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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장군(征東將軍) 호준(胡遵) | 정남대장군(征南大將軍) 왕창(王昶) | 진남장군(鎭南將軍) 제갈탄(諸葛誕) |
胡遵 호준 | |
최종직위 | 정동장군(征東將軍) |
성씨 | 호(胡) |
명 | 준(遵) |
생몰연도 | ?년 ~ 256년 7월 5일 |
고향 | 양주(涼州)[1] 안정군(安定郡) 임경현(臨涇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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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의 무장이자 호분과 호열의 아버지로[2] 정남대장군 왕창, 진남장군 제갈탄과 함께 삼정(三征)이라고 불린다. 양주 안정군 임경현 출신.2. 생애
장기에게 발탁되어 벼슬길에 올랐으며, 233년에 안정군 국경지대 수비를 하고 있던 흉노의 우두머리 호박거자직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의로부터 명을 받아 토벌한다. 234년에 제갈량이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침공하자 곽회와 함께 양주를 방어해 제갈량의 진격을 막았으며, 공손연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의가 직접 그를 토벌하기 위해 238년에 출발할 때 우금과 함께 종군해 비연을 격파하는 공을 세운다.[3]252년에 정동장군으로 임명되었다가 11월에 호준은 왕창, 관구검, 제갈탄과 함께 오나라를 공격하면서 제갈탄과 함께 제갈각이 동흥에 쌓은 제방을 부교를 쌓는 등으로 공격했으며, 12월에 제갈각의 군사와의 싸움에서 한종, 환가 등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는 등 패배했다.[4]
255년에 관구검이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사의 명을 받아 청주와 서주의 제군을 지휘해 초, 송 사이로 출병해 관구검군의 귀로를 끊었으며, 256년 7월 5일에 사망한다.
여담으로 의외로 진수의 《삼국지》에 호준의 열전이 없다. 정동장군, 위장군까지 역임했고 당시 위 군부의 거물급인 왕창, 제갈탄과 이름을 나란히 했던 것을 보면 중진임이 틀림없는데[5], 그의 행적이 누락될 특별한 이유가 없어서 열전이 없는 이유는 명확히 추론할 수 없다. 호준 본인의 큰 흑역사가 있어서인지[6], 호씨 가문이 진수에게 돈을 주지 않아서인지[7], 굉장히 미스테리한 부분. 더구나 아들인 호열도 위말진초 당시 군부의 중진이었으나 열전이 없다.
3. 미디어 믹스
3.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11 |
삼국지 12, 13, 14 |
삼국지 4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대체적으로 평범한 무장이다.
삼국지 5에서의 능력치는 무력 64/지력 47/정치력 48/매력 60으로 후기의 장수라고 해도 B급에도 약간 모자라는 수준이다. 특기는 고무, 내분, 수습, 화계, 진화, 복병의 비교적 지원계열의 성격, 그런데, 아들인 호열과 같이 등장하는데 부자관계가 안 설정 되어 있고 뭣보다 탄생년도가 불확실한 장수들이라서 그런지 호준 본인과 호열의 나이차가 9살 밖에 안 된다. 아무래도 연의에서 언급이 안 되어서 고증이 부족한 초기작이라 부자관계를 제작진이 몰랐던 듯하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5/무력 78/지력 59/정치력 60으로 나쁘지 않다. 병법으로는 분전, 돌진, 몽충, 충차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2/무력 78/지력 52/정치력 49/매력 60. 특기는 보수, 훈련, 돌격, 기염, 반격, 주호. 총 6개다.
클론 무장스러운 일러스트에 비해선 생각보다 능력치가 괜찮다. 주호를 빼면 통솔력, 무력을 살린 특기들이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0/무력 76/지력 52/정치 50/매력 62.
병과 적성은 창병 A/극병 B/노병 C/기병 A/병기 B/수군 C. 삼정(三征)중에서 혼자만 특기가 없다.
삼국지 12에서는 수고의 입을 가지고 PS3판에서 추가되었는데 자세히 보면 말을 탄 채 오른손에 검을 들면서 지휘하고 있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9/무력 76/지력 62/정치력 50. 특기는 순찰 1 단 하나. 전수특기도 순찰이며 전법은 궁병선동. 음성은 청년.
어째서인지 영걸전 시나리오 와룡승천, 영걸몽환에서 촉나라 소속으로 나온다. 심지어 아들 호분은 위나라 소속이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7, 무력 73, 지력 52, 정치 50, 매력 63으로 전작과 달리 통솔력이 2, 무력이 3, 지력이 10 하락했다. 개성은 소탕, 강건, PK에서는 금강 개성이 추가되었고 주의는 왕도, 정책은 병기강화 Lv 3, 진형은 어린, 봉시, 충차, 전법은 분전, 격려, 충차, 친애무장은 장기, 혐오무장은 없다. 전작과 달리 어투가 보통남으로 설정되었다.
DLC로 등장한 성씨패란에서 출신지인 안정에 자리잡고 부하로는 호거아, 호반, 호분, 호연, 호열, 호제, 호종, 호진, 호질, 호충까지 총 10명을 두고 있다. 소속 도시의 재야 무장으로는 구본, 대릉, 최용, 황보개, 황보숭 총 5명이 있다. 차남 호열이 처음부터 군사로 설정된 상태인데 먼저 그나마 지력이 가장 높은 호종을 군사로 교체한 뒤, 공백지인 천수를 점령하고 나서 그 도시에 등장하는 재야 무장인 강유, 화웅을 등용하고 특히 그 강유를 군사로 변경한 다음에 국력을 쌓는 것이 좋다.
3.2. 삼국전투기
야구를 좋아하는 최훈 작가답게 이호준으로 패러디했다. 낙가 전투 (3)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으며, 소개컷에는 팍 하는 임팩트 없이 장수하여 군 최고위에 올랐다고 서술되어 있다.동흥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그 동안 자잘한 공은 많았지만 강렬한 임팩트가 부족해서 이제야 출연했다고 언급되기도 했다. 제갈탄과 함께 합비에서 동흥제 공략에 들어갔는데, 제갈탄이 동흥제의 양 끝 성은 지세가 험난해 육로 진출이 어렵다고 하자 소호에 부교를 놓아 둑으로 바로 들어가는 방법을 쓰자고 제안했고 제갈탄이 이에 동의하며 부교를 놓아 나아갔다. 그렇게 한종과 환가를 시작으로 동흥제 위에 올라가는데 성공하고, 동흥제의 동성과 서성 공략에 들어가지만 예상보다 수비가 탄탄해 진도가 안 나가자 병사들을 풀어줄 겸 주연을 열었지만, 정봉이 이 틈을 노려 기습을 가하자 위군은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호준 본인은 적은 소수에 경무장이니 당황하지 말고 쪽수로 밀어붙이라고 하며 어떻게든 저항했지만, 그 와중에 동성의 문이 열리며 여거, 유찬, 당자의 본대가 위군을 공격하였고, 결국 수만의 위군을 잃으며 패퇴하게 되었다. 이후 제갈탄과 함께 패전의 책임을 물 뻔했지만 사마사가 패전의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며 자리를 보전했다.
낙가 전투 편에서는 관구검의 난 당시 청주, 서주의 병사를 끌고 초에 주둔했다. 동흥에서의 불명예를 씻겠다며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이후 본인은 등장이 없고 아들들만 등장했으며, 호준 본인은 전투외편 7편에서 사망했단 사실이 언급됐다.
[1] 생년이 불분명한데, 194년 이후 출생했다면 옹주(雍州)출신이 된다.[2] 호열은 촉정벌에, 호분은 오정벌에서 각각 활약하였다.[3] 《자치통감》에서는 우금과 함께 웬일인지 등장하지 않는다. 참고로 정사 삼국지에는 참전 기록이 있다.[4] 이때 그냥 패한것이 아닌 잔치를 벌이다 오군이 급습해서 패배했다.[5] 그의 손녀 호방(호분의 딸)은 황제 사마염의 귀인까지 된다.[6] 기록에서 남겨진 호준의 흑역사는 동흥에서의 참패 정도만 보이지만 모반을 꾸민 왕릉, 관구검, 제갈탄도 위서에 실렸기에 패전 정도를 흑역사라 볼 수는 없다.[7] 진수가 정의, 정이 형제의 후손에게 쌀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해 정의, 정이 형제의 열전을 일부러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비가 이들의 가문의 남자들을 모두 처형해버렸는데, 그렇게 되면 후손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저 일화 자체가 사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