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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쿠퍼

영국 기사 서임자 (남성)
British Kn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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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쿠퍼 경
Sir Henry Cooper

OBE KSG
출생 1934년 5월 3일
영국 런던 램버스
사망 2011년 5월 1일 (향년 76세)
영국 서리주 림프스필드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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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
전적
55전 40승(27KO) 14패(8KO) 1무
신장/리치 187cm / 191cm
체급 헤비급
스탠스 오소독스
링네임 Our 'Enry

1. 개요2. 전적3. 커리어4. 파이팅 스타일5. 여담

1. 개요

영국의 전 권투 선수.

2. 전적

  • 무승부: 하인츠 노이하우스

3. 커리어[1]

헨리 쿠퍼는 1934년 5월 3일 영국 런던 램버스에서 릴리와 헨리 쿠퍼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에게는 쌍둥이 형제 조지와 형 번이 있었다. 가족은 런던 남동부 팜스테드 로드에 거주하는 중산층이었으며, 아일랜드계 혼혈인 할아버지는 말 상인이었고 아버지는 '로열 아미'(Royal Army) 복무 경험이 있는 아마추어 복서였다. 1942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아버지가 버마(현 미얀마) 전선에 복무하기 위해 떠나면서 어머니 릴리와 세 아들만 남게 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헨리와 조지는 웨스트 서식스로 피난해 그곳 '애셀니 로드 스쿨'(Athelney Road School)에 다녔다. 이 시기 헨리는 신문 배달과 장작 패기 등 여러 허드렛일을 했다. 쌍둥이 형제 조지가 먼저 복싱을 시작했으며, 헨리는 이웃의 권유로 '벨링햄 복싱 클럽'(Bellingham Boxing Club)에서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마추어 경기에 출전하며 기량을 닦은 그는 '엘섬 복싱 클럽'(Eltham Boxing Club)에 합류해 총 84전 73승을 거두었고, 이 기간 두 차례 'ABA'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했다.

1952년, 헨리 쿠퍼는 당시 ABA 챔피언 자격으로 헬싱키 올림픽 라이트헤비급에 영국 대표로 출전했다. 그러나 2라운드에서 소련의 아나톨리 페트로프에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스플릿 판정으로 패했다.[2] 1952년 늦여름, 18세가 된 헨리와 조지 쌍둥이 형제는 '왕립 육군 병기대'(RAOC)에 함께 입대했다. 1953년 2월, 그는 영국 육군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같은 해, 1952년 민간인 신분으로 획득했던 ABA 라이트헤비급 타이틀 방어전에도 출전해, 결승에서 호주의 강타자 토니 마디건에게 판정승을 거두며 2연패를 달성했다.

'내셔널 서비스'(국가 복무)를 마친 뒤 그는 프로 복싱으로 전향했다. 1954년, 헨리는 전설적인 매니저 짐 윅스(Jim 'The Bishop' Wicks)의 지도를 받으며 해리 페인터를 상대로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헨리는 1라운드 시작 몇 분 만에 KO 펀치를 작렬시키며 승리했고, 그해 세 명의 상대를 더 꺾으며 전승을 기록했다. 1955년은 그의 프로 경력에 중요한 해였다. 그해 첫 몇 경기를 연달아 승리하며 전례 없는 명성을 얻었다. 비록 두 차례 패배를 겪기도 했지만, 그는 이미 유명인사로 대우받았다.

그러나 프로 경험을 충분히 쌓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타이틀 보유자에게 도전하는 등 경력 초반에 몇 차례 실수를 범했다. 1957년 2월, '영연방'(Commonwealth) 헤비급 챔피언 조 바이그레이브스에게 도전했다. 이전에 비타이틀전에서 그를 이긴 경험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KO 펀치를 맞고 패했다. 1957년 5월에는 유럽 헤비급 챔피언 잉게마르 요한손에게 도전했으나 또다시 KO로 무너졌다. 몇 달 후, 조 어스킨을 상대로 한 타이틀 도전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쿠퍼는 1958년 당시 세계 랭킹 2위 헤비급 복서였던 조라 폴리에게 판정승을 거두며 재기에 성공했다.

1959년 1월, 그는 브라이언 런던을 꺾고 영국 및 영연방 헤비급 챔피언십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하며 경력의 정점을 찍었다. 같은 해, 가위 드 클레르크를 상대로 영연방 헤비급 타이틀을 방어했고, 연말에는 전 챔피언 조 어스킨을 상대로 다시 한번 타이틀을 지켜냈다.

1961년 3월, 그는 조 어스킨을 상대로 영국 및 영연방 헤비급 타이틀을 다시 한번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1960년대 초, 그는 딕 리처드슨과 조 어스킨의 도전을 연달아 물리치며 타이틀을 유지했다. 1963년 6월, 헨리 쿠퍼는 소니 리스튼의 세계 타이틀 도전권을 놓고, 젊고 거침없는 미국인 복서 카시우스 클레이(훗날 무하마드 알리)와 맞붙었다. 클레이는 경기 전 "헨리 쿠퍼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다!", "저 따위 선수가 5라운드를 버티면 나는 30일간 미국에 돌아가지 않겠다"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이 경기는 영국 복싱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시합 중 하나로 남았다. 4라운드 종료 직전, 쿠퍼는 그의 전매특허인 왼손 훅을 클레이의 턱에 정확히 적중시켰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라운드 종료 몇 초 전이었고, 다음 라운드가 시작될 무렵 클레이는 이미 회복한 상태였다. 결국 5라운드, 쿠퍼의 안면 상처가 너무 심해져 레퍼리가 경기를 중단시켰다.

1964년 2월, 헨리는 기존 타이틀을 방어하는 동시에 브라이언 런던을 꺾고 유럽 헤비급 타이틀까지 차지하며 입지를 굳혔다. 3년 뒤인 1966년 5월 21일, 그는 하이버리 축구 스타디움에서 무하마드 알리와 세계 타이틀을 걸고 재대결했다. 초반 다소 밀렸던 쿠퍼는 다시 경기의 흐름을 가져오려 했으나, 알리는 특유의 잽과 크로스로 쿠퍼의 안면을 계속 공략했다. 쿠퍼는 6라운드에서 또다시 깊은 상처로 인해 경기를 포기해야 했다.

이후 쿠퍼는 1968년 칼 밀덴버거를 꺾고 유럽 타이틀을 되찾았고, 1970년에는 잭 보델과 15라운드 혈투를 벌인 끝에 승리하며 론스데일 벨트를 통산 세 번째로 획득했다. 스페인 챔피언 호세 우르타인을 상대로 유럽 타이틀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뒤, 1971년 그는 젊은 도전자 조 버그너와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이 경기는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판정 끝에 버그너의 승리로 돌아갔고, 이는 쿠퍼의 은퇴 경기가 되었다. 당시 주심이자 단독 채점관이었던 해리 깁스는 15라운드 총점에서 '0.25점 차'라는 지극히 근소한 차이로 조 버그너의 승리를 선언했다.[3] 이 판정으로 헨리는 영국, 영연방, 유럽 헤비급 타이틀을 모두 잃었다. 헨리는 이 경기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고 수년간 깁스 심판과 말을 섞지 않았다.

은퇴 후 그는 BBC 퀴즈 쇼 "A Question of Sport"에 출연하고 애프터셰이브 광고 모델로 활동하는 등 인기 있는 방송인이 되었다. 그는 BBC '올해의 스포츠 인물' 상을 두 번(1967년, 1970년) 수상했는데, 이는 단 세 명의 스포츠인만이 달성한 기록이었다. 2000년, 그는 복싱계와 자선 활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복서로서는 최초로 기사 작위(Knight)를 받았다.

헨리 쿠퍼는 오랜 지병을 앓다 2011년 5월 1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6세였다.

4. 파이팅 스타일

5. 여담

  • 왕립 육군 병기대(RAOC) 복무 시절, 헨리 쿠퍼는 군화(ammunition boots)를 신고 훈련하는 습관을 들였는데, 이 독특한 습관은 그의 프로 복싱 경력 내내 이어졌다.
  • 아내인 알비나 제네프리(Albina Genepri)는 이탈리아 태생이다. 두 사람은 1960년 1월 결혼했으며, 2008년 알비나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이들의 첫 만남은 런던 소호의 한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이루어졌는데, 당시 알비나는 그곳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었다.
  • 첫아들 헨리 마르코 쿠퍼(Henry Marco Cooper)는 1960년 12월에 태어났다. 쿠퍼는 아르헨티나의 강타자 알렉스 미테프(Alex Miteff)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바로 다음 날, 아들을 처음 안아볼 수 있었다.
  • 그의 쌍둥이 형제 조지(George)는 2010년에 세상을 떠났다.
  • 그는 비둘기 애호가로도 알려져 있으며, 켄트(Kent)에 있는 자택에서 경주용 비둘기 집을 두고 길렀다.
  • 수준급의 트럼펫 연주 실력을 가졌으며 여가 시간에 연주를 즐겼다.
  • 원예(정원 가꾸기)에 깊은 관심이 있어, 꽃과 채소를 기르며 정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 골프 실력도 뛰어났으며, 복싱 선수 시절에도 종종 친구들과 골프를 쳤다.


[1] 출처: https://olympics.com/en/athletes/henry-william-cooper, https://www.thefamouspeople.com/profiles/henry-cooper-17639.php, https://www.britishvintageboxing.com/pages/henry-cooper?srsltid=AfmBOoqxKcTu0c_kI4gAx1DpYLVoT8l-NUeN1wwVYKcJIU8v56fKNLhd[2] 당시 프랑스 심판은 쿠퍼의 승리를 선언했으나, 공산권 국가 출신의 다른 두 심판이 페트로프의 손을 들어주었다.[3] 이 0.25점 차이는 '포인트제(Points decision, PTS)' 판정의 결과이다. '포인트제'는 3인의 판정단(judging panel)이 아닌, 경기의 주심이 단독 채점관(sole arbiter)을 맡아 매 라운드를 채점하는 방식이다. 이 경기에서 주심 해리 깁스는 15라운드 총점을 73.75점(조 버그너) 대 73.5점(헨리 쿠퍼)으로 매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