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00000><tablebgcolor=#000000> | 치바 롯데 마린즈 역대 1라운드 지명선수 |
핫토리 야스타카 服部泰卓/Yasutaka Hattori | |
생년월일 | 1982년 9월 10일 ([age(1982-09-10)]세) |
출신지 | 도쿠시마현 미마시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좌투좌타 |
학력 | 카와시마고교 - 코마자와대학 |
프로입단 | 2007년 NPB 대학생ㆍ사회인 드래프트 1라운드[1] |
소속팀 | 토요타 자동차(2005~2007)[2] 치바 롯데 마린즈 (2008~2015) |
등장곡 | 強 - カーテンコール |
1. 개요
일본의 전직 야구선수이자 현 야구해설가.2. 선수 경력
고등학교 1학년부터 벤치에 들어갔으나 팔꿈치 부상으로 1년을 날렸다. 3학년 때는 봄 대회에서 도쿠시마현 4강까지 올라갔으나 아타케 사토시[3]가 이끄는 토쿠시마상업고교에게 패하며 탈락했다.코마자와 대학 진학 후에는 에이스 투수로 활동하였으나 2학년 때 춘계리그에서 에구사 히로타카[4]의 센슈대학에게 패하는 바람에 2부리그로 강등되기도 하였다. 다행히도 동년 바로 1부리그 복귀. 토토대학 리그에서 4학년 때는 베스트나인도 차지했다. 대학 통산 성적은 40경기 11승 7패에 ERA 2.04, 110K였다. 대학교 당시 라인업이 매우 쟁쟁했던 게 소요기 에이신, 아라이 료타, 오오시마 요헤이 등이 선후배로 있었다.
대학 졸업 이후 토요타 자동차에 입사, 도시대항전 예선 전 경기 선발출장을 하는 등 핵심투수로 활약하였고 3년차인 2007년에는 도시대항전 완봉승(심지어 이날 상대팀은 홈은 커녕 3루를 밟지도 못했다.), 사회인야구 일본선수권 3경기 완투숭, 사회인야구 공식전 19승 1패 등 어마어마한 성적을 거두고 사회인야구 베스트나인으로 선정되었다. 사회인야구 선수를 주축으로 구성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야구 일본 대표팀에도 선발되어[5] 한국 대표팀의 도하 참사를 지켜보기도 했다. 이후 드래프트에서는 오바 쇼타의 지명에 실패한 야쿠르트, 하세베 코헤이의 지명에 실패한 세이부, 롯데가 하즈레로 중복지명을 했다.[6] 결국 교섭권을 뽑은 롯데로 입단.[7]
2.1.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대졸사회인인데다가 사회인야구에서 1년을 더 보냈기 때문에 당연히 즉전감으로 꼽혔으나 2군에서 6점대를 찍으며 제대로 부진하면서 대졸사회인임에도 불구하고 데뷔 3년차까지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데뷔 3년차인 2010년과 4년차인 2011년에도 10경기도 못 나왔고, 나올 때마다 얻어맞으면서 ERA는 10점대였다. 그 덕분에 2012년에는 2군에서도 ERA 4점대로 부진하면서 또 다시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사실 대졸사회인이 이 수준이면 보통은 서른까지 프로에 있지도 못하고 2~3년 만에 칼같이 방출당하는데 1라운더라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2013년에는 드디어 개막전을 1군에서 맞이했고, 어찌어찌 원 포인트로 활약하면서 시즌 50경기 등판과 20홀드를 기록하였다. ERA도 3.38로 엄청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써 먹을 정도였다. 또한 시즌 내내 피홈런이 1개라는 점도 고무적.
그러나 2013년의 활약은 플루크에 불과했다. 2014년에는 다시 이전의 핫토리로 돌아가 ERA 8점대로 매우 좋지 않았고 2015년에는 1군 기록 없이 2군에서 33경기에 등판하여 ERA 4.91로 2군에서도 털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2015년을 끝으로 방출당하면서 또 실패한 1라운더가 되었다.
3. 은퇴 이후
대학 선배의 지인인 보험사 사장을 소개받아 보험판매원으로 일하다가 2022년에는 독립리그인 BC리그 소속 사이타마 무사시 히트 베어스 담당 야구해설가로 부임했다. 또한 보험판매원 생활과 야구선수 경력을 토대로 후배 야구선수들의 자산 컨설팅도 하고 있다.4. 플레이 스타일
패스트볼 최고구속은 139km/h에 평균구속은 133km/h였던 좌완 피네스 피쳐. 유인구도 잘 던졌고 제구와 경기 운영 능력이 발군이었다고 하지만, 패스트볼은 심각하게 느린데다가 구위까지도 깃털이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유희관보다 조금 빠른 수준인데 구위까지 빵점이었으니 프로에서 1시즌이라도 밥값을 한 게 기적인 수준이다.같은 팀의 포수였고 현재는 야구해설가인 사토자키 토모야는 핫토리는 처음 봤을땐 정말 좋은 투수라고 생각했으나, 패스트볼을 던지는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사토자키의 말에 의하면 패스트볼에 힘이 너무 없어서 냉정하게 프로에서는 안 통하고, 딱 사회인야구가 한계였다고 말했다. 다만 그래도 자기 방송에서 B급은 되었다고 평가했다.
5. 여담
- 이시카와 아유무보고 수염을 길러보라고 했던 선배가 바로 이 사람이다.
[1] 3구단 중복지명이며 오바 쇼타의 지명에 실패한 야쿠르트, 하세베 코헤이의 지명에 실패한 세이부, 롯데가 경합하였다. 즉 하즈레.[2] 사회인야구 기업팀.[3] 고교 때는 에이스 투수였으나 고교 졸업 이후 야구를 접고 경륜 선수로 전향하여 현재도 현역이다.[4] 핫토리보다 두 살 연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희망입단프레임으로 한신에 입단. 프로에서는 A급은 아니었지만 5년 정도 핵심 불펜으로 뛰면서 한신, 히로시마, 세이부 세 팀을 거쳤다. 또한 2017년까지 뛰면서 핫토리보다 프로에 5년이나 빨리 가 놓고 은퇴는 2년 더 늦게 했다.[5] 이후 프로에서 활약한 멤버로 드래프트 재수생 쵸노 히사요시,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 NPB 통산 홀드 기록 보유자가 된 미야니시 나오키, 프로에서 나름 선발투수로 몇 시즌 족적을 남긴 타카사키 켄타로나 코마츠 사토시 등이 있었다.[6] 오바는 소프트뱅크, 하세베는 라쿠텐이 뽑았다.[7] 롯데에게는 다행히 오바와 하세베도 핫토리랑 별 차이 없는 커리어를 찍었다. 1라운더란 이유로 꽤 오랫동안 생존왕 기믹을 보여준 것도 덤.(둘 다 2016년 은퇴. 하세베는 원클럽맨이었고 오바는 호크스에서 쭉 뛰다가 2015년에 방출된 후 주니치에서 1년 더 뛰고 은퇴했다.) 그래도 오바랑 하세베는 프로에서 선발이 가능했단 점, 일본시리즈 우승반지를 갖고 있단 점에서 핫토리보다는 나았다.(하세베는 2이닝 1실점 1패를 기록, 오바는 엔트리에만 있고 1경기도 못 나왔다.) 핫토리도 사실 2010년 일본시리즈에 나갈 수도 있었으나 본인이 워낙 못 해서 40인 엔트리조차도 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