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25 10:47:15

현의장성황후

파일:몽골 제국 및 원나라 문장 white.svg
원 황후
{{{#!wiki style="margin: 0px -10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5px"
세조 성종 무종
소예황후
남필 황후
대황후
탑랄해
노한
백요올진
활활륜
속가답사
정자정의황후
불루간
홀첩니
답랄마팔랄
선자혜성황후
속가실리
완자알
백홀적
인헌장성황후
문헌소성황후
인종 영종(英宗) 진종
장의자성황후
답리마실리
백안홀독
장정의성황후
아팔홀도로 이황후(二皇后)
타이지반 황후
바부칸 황후
팔불한
역련진팔랄
홀랄
야속
살답팔랄
복안겁리미실
실렬첩목아
철니
필한
속가답리
문종 명종 영종(寧宗)
복답실리 팔불사
정유휘성황후
안출한
월로사
불안홀로도
야소
탈홀사
아제리
답납야특미실
혜종 소종 천원제
다나시리 황후
백안홀도 옹기라트
보현숙성황후
목납실리 삼황후
보안홀도
오지하슨다리氏
권황후
김황후
-
추존
월륜태후 | 광헌익성황후 | 홀로륜 | 활리걸담 | 탈홀사 | 첩목륜 | 역련진팔랄 | 불안홀독 | 홀란 | 고야별속 | 역걸렬진 | 탈홀사 | 야수 | 홀로합랄 | 아실륜 | 독아합랄 | 찰합 | 아석미실 | 완자홀도 | 야속간 | 홀답한 | 합답안 | 알자홀사 | 연리 | 독해 | 모개 | 아복합 | 기국공주 | 올걸욱진 | 소단 | 별토출미실 황백비 | 야속륜 황백비 | 현의장성황후 | 패랄합진 대황후 | 양회 | 홀첩니 | 탈렬가나 | 해미실 | 내만진 | 정절황후 | 야속아 | 독특미 | 출비 | 이키레스 | 명리홀도로 화라차 | 소헌원성황후
원 황제 }}}}}}}}}}}}


莊獻聖太后
(1190 ~ 1252)


1. 개요2. 생애3. 둘러보기

1. 개요

몽골 제국의 황족이자 추존황후. 예종의 아내이며, 뭉케, 쿠빌라이, 훌레구, 아릭 부케의 어머니이다. 이름은 소르칵타니 (ᠰᠣᠷᠬᠠᠭᠲᠠᠨᠢ)이다.

2. 생애

  • 생애 초반
소르칵타니 베키는 1190년 케레이트부 자하 감보와 그의 아내 바이시 혹은 바사이(Васай)의 셋째 딸로 태어났으며, 정확한 생일은 전하지 않는다. 그녀는 케레이트족으로 케레이트 부족의 지도자였으며, 칭기즈칸의 의부였던 옹 칸의 질녀로 그의 동생 자하 캄보의 셋째 딸이다.

아버지 자하 감보는 본명은 케레이데이로, 몽골어로 군중을 뜻한다. 한때 서하인과의 전쟁 때 포로로 붙잡혔다가 살아 돌아왔다. 이때 자하 감보로 개명했는데, 자하 감보는 티베트어로 수감 포로, 또는 광대하다는 뜻이다. 후일 칭기즈 칸에게 협력하고, 토그릴 옹 칸과 함께 칭기즈 칸의 메르키트 점령에 출전하여 1만 병사를 이끌었다 한다. 어머니 바이시 혹은 바사이는 이름만 전하고, 친정 부족 혹은 친정 가문의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그녀의 형제 자매에 대한 기록은 단편적이라서 언니 이바카 베키, 벡투르미시 푸진과 이름이 전하지 않는 여동생 1명이 기록에 전한다.

소르칵타니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도였으며 현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문맹이었지만 상당히 똑똑하고 영리한 여성이었다 한다. 그녀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1203년 자하 감보는 자신의 딸과 지참 노비들을 칭기즈칸에게 바쳤고, 그녀는 툴루이에게 시집갔다. 언니 이바카 베키는 칭기즈 칸의 후궁의 한 사람이 됐고, 다음 벡투트미시 푸진은 칭기즈 칸의 장남 주치의 부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름이 전하지 않는 다른 여동생 1명은 옹구트 부족장의 아들에게 주었다 한다. 1204년 케레이트부는 칭기즈 칸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옹 칸이 칭기스 칸과 대립하다가 패하고 같은 기독교도였던 나이만인에게 살해당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 자하감보는 이전에 자발적으로 칭기즈 칸과 합류하여 메르키트족을 격퇴하는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그의 가족은 처벌받지 않았다.

아버지 자하 캄보는 처음에는 칭기즈 칸에게 항복했으나, 1204년 토크토아의 반란에 호응했다가 칭기즈 칸의 먼 친척인 주르체데이에게 체포, 처형되고,세력은 와해되었다. 아버지 자하 감보는 1328년까지 생존했다는 설도 있다. 후일 칭기즈 칸은 이바카와 이혼하라는 악몽을 꾸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후궁이자, 그녀의 언니 이바카 베키를 다시 주르체데이 장군에게 주고, 지참금을 이바카에게 돌려주어 보냈다. 그러나 이바카에게 카툰의 지위는 인정해주었다. 이바카는 소르칵타니와도 자주 만나 그의 자문이 되어주었다.

소르칵타니는 그 자신이 문맹이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멀리 떨어진 제국을 운영하려면 언어 문해력의 가치를 인식했다. 그의 아들들은 몽골어 외에도 각지의 언어를 배우게 했다.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인인 소르각타니는 다른 종교를 존중했고, 이는 그녀의 아들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네스토리우스교파 기독교인이면서도 무슬림들에게도 호의적이었다.
  • 결혼 이후
소르칵타니는 상당히 똑똑한 여성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 심모원려를 두고 라시드 알딘은 칭기즈 칸의 어머니 호엘룬에 비교하였다. 남편이 죽은 후 둘 다 자녀를 키웠고,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자녀들은 권력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페르시아의 사서 집사에 의하면 툴루이 칸의 카툰들 중에서 최상위하고 가장 사랑받은자는 그녀였다(بزرگترين و محبوب ترين خواتين تولوی خان او بود) 한다. 집사에는 소르칵타니 베키는 호엘룬보다는 좀 더 융통성있고 탄력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라시드 알딘은 그녀를 총명하고 영리한 여성, 능력이 있으며, 강인한 인물로 세계의 여성들 사이에 우뚝 선 인물이라는 인물평을 남겼다. 라시드 알딘은 그는 매우 지능적이고 유능한, 영리한 인물,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여자, 그녀가 사촌보다 아들들의 능력을 들어올리고 카안과 황제의 계급에 도달하게 한 것은, 그녀의 지성과 책략과 능력을 통해 이뤄냈음을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평하였다. 아타 말릭 주베이니의 세계정복자의 역사에 의하면 소르칵타니는 깊은 꾀와 미래를 내다보는 심모원려한 면모가 있었고, 재치있고, 결단력이 있는 인물이라 하였다.

칭시스 칸의 사후 쿠릴타이에서 몽골 족장들은 톨루이를 새로운 대칸으로 선출하였지만, 톨루이는 그것을 사양하고 1229년 쿠릴타이에서 그의 형 우구데이에게 양위하였다. 몽골 족장들은 막내 아들이 아버지를 계승한다는 전통에 따라 이와 같이 결정하였으나, 톨루이가 당시 가장 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톨루이보다 소르칵타니로부터 얻은 그의 네 아들로 이루어진 톨루이 가문 사람들은 몽골 제국의 운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의 아들은 뭉케와 쿠빌라이, 훌레구, 아릭 부케였다. 뭉케는 제4대 칸이 되었고, 쿠빌라이는 제5대 카안이 되고, 훌라구는 일 한국의 건국자, 아리크부케는 몽케 칸 사후 쿠빌라이와 대립 칸이 되었다.

딸은 조국공주 투무겐(赵国公主 獨木干 Думуган), 노국공주 에센부카(鲁国公主 也速不花)였다. 조국공주 투무겐은 알라카이 베키와 그의 두번째 남편 오구트 부 진구의 아들 옹기라트부 섭고태(聶古台)와 결혼했다가 섭고태 사후, 섭고태의 동생 찰홀(察忽)이 수계하였다. 노국공주 에센부카는 보르테 우진 카툰의 친정 조카 옹기라트부 알진(斡陳)과 결혼했다.

몽골의 율법 야삭에 의하면 아이들은 세례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의 아이들은 그녀가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이는 후일 몽골 제국 사회에서 종교적 관용의 주요 사례로 종종 언급되었다.
  • 남편 사후
그녀의 남편 툴루이는 동몽골과 북중국을 울루스로 하였는데 1232년 음력 9월 술 과음 혹은 독살로 사망하였다. 일설에는 퇴레게네 카툰에 의한 모살설이 있다. 소르칵타니는 툴루이 일가의 영지를 관리하였다. 그리고 소르칵타니는 집정이되었고 우구데이는 그의 아들 구육을 그녀와 결혼시키려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어린 아들들을 돌봐야 된다며 거절하였다. 이 결정은 몽골제국의 형성에 가장 중요한 것중의 하나로 판명되었다. 뒤에 구유크와 갈등하던 킵차크 한국의 바투느는 소르칵타니에게 몽케에게 울루스 대신 대칸 위에 올릴 것을 제의하기도 했다. 일설에는 바투 칸의 생모가 소르칵타니 베키와 사촌간이라는 설도 있다.[1] 우구데이 칸은 그가 "자녀들에 대한 극도의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여성"인 소르카그타니에게 툴루이 울루스와 군대를 관할하는 모든 업무를 이전하라고 지시했다.

1236년 오고타이 칸에게 허베이 성의 일부를 그녀의 영토로 요청했고, 오고타이 칸은 머뭇거렸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남편이 금나라 원정 시 허베이 성 일대를 정복했기 때문에 그 장소는 어쨌든 툴루이의 몫이라고 지적하고 오고타이는 요구를 수락하였다. 그러나 오고타이 칸은 또한 툴루이의 일부 영토를 점령하고 소르칵타니 베키의 병사 대부분을 빼앗아 거두어갔다.

오고타이 칸은 툴루이의 영지의 4천호를 자신의 아들 코단에게 주었다. 툴루이 가문의 측근 대신들은 이에 불복하였으나, 소르칵타니는 툴루이의 측근 대신들에게 대칸의 뜻이라며 간곡히 설득, 한편으로 코단을 잘 구슬리기도 했다. 후일 소르칵타니는 코단에게 차기 대칸으로, 자신의 일가를 지지하도록 설득하였다. 소르칵타니 베키 자신은 네스토리우스 기독교도였으나, 툴루이의 영지 내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였다. 한편으로 각 종교의 율사와 종교학자들을 초빙하였고, 유학자들을 우대하였다.[2] 주로 유교를 내세워 비상시에 대처하였다. 그녀는 남편 사후 몽골 제국의 관습법인 야삭을 위반하는 행동을 한번도 하지 않아 명망을 쌓았고, 구유크 칸은 후일 그를 칭찬하였다.

소르칵타니는 비밀리에 몽케를 킵차크 한국의 바투에게 보내, 대칸의 자리를 제안했으나, 바투는 몽케에게 대칸위를 제안하였다.
  • 킵차크한국 바투와의 연대
1241년 12월 11일 오고타이 칸이 갑자기 죽자 몽골의 황족들과 유력 귀족들은 돈을 긁어 모으려고 패부(牌符)를 대량으로 발행하였다. 그러나 소르칵타니만이 패부 남발을 하지 않아 귀족, 식자들의 명망을 얻었다.

1246년 구유크가 칸위에 오른 뒤, 소르칵타니와 그녀의 아들들을 칭찬하였다. 이는 1242년 이후 자기 의지를 억제하고, 몽골의 관습 야삭을 철저하게 지켰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당시 카스피해 북부와 불가리아 사이에 있던 주치가문의 바투에게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 연락하였다. 바투와 소르각타니 베키는 구유크의 즉위에 불만을 품고 서로 긴밀하게 연락하였다. 킵차크 한국의 바투는 툴루이 울루스에 만족하기 보다 장남 몽케 칸을 대칸으로 앉힐 것을 그에게 제의하였다.

1248년 봄, 구유크는 이틸 해안의 기후가 건강에 좋다는 구실로 대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서부로 갈 계획을 세웠다. 구유크 칸은 서방 원정군 재조직을 계획, 바투에게 지휘관을 맡겼으나 바투는 거절했고 구유크는 바투를 토벌할 계획을 세웠다. 소르칵타니는 구유크가 그의 오랜 적 바투와 전쟁을 결심했다고 의심, 비밀리에 바투에게 알려주었다. 바투는 귀위크 칸의 소환령을 듣고 대규모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진군해 왔다. 일설에는 소르칵타니 베키가 구유크 칸이 대규모 군사를 이끌고 공격 준비한다는 소식을 바투에게 알리고, 바투가 1248년 4월 자객을 보내 귀위크 칸을 비수바리쿠 근처에서 암살했다는 설이 있다. 일설에는 소르칵타니 베키가 직접 사람을 보내 귀위크 칸의 암살에 관여했다는 설도 있다.
  • 생애 후반
소르칵타니는 바투와도 연락을 주고 받았는데, 오고타이 일족의 동태와 몽골 본국의 정황을 바투에게 수시로 알리기도 했다. 소르칵타니는 바투와의 연락을 비롯, 주치 가문의 종왕들의 지지를 얻으려 노력하였다. 귀위크 칸은 바투에게 소환령을 내렸지만, 소르칵타니는 구유크가 그를 치려 한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바투는 본국의 상황을 알고 대군을 이끌고 왔다. 귀위크는 바투를 치러 군사를 일으키던 중 사마르칸트에서 사망했다. 소르칵타니 베키는 귀위크 칸의 장례식에 귀한 직물을 부조금으로 보냈다.

1251년 6월의 쿠릴타이에서 그녀의 장남 몽케가 대칸으로 추대되었지만 오고타이계와 차가타이계 왕자들이 반대하였다. 오굴 카미시 카툰은 오고타이 칸이 내세운 후계자 시레문이 있음을 들어 반대했고, 쿠릴타이에서 몽케의 추대를 번번히 반대했으며, 1251년에는 자신의 측근을 대신 보내기도 했다. 1251년 7월 1일의 쿠릴타이에서 바투 등의 지원을 얻은 그의 아들 몽케가 대칸이 되었다. 아타 말릭 주베이니의 세계정복자사에 의하면 소르칵타니 베키는 당시 몽골 종왕들과 부족장, 군민들에게 선물을 암암리에 보내고 친교를 맺어, 이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대칸위를 탈취할 수 있었다 한다.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인인 소르칵타니는 그 자신이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무슬림들 에게 보호와 호의를 제공했다. 그녀는 부하라 에 있는 카니야 마드라사(이슬람 신학교) 건설에 은색 발리쉬 천 은화를 기부하였고, 유명한 샤이크 세이프 알 딘 바하르지(Sheikh Seif al-Din Baharzi)에게 그의 수탁자로 지정, 관리를 의뢰하였다. 그녀는 또한 여러 마을에 마드라사를 짓는 데에도 기부하였다. 또한 여러 땅을 구입, 와크프로 기증하였다.

몽케 칸 즉위 후, 몽케칸의 즉위를 반대하던 오굴 카미시 카툰의 재판을 주관하고 처형을 지시하였다. 오굴 카미시 카툰과 시레문의 모친 카다카치 카툰은 체포되었다. 오굴 카미시 카툰은 벌거벗겨진 채 소르칵타니 베키 등의 앞에서 고문을 받았고,[3] 이내 살해되었다. 소르칵타니는 뭉케 칸의 즉위 몇달 후인 1252년 2월 12일 혹은 3월 11일 몽골의 신년 축제 중에 병으로 죽었다.
  • 사후
동시대를 살던 시리아 정교회 주교 그레고리 바르 헤브라에우스(Bar Hebraeus) 또는 이븐 알 이브리는 만약 내가 이런 여자를 세계 인종 사이에서 볼 수 있다면, 나는 여성의 능력이 남성의 힘보다 훨씬 우수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라시드 알딘은 집사에서 그의 아들들이 몽골 제국의 대권을 맡은 것은 그의 책략과 능력의 비상함과 바투의 도움과 도움 때문이었다, 톨루이가 죽은 후 그녀의 노력과 헌신, 능력과 지능의 결과 덕분이라는 평을 남겼다.

그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도였으므로 시신은 감숙성 장예시(張掖市)의 교회에 안치되었다.[4] 매장지는 셀렝가강 근처 부라 운두르(Bura Undur)에 매장되었다는 설도 있다. 페르시아계 사서 집사에 의하면 소르칵타니는 칭기즈 칸의 네명의 아들처럼 국가의 네 기둥이 된, 존귀한 네 아들의 어머니라고 평하였다. 존호는 장헌성태후(莊獻聖太后), 시호는 장성황후였다가 1310년 1월 7일 원 무종 카이산 칸이 현의의 시호를 가상하여 현의장성황후(顯懿莊聖皇后)가 되었다.

몽골식 존호는 사인 예케(Cайн Еке)로, 좋은 어머니라는 뜻이다. 존호가 붙여지거나 추서된 시점은 불분명하며, 티베트의 사서 홍사에 사인 예케 소르칵타니 베키의 큰 아들 뭉케 카안은 9년간 재위하였다고 언급되어 있다.

3. 둘러보기

원사(元史)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de3ff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color: #181818"
1권 「태조기(太祖紀)」 2권 「태종·정종기(太宗定宗紀)」 3권 「헌종기(憲宗紀)」
패아지근 철목진 패아지근 와활태 · 패아지근 귀유 패아지근 몽가
4·5·6·7·8·9·10·11·12·13·14·15·16·17권 「세조기(世祖紀)」 18·19·20·21권 「성종기(成宗紀)」 22·23권 「무종기(武宗紀)」
패아지근 홀필렬 패아지근 철목이 패아지근 해산
24·25·26권 「인종기(仁宗紀)」 27·28권 「영종기(英宗紀)」 29·30권 「태정제기(泰定帝紀)」
패아지근 애육려발육팔달 패아지근 석덕팔랄 패아지근 야손철목아
31권 「명종기(明宗紀)」 32·33·34·35·36권 「문종기(文宗紀)」
패아지근 화세랄 패아지근 도첩목이
37권 「영종기(寧宗紀)」 38·39·40·41·42·43·44·45·46·47권 「순제기(順帝紀)」
패아지근 의린질반 패아지근 타환첩목이
※ 48권 ~ 105권은 志에 해당. 106권 ~ 113권은 表에 해당. 원사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4><tablewidth=100%><tablebgcolor=#004db1> 114·116권 「후비전(后妃傳)」 ||
광헌익성황후 · 소자황후 · 흠숙황후 · 정절황후 · 소예순성황후 · 남부이 · 정자정의황후 · 불루칸 · 선자혜성황후 · 수케시리 · 장의자성황후 · 장정의성황후 · 바부칸 · 정유휘성황후 · 바부샤 · 부다시리 · 다리예테미쉬 · 다나시리 · 백안홀도 · 보현숙성황후 · 현의장성황후 · 휘인유성황후 · 선의숙성황후 · 소헌원성황후
115권 「예종등전(睿宗等傳)」 117권 「별리고태등전(別里古台等傳)」
타뢰 · 진금 · 감마랄 · 답랄마팔랄 별리고태 · 출적 · 독랄 · 아홀도 · 관철보화 · 첩목아불화
118권 「특설선등전(特薛禪等傳)」 119권 「목화려등전(木華黎等傳)」
특설선 · 패독 · 아랄올사척길홀리 목화려 · 박로출 · 박이홀
120권 「찰한등전(察罕等傳)」 121권 「속불태등전(速不台等傳)」
찰한 · 찰팔아화자 · 출적태 · 진해 · 초내태 · 오야이 · 갈사맥리 속불태(1) · 안축이 · 외답아 · 박라환 · 초사
122권 「파이출아이특적근등전(巴而朮阿而忒的斤等傳)」
파이출아이특적근 · 철매적 · 안찰아 · 암목해 · 풍숙안 · 석리검부 · 삭직돌로화 · 석아길사 · 합산납
123권 「포지아등전(布智兒等傳)」
포지아 · 소열태초올아 · 활활불화 · 배연팔도로 · 아술로 · 소고아 · 아랄와이사 · 초아 · 야포감복 · 조아가반 · 순지해 · 점철발도아 · 겁겁리 · 탑불이아 · 직탈아 · 월리마사 · 날고랄 · 아아사란 · 합팔아독 · 애모
124권 「탑본등전(塔本等傳)」
탑본 · 합랄역합적북로 · 탑탑통아 · 악린첩목이 · 이정(李楨) · 겁렬속가 · 망가산아 · 맹사속
125권 「새전적섬사정등전(賽典赤贍思丁等傳)」 126권 「안동등전(安童等傳)」
새전적섬사정 · 포로해아 · 고지요 · 철가 안동 · 염희헌
127권 「백안전(伯顏等傳)」 128권 「아추등전(阿朮等傳)」
팔린백안 아출 · 아리해아 · 상위 · 토토흡
129권 「내아팔적등전(來阿八赤等傳)」 130권 「철리등전(徹里等傳)」
내아팔적 · 뉴린 · 아랄한 · 아탑해 · 사도 · 이항 연지길태철리 · 불홀목 · 토별연완택 · 아로휘살리
131권 「속가등전(速哥等傳)」
속가 · 낭가알 · 망올태 · 오로적 · 완자도(2) · 백첩목아 · 회도 · 역흑미실 · 배항
132권 「항홀사등전(杭忽思等傳)」
아속항홀사 · 보로합답 · 옥와실 · 맥리 · 탐마적 · 발도아 · 앙길아 · 합랄태 · 사전 · 첩목아불화
133권 「탑출등전(塔出等傳)」
탑출 · 배연 · 야한적근 · 엽선내 · 탈력세관 · 홀날출 · 중희 · 단지아 · 찰랄아태탈환 · 실리백 · 패란해 · 겁렬 · 암백 · 야속태아 · 석도아
134권 「철길사등전(撒吉思等傳)」
철길사 · 월합내 · 석반 · 철련 · 애설 · 활활 · 독홀로 · 당인조 · 타아적 · 화상 · 유용 · 가로납답사 · 활리길사 · 소운석탈홀련 · 알라사 · 타라태 · 야선불화
135권 「철가술등전(鐵哥朮等傳)」
철가술 · 탑출 · 탑리적 · 탑해첩목아 · 구아길 · 홀도 · 패아속 · 월거련적해아 · 아답적 · 명안 · 홀림실 · 실랄발도아 · 아속철리 · 갈랄 · 걸태 · 탈인납 · 내만태화상
136권 「합랄합손등전(哈剌哈孫等傳)」 137권 「백찰한등전(伯察罕等傳)」
합랄합손 · 아사불화 · 배주 백찰한 · 곡추 · 아례해아 · 혁혁저아이정 · 탈열해아
138권 「강리탈탈등전(康里脫脫等傳)」 139권 「내만태등전(乃蠻台等傳)」
강리탈탈 · 연철목아 · 멸아길태백안 · 마찰아태 · 탈탈 내만태 · 타아지 · 타이직반 · 아로도 · 뉴적해
140권 「별아겁불화등전(別兒怯不花等傳)」 141권 「태불화등전(太不花等傳)」
별아겁불화 · 하유일 · 철목아탑식 · 달식첩목이 태불화(太不花) · 찰한첩목아
142권 「답실팔도로등전(答失八都魯等傳)」 143권 「마조상등전(馬祖常等傳)」
답실팔도로 · 경동 · 야속 · 철리첩목아 · 납린 마조상 · 노노 · 자당 · 아영 · 소운석해애 · 태불화(泰不華) · 여궐
144권 「답리마등전(答里麻等傳)」 145권 「역련진반등전(亦憐真班等傳)」
답리마 · 월로첩목아 · 복안철목아 · 성길 · 복수 · 도동 역련진반 · 염혜산해아 · 월로불화 · 달례마식리
146권 「야율초재등전(耶律楚材等傳)」 147권 「장유등전(張柔等傳)」
야율초재 · 점합중산 · 양회중 장유 · 사천예 · 사천상
148권 「동준등전(董俊等傳)」 149권 「야율유가등전(耶律留哥等傳)」
동준 · 엄실 야율유가 · 유백림 · 곽보옥 · 석천응 · 야율독화 · 왕순(王珣)
150권 「석말야선등전(石抹也先等傳)」
석말야선(3) · 하백상 · 이수현 · 야율아해 · 하실 · 학화상발도 · 조진 · 석말명안 · 장영 · 유형안
151권 「설탑랄해등전(薛塔剌海等傳)」
설탑랄해 · 고요아 · 왕의(王義) · 왕옥 · 조적 · 저순 · 왕선 · 두풍 · 석말패질아 · 가타라콘 · 오돈세영 · 전웅 · 장발도 · 장영
152권 「장진형등전(張晉亨等傳)」
장진형 · 왕진 · 양걸지가 · 유통 · 악존 · 장자량 · 당경 · 제영현 · 석천록 · 유빈 · 조유
153권 「유민등전(劉敏等傳)」
유민 · 왕즙 · 왕수도 · 고선 · 왕옥여 · 초덕유 · 석천린 · 이방서 · 양환 · 가거정
154권 「홍복원등전(洪福源等傳)」 155권 「왕세현등전(汪世顯等傳)」 156권 「동문병등전(董文炳等傳)」
홍복원 · 정정 · 이진 · 석말안지 · 알지리 · 정온 왕세현 · 사천택 동문병 · 장홍범
157권 「유병충등전(劉秉忠等傳)」 158권 「요추등전(姚樞等傳)」 159권 「송자정전(宋子貞等傳)」
유병충 · 장문겸 · 학경 요추 · 허형 · 두묵 송자정 · 상정 · 조자량 · 조벽
160권 「왕반등전(王磐等傳)」
왕반 · 왕악 · 고명 · 이치 · 이창 · 유숙 · 왕사렴 · 이겸 · 서세륭 · 맹기 · 염복
161권 「양대연등전(楊大淵等傳)」 162권 「이홀란길등전(李忽蘭吉等傳)」
양대연 · 유정(劉整) 이홀란길 · 이정(李庭) · 사필 · 고흥 · 유국걸
163권 「이덕휘등전(李德輝等傳)」
이덕휘 · 장웅비 · 장덕휘 · 마형 · 정사렴 · 오고손택 · 조병
164권 「양공의등전(楊恭懿等傳)」
양공의 · 왕순(王恂) · 곽수경 · 양환 · 양과 · 왕구 · 위초 · 초양직 · 맹반린 · 상야 · 이지소
165권 「장희등전(張禧等傳)」
장희 · 가문비 · 해성 · 관여덕 · 조갑랄 · 주전 · 공원 · 주국보 · 장립 · 제병절 · 장만가노 · 곽앙 · 기공직 · 양새인불화 · 선비중길 · 완안석주
166권 「왕준등전(王綧等傳)」
왕준 · 수세창 · 나벽 · 유은 · 석고산 · 공언휘 · 채진 · 장태형 · 하지 · 제병절 · 맹덕 · 장영실 · 석말구구 · 초정 · 번즙 · 장균 · 단신저일 · 왕석랄 · 조굉일
167권 「장입도등전(張立道等傳)」
장입도 · 장정진 · 장혜 · 유호례 · 왕국창 · 강욱 · 장초 · 여질 · 담자영 · 왕운
168권 「진우등전(陳祐等傳)」
진우 · 유선 · 하영조 · 진사제 · 진장경 · 조여표 · 요천복 · 허국정
169권 「하인걸등전(賀仁傑等傳)」
하인걸 · 가석랄 · 유합라팔도로 · 석말명리 · 사중온 · 고휴 · 장구사 · 왕백승
170권 「상문등전(尙文等傳)」
상문 · 신도치원 · 뇌응 · 호지휼 · 왕이용 · 창사문 · 장소 · 원유 · 장방 · 학빈 · 고원 · 양식 · 오정 · 양덕규
171권 「유인등전(劉因等傳)」 172권 「정거부등전(程鉅夫等傳)」
유인 · 오징 정거부 · 조맹부 · 등문원 · 조원용 · 제이겸
173권 「최빈등전(崔斌等傳)」 174권 「요수등전(姚燧等傳)」
최빈 · 최욱 · 엽이 · 연공남 · 마소 요수 · 곽관 · 협곡지기 · 유갱 · 야율유상 · 학천정 · 장공손
175권 「장규등전(張珪等傳)」
장규 · 이맹 · 장양호 · 경엄
176권 「조백계등전(曹伯啟等傳)」
조백계 · 이원례 · 왕수 · 왕의(王倚) · 유정(劉正) · 사양 · 하약우 · 조사로 · 유덕온 · 울지덕성 · 진기종
177권 「장사명등전(張思明等傳)」 178권 「양증등전(梁曾等傳)」 179권 「하승등전(賀勝等傳)」
장사명 · 양원규 · 장승 · 장몽해 · 진호 양증 · 유민중 · 왕약 · 왕결 · 송도 · 장백순 하승 · 양타아지 · 소배주
180권 「야율희량등전(耶律希亮等傳)」 181권 「원명선등전(元明善等傳)」 182권 「장기암등전(張起巖等傳)」
야율희량 · 조세연 · 공사회 원명선 · 우집 · 게혜사 · 황진 장기암 · 구양현 · 허유임 · 송본 · 사단
183권 「왕수성등전(王守誠等傳)」 184권 「왕도중등전(王都中等傳)」
왕수성 · 왕사성 · 이호문 · 패출로충 · 이형 · 소천작 왕도중 · 왕극경 · 임속가 · 진사겸 · 한원선 · 최경
185권 「여사성등전(呂思誠等傳)」 186권 「장정등전(張楨等傳)」
여사성 · 왕택민 · 간문전 · 한용 · 이직 · 개묘 장정 · 귀양 · 진조인 · 성준 · 조감 · 장저
187권 「오고손양정등전(烏古孫良楨等傳)」 188권 「동단소등전(董摶霄等傳)」
오고손양정 · 가로 · 녹로증 · 공사태 · 주백기 · 오당 동단소 · 유합랄불화 · 왕영 · 석말의손
189·190권 「유학전(儒學傳)」
조복 · 장수 · 김이상 · 허겸 · 진력 · 호일계 · 황택 · 한택 · 동서 · 안희 · 호장유 · 웅붕래 · 대표원 · 모응룡 · 정저손 · 진부 · 동박 · 양재 · 유선 · 한성 · 오사도 · 주문규 · 주인영 · 진려 · 이효광 · 우문공량 · 합랄로백안 · 섬사
191·192권 「양리전(良吏傳)」
담징 · 허유정 · 허즙 · 전자 · 복천장 · 야율백견 · 단직 · 암도랄 · 양경행 · 임흥조 · 관음노 · 주자강 · 백경량 · 왕간 · 노기 · 추백안 · 유병직 · 허의부
193·194·195·196권 「충의전(忠義傳)」
이백온 · 석규 · 유합랄발도 · 임지 · 야율특말 · 보바르 · 합랄보화 · 유천부 · 소경무 · 장환 · 이보 · 이제 · 곽가 · 저불화 · 주희동 · 변침 · 교이 · 안유 · 왕사원 · 양박 · 조련 · 손총 · 석보 · 성소 · 양승 · 납속랄정 · 백안불화적근 · 번집경 · 전보암철리 · 주당 · 섭병 · 유경손 · 유술조 · 계완택 · 추려 · 패라첩목아 · 팽정견 · 왕백안 · 유준 · 타리불화 · 조야준대 · 진군용 · 복리아돈 · 조해 · 위중립 · 보안불화 · 민본 · 배주 · 조홍의 · 정옥 · 황후 · 백첩목이 · 질리미실 · 박새인불화 · 정호례
197·198권 「효우전(孝友傳)」
왕윤 · 곽도경 · 소도수 · 곽구구 · 장윤 · 전개주 · 영저구 · 필야속답립 · 번연 · 유덕천 · 곽회 · 공전 · 장자기 · 진걸아 · 양일 · 장본 · 장경 · 원선 · 조육 · 호광원 · 진소손 · 조일덕 · 왕사총 · 철철 · 왕응초 · 정문사 · 왕천 · 곽전 · 양호 · 정문충 · 소경조 · 호탁 · 손수실 · 이자경 · 종기 · 조영 · 오호직 · 여병 · 서옥 · 윤신 · 유정양 · 유통 · 장왕구 · 장사효 · 두우 · 장수 · 손근 · 장공 · 자여도 · 왕용 · 황윤 · 석명삼 · 유기 · 유원 · 축공영 · 진사효 · 강겸 · 호반려 · 왕사홍 · 하종의 · 합도적 · 고필달 · 증덕 · 근병 · 황도현 · 사언빈 · 장소조 · 이명덕 · 장집 · 위경익 · 탕림 · 손억 · 석영 · 왕극기 · 유사경 · 여우 · 주락
199권 「은일전(隱逸傳)」
두영 · 장특립 · 두본 · 손철 · 하중 · 무각
200·201권 「열녀전(列女傳)」
왕추추 · 진로화진 · 마영 · 조옥아 · 풍숙안 · 조왜아 · 주숙신 · 갈묘진 · 장의귀 · 이동아 · 탈탈니 · 주면가 · 귀가 · 이지정 · 채삼옥 · 범묘원 · 서채란 · 우숙정 · 진숙진 · 야산홀도 · 여언능 · 반묘원 · 유취가 · 나묘안 · 이새아 · 도종원 · 안정동
202권 「석로전(釋老傳)」 203권 「방기전(方伎傳)」
팔사파 · 구처기 · 전절 전충량 · 근덕진 · 장강 · 이호 · 손위 · 아로와정 · 역사마인 · 아니가
204권 「환자전(宦者傳)」 205권 「간신전(奸臣傳)」
이방녕 · 박불화 아합마 · 노세영 · 상가 · 철목질아 · 합마 · 삭사감
206권 「반신전(叛臣傳)」 207권 「역신전(逆臣傳)」
이단 · 왕문통 · 아로휘첩목아 철실 · 패라첩목아
208·209·210권 「외이전(外夷傳)」
고려 · 탐라 · 일본 · 안남(진조) · 면국 · 점성 · 섬국 · 유구 · 삼서
(1) 121권의 속불태(速不台)와 122권의 설불태(雪不台)는 동일인물이므로 122권에서는 생략한다.
(2) 131권의 완자도(完者都)와 133권의 완자도발도(完者都拔都)는 동일인물이므로 133권에서는 생략한다.
(3) 150권의 석말야선(石抹也先)과 152권의 석말아신(石抹阿辛)은 동일인물이므로 152권에서는 생략한다.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4db1><tablebgcolor=#004db1>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