가들의 구축함들과 비교해 부족한 점은 없었다. 무장 배치도 2차대전의 교리에 맞게 배치되고 그 당시 기준으로도 현대적 무장을 제대로 갖춰 전투력도 우수했다.주요 무장인 130mm B-13-2함포는 소련 해군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된 함포로서 양용포로서의 기능은 없으나 이 구경대의 다른 소련시기 함포들이 으레 그렇듯 대공포탄 자체는 마련되어 있었으며 사정거리 27km에 분당 5발에서 12발의 사격속도를 가져 호평을 받아 2차대전기 소련 해군 구축함의 주요 함포무장이자 순양함들의 부포로서 애용되고 심지어 소련 육군에서도 SU-100Y의 주포로서 채택되기도 했다.[8] 어뢰 역시도 53-38, 53-39로 대표되는 최고속도 44~50노트의 고속과 36노트 항주시 최대 10km의 항주거리를 가져 세계 평균의 성능은 가지고 있었다. 전급인 프로젝트 7형 구축함들과 마찬가지로 2차대전 기간 중 소련 해군에 실전 배치되어 있던 57척의 구축함들 중 단연 한 축을 담당하며 활약했다.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프로젝트 7U형 구축함들은 발트해와 흑해 일대에서 독일군의 공세를 맞아 지상 포격지원, 호위, 대잠, 물자 및 병력 지원, 상륙작전 등의 임무에 투입되었다.
단 제대로 된 함대전을 수행한 적은 없었는데 이는 바르바로사 작전 전개 이전부터 영국 해군과 치고받으면서 상당수의 독일 수상함대 전력이 약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독일 함대와 조우를 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 흑해까지 독일이나 이탈리아 해군 수상함대가 올 턱이 없었던데다(...) 독소전쟁 초창기의 밀리고 밀리던 당시 소련의 상황에 맞물려 안그래도 절박한 상황에 독일 함대를 찾아다니면서 함대전을 벌였을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9] 또한 독일군은 소련 해군의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상당량의 기뢰를 부설했고 이 때문에 적극적인 활동이 힘들었던 것도 있다.
2차대전 기간 동안 총 18척의 프로젝트 7U형 구축함들 중 4척이 독일군이 부설한 기뢰에 접촉해 침몰하였고 3척이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침몰하였으며 1척이 독일 육군의 포격을 당해 세바스토폴 항내에 침몰했다. 또한 악천후 등으로 침몰한 두척까지 합해 2차대전 종전까지 총 9척이 생존했다.
2척이 상당한 활약을 보여 소련 해군의 친위함 칭호를 받았는데 3번함 스토이키(Стойкий)함은 발트 함대 소속으로 강구트 요새 지원작전, 크론슈타트 섬과 헬구르트 섬을 왕복하며 병력 및 물자 지원을 담당하였고 수송선단 호위 작전 및 순양함의 호위 임무에 동원되어 전공을 세워 프로젝트 7U형 구축함들 중 최초로 친위 칭호를 수여받기에 이르렀다. 이후 스토이키 함은 전사한 해군 제독 발렌틴 드로즈드의 이름을 따 아드미랄 드로즈드로 함명이 바뀌게 된다.
또한 9번함 사브라지텔늬(Сообразительный)함은 흑해 함대에 배치되어 오데사 방어전 및 세바스토폴 공방전에 투입되어 소련 육군에게 직접적인 함포 사격지원을 하거나 수송, 퇴각 작전등에 투입되어 전공을 세워 2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친위 칭호를 수여받았다.
2차대전 종전 이후 1958년부터 1966년까지 퇴역 절차가 이루어져 사격 표적함으로 임무가 전환되었다.
5. 자매함
발트 함대 소속 함정함명 | 조선소 | 실전배치일 | 경력 |
Сильный (강함) | 레닌그라드 190번 즈다노프 조선소 | 1941년 4월 12일 | 독소전쟁 개전 후 퇴각 작전에 투입. 이후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지상군 포격지원 및 방공 임무에서 활약. 1959년 2월 29일 사격 연습표적함 TsL-43으로 개명 및 임무 전환. 1960년 1월 21일 탈린에서 매각 후 해체. |
Сторожевой (친위) | 레닌그라드 190번 즈다노프 조선소 | 1941년 4월 12일 | 1941년 6월 27일 기뢰부설 작전중 독일 해군 어뢰정 E-보트 S.31정과의 교전, 뇌격으로 함수가 절단되는 피해를 입음. 이후 레닌그라드의 크론슈타트 섬 해군기지 드라이 독에서 건조중이던 오그네보이급 구축함의 선수를 이용해 긴급 수리. 1942년 5월 24일 독일 공군의 폭격으로 손상. 이후 전방 1.2번 포탑 2기를 철거 후 2연장포 1기로 교체후 1943년 재취역. 1956년 2월경 훈련함으로 임무 전환 후 1958년에서 59년경 해체. |
Сердитый (분노) | 레닌그라드 190번 즈다노프 조선소 | 1941년 4월 12일 | 1941년 7월 19일 문 해역에서 독일 공군 Ju 88 폭격기의 폭격으로 침몰. 1949년에서 52년까지 인양 후 해체. |
Славный (영광스러운) | 레닌그라드 189번 발티스크 공장 | 1941년 5월 31일 | 1941년 7월 탈린 방어전 및 발트해 해역에서 활약 및 활동. 퇴역 후 1960년경 사격훈련용 연습표적함으로 임무 전환, 1964년경 해체. |
Смелый (용감한) | 레닌그라드 189번 발티스크 공장 | 1941년 5월 31일 | 1941년 7월 27일 이르벤 수로에서 독일군이 부설한 기뢰에 접촉, 아군 어뢰정 TKA-27정에게 뇌격으로 처분. |
Стойкий (확고한) | 레닌그라드 190번 즈다노프 조선소 | 1941년 4월 12일 | 개전 후 강구트 요새 지원작전, 레닌그라드 공방전, 수송선단 호위 임무, 순양함 호위임무 등에 투입. 1943년 2월 13일 드로즈드 제독(Вице-адмирал Дрозд)으로 개명. 1960년경 사격훈련용 연습표적함 TsL-54로 임무 전환. 1960년 7월 2일 타란 곶 인근에서 폭풍으로 침몰. |
6. 미디어에서의 등장
- SD엔터넷에서 운영하는 2차 세계 대전 해상전 게임 네이비필드에서 소련으로 전직할 시 탑승할수 있는 1차 구축함으로 등장. 1차 디디들 중 위력적인 뇌격능력과 속력을 자랑한다. 꼴랑 12렙짜리 구축함이 쓰는 어뢰 주제에 안전거리 10미터에 어뢰속도 63노트(!!!)는 가히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충격과 공포. 하지만 일본의 시마카제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어뢰 특화 구축함인
뢰레닌그라드의 뇌격능력에 묻히고 쪼렙 구축함의 특성상 느낄 새도 없이 졸업한다는 것이 함정. 함포무장 다 떼버리고 빠른 속력을 이용해 초근접에서 어뢰를 갈궈주고 튀자.
- 잠수함 시뮬레이션 게임 사일런트 헌터 3에서도 등장. 주로 흑해나 발트해 인근에서 수송선단을 호위하거나 항구에서 정박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타 구축함들이 다 그렇지만 발각당하면 지옥맛을 볼수 있으니 주의.
- 모바일 게임 벽람항로에서 소브라지텔니, 스비레피 등장
7. 관련 문서
[1] 프로젝트 7U형 구축함 9번함 사브라지텔늬(Сообразительный), 1943년[2] 1943년 이후 철거[3] 45mm 대공포에서 교체된 장비[4] 러시아어로 '친위'라는 뜻이며 '스토로제보이'가 아니다. 강세가 마지막 o에 오므로 첫번째 및 두번째 o는 'ㅏ' 로 발음해야 한다.[5] 하지만 개량을 하고서도 항해성능이 무지 나쁜 축에 속했기에, 소련 해군 수병들은 개량형이라는 의미의 뒷글자 U를 비틀어 ухудшенный, 개악형이라고 부르며 깠다.토할거 같습니다 동무[6] 흔히 기억하는 러시아 제국시절의 막강 함대라는 것은 일본과의 전쟁이나 10월 혁명, 적백내전 등의 혼란기로 인해 소련 초창기에는 사실상의 막장 상황에 빠져있었고 해군 현대화 계획은 부차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7] 사실 이런 구식 군함들이 2차대전기까지 사용된 사례는 비단 소련 해군만의 문제는 아니었고 이는 대공황의 영향을 받은 미 해군이나 영국 해군도 마찬가지였다.[8] 하지만 SU-100Y는 프로토타입 설계로 그치게 된다.[9] 하지만 제한적으로 독일군의 어뢰정 등의 소형 선박과의 교전사례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